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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1:39 1,367회 0건
바람의 고향 2


2. 출전 전야

스승의 가르침을 처음 시험해 본 것은 내가 중학교 3학 년 때였다. 사실 그 나이에 스승의 가르침을 실연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창 사춘기에 들긴 하였지만, 여자 경험이라곤 전무하였다. 그저 친구들이 보던 요즘의 포르노 같은 3류 저질 소설을 통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스승님도 첫 경험을 그렇게 얻지 않았던가. 일단 목표를 잡고 신중하게 접근할 일이었다. 자위라는 것도 채 해보지 않았던 터여서 생각만 해도 자지가 발끈거렸지만, 아무에게나 들이댈 수는 없었다.

집이 대도시에서 좀 떨어진 소읍이었다. 거기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중학교로 진학했다. 통학은 멀어서 못하였고, 자취나 하숙을 하였다. 주말이면 집으로 오곤 하였다. 집은 농사와 읍내에서 역전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였으므로 사는 데는 큰 불편이 없었다. 위로 나보다 세 살이 많은 누나와, 밑으로 두 살 어린 여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 겸 농사와 가게 일을 같이 보고 계셨고, 어머니는 그저 평범한 촌부였다. 적당히 허리와 엉덩이가 퍼지고, 일 살이 붙어서 신체가 좋으신 분이었다.

그 동네에서 그래도 나는 대도시에서 제일간다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모두들 나를 우러러 보았다. 크면 판검사를 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아따, 그놈 피부도 희고, 얼굴도 잘 생긴 것이, 크면 여자깨나 울리 겄다’
아버님 친구들이 날 보면 가끔 하시던 소리였다.
‘째는 누굴 닮아 저렇게, 백설기 같이 하얗노. 무신 남자가 저렇게 이쁘게 생겨닸냐’
어머님 친구들이 하는 소리였고, 누나나 여동생 친구들도 날 보면 그렇게 한 마디씩 했다. 결국 나는 일종의 나르시즘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 칭찬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그것이 스승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더욱 나는 위선적인 이중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착하고 공부 잘하는 그런 모범생으로 가장할 필요가 있었다. 스승이 그래도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가, 스승이 학문과 언변. 그리고 매너에 있어서 남다른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성적이 늘 상위권이어서, 누구나 나를 보면 칭찬을 했고, 더구나 여자들은 내게서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 스승님 시대나 지금이나, 모범생과 매너 있는 사람은 여간한 잘못에도 용서를 받기 쉽다. 그것은 시대가 변하여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점을 최대한의 무기로 삼았다. 많은 책을 읽고, 부드러운 음색과 조용한 태도를 가짐으로서 여자들에게 호감을 사게 했다. 이것은 내가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기본 수칙이었다.
주말에 한번씩 집에 오면 부모님께서 반기시고 누나나 여동생이 반갑게 대해 주었다. 내 마음속에 악동이 자라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나에게 접근하였다. 국민학교 동창 가운데 여학생들이 일부러 우리 집 앞을 지나치면서 내가 있나 살펴 보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았기에 눈에 띄면 반갑게 인사를 해 주었다.
“응, 너 많이 약해 진 것 같다. ”
여자들은 그런 센치한 말에 곧잘 감동을 받는다.
“자주 놀러 와. 동창인데 뭐 어떠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녀들의 의표를 찌르는 말에 그녀들은 곧 흥분하고 기뻐했다.

중학생 시기가 지나기 전에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기로 하고 우선 내 집 주위에서 탐색하기 시작했다. 딱히 어떤 여자, 누구라고 정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가는 여자, 나를 탐내는 여자를 찾기로 했다. 스승은 세상에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고 했다.
막상 스승의 가르침은 그랬지만, 현실은 잘 맞아 들어가지를 않았다. 내가 보기엔 누구나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고 사실 여자 경험이 없는 속칭 ‘아다’로서 감히 누구를 지목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다. 역시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하고 낙담했다.

꼬집어서 저 여자, 하고 떠오르는 여자는 없었다. 스승님이 여자는 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강조하였지만, 차마 여동생이나 누나, 그리고 어머니는 내 상대가 아니었다. 또한 친척들조차 그렇게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국민학교 동창들은 너무 어려 보였다. 스승님은 여자를 볼 때 그 여자의 신분이나 배경, 나이를 잊으라고 하였지만,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나이 많은 여자보다는 또래의 여자들에게 더 눈이 갔다.
내가 반장을 할 때, 부반장을 하던 성희가 그중 나아 보였다. 하지만 그 계집에는 나만ㅂ면 새침을 떨었다. 나처럼 대도시에서 중학교를 다니지만, 그리 이름난 학교가 아니어서 괜히 나만 보면 뒤를 보이곤 했다. 그것이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성희가 내 첫 상대는 아니었다. 나는 내 육신을 깨워줄 상대로 나처럼 초보가 아닌 능숙한 사람을 원했다. 그러자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라야 하는데, 그런 여자는 주위에 없었다. 좀 낭만적이고 성숙한 사람이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낙담하였다. 정 안되면 성희와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스승님은 여자는 기다리면 언제나 있다고 하였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개울 건너 5촌 당숙모도 대상이 될 수 있었고, 옆 집 선미 엄마도 가능했다.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고, 또 너무 가까이 있어서 두려웠다. 무엇보다 스승님의 가르침 중 제일 큰 교훈인 여자를 외모로 판단하지 마라는 그 원칙을 위배하고 있었다. 내 주위를 서성이던 여자들이 한결같이 얼굴이 너무 억울하게 생긴 탓이었다. 웬만하면 보아 넘길 수도 있었으나, 첫 출전에서 그렇게 형편없는 전투를 하기는 싫었다. 아마 스승님이 곁에 있었다면 혼을 내려고 하였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괜히 집에만 오면 짜증이 나서 누렁이를 발로 차고 했다. 여름 방학이 다가와서 그런지 농촌은 바빴다. 전부 논으로 나가서 집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기회가 없었다. 빤한 시골 생활은 여름이면 집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기 때문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장소란 흔치 않았다.

그런 시간을 나는 독서로 달래고 있었다. 교양을 쌓는 것도 스승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 눈이 번쩍 띄게 ‘앗차!’하고 무릎을 치는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역시 스승의 가르침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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