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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고향 - 16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1:38 1,438회 0건
바람의 고향 16


16. 풍차와 바람

내가 과외를 자청하고 나선 것은 학비가 부족하거나 용돈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법대생이라는 내 지위를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여자를 더 많이 섭렵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전투에서 이기는 병사보다는 전술에 능한 장군이 더 유능한 것처럼 나는 큰 바다에 뛰어든 물고기처럼 내 꿈을 펼칠 기회를 얻기 위해 그런 자리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세 가지 경우 수중에서 하나만 목적을 달성해도 3할 이상의 확률이다. 직업 야구 선수들도 타율이 3할이면 우수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물며 여자를 가지는 일에 그 정도 확률이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낚시대를 세 곳에 던졌지만 입질이 오지 않았다. 그간 주말이면 집에 내려가서 사모님과 섹스를 나누었다. 처음에 그렇게 신비하던 사모님과의 섹스도 날이 갈수록 흥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내게 첫 섹스를 가르쳐 준 여자라서 정성을 다했다.

첫 입질은 과외를 시작한 지 세 달 만에 이루어졌다.
세화의 성적이 처음으로 반에서 상위권을 이룬 날이었다. 나의 과외법은 단순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쉬운 문제를 반복해서 풀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공부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결코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처음엔 같은 문제를 푸는 것에 지루해하던 세화가 어느새 그 방법에 길들여져서 두 달이 지날 쯤에는 교과서의 문제는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공부는 반복의 효과가 제일이다. 알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 학습의 과정이라서 익히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마워요.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치나 봐요.”
“별 말씀. 세화의 기본 재능이 우수한 탓이지요.”
“그래요, 어릴 때는 참 똑똑했는데, 왠지 공부에는 성과가 없어서 속상했는데, 이젠 마음이 놓여요.”
세화의 어머니는 가지런한 이빨을 마음껏 드러내며 웃었다.
“오늘 내가 한 턱 낼께, 날, 따라 와요.”

그녀는 검은 색 노 슬립 원피스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꼈다. 그리고는 자가용을 두고 영업용 콜택시를 불렀다. 비밀이 많은 사람과 음모를 지닌 사람은 달팽이처럼 껍질을 가진다. 그들의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는 그런 속성이 위장을 하게 하였다.

“아마 이런 곳에는 처음 와 볼 거야.”
도착한 곳은 야외였다. 하지만 깊은 비밀을 지닌 성처럼 보이는 건물은 모두 무겁게 가라 앉아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영업이 잘 되지 않거나, 아니면 아직 영업 시간이 되지 않아서 그런가 했다. 하지만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은 유리문이 저절로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
단정한 정장을 한 웨이터가 정중하게 맞는다.
언뜻 보이는 홀 안에는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실내 장식이 되어 있었고, 자리마다 한 두 사람씩 앉아서 식사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웨이터를 뒤 따라 걸었다.
은은한 생음악은 피아노 소리. 쇼팽이다. 미뉴엣을 대낮에 듣는 느낌도 새롭다. 계단 어귀에서 누군가가 세화의 어머니를 아는 체 했다.
“어머, 사모님. 이 시간에 웬일?”
“아, 장여사님. 오랜 만.”
그녀는 약간 살집이 있는 한 여자에게 가볍게 말을 건넸다. 말투는 약간 내려다보는 어조였다.
“누구시죠?”
그 여자가 나를 힐긋 보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물었다.
“우리 세화 선생님이에요. 세화를 잘 가르쳐서 한 턱 살려고.”
“그래요?”
“세화가 글쎄, 5등을 했어.”
“어머머, 그래요? 선생님이 참 실력이 좋으신가 보다.”
그녀가 세화 어머니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 속삭였다.
“글쎄.... 선생님이 시간이 나실지. 선생님 공부하기에도 바쁠텐데.”
“사모님, 우리 아들 녀석도 좀 부탁드려요.”
“그건, 뭐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죠. 법대생이 시간이 그리 많이 나나요.”
“어머, 법대생이에요?”
그녀가 날 향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어쩜, 그래서 그런지 참 똑똑해 보인다. 사모님, 사위 삼으면 좋겠다.”
“무슨 그런,”
세화 어머니의 말투에는 약간은 당황한 느낌이 있었다. 신분의 차이인가.
그녀는 약간 몸집이 컸고, 좀 교양이 없어 보였다.

“쥐뿔도 없는 것이. 그저 의원 자리 하나 얻었다고, 쯧. 박의원 부인이야, 초선인 주제에.”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한 마디로 깔보는 그런 말투였다.
웨이터가 문을 열자, 큰 창이 산으로 향한 아담한 방이 보였다. 6명이 앉을 법한 방이었다. 창 아래로는 아래층의 무대가 보였다. 오페라 극장의 개인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자, 선생님. 한 잔, 건배.”
음식과 함께 와인이 들어오고, 그녀는 웨이터가 채워 준 잔을 들고 가볍게 부딪쳤다. 잔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다. 잔을 통하여 그녀의 얼굴이 동그랗게 보인다. 한 마디로 미인이다. 상류층의 자태가 흐르는 매무새를 갖추었다.

“처음이죠? 이런데. 아무나 오지 못하는 곳이에요.”
자랑과 자부심. 사실 그렇다. 외부에서 보면 영업이 잘 되지 않는 그런 곳으로 보이지만, 안에는 손님들이 넘친다. 각각 룸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시간을 죽이고 있다. 동행이 누구인지, 신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퇴폐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곳.

“음악 좀 바꿔주고, 부를 때까진 오지 마.”
디저트가 올라오자 그녀는 웨이터를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수표를 내 밀었다.
“계산하고, 나머지는 팁이야.”
웨이터는 허리를 깊이 굽힌 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 연애 해?”
어느새 말투가 미끄러져 내렸다. 하지만 깔보는 어감이 아니고, 가까워지려는 신호였다. 풍차는 바람이 불면 언제나 돌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는 내게 바람을 일으켰다. 내 본능이 그것이 바람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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