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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0:57 1,223회 0건
재미없는 소설1

제1장

그의 탄생과 그의 인척들


1957년 9월 하순,어느날 저녁 무렵이엇다. 그날 그 시각에도 생과 소멸이라는 우주의 무한법칙에 따라

서 수많은 새 생명들이 새로이 태어나고 또한 그 이면에서는 그 수명을 다한 생명체들이 소리없이 사라저

가는 끝없는 윤회속에서 이곳 전라도 남단에 자리한 어느한 농가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났다.


그날 저녁 사타구니에 유달리 큼직한 고추를 달고서 엄마뱃속을 나선 아기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렸을 때에 그가 태어남을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반기는 사람이 있엇으니 바로 그

의 할머니인 남양댁이엇다.


남양댁으로써는 능히 그럴만도 했던 것이다. 평생 장가를 못들이고 말것만 갔았던 외동아들을 그가 마

흔둘(42)의 나이때에서야 슬하에 5살과 8살된 남매를 두고있는 설흔셋(33)된 과부와 짝지운지 5년만에야

그렇게 집안의 대를 이어갈 손주가 태어났으니 남양댁으로써는 그기쁨은 어디다가 비길봐가 아니였던 것

이다.


남양댁 아들은 칠척 거구에다가 그 체구에 걸맞게 힘이 장사였기에 웬만한 장정의 두몫의 일은 거뜬히

해내는 사람이엇다. 하지만 그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엇다. 얼굴은 어렸을 때 입은 화상으로 인

해서 보기가 흉했으며 말도 못하는 벙어리였던 것이다.


그러한 신체적인 결함때문에서인지 아니면은 연분이 없었기에 그런지 성혼을 할 나이가 되엇는데도

그 어느 한곳에서도 이렀다할 혼담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해 두해 가면서 장가를 못간체

나이만 들어가는 아들 때문에 남양댁은 애달아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들나이가 어느덧 사십(40)을 넘기게 되자 신세한탄을 하여가며 수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채와 상을 이고지고 이동네 저동네로 돌아다니면서 채와 상을 팔려 다니는 늙은 채

장수 부부의 중매로 그렇게 애 둘딸린 과부에게 나마 아들을 장가 들였던 것이다.


남양댁은 채장수 부부가 동네로 ?아들면은 언제나 그들을 불러들여서 따뜻한 식사도 대접하고 잠도

재워 보내기도 하면서 아들의 중매를 간곡히 부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양댁의 며느리가 된 그 과

부는 강씨 성을 가진 여자로써 30여리 떨어진 어느 한 마을에서 살고 있엇던 것이다.

강씨는 열아홉(19)의 나이때인 1939년에 반백리쯤 먼곳인 순천근처에 있는 어느 한 마을에서 살고있

는 양씨 성의 남자에게 시집을 갔던 것이다. 그랬던 강씨는 슬하에 아들 형제와 딸아이 하나를 두고서 뱃

속에 또한 생명을 잉태하고있던 1948년 그해에 일어났던 여순반란 사건때에 온 집안 식구들이 몰살을 당

하는 바람에 졸지에 과부가 된 여자였다.


그렇게 집안이 몰살을 당하던 그때에 강씨는 천운으로 인해서인지 집에 없엇던 탓에 목숨을 붙이 할 수

가 있엇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집안에 화가 들이 닥치기 사흘전에 강씨는 친정으로 갔던 것이다. 강

씨는 친정어머니가 죽엇다는 소식을 전해 듯고서는 곧 뒷따라 오겠다는 남편의 말을 뒤로한체 세 살된 막

내아들 순호를 데리고서 먼저 친정으로 갔던 것이다.


그랬지만 강씨 남편은 강씨가 두 남동생들과 홀어머니 장레를 다 치르고 날때까지도 오지않았던 것이

다. 강씨는 곧 뒷따라 오겠다는 남편이,장례가 다 끝나도록 그렇게 콧빼기도 보이지를 않자 그러한 남편

을 원망해가며 집으로 돌아 왔다가는 집안이 그런 참변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강씨로써는 참으

로 하늘이 노래지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엇던 것이다.


강씨가 집안 식구들이 어디로 끌려가서 죽엇는지 알아볼려고 할 때에 그런 강씨를 보고 이웃에 살던

노부부가 살고 싶으면은 다시 빨리 친정으로 내빼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강씨 또한 그 자신도 그곳에 있

다가는 언제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겼기에 곧바로 친정으로 되돌아 갔던 것이다.


당시 강씨 남편은 뭐가 뭔지도 모른체 분위기에 힙쓸려서 반란군들 편에서서 좌익활동을 하였는데 그

일로 인하여 진압군들이 마을로 들어왔을 때 빨갱이로 낙인이 찍혀서는 그렇게 집안에 참화를 불러 들였

던 것이다.


그렇게 이웃 노부부의 충고로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던 강씨는 그이듬해인 1949년 5월 초순 어느날에 유

복자인 딸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6월 하순에 그 비국적인 6.25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런 전쟁와중에 그동안 믿고 의지하던 두 남동생들이 마치 약속이나 하듯이 차레 차례 행방불명이 되엇던

것이다.


집안의 두기둥이나 다름없는 남동생들이 그렇게 차례 차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으니 그동안 그들을

믿고 의지하고살던 강씨로써는 눈앞이 캄캄해졌던 것이다. 강씨 친정도 강씨 시댁처럼 땅한떼기 가진 것

없는 처지였기에 산지기 집에 살면서 남의 선산이나 돌봐주며 살아가는 처지였다.


그랬기에 스믈여섯(26)살과 스믈넷(24)이던 두 남동생들이 바쁜 농사철에는 이집 저집에다가 날품을

팔앗으며 농삿일이 뜸한 농한기때엔 뒷산에서 땔나무를 해다가 장마당에 내다 팔아가며 살아가고 있엇

던 것이다. 강씨는 그런 두 남동생들 덕택으로 그나마 굶지않고 살수있엇는데 그렇게 두 남동생들이 행방

불명이 되고나서 부터는 강씨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던 강씨는 1953년 어느봄날 동네에 들린 채장수의 권유를 받았던 것이다. 신랑될 사람이 벙어리리

에다가 얼굴에 화상흉터가 있어서 남보기가 좀 흉해서 그렀치 사람착하고 끼니걱정은 하지않고 살만치

전답이 많은 집이니까 그곳으로 재가를 하면은 더 이상은 끼니걱정은 하지 않을것이라는 채장수의 말에

강씨는 그해 봄에 곧바로 남양댁 며느리가 되엇던 것이다.


강씨가 그렇게 남양댁 며느리가 된지 몇계월 되지않은 그해 7월 어느날 강씨를 ?아온 손님이 있엇는

데 그사람은 바로 행방불명이 되엇던 강씨 둘째 남동생이엇던 것이다. 강씨 둘째 남동생은 먼저 행방불명

이 된 형을 ?아보겠다고 집을 나섰다가는 인민군에게 붙잡혀서 강제적으로 의용군이 되엇던 것이다.


그랬던 강씨 둘째 남동생은 그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에에 투입되었다가 그곳에서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서 후퇴하는 인민군들을 따라가다가 대구 근처에서 미군에게 포로가 되

엇던 것이다. 그렇게 포로가 된 강씨 둘째 남동생은 포로 수용소로 넘겨저서 수용되어 있다가는 1953년 6

월 중순 어느날 이승만 대통령 명에 의해서 기습적으로 단행된 반공포로 석방때 풀려났기에 집으로 돌아

왔던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누나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강씨 둘째 남동생은 그사이

에 누나의 자취는 간곳이없고 빈집만이 덩그러니 남아서 자신을 말없이 반겼기에 한동안 넋을 놓고 멍하

니 빈집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랬던 강씨 둘째 남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나가 개가를 했다는 것

을 알게되엇고 수소문 끝에 그렇게 누나를 ?아 왔던 것이다.


마땅히 갈곳이없었던 강씨 둘째 남동생은 그해를 남양댁집에서 손님으로 머믈고 있다가는 그이듬해인

1954년 남양댁의 주선으로 동네 방앗간에 머슴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남양댁은 그렇게 강씨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고서는 하루라도 빨리집안의 대를 이을 손주를 보고싶은 마음에서 매일같이 장독대 위에다가 정

한수를 떠놓고서 천지신명과 삼신할매에게 빌엇던 것이다. 그러나 강씨는 그런 남양댁의 정신과는 달리

좀처럼 임신을 못하고 있엇던 것이다.


그동안 밥굶기를 밥먹듯이 하였기에 몸이 허약할대로 허약한 강씨였기에 그렇게 좀처럼 임신을 못하

고 있엇던 것이다. 그러던 강씨가 2년째 되던해에 어렵사리 임신을 했지만은 얼마 못가서 하혈을 하면서

유산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남양댁은 그런 강씨에게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구해다가 손수달여서 한동

안 먹였던 것이다.


그런 남양댁의 정성때문이엇는지 강씨는 두 번 유산 끝에 5년째 되던해에 한번더 임신을 하고서는 그이

듬해인 9월 추석을 이틀앞둔 하순경에 제아빌 닮아서 우람하기가 그지없는 떡두꺼비같은 사내아이를 낳

았던 것이다. 강씨는 시어머니인 남양댁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고나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이 홀가분했던 것이다.


강씨로써는 그동안 상당한 심적 고통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시어머니인 남양댁이 그렇게 아들손주

를 바라며 매일같이 장독대위에다 정한수를 떠놓고서 빌어가며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손수다려서 먹으라

고 줄때마다 그걸 받아먹엇던 강씨 마음은 좌불안석이엇던 것이다. 그러면서 강씨 자신도 시어머니의 바

람대로 한시라도 빨리 떡두꺼비같은 손주를 안겨주고 싶엇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먹은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였기에 그것이 강씨에게는 상당한 심적 고통이엇던 것

이다. 하믈며, 강씨로써는 마땅히 내맞길곳도 없는 전 남편의 자식들을 더붙살이로 데리고 들어왔던 까닭

에 숨한번 크게 내쉬지 못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시어머니인 남양댁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것

이다. 그러던 강씨였기에 그렇게 아들을 낳음으로써 그러한 심적 고통에서 벗어날수가 있엇던 것이다.


남양댁은 그렇게 태어난 손주를 불면은 날아갈새라 쥐면은 터질새라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동네에서

글께나 한다는 사람에게서 받들 봉(奉)자에다가 사내 남(男)자를 쓰는 봉남이라는 이름을 지어왔던 것이

다. 그리고 남양댁은 내친김에 손주를 더보고 싶엇던지 자신도 마흔하나(41)에춘자를 낳았다고 하면서 강

씨가 봉남이의 동생을 보기를 바랬지만은 그이후로 강씨에게서는 더 이상 태기가 없엇던 것이다.


남양댁은 열여섯(16)의 나이때인 1910년에 홀엄씨를 모시고살던 4살위인 김씨 총각에게 시집와서는 열

여덟(18)의 나이때인 1912년에 첫아이인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둘째인 딸아이를 낳았엇는

데 그 이듬해인 1915년에 불의의 사고로 딸아이를 잃엇던 것이다. 당시, 바쁜 농사철이엇기에 들녁으로

일을 나간 사이에 노망난 시어머니가 집에다가 불을낸 바람에 딸아이와 시어머니가 불에타 숨지고 당시 4

살이던 아들은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서 사경을 헤멨던 것이다.


남양댁은 그런 아들을 살리려고 거의 식음을 전폐해가며 아들에게 메달려서 목숨은 구해놨지만은 아들

은 무엇때문인지 말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남편마저 이름모를 병을 얻어 덜컥 병석에 눕기까

지 했던 것이다. 남양댁 남편은 근 7년이나 병석에 누워 병마와 싸우다가 죽엇기에 남양댁 혼자힘으로 그

런 남편 병수발과 생계를 꾸려가며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엇다.

그렇게 해서 스믈여덟(28)이라는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남양댁은 설흔둘(32)의 나이때 자신보다

한살많은 설흔셋(33)의 홀애비에게 재혼을 했던 것이다. 그 홀애비에게는 여섯(6)살과 여덟(8)살된 딸이

둘 있엇고 2년 뒤 설흔다섯(35)의 나이때 남양댁은 새남편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아이는 한돌도 되기전에

죽고말았다.


남양댁의 새남편은 그렇게 죽은아이가 고추달린 사내아이였기에 그 아쉬움이 컷엇다. 그러다가 남양댁

이 사십(40)줄에 들어서서 다시 아이를 갖게되자 뛸뜻이 기뻐했다. 남양댁 새남편은 그렇게 남양댁과 사

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고나자 남양댁이 다시 아이를 갔기를 바라며 채근질도 하였엇는데 남양댁이 좀

처럼 아이를 갖지못하면서 나이만 들어가자 점점 무관심해저 가고있엇는데 그렇게 남양댁이 아이를 가졌

으니 입이 찢어졌던 것이다.


남양댁은 그이듬해인 1936년에 새남편의 아이를 낳았는데 딸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남양댁 남편은 그

렇게 딸아이가 태어난 그날밤 술에 만취되어 집으로 돌아와 해산후 자리보존하고 누워있는 남양댁에게

아들을 낳지 않았다며 주사를 부리며 구박을 했다. 그러한 남양댁 새남편의 주사가 그날밤으로 끝나지 않

고 몇일동안 계속 그랬기에 남양댁으로써는 참으로 곤욕스럽고 그런 새남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게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말이다. 그러던 남양댁 새남편은 5일째 되던날에 근 10여리나 먼

곳에서 그가 죽은시체로 발견되엇던 것이다. 그는 입안에 풀잎들이 가득 들어있는 모습을 하고서 작은 냇

가에 처박혀서 죽어있엇는데 사람들은 그가 도깨비에게 홀려서 그렇게 됐다고들 했던 것이다.


그렇게해서 재혼 10여년만에 다시 과부가 되어버린 남양댁은 1940년 열여덟(18)살인 재혼남편의 첫째

여식을 시집보냈고 나라가 일본속국에서 해방되던 1945년에 둘째도 시집 보냈다. 그리고 새 남편사이에

서 태어났던 유일한 자신의 핏줄인 춘자는 그녀 나이 23살때인 1955년 가을에 같은동네에서 머슴을 살고

있던 황 만수라는 30살된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던 것이다. 만수는 어려서부터 일찍 양부모를 잃고 외가쪽

으로 먼친척뻘인 사람집에서 자란 사람이엇다.

체구좋고 일잘하고 성품 또한 우직하고 부지런 한 사람이엇기에 남양댁은 그가 비록 양친 부모가 없다

해도 사람하나보고 춘자를 시집 보낸것이다. 춘자는 시집간지 1년 반만인 1957년 5월달에 첫딸아이를 낳

앗다, 그렇치만 그아이는 태어난지 3계월 만에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해 9월달에는 춘자 새언니

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아이가 바로 봉남이인 것이다.



춘자는 2년 뒤인 1959년 3월달에 또 딸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그렇게 딸아이

를 낳은지 몇 달되지 않은 그해 가을걷이 추수때, 그녀의 남편인 만수가 나락묻을 가득실을 소구르마(달

구지)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나락뭇을 가득실은 소구르마를 몰고오던 중에 비좁을 농로길에서

빈 소구르마와 교행하다가 한쪽바퀴가 길가장자리를 무너뜨러가며 빠졌던 것이다.


그러자 만수가 소구르마를 몰고 교행하던 그사람에게 자신이 몰던 소를 맡겨서 몰게하며 자신은 한쪽

으로 기우려가는 소구르마를 어께로 받혀가며 그곳에서 끄집어 낼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교행하던 소구

르마를 몰던 사람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서 나락뭇을 덜어내고 하자고 했지만 만수로써는 매제인 봉

남이 아버지를 빼고는 근동에서 자신의 힘을 당할자가 없다고 항시 자부하던터라 고집스럽게도 자신이

힘으로 버틸테니 그냥하자고 했던 것이다.


만수는 빠진 바퀴옆에서서 어께와 등을 나락뭍에다가 기대고 두손으로는 소구르마의 바퀴위를 덮고있

는 난간을잡고 "하나아~둘울~세엣!."하고 구령을 붙혀가며 힘을쓴다. 그런 만수의 구령소리에 맞춰서 소

꼬비를 쥔 그사람이 "이랴~!.이랴~!." 하며 채찍질을 하여갔지만 소도 연일 힘든일에 지처있엇기에 그런

지 그곳에서 소그르마를 끌어내지 못하고 비비적 거리기만 했던것이다.


그러는 바람에 오히려 바퀴가 움직여지면서 흙더미만 더 허물어뜨려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바퀴가 더

빠저 들면서 만수쪽으로 더 기우려졌던 것이다. 그래서 만수는 힘을 놓을 수밖에 었없는데, 힘을 놓은 바

로 그 순간, 소구르마가 순식간에 만수에게로 넘어저 왔던 것이다. 그바람에 만수는 몸을 미처 피할새가

없이 구루마에 깔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랬던 만수는 압사 직전에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달려와 그를 구했으니까 망정이지 하마터라면

불귀객이 될뻔했던 것이다. 만수는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고사에 나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처

럼, 자신의 역량도 모르고 구르는 수례바퀴에 덤벼든 사마귀꼴이엇던 것이다. 만수는 그날 마신 술기운

에 호기를 한번 부렸다가 그런 화를 부렸드린 것이엇다.


그 사고로 인해서 몸을 크게다친 만수는 읍네 병원에서 두달이넘게 입원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거의 앉은뱅이나 다름없는 병신이 되엇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목발을 짚고서 운신이나마 할수있

엇기에 망정이지 그렇치 않았다면은 방구석에서 꼼짝없이 구들장 신세나 질뻔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춘자로써는 허우대 좋고 멀쩡하던 남편이 졸지에 병신이 되어버린 사실에 기가찰 노릇이엇

지만 남편이 남자구실을 못한다는 것이 그녀를 더 안타갑게 했던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지는 예전

처럼 힘차지 않고 삶은가지처럼 흐물거릴뿐이엇다. 그런 남편의 변화에 춘자는 기가막혔던 것이다. 그랬

기에 춘자는 그것에 좋다는 약들을 구해다가 남편에게 먹여가며 뱀도 잡아다가 뱀탕을 해서 줬던 것이

다.


그러나 춘자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수의 자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춘자로써

는 참으로 애가 탈노릇이엇다. 남편과 한이불속에서 근5여년 동안 살아오면서 셀수도없을 만치 수많은 성

교접을 통해서 그 감칠맛나는 남편의 좃맛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컷던 것이다. 그러나 그

런 춘자보다 당사자인 만수의 비통함은 그 어디에다가 비할봐가 아니였던 것이다. 그때의 자신의 무모한

행동을 수도없이 후회를 했던 것이다.


남편인 만수의 남성을 되살릴려고 근 2여년 동안 좋다는 온갖약들을 구해다가 남편에게 먹여오던 춘자

는 아무련 차도가없자 그녀도 지첬는지 서서히 남편에게서 관심이 멀어저갔다. 그러면서 간혹 남편이 성

교를 시도해오면은 혹시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흥분이 절로 됐던 것이다. 그때마다 남편이 몸을 매만지

는 손길에 춘자 보지는 오랜만에 좃맛을 보려고 어서 들어오라는 듯이 기쁨의 눈물을 질질 흘렸던 것이

다.


젖가슴과 보지를 왔다갔다하는 남편의 손길에 몸을 내맞긴체 흥분을 느껴가며 숨죽이고 가만이있는 춘

자는 자신의 보지에서 흘러나온 보짓물이 항문을 타고 아래로 흐르는 것을 생생이 느꼈던 것이다. 그러

나 남편은 간절히 기다리는 춘자의 마음을 아랑곳없이 끝을 보지못하고 중간에서 멈추고 말기 일쑤였다.

그러면은 춘자는 그 허망한 마음에 절로 한숨을 불어내며 돌아누웠던 것이다. 그랬던 춘자는 어느때 부터

서는 그런 남편의 손길도 거부했다.


만수는 아내의 그런 거절에 비애감을 느꼈고 춘자를 불신하는 마음을 갔게되엇다. 춘자가 동네 남정네

들하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봤다 하면은 그날밤 술에 잔뜩취한 만수에게 얻어맞았던 것이다. 그러니 춘

자는 동네 남정네들하고 길가에서 마주치는것도 피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춘자 또한 남편에게서 맘이

점점 멀어져갔던 것이다.


그렇게 한번 남편에게서 마음이 떠난 춘자는 세월이 갈수록 남편을 소 닭보듯하였다. 그러던 중 만수

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을앞 점방(店房)을 자주 들랑거리면서 노름에 손을 대기시작 하더니 급기야 머

슴살이를 해서 어렵게 마련한 전답들을 하나,하나 거덜을 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졸지에 전답하나없

는 알거지 신세가 된 춘자는 친정 도움으로 식구들 배는 굶지않고 살아갔다.


그러나 춘자는 그이듬해인 1965년 같은 피붙이로써 자신을 돌봐주던 오빠인 봉남이 아버지와 어머니

인 남양댁을 차례로 잃는 슬픔을 격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그해 장마철에 천둥번개가 치면서 장대비가 쏟

아지고 있는데 부지런하기가 개미같았던 봉남이아버지는 논에 물꼬를 둘려 보려고 삽을 둘러메고 들녁으

로 나갔다가는 불행하게도 낙뢰를 맞고서 쉰넷(54)이라는 한창의 나이로 요절을 하고 말았다.


남양댁은 아들이 그렇게 벼락을 맞고 죽엇다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고 쓰러저 자리에 눕고 말았는데 실

어증까지 보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보이다가 그해 11월 초순 어느날 일흔둘(72)의 나이로 조용히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렇게 집안에 우환이 겹친 그해를 보내고 그이듬해인 1966년 그해 10살이라는 늦은나

이로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봉남이는 3년이나 늦게 호적에 올려진 관계로 9살이던 65년도에 국민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엇다. 하지

만 시집간날 등창 난다는 말처럼 입학할 무렵에 때맞춰서 몸이 몹시 아파서 앓아 누엇던 관계로 그해에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지못하고 그 다음해에 10살의 나이로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던 것이다.


봉남이가 3학년 때인 1968년 그해 초봄에 그의 씨다른 형인 순호가 스믈셋(23)의 나이로 스믈다섯(25)

살된 박삼례라는 2살위의 여자에게 장가를 들엇다. 순호가 그렇게 그해에 2살이나 연상인 여자에게 장가

들게 된 것은 점(占)보기를 무척 좋아하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엇다. 강씨는 용하다는 점쟁이가 있다고하

면 반백리길도 마다않고 점(占)보러 다니는 열성파였다.


그런 강씨에게 점쟁이가 말하기를 순호는 스믈다섯을 넘기기전에 2-3살 윗쪽의 박씨나 조씨 성의 여자

에게 장가가야만이 순탄하게 잘산다고 했엇던 것이다. 그랬기에 점쟁이 말을 맹신(盲信)했던 강씨는 여러

곳에다가 다리를 놓았던 것인데 한곳에서 기별이 왔던 것이다.


강씨로써는 삼례하고 선본 순호가 맘에 들어하고 강씨 자신 눈에도 삼례 얼굴에 주끈깨가 많은 것이 다

소 흠이기는 하지만 인물도 반반하고 해서 며느리감으론 그만하면 됐다 싶엇기에 이것저것 따질것도없

이 여자쪽에서 원하는데로 선본지 3계월만에 서둘러서 결혼을 시켰던 것이다. 여자쪽에서 그렇게 서두르

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엇던 것이다.


삼례에게는 위로 언니가 둘있엇다. 둘다 시집을 갔고 삼례는 홀엄씨와 단둘이 살다가 그 홀엄씨가 죽고

나자 마땅히 몸을 의탁할곳도 없는 처지였기에 시집간 큰언니 일례집에서 반년 남짖 얹혀 살고 있엇던 것

이다. 삼례큰 언니인 일례는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처지라 갈곳없는 동생 삼례를 데리고 있으면서 시부

모 눈치를 보며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다.


손아래 동생인 이례에게 보내자니 이례 또한 시집간지 10년이 다되도록 아이를 못낳고 있엇기에 오늘

쫓겨날지 내일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인지라 보낼수도 없는 노릇이엇던 것이다. 삼례는 그런 언니의 속사

정을 알고 짐을 떨어주려고 언니인 일례에게 자신을 데려갈 사람만 있으면은 애딸린 홀아비에게라도 시

집가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다.


일례는 오죽했으면 동생의 입에서 그런소리가 나올까하는 서글픈 생각에 혼자 소리죽여 베갯머리를 적

시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삼례에게 뜻하지 않게도 중매가 들어온것이엇다. 일례 시부모들이 중매쟁이에

게 다리를 놓은것이엇다. 그렇게해서 삼례는 순호와 선을 보게 되엇고 서둘러 시집을 갔던 것이다. 삼례

에게 장가든 순호는 그동안 자신이 사용하고있던 마굿간이 딸린 아랬채 작은방에서 신접살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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