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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1:31 1,051회 0건
죽음에 이르는 병 -4부-
죽음에 이르는 병 -4부-


방안에는 눅눅한 공기와 끈적거리는 냄새가 가득했다. 내가 흘린 정액과 연우의 애액으로 뒤법벅이 된 이불과 방바닥, 그리고 코를 찌르는 담배 꽁초 냄새때문에 마치 싸구려 여인숙으로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연우는 힘이 들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으며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내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그녀는 다시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불지 않게 잘 끓여야 돼.

-알았어. 매일 하는 짓인데 설마 실수하겠냐.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닫아야겠다.

-안돼. 그냥 놔둬. 이젠 괜찮아.


연우는 이불을 덮고 벽에 기대 앉았다.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라면을 넣고 잘빈가량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걀을 깨 넣은 다음, 연우가 뚱딴지 같은 소릴 한다.


-나 다시 그림 그리고 싶어.

-......


바보같은 소리, 그 몸에 그 손으로? 참 잘도 팔리겠다.

연우는 또 뭔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랬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주체할 수 없는 상실이 밀려온다. `내가 더이상 잃을 게 있었나` 하고 생각할 만큼 엉망으로 살아온 내 삶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붙들고 살아 왔을 거라는 걸 어렴풋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사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사는 게 지겨워서라도 자살을 했겠지. 혹 혼자 죽는다는 것이 눈물 날 만큼 고독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먼저 죽였을 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아마도,


`인생을 비관한 삼십대 무직자,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으로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


이런 보도가 티브이를 통해 나가지 않았을까.

나는 연우가 먼저 사라질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형체도 없고 확신도 할 수 없는 데다가 구속력도 없는 그런 것으로 나와 그녀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 보다는, 좀더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장치가 중간에 존재하기를 원했다.


`집착`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같은 말로 상대를 보내 줄 수 있지만, 집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내가 보내주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겠지. 지금 나는 집착에도 넌더리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연우의 관계는 뭔가. 그역시 `사랑`이고 `집착`이다. 내가 혼자 남겨질 것을 두려워하는 이상, 말로 아무리 부정해도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지긋지긋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나는 김치그릇만 덩그라니 놓인 상위에 라면 냄비를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연우는 냄비에서 올라온 엄청난 김이 천장으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 보고 있었다.


-거기서 뭐해? 먹어야지.

연우는 아까보다 기운이 없어보였다. `맛있게 끓인거지?`하면서 이불을 젖히고 천천히 기어나오는 그녀의 처량한 표정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개가 돼도 좋아`라고 중얼거리던 그녀의 속삭임이 떠올랐다. 기어오는 그녀의 몸동작은 축 늘어져서 흐느적거렸고, 이내 천천히 움직이는 그 엉덩이에 꼬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녀는 아무 생각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젓가락을 집어든 내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흥분, 나는 몸에 달라붙는 그녀의 청바지를 벗기고 싶어졌다, 무릎 위까지만...


-저기, 바지 내려봐...


그녀가 눈을 꿈벅거린다.


-...무릎 꿇은 그 상태로 바지를 내리라고.


-...나 라면 먹고 싶은데.


-라면은 먹게 해줄께. 그냥 바지만 내리라는 거야.


연우는 그 행동이 오히려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듯 내 눈을 보면서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윽고 무릎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말한대로 청바지의 단추를 푸르고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진행된 그동작 속에서 그녀는 실제로 나못지 않게 자극을 받은 듯했다. 그녀의 자세는 이제 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관음증을 가진 인간에게 관찰 당하는 가냘프고 힘없는 여인처럼 변해갔다. 양쪽 새끼 손가락은 그런 여성답게 살짝 들어올려지고 몇 개의 손가락만으로 청바지의 지퍼를 내리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는 내 시선을 마주보지도 못하고 있다.


`지이익...`


지퍼가 내려지고 하얀색 레이스가 달려 있던 팬티의 일부가 살짝 드러났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자기 손가락들을 바라 보기만 했다. 아마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극이 훨씬 컸던 것인지 당황한 티가 역력한 자세로 다음 동작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 못지 않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용돈조차 얻어쓰고 있는 내가 어떻게 그녀에게 이런 모욕적인 짓을 시킬 수 있었을까. 평등을 고수해왔던 우리들의 관계는 순식간에 명령을 내리는 거친 남자와 그 명령을 순순히 따르다가 당황해버린 힘없는 여자로 바뀌어 버렸다.


여자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동안, 나는 그것에 비례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마치 그녀의 자부심의 일부를 힘으로 강탈한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시작은 그녀가 한 것이지만, 용돈까지 주어가며 보살피던 남자에게서 밥먹기 전에 옷을 벗어라 말아라하는 명령을 듣는데도 반항하지 못하고 밥상 앞에 무릎을 꿇은 상태로 바지 지퍼까지 스스로 내린 이상 그녀는 나에게 굴종할 준비를 한 것이고, 나 역시 그런 연우에게 굴종의 쾌락을 맛보게 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으윽...`

청바지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씩 구겨지고 접혀지면서 하얗고 힘없는 그녀의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무릎위까지 내려간다. 청바지가 내려가자 하얀색 블라우스가 바지를 대신해서 앙증맞은 팬티를 가린다. 연우는 팔을 약간씩 오무려서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분들을 안보이도록 가리려고 했다. 긴장 상태의 그녀가 침을 억지로 삼키는 것이 보인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리고 난 지척에 앉아있으면서도 감히 손을 뻗어 만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손을 뻗어 만지면 금방 흥분해서 지금의 새로운 관계를 망가뜨릴 지도 모를 일이다.


-...가까이 와서 먹어.

-응... 알았....어.

그녀는 말할 때 내눈을 마주쳤다가도 이내 시선을 떨어뜨리는 등 도무지 나를 예전처럼 편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릎위에 걸려 있는 바지때문에 그녀는 변태 아빠에게 학대받는 어린 소녀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 기분이 이상하다....


내 침묵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연우가 웃는 얼굴로 얘기 했지만 나는 모른 척, 먼저 후루룩거리며 라면을 멱기 시작했다. 연우의 젓가락은 아주 조금씩의 면발만 건져 올려 씹는 둥 마는 둥하는 입으로 グ丙Т? 정말 음탕한 식사였다. 나는 라면을 먹는 건지 그녀를 먹는 건지 헷갈렸다. 생리적인 보호 본능 탓으로 최대한 팔다리를 붙이고 식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반찬 삼아, 나는 게걸스럽게 라면을 먹어댔다. 그리고 내 몫의 라면을 거의 다 먹고 나서는 포로처럼 변해버린 그녀를 빨간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얀 허벅지는 그녀 스스로 상밑에 숨겼기 때문에 더이상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그것이 이유가 되어서때문에 화가 난 사람처럼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또박또박 얘기 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에게 이것 저것 지시하는 게 많아질거야, 너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 거고.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거지. 무슨 뜻인지 알아?


그녀는 라면을 먹던 젓가락을 입술에서 떼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얼굴이 달아오른다.


-준비 된 거 맞지?


-....응.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계속 먹어.


연우는 천천히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민망할 정도로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네 팬티가 무슨 색이었지?

연우가 동그래진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화난 사람처럼 되묻기 시작햇다.


-기억이 안나?


그녀는 이제 내 속을 파악하기 힘들어졌는지 머뭇머뭇 하다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하얀색...이잖아.


-사이즈는?


-...34인데...


-라면은 맛있니?

고개만 주억거리는 그녀.


-...팬티도 내려 봐라.


나는 왕처럼 지시를 내렸다. 한순간 동작을 멈추는 그녀를 보면서 `아뿔싸...좀 지나쳤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연우는 말없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은 채로 허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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