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15)


서로의 간섭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쟁점을 앞에 놓고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 시킬 수도 있다.
나의 고민을 출발점으로 점차 탁의 문제로 점화된 논점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어찌 술잔 하나를 기울여 깊은 나락으로 빠진 자신의 정체성을 흘려 버릴 수 있을까?

주머니 속의 핸드폰에서 호출음이 계속 울렸다.
몇차례의 벨소리를 무시한 채 술잔을 기울이면서 서로 결론없는 빈 얘기들이 오가는 사이 누군가가 기다림에 지쳐 문자전송을 한 모양이다.

"거릴 헤메고 있다면 밤하늘을 함봐요.
제일 반짝이는 별을 찾아보세요. 북극성은 변하지 않죠.
전화줘요. 기다릴께요"

탁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 이 근처야?"
"응, 낮의 일때문에 취했을것 같아서 계속 사무실에서 기다렸어. 차 몰고 금방 갈께."

이벤트처럼 벌어졌던 낮의 일로 고심한 것은 나만의 몫이 아니었다.

차안에서 한 마디의 말도 오가지 않는 침묵이 계속됐다.
아니, 술에 취해 골아 떨어져서 한마디 말도 못했다.
무슨 소린가 계속 지껄이며 오랜 시간동안 운전하는 옆에서 떠들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편린들이 하나도 흩어지지 않고 고스란이 머리속에 남아있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어디쯤에선가 차에서 내렸었고, 불빛이 보였고, 물 소리도 들렸고, 이브자리를 펼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피부의 접촉이 있었는지 빨아들이듯한 찰스런 느낌이 밤새 있었고, 사랑한다는 말도 간혹 들었었던 것 같은 편린들이 흩어져 있다.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통유리창을 통해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긴 어디?"
"깼어?"

침대 시트를 들추며 일어서는 숙의 몸엔 한올 걸침이 없는 자연이 있었다.
살짝 오른 아랫배가 가늘한 허리로 이어지며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다가왔다.
검은 숲은 창을 통해 비치는 햇살로 부터 그림자를 만들며 더 깊은 계곡으로 만드어낸다.

"집에 안간다며 계속 버텼잖아.
할 수 없이 집에 가는 걸 포기하고 이 호텔로 온거야.
무슨 고집이 그리쎈지."

"그랬어?
어제 낮일이 너무 부담스러웠지.
투자, 결혼..."

"나도 많이 양보해서 미국에서 형식적인 결혼식을 제의한건데 그것도 못 받아주는거야?"
"알아, 숙의 맘 다 알아."

복바치는 설음을 이기지 못하는지 숙의 몸이 내 가슴에 던져졌다.
상큼하고 미끄러운 피부가 까칠한 내 피부를 자극한다.
찰지게 안기며 부드러움이 내 몸을 송두리채 흡착할 듯한 느낌에 머리끝까지 아득함이 밀려든다.
두 팔로 가볍게 등을 토닥이며 안타까움을 달래본다.

"밤새 당신이 날 얼마나 괴롭힌지 않아?"
"너무 심하게 코를 골았나보네?"
"아냐, 날 놓지기 싫다며 내 몸 구석구석을 빨고 ?고 몸부림 치는 통에 난 백번도 넘는 오르가즘을 느껴야 했어.
당신 정말 정신을 놓치니까 짐승이던걸~"
"그랬어? 헐크 같았나?"
"그 이상이었어. 사랑하냐고 수천번도 더 물었던거 기억나?"
"몰라, 사랑한다는 말이 계속 귓가에 멤돌던 것은 어렴풋하게 생각나긴 하지만..."
"푸훗, 당신 정말 괴물이었어.
점잖을땐 물랐는데, 술취해 이성을 잃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 몸에 착 달라붙은 거머리처럼 나를 얼마나 죽여버렸는지 몰라.
여길 봐, 여기가 다 헐어버려 걸레처럼 너덜 거리는걸.."

숙은 다리를 활짝 벌리며 대음순이 핏발로 충열된 채 늘어져 있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그랬구나.
어쩜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던 무의식의 세계가 있었나 보군."
"날 죽여?"

"응, 당신은 내게 있어서 어쩜 덤일 뿐이었지.
부담이 점점 가증되는 덤이랄까?
떨쳐버릴라 할 수록 더 안겨 버리고 싶은 그런 사람.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사슬이 점점 더 옭아메여진다는 걸 느껴야 하는 그런 사람."

"당신 곁을 떠날까?"
"아냐, 감당하고 싶어. 당신의 영혼까지도..."
"당신, 괴로워하는구나?"
"점차 무뎌지겠지."
"무딘 감정으로 나를 대할꺼야?
언젠간 결단을 내려서 나를 분명히 선택해줘야 하는 것 아냐?"
"그래야 되겠지.
당신도 나를 압박하지 않겠다던 처음 생각이 바뀌듯이
나도 당신을 받아들일 얼마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어?"

"그래요?
없던일로 하자고 한마디만 해줘요.
당신 없이도 살아온 많은 시간이 당신의 그런 결정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당신을 이해할테니까..."
"난 못해, 당신을 버린다는 말 나는 못해!!"

"나보고 떠나란 말은 못해요?
알아서 떠나란 얘긴가요?"

"못하는게 아니고 말 안해.
당신은 분명하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곁에 있어달란 말은 못하지만
내 곁에서 떠나란 말은 절대 안해."

"뭐에요? 남자답게 분명한 선택을 해야죠!!"
"난 연애박사가 아냐.
살아온 경험만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당신과 나는 잘못된 만남이겠지.
그래서 왜곡된 만남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낸다면 당연히 잊어 버려야겠지.
하지만 당신과의 만남이 논리적이지 않은 면이 더 많더라도 모든 논리를 극복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란걸 가슴으로 느끼고 있지.
난 선택하지 않을꺼야.
더 오랜동안 모순된 모습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
시간속에 갈등과 사랑의 저울질을 해 보고 싶어.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을 선택한 일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어.
지금, 아주 급한 선택으로 나를 몰아 붙히지 말아줬으면 해."

"당신, 말을 교묘히 해서 위기를 벗어나고 있는거 알아요?
당신의 괴로운 선택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미국을 택한거에요.
당장이라도 저랑 미국엘 가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혼식일지라도
당신을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기억을 갖고 싶어요."

부드러운 머리결을 따라 떨리는 손길을 넣어본다.
힘주듯 가슴으로 당기며 종알대며 끝없이 쏟아지는 언어를 막아 버릴 듯이 부드럽게 입술을 덮어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넣었다.
촉촉하고 부드럽던 내 혀는 어느새 굳어지며 거칠어져 자유로운 몸짓으로 목젖까지 휘젖고 있었다.
입안 가득 고였던 타액이 꼴딱거리며 숙의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슴선을 타고 어느새 젖꼭지가 파르르 떨며 고개를 치껴든다.
약간은 거친 내 손길을 느끼며 빳빳하게 굳어지는 젖살의 느낌이 새롭워 보인다.
점차 배꼽을 경계로 아랫배로 이동하는 가벼운 터치에 온 몸을 전율하며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까칠한 수풀이 온통 머리를 치켜 세우며 새로운 침입자를 환영하듯 하늘 거린다.
유영하듯 헤메던 손 끝이 클리토리스를 찾아 가볍게 누르며 돌리며 까뒤집으며 또 다른 반응을 기대하며 유희를 계속하고 있다.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스미며 햇살을 받아 마치 이슬처럼 맺혀있다.
고개숙여 그 계곡수를 마시듯 날름거리는 혀로 ?아 나간다.
학학거리는 고른 숨소리가 온 방안을 메아리 친다.
벼게머리에 가볍게 머리를 옮겨 숙을 똑耽?어느틈에 나는 그 위에 몸을 실었다.
오랜시간 시달려온 대음순은 의외로 나의 방문을 대 환영하며 쫄깃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깊은 듯 얕은 듯 들락거리는 내 몸을 어루만지며 아랫배의 근육조차 소용돌이 치듯 움직임에 동참하니 아득한 느낌만 또 머리를 가득 채운다.

"여보, 넘 좋아~"
"그래, 미안했어. 사랑해줄께."
"당신은 괴로워 말아요. 대신 제 목숨이 다하더라도 당신만 사랑할테니."
"아무말 말아. 그냥 나를 받아들이며 음미만 해."

회사 근처의 호텔에 투숙한 관계로 출근시간에 ?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또 한차례 폭풍을 만족스럽게 치뤘다.

예견되지 않은 어려움은 항상 존재한다.
존재하는 어려움은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쳐다봐선 안될 뿐이다.
일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한 객관적인 눈으로 문제를 응시할 때 감춰진 해답이 모습을 드러내며 꼬인 문제가 서서히 풀려나가는 법이다.

사회란 그저 그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제약일 뿐이다.
새로운 시도는 항상 사회의 저항을 받게 마련이고, 우리의 만남은 이 사회에선 분명 모순으로 낙인될뿐이다.
다른 경험의 세계.
다른 문화를 통해 나와 숙의 관계를 보면 그저 있을 수 있는 단순한 만남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호텔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