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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1:41 324회 0건
협객도(俠客道)-2
협객도(俠客道)

천하무적신공 자오신지(天下無適神功 慈寤神指)

어두운 하늘을 수醮?빗줄기도 어느덧 그 기세가 점점 미약해져갔다. 새벽이 되어 동쪽에서 태양이 그 머리를 내밀자 빗줄기는 고요히 어둠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외양간에서 단잠을 자고있던 닭들은 떠오르는 태양의 따사로운 햇살에 아침이 온것을 알고 우렁찬 목소리로 꼬끼오 하고 울었다. 지난 밤 내린 비때문에 새벽의 공기는 무척이나 쌀쌀했다. 밤에 내린 눈과 비가 뒤엉켜져 서리가 되어 마을에 내려앉은 모습은 마치 엄동장군이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빙우(氷雨)를 뿌리고 간듯했다.
무당산(武當山)밑에 자리잡은 호북성 균현에도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왔다. 호북성은 무당산의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성으로써 전국각지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여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다. 이러한 교통의 요지라는 이유 외에도 무당산의 바로 아래에 있는 성이라는 이점 덕분에, 호북성의 객잔들은 무당파(武當派)를 찾아가는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고 객잔을 운영하는 장사치들은 그 덕택에 두둑히 재미를 보았다.
방금 막 날이 밝은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호북성의 거리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도사차림을 한 온화해 보이는 중년 도인들도 보였고, 우락부락한 덩치에 온몸에는 칼자국들이 가득한 흉악해 보이는 위인들도 보였다. 무림에서 한가닥 할것같이 그럴듯하게 생긴 노도사들도 드문드문 보였고, 여자를 꾀려고 돌아다니는 남자들도 여기저기서 보였다. 장사치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하나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악을쓰며 물건을 선전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보석이 여기 있습니다. 값싼 보석부터 값비싼 보석까지 없는게 없답니다!!"
"당신의 운명을 말해 드려요. 당신의 운과 미래가 궁금하지 않나요? 복채는 한번에 닷냥밖에 안되요. 빨리 여기로 오셔서 손금을 보고 가세요."
"한번 마시면 백일간 취한다는 백일취(白日取)가 여기에 있소. 모두들 그 뛰어난 맛좀 보고 가시오. 이제 몇 병 남지 않았으니 애주가라면 얼른 이리 오셔서 이 귀한술좀 맛보고 가시오. 한잔에 은화 세냥밖에 하지않소."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장사꾼들의 시끄러운 외침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때 번잡한 거리 저편 모퉁이에서 어제 저녁 소리를 지르며 무당산을 뛰쳐 내려갔던 강수가 걸어 나왔다. 모퉁이에서 걸어나온 강수의 모습은 어제 저녁과는 완전히 딴판이였다. 어제는 머리를 단정히 넘기고 깨끗한 옷을 입은것이 마치 소년 신선 같았는데, 지금은 머리가 온통 풀어해쳐져 있고 얼굴에는 진흙이 잔뜩 발라져있으며, 깨끗했던 옷은 이곳저곳이 찢긴데다가 피범벅이 되어있어서 영락없는 거지꼴 이였다. 옷에 묻어있는 피는 강수가 산을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흘린 피였다.
길을 걷는 강수의 눈밑이 시커멓고 발걸음이 불안한게 아마도 산을 내려오느라 힘이 많이 든듯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다큰 어른도 오르내리기 힘든 무당산을 무공도 모르는 어린소년이 밤을 새워 걸어 내려왔으니 힘들지않은게 오히려 이상한거였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어제 저녁에 내린 눈과 비때문에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있어서 강수는 피곤함과 더불어 뼈를 애리는듯한 차가움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얼굴이 창백해진채 입술을 파르르 떨며 길가를 지나가는 강수를 보고 사람들은 야박하게도 불쌍하다고 혀만 찰뿐 어느 누구도 다가와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않았다.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속에서 살아와 어려움을 몰랐던 강수는 하룻밤 사이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큰 일을 당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했고, 무엇을 해야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비록 강수가 영악하고 총명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애였던 것이다. 그나마 있던 집도 어제 무당산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 헐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강수는 갈곳도 의지할곳도 없는 고아가 되어버렸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강수의 뱃속에서 꼬르륵 하면서 밥달라는 소리가 올라왔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반나절이나 굶었으니 배가 고플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 강수에게는 밥을 사먹을 돈은 커녕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정이 막막해진 강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걸을 하기로 하였다. 마침 그런 강수의 곁을 호사스러운 가죽옷을 입고 갖가지 보석으로 치장을 한 중년인이 지나갔다. 강수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재빨리 그 중년인의 앞으로 뛰어가 굽실 인사를 한뒤 두손을 내밀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저씨, 자비를 배푸셔서 돈좀 적선하세요. 너무 배가 고픈데 밥을 사먹을 돈이 없어요..."
그렇게 말한뒤 강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도 중년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신이 혹시 잘못말한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된 강수는 고개를 들어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 중년인은 강수가 고개를 들자 갑자기 오른손을 들더니 냅다 강수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리고나서 강수를 쳐다보며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더러운 거지 새끼야. 아침부터 재수없게 뉘 앞길을 막는게냐!!"
강수는 난생 처음 맞아보는 따귀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눈물만 줄줄 흘러나왔다. 중년인은 자신의 앞에서 훌쩍거리는 강수를 불만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따귀를 한대 더 날렸다.
"이 제미랄 놈아! 질질 짜지말고 얼른 꺼지지 못하겠느냐!!"
이번 따귀는 처음에 날렸던 따귀보다 한층 더 위력적이였다. 중년인의 손바닥이 오른뺨을 후려치자 강수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며 눈앞에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따귀를 맞은 두 볼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주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중년인에게 따귀를 맞고있는 강수를 재미있는 구경거리 마냥 히죽거리며 바라보았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구걸까지 했건만 위로는 커녕 자신에게 따귀를 날리는 중년인을 강수는 증오애 찬 눈길로 노려보았다. 가슴속에서 북받쳐오르는 슬픔과 설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강수는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먼저가신 부모님의 뒤를 이어서 자살하고 싶었다.
(이렇게 구차하게 살바엔 그냥 죽어 버릴까? 그러면 저승에서 어머니도 만날수 있을테고, 아버지도 만날수 있을꺼야.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그 무당파의 조해천(調海天)이란 늙은이는 누가 죽이지. 누가 그 늙은 살인자를 죽여서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준단 말인가. 아무도 갚아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나밖에 없다, 나밖에 없어. 내가 어떻게든 살아서 무공을 배워야만 복수를 할수있다. 지금 이 순간이 비록 수치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참자. 참고 견뎌내자. 그리고 이 고통을 이겨낸 다음에 무공이 고강한 분을 찾아가 무학을 열심히 연마하자. 나중에 내가 장성하여 강해진뒤 조해천, 그 놈을 찾아서 고통스럽게 죽이고야 말테다. 또 날 무시하고 멸시한 녀석들도 가만두지 않겠다.)
마음속으로 복수심을 불태우며 강수는 끝까지 살아남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강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던지 입술이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까 강수의 따귀를 때렸던 중년인은 강수가 자신을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노려보며 입술을 꽉 깨물자 섬뜩한 느낌과 더불어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강수의 증오스런 눈에 질려 멍하니 있던 중년인은 문득 자신이 강수의 살기에 눌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화가나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자신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강수에게 다가가서 다시 따귀를 때리려고 하였다. 강수는 두 눈을 꽉 감고 중년인이 따귀 때리기를 기다렸다. 막 중년인의 손바닥이 강수의 왼쪽 뺨을 후려치려는 차에, 이 소동을 관전하고 있던 인파들 속에서 장사꾼 차림을한 노인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걸어나오더니 중년인의 왼손팔목을 꽉 움켜잡았다.
구경꾼들은 갑자기 장사꾼처럼 보이는 노인이 등장해 거지소년을 도와주자 환호하며 장사꾼 노인을 응원했다. 그 노인은 중년인의 팔목을 움켜쥔채 구경꾼들에게 일일히 읍을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이 거지소년은 그저 구걸을 하는것뿐인데 야박하게도 이 돈많은 나으리께서는 뺨을 때리십니다그려. 이 노인네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약한자를 괴롭히는건 참을수 없어서 이렇게 나왔소이다. 대무당파(大武當派)가 자리잡은 호북성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자는 그만한 응징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노인의 일장연설에 여기저기서 <옳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노인에게 팔목을 잡혀있던 중년인은 자기가 거지소년에게 농락당하는것도 모잘라 일개 노인네에게까지 모욕을 당하자 분함이 일어났다. 그 중년인은 오른손에 서서히 내공을 끌어오린후에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내어 노인의 앞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중년인이 자신의 팔목을 잡고있는 노인에게 강맹한 내력이 실린 일장을 날리는것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그중에는 무림인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중년인이 일장을 날리는것을 보고 <저런.>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중년인의 일장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노인의 앞가슴에 격중되자 그 노인은 썩은 나무토막 마냥 털썩하고 쓰러지며 중년인의 종아리를 움켜쥐웠가 다시 놓고는 쓰러져 버렸다. 중년인은 자신에게 모욕을 주다가 죽은 노인을 가소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이번에는 강수를 처리하기 위해 발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발이 마치 땅에 붙기라도 한듯 꼼짝도 하지 않는것 이었다. 깜짝놀라 뭐라 말하려고 하였지만 입도 움직이지 않아서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바로 그때 아까 중년인의 일장을 가슴에 맞고 쓰러졌던 노인이 다시 벌떡 일어났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강수는 장사꾼처럼 차려입은 노인이 자신을 도와주려다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슬퍼하고 있었는데 그 노인이 아무렇지도 않은듯 다시 일어나자 흥겨움에 몸을 가누지못하고 재주넘기를 한바퀴 돌았다. 땅바닥에서 다시 일어난 그 노인은 자신에게 일장을 날린 중년인에게로 다가가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허허허. 곤륜파(崑崙派)의 육양수(陽手)도 이제보니 별거 아니구려. 이런 보잘것없는 무공에 육양수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 보다는 차라리 여섯 육()자 대신에 작을 소(小)자를 써서 소양수(小陽手)란 이름을 붙이는게 낳을것 같네."
그 중년인은 바로 곤륜파의 제자였다. 중년인은 노인이 자기 사문의 무공을 비꼬는것을 보고 뭐라 반박하려고 했지만 입에서는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온몸이 마비된듯 움직이지 않아 당황해하며 눈만 굴리고있는 중년인을 보고 싸늘히 웃으며 계속 속삭였다.
"내 아까 그대의 육양수에 맞고 넘어지는척 할때 종아리에 있는 견정혈(遣定穴)을 살짝 눌렀다네. 반나절만 지나면 자연히 풀릴터이니 그때까지 반성하고 있게나."
노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기 때문에 그 노인이 한말은 중년인외에는 아무도 들을수 없었다. 이 종아리에 있는 견정혈이라는 혈(穴)은 인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혈중의 하나인데 이 견정혈을 강하게 찔리게 되면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할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반신불수가 될수도 있는 혈이다. 중년인이 지금 이렇게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것은 노인에게 견정혈을 제압당하여 전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중년인에게 말을 끝낸 노인은 강수에게로 다가와 중년인에게 맞아서 시퍼렇게 부어오른 두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노인이 멍든 볼을 만지자 강수는 볼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다시 눈물이 나왔지만 사내대장부답게 꾹 참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볼을 한참동안 주물러 주자 강수는 볼속으로 뜨거운 기운이 스며드는것을 느꼈다. 그렇게 다섯번 정도 뜨거운 기운이 스며들자 강수의 두 볼은 시퍼런 붓기가 가시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구경꾼들은 그 놀라운 광경에 다시 한번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노인은 강수의 손을 잡고 구경꾼들이 형성한 인간벽을 뚫고 도로를 따라서 걸어갔다. 한참동안을 걸어가자 자세히 보지않고서는 알아볼수조차 없는 허름하게 생긴 가게 하나가 나왔다. 강수가 가게 위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무악주점(無惡酒店)>이라고 쓰여진 현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현판에 쓰여진 그 글씨체는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것이 여인의 손에의해서 쓰여진것 같았다. 다시 한번 간판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무악주점이란 글자 옆에 오봉미(悟鳳美)라고 조그마하게 쓰여져 있었다. 그것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볼수없는 글씨였다.
무악주점은 말그대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술과 고기를 파는 일종의 주점이었다. 탁자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노인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강수를 힐끗 쳐다보더니 신경도쓰지 않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주점의 분위기는 대체로 깔끔하고 소박한것이 노인의 성격이 그런 모양이었다. 그 노인은 강수를 데려다가 비어있는 식탁에 앉히더니 자신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그 노인은 두 손에 만두가 듬뿍담긴 접시를 들고 나왔다.
"자. 얘야. 뺨을 맞으면서도 용감하게 잘 참았다. 이 할애비라도 그렇게 뺨을 맞는다면 신발을 벗어던지고 도망쳤을텐데 넌 용감하게도 도망치지 않았구나. 이 만두들은 내가 너에게 줄수있는 최고의 음식이란다. 맛은 없을지 몰라도 이 할애비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맛있게 먹으려무나."
노인은 강수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게 정말 맛있게 보였다. 반나절이나 굶어서 너무도 배가고팠던 강수는 눈앞에 맛있게 생긴 만두가 모락모락 김을뿜자 체면 따질것도없이 두손으로 허겁지겁 만두를 집어먹었다. 노인은 그런 강수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만두를 너무 급히먹어서 체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반찬을 권해주었다. 강수에게 나물을 집어주는 노인의 모습은 흡사 친할아버지와 같았다. 한참동안 급하게 만두를 먹던 강수는 자기에게 밥을 먹여주던 어머니와 자기를 사랑해주던 아버지, 그리고 아까 길거리에서 중년인에게 당했던 모욕이 생각나자 목이매어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노인은 그런 강수를 안榮募쨉?바라보면서 손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한참동안 강수의 손등을 어루만져주던 노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야. 너의 눈은 지금 슬픔과 절망, 그리고 분노로 가득차 있단다. 누구를 향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너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살기가 하늘을 찌를듯 하구나. 이 할애비에게 너의 슬픔을 이야기해 줄수 없겠니? 만약 네가 싫다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좋단다."
노인의 말에 강수는 여전히 훌쩍거리면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그런 강수를 바라보며 여전히 웃는낯으로 말했다.
"어이쿠. 내 정신좀 보려무나. 그러고보니 아직 이 할애비의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구나. 이 할애비의 이름은 선무살(善無殺)이란다. "언제나 착하게 마음먹고 살생을 하지않는다"란 뜻의 이름이지. 앞으로 나를 부를때는 선할아버지 라고 부르거라. 허허허. 네 이름은 무엇이냐?"
강수는 선노인에게 이름을 말해주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담단한 어조로 말했다.
"제 이름은 강수(江秀)에요.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총명하고 빼어난 사람이 되라고 하시면서 "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셨어요. 아버지의 말씀대로 전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거에요. 그래서.. 그래서... 나중에 크면 반드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말거에요."
강수의 말에 선노인이 아미타불하고 불호를 외우며 말했다.
"그랬구나. 두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넌 그리도 슬픈눈을 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수야,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란다. 진정한 복수는 바로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지."
강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이 말했다.
"진정한 복수는 상대를 용서하는 거라구요?.. 말도 안되요. 아버지께서는 조해천이란 놈이 던진 칼에 맞아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목숨을 잃으시자 자살을 하셨구요. 그.... 그 조해천이란 놈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단 말이어요. 흑흑흑흑.. 아무 잘못도 없는 두분을 어째서 죽인거죠? 왜 우리 부모님을 죽인거냐구요!! 흑흑.. 전 그 조해천을 절대로 용서할수 없어요."
두눈에 불꽃을 태우며 말하는 강수를 보며 선노인은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강수를 바라보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정말 슬프겠구나.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프겠지? 나도 그 심정 이해할수 있단다.. 하지만 그런 도살극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 강호(江湖)란다. 30년전 이 할애비의 본래 이름은 윤조극(閏鳥戟)이었단다. 그 당시 이 할애비는 하늘이 높은줄 모르고 까불고 다니는 무림의 우환덩어리였지. 사람들은 이 할애비를 매우 두려워해서 그 그림자만 봐도 발이 빠져라 줄행랑을 쳤단다. 더욱 방자해진 이 할애비는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더 하찮게 여기며 살생을 함부로 하고 다녔지. 사람들은 나에게 밤낮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조석살신(朝夕殺身)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단다. 이 할애비에게 죽은 사람의 친구나 가족들은 할애비에게 큰 원한을 품게되었고 결국 이 할애비는 무림의 공적이 되고 말았단다. 어떤 사람은 날 죽였다는 명예를 얻기위해, 또 어떤 사람은 친구의 원수를 갚기위해 날 찾아왔지만 모두 내 손에 죽고말았지. 이 할애비는 점점 싸움에 미친 악마가 되어갔단다. 그러던 어느날 할애비는 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게 되었다. 그 당시 난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지. 그 여인은 할애비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 또한 몸을 숨길만한 곳을 마련해 주었단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단다. 마음속이 따뜻해 지더구나. 그 여인과 할아버지는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고, 얼마뒤 그녀의 집에서 화촉동방(花燭洞房)을 밝혔단다."
강수는 선노인이 말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현판의 무악주점(無惡酒店)이란 글씨를 쓴 오봉미(悟鳳美)일 꺼라고 생각했다. 선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화촉동방을 밝히고 얼마뒤 그녀는 임신을 하였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생겼다고 좋아하였지. 우리 부부는 아무 근심걱정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단다. 아침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미소지었고, 저녁에는 하늘에 걸려있는 달을 보며 사랑을 나눴단다. 할애비는 앞으로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그녀에게 굳게 약속하였고, 그녀는 심히 기뻐하였단다. 우리 부부는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주점을 지은뒤 그곳에서 벌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하였단다. 또한 다시는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지. 그러던 어느날.... 그래. 그날 이었지.. 그녀는 갑자기 온면이 먹고 싶다며 나에게 사달라고 졸랐단다. 그녀를 너무 사랑했던 나는 온면을 사러 장에 나갔지. 가서 온면을 사오는길에 난 날 죽이려고 벼르는 몇몇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녀를 만난 이후로 살생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던터라 난 그들에게 경상만 입히고 죽이지는 않았단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방문을 여는순간... 난 심장이 멎는듯 했단다. 그녀는... 그녀는... 칼로 난도질당해져 있었거든... 내.. 살인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말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오는길에 만났던 그 녀석들이 아마도 범인인것 같았단다. 그래서 그 녀석들이 있던 자리로 와봤더니 이런 일을 예측했던지 벌써 줄행랑을 쳐버리고 없더구나. 모두다 인과응보인게야... 이 할애비가 너무 악한일을 많이 해서 하늘이 벌을 내리신게야. 그 뒤 이 할애비는 이름을 선무살(善無殺)이라 고치고 지금까지 30년동안 주점일을 해왔단다. 저 앞에 걸려있는 무악주점이라는 현판은 30년전에 그녀가 쓴것이지. 허허허허. 이 할애비가 너무 감상적인 말을 하였구나. 아무튼 이 할애비가 하려는 말은... 세상에는 너보다 더 슬픈사람도 많단다. 그러니까 힘을 내려무나. 거센 풍파를 거치지 않는 나무는 천년고목이 될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그러니깐 아무쪼록 조해천을 용서하도록 하려무나. 할수 있겠니?"
강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조해천을 용서하지 못했다. 아니.. 용서할수 없었다. 강수는 두 손으로 입에 만두를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강수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쌓여왔던 피로가 강수의 온몸을 뒤덮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강수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강수가 일어났을때는 딱딱한 나무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몸위에 두터운 포대자루를 덥고 있었는데 아마도 선노인이 강수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배려해준 모양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방안에는 조그마한 나무탁자와 지금 강수가 나워있는 나무침대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탁자 위에는 찻잔두개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물병이 놓여있었다. 찻잔에 물을 따라서 한모금 마신후 강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 주점을 청소하고있던 선노인이 방갑게 아침인사를 건냈다. 따스한 햇빛이 주점문으로 새어들어 왔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의 정경이었다. 이곳은 호북성의 구석에 있는 주점이라서 호북성의 여느 거리나 객잔처럼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강수는 걸어나와서 의자를 빼내서 아무 식탁에나 걸터앉았다. 잠시후 선노인이 겨가 섞인 흰쌀밥에 잘익은 돼지고기를 가지고 강수의 식탁으로 내왔다. 선노인은 어제의 그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아야. 이 쌀밥과 돼지고기좀 먹어보렴. 마음 같아서는 더 비싸고 맛있는걸 주고 싶지만 하루장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형편이라 이것밖에 차려줄것이 없구나."
선노인의 말에 강수는 가슴이 찡해지는걸 느꼈다. 자신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너무나도 행복했고 감격스러웠다.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어른거리며 눈물이 나오려고 하였지만 강수는 가까스로 참았다. 강수는 숟갈을 들어서 막 된것같은 밥을 한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젓가락으로 돼지고기도 집어서 먹었다. 아무말도 안하고 묵묵히 밥을 먹고있는 강수를 바라보며 선노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아야. 음... 어제 조해천이란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고한것 기억나니?"
강수는 조해천이란 말에 삼키고있던 돼지고기가 목에 걸려서 한참동안 캑캑 거렸다. 선노인은 강수에게 물을 건내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어제 네가 봤듯이 이 할애비는 싸움을 좀 할줄 안단다. 꼭 조해천에게 복수하란 말을 아니지만, 네가 이 강호를 해쳐나가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실력을 갖추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만약 네가 원한다면 이 할애비의 무공을 전수해 주고 싶은데.. 어떠니?"
선노인의 말에 강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사실 강수는 어제 선노인이 중년인을 가볍게 제압하는것을 본후 선노인에게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부탁할 시간이 없었다. 강수는 선노인의 말을 더 들을것도 없이 흔쾌히 승낙했다.
"좋구 말구요. 만약 할아버지께서 무공을 전수해 주시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겨질 일도 없을테고... 또.. 부모님의 원수도 갚을수 있잖아요... 할아버지께서는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전 아직 조해천을 용서할수 없어요."
선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구나. 물론 아직은 용서할수 없겠지. 하지만 꼭 살인만이 진정한 복수는 아니라는것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하구나. 좋다. 네가 이 할애비의 무공을 전수받길 원한다면 내 성심 성의껏 가르쳐 주마. 이 할애비가 가르쳐주는 무공은 매우 복잡할뿐만 아니라 어려워서 아직 어린 네가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참! 그리고 보니 네 나이도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니?"
"올해로 다섯살이에요.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제가 유달리 총명하고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음.. 결코 다큰 어른 못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무공이 복잡해서 못배울꺼라고 생각지는 마세요."
선노인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그렇게 총명하다면 이 할애비의 무공을 배울수 있겠구나. 대신에 언제나 열심히 해야하고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 또 무공을 배웠다고해서 너보다 약한 사람들을 업신여겨서는 절대로 안된단다. 알겠니?"
"네!!"
"허허허. 대답이 우렁차서 좋구나. 그렇다면 잘 듣도록 하거라. 이 할애비가 너에게 가르쳐 주려는 무공의 이름은 자오신지(紫寤神指)라는 거다. 이 무공은 손가락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인데 그 공격이 신묘한데다가 종잡을수가 없어서 천하무적의 신공이라고 할수 있지. 무림지존(武林地尊)이라 불리는 소림사의 대력금강지(大力强指)나 탄지신통(彈指神通)도 자오신지에 비하자면 어린애 장난이라고 할수있단다."
강수는 대력금강지나 탄지신통같은 무공에 대해서는 들어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배우려는 무공이 천하무적(天下無適)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선노인은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길게 뻗더니 말했다.
"자오신지는 극양의 최상승 무공이라고 할수있단다. 이 자오신지를 익히기 위해서는 호흡의 방법부터 바꿔야 하지. 자. 먼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거라. 뜨거운 기운을 들이마신다는 생각으로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숨을 내쉴때에는 두번으로 나누어서 내쉬어야 하는데 첫번째는 길게 내쉬고 그 다음에는 짧게 내쉬도록 하거라."
강수는 선노인이 가르쳐 준데로 숨을 들이켜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 숨을 쉬어보아도 가슴속으로 뜨거운 기운이 들어오지 않는데요?"
선노인이 또 다시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무공은 익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깨닫기가 아주 힘들단다. 아직 어린 너에게는 호흡법을 익히는것도 무리 일테지. 하지만 차츰차츰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날이 있을게다. 뜨거운 기운을 삼킨후에는 그 기운을 너의 팔꿈치로 옮겨야 한단다. 네가 들이마쉰 양극의 기운을 팔꿈치로 모으면 너의 두팔은 무척 뜨겁게 될것이다. 극양의 기운이 모여 뜨겁게 달구어진 팔을 넌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하루에 새번씩 물에 식히도록 하거라. 그 다음에는 팔꿈치에 모인 양극의 기운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단다. 자오신지에는 총 다섯개의 공격방법이 있는데 다섯개의 손가락을 사용해 공격하는 오악지(五岳指), 네개의 손가락의 사용하는 사신지(四神指), 세개의 손가락을 사용하는 삼성지(三聖指), 두개의 손가락을 사용하는 쌍룡지(雙龍指), 마지막으로 한개의 손가락만을 사용하는 독염지(獨炎指)가 있단다. 이 다섯가지의 공격방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 너의 공격은 수천번, 수만번의 변화를 거듭하게 되어 후에는 천하무적이 될수 있을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선노인은 길게 뻗은 검지손가락으로 강수가 앉아있던 식탁을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식탁에 쩍쩍 금이가더니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것 같은 형상이 되었다. 강수는 그 신묘한 무공을 하루라도 더 빨리 익히기 위해서 그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은뒤 선노인이 알려준 호흡방법대로 숨을 길게 들이 마쉬었다가, 길게 한번 내뱉고 짧게 한번 내뱉는것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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