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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0:51 1,420회 0건
다시 시작. - 4 - ( 지훈 생각 )

이번 작업은 꼬박 한달은 걸릴 듯 하다.

한달 남은 인희의 생일에 맞추려면 간간이 잠을 물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모델하우스에 들어갈 가구들을 손수 만들고,

벽지 모양을 골라 세심하게 붙여나가고 있노라면, 꼭 진짜 내 집을 짓는 것 같아

우리의 신혼 생활이 눈 앞에 펼쳐지곤 한다.

그녀의 생일에 나는, 손수 지은 모델하우스를 건네며 청혼을 할 생각이다.

말이좋아 모델하우스지, 그 크기는 고작해야 한평 남짓이다.

하지만, 이것을 받은 인희가 장식물치고 제법 큰 이 물건을 어떻게 처분할 지는 다소 걱정이 되긴 한다.

설마 아무데나 던져놓고 먼지만 푹푹 쌓여가게 방치해 두진 않겠지..

인희가 이 집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노라면, 혼자서 미친놈처럼 헤죽거리게된다.

기뻐하며 감탄하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모델하우스의 건강을 체크하곤 한다.

그동안 많다면 많은 여자를 만나온 나지만,

인희같은 사람은 없었다.

인희처럼, 나를 몰두하게 한 여자도 없었고,

인희처럼, 말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여자를 만난 적도 없었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아마 처음부터 서로에게 맞는 주파수를 가진채 태어났을 거라고.

나는 이것 말고도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를 만난 이후로 매일 적어오던 작은 일기장이다.

일기장이래봐야 하루에 서너줄로 끝을 맺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녀가 바닷가에 데려다 달라며 처음으로 전화를 했던 그 날 이후로

단 하루도 걸러본 적이 있는 물건이다.

그녀의 생일이 지나고, 우리의 100 일이 되면, 허름하지만 내 마음이 담긴 이 일기장을

그녀에게 선물할 것이다.


어찌보면 그녀와 나는 첫 단추가 이상하게 끼워맞춰지긴 했다.

처음 만난 날, 별다른 대화도 없이 몸이 먼저 친해졌고,

나는 그녀와 사귀었다던 그놈을, 나의 그녀를 그렇게 아프게 했던 그놈을

벌써 두번이나 마주쳤다.

여관에서 나오다 마주쳤을 때는, 날아가려는 주먹을 참느라 손이 부르르 떨렸었다.

그 날 이후로 일주일간이나, 그 놈은 내 꿈속에 나타나

보란듯이 인희를 농락하곤 했다.

식은땀에 젖어 깨나곤 하던 그 즈음에는 다른 일들도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더랬다.

하지만, 내가 미워하는 건 인희가 아니라 그 넘일 뿐이라고 몇 차례나 주문을 외우다 보니,

그녀와 그 놈을 더이상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벌써 서른을 꽉 채워버린 내 나이.

하지만 그녀는 아직 스물 둘이다.

언제 키워서 잡아먹을까 하던 내 노심초사와는 달리

그녀는 내 요구에 금새 맞춰지곤 했다. 그 점이 그녀가 사랑스런 아주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인테리어를 하는 내 직업상 20대의 나이에 왠만한 유흥 주점의 코스는 모조리 섭렵해버린 나는

정숙하기만 한 결혼 생활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색골을 바라는 건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여자, 머리가 텅텅 비어있는 여자는 경계 대상 1호다.

섹스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다소 색다른 방법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줄 수 있을 여자,

함께 평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평범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갖춘 여자, 그런 여자를 찾아댔던 것이다.

아직 섹시함에 있어선 다소 기준 미달이지만, 점점 발전해가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뿌듯해지곤 한다.

사실, 건축인 모임에 그녀를 데려갈 때만 해도 그녀의 반응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다.

아직은 이를거라는 생각도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 별장에서 금방 적응하던 그녀 행동을 보며,

내가 찾던 반쪽이 바로 그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를 다듬어 나갈 계획을 세우느라, 미미한 흥분이 솟아오른다.

이번 주말에, 나는 김사장님이 설계한 모텔을 예약해 놓았다.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러 내린다. 어서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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