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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남긴 흔적 - 단편38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21 600회 0건





38. 베를린에 도착




비가 부슬부슬 뿌리는데도 택시는 어두운 밤길을 거침없이 달린다. 도시를 통과하는 고속도로인 것 같다. 비행기 안에서 봐둔 지도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베를린의 북서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달리는 것 같다. 다른 차들보다 엄청 빠르다. 은근히 불안해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택시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오자 넓은 도로가 시원스럽게 뻗어있다. 비스마르크슈트라쎄 (Bismarkstrsasse) 라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베를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긴 도로들 중에 하나였다. 우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 같다. 그런데 택시는 여기에서도 제한속도를 지키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도로에 차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간혹 감시 카메라가 있을 때에만 브레이크를 밟는다.

과거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Bismark)의 이름을 딴 도로인 것 같다. 밤 길을 가면서 과거 이 나라의 통치자들의 권력의 위용이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택시 기사는 카이저-프리드리히-슈트라쎄 (Kaiser-Friedrich-Strasse) 로 우회전을 해서 가다가, 드디어 내가 가려고 하는 호텔이 있는 쿠담 (Ku"damm)으로 들어섰다.

이제 택시의 속도는 엄청 줄었다. 도로는 넓지만, 인도가 넓고 차도는 그리 넓지는 않다. 자정이 넘어서인지 파리의 밤거리처럼 조용하다. 과거의 분단 시절에 서베를린의 번화가의 중심이었다는 곳인데도 마치 시골처럼 조용하다. 그러고 보면 서울은 엄청 시끄러운 도시인 것 같다.

택시가 멈추어 섰다. 기사는 다 왔다면서 길 건너에 있는 호텔을 가리켰다. 나는 기사에게 차를 돌려서 호텔 입구에 대달라고 했다. 비를 맞으면서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도로를 건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우리를 호텔 입구 앞에 택시를 세웠고,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생각보다는 작은 호텔이다. 그렇지만 이 호텔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호텔이라고 들었다.

우리는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방 두 개를 달라고 했다. 우리에게 6층에 있는 방이 주어졌다. 아마도 예약을 하지 않은 탓이리라. 직원이 강대리와 함께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나도 체크인을 마치고 6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강대리가 복도를 내다보고 있다가 나를 내 방으로 밀어 넣는다.



"씻고 갈께."
"아까 그 남자한테 팁 줬어?"

"2유로짜리 세 개. 동전은 톡톡 털어서 그게 다였어."
"잘 했어."



내 방에 들어서서 침대에 걸터앉았는데, 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또 내 몸을 감싸오는 피로를 느꼈다. 과로일까? 아니면 비행 탓인가? 경험상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이다.

시간은 새벽 1시이다. 그러면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9시쯤 됐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벌써 엠마에게서 이메일이 와있다.





상수에게.

벌써 엄청 보고 싶다.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아.
하루 종일 동전쌓기만 했다. 그런데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떨린다. 몇 개 쌓지도 않았는데, 금방 쓰러진다.

슬프다.

지금 내 마음은 슬픔이라는 덩어리들로 가득 채워져있어.
한 개씩 꺼내서 쎈느 강을 향하여 던져버리지만, 그 빈 자리로 더 큰 덩어리가 금방 새로 자리를 잡는다.
아마도 내 마음이 지금은 슬픔 공장인 것 같아.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여자가 너에게 가까이 있는 것은 정말 보기 싫구나.
내가 생각해도 너의 말이 맞아.
이런 것들이 정신분열증 초기 단계가 아닐까 해.

너를 따라서 제네바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중이야.
만일 내일도 이러면 나는 너 있는 곳으로 갈 것 같아.
지금 이 밤에 너는 독일로 가는 중이지?
내 생각으로는 너의 목적지는 베를린일 것 같은데.

너로부터 답장을 기다릴께.
밤을 새우면서라도.
만일 아침까지 네가 답장을 하지 않으면 나도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
틀림없이 내일 초저녁에 나는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너에게 전화할 것 같아.

내가 너로부터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야.
나는 매 순간 너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너랑 같이 있기 위해서.
너와 접촉하기 위해서.
너와 키스하기 위해서.
그러면서 너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엠마로부터.





이것은 분명 엠마가 나를 협박하는 것이다. 엠마가 그러지 않으면 나는 답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베를린에 도착했다는 답장을 써서 발송했다. 엠마가 베를린에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스런 엠마에게.

제네바에서 일정을 끝내고 베를린에 도착했다.
엠마, 너는 베를린에 와본 적이 있니?
제네바에도, 베를린에도 나는 이번이 처음이야.
모든 것들이 낯설고 서툴다.

엠마를 보고 싶어 하면서 침대에 앉아서 메일을 쓴다.
베를린의 깊은 밤은 비에 젖고 있다.
저 비가 너와 작별했다는 사실 때문에 내 마음이 흘리는 눈물 같다.
파리에서 무리한 때문인지, 감기 몸살이 올지도 모르겠어.
내일 하루는 쉬려고 계획하고 있어.

엠마.
아프지 마.
의사가 아프면 되니?
너는 건강해야 해.



엠마한테는 바보 같은 상수로부터.




엠마의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이제는 거의 외울 정도이다. 나는 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다가 애써 서울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서울 생각은 곧 파리 생각에 의하여 오버랩이 된다.


나는 노트북으로 돌아와서 안산에 있는 영신 전자의 김사장에게 이메일을 썼다. 방금 베를린에 도착했으며,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그 회사를 방문하겠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김사장이 이 메일을 읽고, 그 회사로 미리 연락을 해놓는다면 좋겠지만, 과연 그가 그렇게 할 지가 의문이다. 이 이메일을 쓰기는 했지만, 발송 버튼을 눌러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대리가 잠옷바람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 옆으로 앉으며 기대온다.



"오빠, 우리가 지금 베를린에는 왜 온거지?"

"뭐야? 그걸 몰라서 물어?
내가 서울에서 출발할 때 일정은 가르쳐준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지금까지 기억해?
우리 업무 일정에는 제네바와 파리 밖에 없거든요."

"선미 구경시켜주려고 특별히 시간 내서 온거야."

"피이. 구라쟁이네.
오빠가 그럴 사람이야?"

"사실은 상무님 부탁으로 다른 회사 일 봐주러 왔어. 하하.
그런데 참 일찍도 물어본다."

"그럼 우리 회사 일은 다 끝났나?"

"제네바에서 만난 그 아줌마를 주말에 또 만날 예정이야.
선미는 그 때가지 관광이나 하면서 즐기면 돼요."

"와아아. 해외 출장이라는 것이 좋기는 좋구나."

"쉬지 않고 계속 일만 하면, 선미는 금방 아프다고 들어눕는다."
"나 보기보다는 단단하거든요."

"나도 알아. 만져보니까 엄청 단단하더라.
여자 몸이 무슨 쇳덩어리도 아니고 .."

"야아. 그렇게 단단한 것 말고!"
"버럭질 하지 마. 남들 다 자거든."



강대리가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휘두르며 내게 덤벼든다. 나는 피하는 척 하다가, 강대리의 몸을 덥석 안아버렸다. 강대리는 주먹으로 내 어깨를 콩콩 치다가, 내 목에 팔을 두른다. 우리는 침대로 쓰러지면서 누웠다. 나는 강대리의 가냘픈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주어 꼬옥 안았다. 강대리가 내 몸을 밀치고 내게서 빠져나가려고 바둥거린다. 잠시 후에 내가 팔에서 힘을 빼자 강대리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묻는다.


"하아. .. 너무 세게 안으니까 숨막히는 줄 알았잖아."
"내가 그 정도로까지 하겠어?"

"여기 베를린에는 오빠의 여자가 몇 명이나 있어?"
"나 여기 처음 왔거든요."

"몇번 왔냐가 문제가 아니고, 여자가 몇 명이냐고."
"없다고. 됐냐?"

"저런. .. 하아. .. 딱하다."
"왜? 뭐가 딱한 읍... 으읍. .."



강대리는 내 입술을 거칠게 빨기 시작한다. 나는 혀를 내밀어 강대리의 부드러운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입술은 향기를 내며 내 입술과 혀를 빨아당긴다. 그런데 나는 피로가 너무 심하게 느껴진다. 나는 키스를 멈추었다.



"선미야. 우리 씻고 하자."
"오빠 아직이야? 나는 씻고 왔는데."

"그럼 TV 보면서 기다려."



강대리도 팔을 풀고 바로 눕는다. 나는 TV를 켜서 프로그램을 찾아주고 욕실로 갔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더운물과 찬물을 교대로 틀면서 정성을 기울였다. 이 땅에서 감기몸살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소름이 끼친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강대리와 같이 자면 안될 것 같다.

내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강대리는 그녀는 몸을 옆으로 세우고 웅크린 채로 이불을 덮고 있다. 고개를 강대리의 얼굴로 가까이 가져가니까 그제서야 숨소리가 조용하게 난다. 그녀는 이미 자고 있다. 일하는 것은 별로 없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나를 따라 강행군을 하느라고 강대리도 피곤했던 것 같다.




나는 창가로 갔다. 창은 도로를 향하지 않고 건물의 뒤쪽을 향하고 있다. 어두운 바깥 세강은 바람한 점 없이 조용하고, 가느다란 비만 뿌린다.

갑자기 엠마의 얼굴이 또다시 떠오른다. 엠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우기면서도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서 나를 놀라게 한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끝내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수수께끼로 남겨두었다.



지금부터 6년 전, 내가 파리를 떠날 때, 나는 엠마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헤어져서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달 후에 내가 다시 파리에 가서 박사 과정을 계속하든가 하는 정도로 어렴풋하게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게 대학 교수의 소개로 한양그룹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일도 내 전공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적성에도 너무 맞지 않아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마 다니다가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내 발로 뛰쳐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달 한 달 보낸 시간이 이제는 벌써 5년차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회사 일을 핑계로 엠마를 잊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엠마가 그리워서 몸서리쳐본 날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엠마가 보고 싶다. 만일 이번 주말에 샤네끄 박사가 파리에서 만나자고 하면 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파리로 갈 생각이다.

그런데 엠마의 아빠 끌레르망 비노쉬박사가 나에게 제안한 연구 계획도 문제이다. 나는 그 당시에 중성자탄에 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거기서 중단한 상태였지 포기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리를 떠나면서는 언젠가는 계속할 때가 있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회사에 다니면서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나에게 먹이감을 던지는 것이다. 나한테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중성자탄도 역시 핵무기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수소폭탄이나 원자폭탄과는 파괴력과 열의 의한 피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중성자탄은 동물성의 단백질을 탄소화 시켜버리기 때문에, 사람이나 각종 동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 몸이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어 죽게 된다. 이렇게 중성자탄은 동물의 단백질을 파괴하지만, 그 외에 산업시설과 같은 건축물이나 도로 등에는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지금 북한이 중성자탄을 보유했는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애국자도, 정치적인 색채를 띠는 인물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북한을 염두에 두고 어떤 형태든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아직 멀고도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의 핵 개발이야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기술 지원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 이스라엘은 지난 날 프랑스로부터 기술을 지원을 받았고, 미국의 유태인들은 자금 지원을 하면서 정부를 압박하여 이를 묵인하도록 하는 체제를 몇십년 동안 유지하면서 노력한 것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부끄럽게도 독자적으로는 인공 위성 개발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도 가능할까? 우리는 이런 쪽으로는 아예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이 아닐까? 정치인들은 1950년대의 우방이라는 개념을 아직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분명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이제는 파리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셀린이라는 정렬의 여인도 떠오른다. 나는 나중을 생각해서 이번에 셀린과의 잠자리까지 피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셀린을 필요로 하여 그녀를 서울로 불러들이려고 하면, 그녀는 파리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서울로 냉큼 달려올까? 물론 셀린은 그럴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했다. 과연 그 때 가서도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까?


갑자기 나에게 백허그를 해온다. 강대리이다. 나는 내 가슴으로 모아지는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내 뒷목에서 그녀의 숨결이 느껴진다.



"선미. .. 깼니?"
"안피곤해? 자기 안자고 뭐해?"

"그냥. .. 잡생각 좀 하느라고."
"흥! 파리의 그녀들 생각?"

"얘는 눈만 뜨면 음란한 생각밖에 안해?"
"말했잖아. 나는 오빠만 생각하면 그런 생각 밖에 안난다고. 흐흐."



강대리의 따뜻한 혀가 내 목을 핥으며 올라간다. 강대리는 내 귀를 입슬로 물고 빨아당긴다. 나의 급소를 예리하게 공격하고 있다. 갑자기 내 온 몸이 꼬이기 시작한다. 내 가슴에 있던 강대리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서 목욕 가운을 들추고 쑤욱 들어온다. 아직은 얌전한 척 하는 내 남성은 어느새 강대리의 손에 잡혀있다. 숨이 막혀온다.



"선미야."
"어?"

"늦었거든요. 이렇게 계속 무리하면 몸이 견뎌내지 못해.
오늘은 그냥 자자."

"자려고 했는데, 오빠가 안오니까 잘 수가 없잖아."
"알았어. 미안해. 그만 침대로 가자."



우리는 천천히 침대로 갔다. 그런데 강대리는 자기 손에 잡고 있는 것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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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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