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6)

대부분의 사물은 판단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 판단을 대신 맡기거나 외부에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이렇듯 사물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해야 한다면 각 개체에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무선이동통신과 같이 초고주파 신호에서 원하는 정보를 적절히 분리하여 얻을 수 밖에 없다. 여러사람에게 동시에 사물을 판단하게 하려면 다중접속방식을 지원해야 하는데 시간, 주파수, 코드로 분리할 수 있도록 고려되야 할테고 유비쿼터스에서는 사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성화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개체의 전체 수와 특성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인 센서를 통해서는 오류와 초기화를 위한 고려가 추가되야 할테고 제어 및 보정을 위한 통일된 모델을 연구하면 된다지만 유비쿼터스에서 사용할 센서는 모니터링 개체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지고 새로운 개체가 끊임없이 발생, 소멸하는 가운데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므로 송수신 구조와 변복조, 프로토콜에 대해서도 특성이 반영되어 설계되어야 한다.
통신 거리를 무선통신장비처럼 수킬로미터까지 확대한다면 너무 많은 개체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될테므로 유비쿼터스에서는 근거리 통신이 적용되도록 해야 하고 통신 속도 보다는 개체의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을 더 많이 갖도록 고려해야 하며, 불안정한 개체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제거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시원한 밤 바람을 맞으며 강태공의 마음으로 낚시줄을 던지던 그저께 밤의 일은 물거품 처럼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또 하나의 테마를 잡고 올챙이 프로젝트 수행을 기반으로 한 로봇의 정보전달체계에 대한 구상에 몰두 하고 있다.

인식능력있는 사물로부터 전달된 정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식능력 없는 사물은 전기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한번 설치하면 정보전달을 반영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저전력센서를 개발해야 한다. 무선형태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자파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됐으면 하는데 태양으로부터 발산된 전자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면 전기에너지 걱정을 덜 수 있겠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배터리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구현되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저전력동작 특성을 가진 소자의 개발이 선행되어야만 유비쿼터스의 기술구현이 가능하며 개체로부터 발산되는 정보를 수집하여 로봇이 물체 사이를 이동하면서 장애를 극복하거나 개체의 특성을 인식한 후 접근하여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로봇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체 정보는 기술적인 요인에 앞서 경제성을 유지해야만 더욱 많은 개체가 정보를 발신하도록 고려될 수 있다.

결국 유비쿼터스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 전반의 나아갈 미래의 방향타이며 사회적인 확산이 필요하다 느껴저서 시스템이 우선적으로 구축되어야 하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라고 봐야 한다.

이런 인프라가 구축된 후 내가 설계한 로봇은 연구실 밖으로 활보할 수 있게 되며, 그 이전에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자식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인프라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고밀도의 파장분할변조를 통해서 초당 테러비트(1천억회) 이상을 전송하는 기술이 나와야 할테고 다양한 채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송주파수를 높여 무수히 많은 개체와 안정적인 통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할 것이다.

창밖에는 맑아 하얀 구름이 하늘 높이 떠 있다.
오랜만에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고 있다.
한가한 마음을 갖기 위해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무수한 생각이 교차했다.

"행님요, 잘 잤어예?"
"응, 일찍 왔구나?"
"밤낚시로 무리했나봐예. 종일 잤어예."
"그래? 나도 모처럼 나들이라서 무리했는지 피곤하구나."
"교수님하곤 잘되가요?"
"글세, 뭐가 잘되는건지 모르겠다."
"미인이데~."
"짜식 눈은 있어가지고." 탁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치며 옆으로 살짝 밀어냈다.
"마, 너 명옥일 어쩌려고 그랬어?
내가 건너 찻집 총각한테 중신하려는걸 알면서 그럼 못쓴다."
"행님요. 지도 행님한테 그걸 상의하려고 왔어예."
"뭘 상의해? 그냥 잊어버리고 명옥일 자유롭게 해주면 될 것을."
"말이 쉽지 그놈이 내 맘속에 쏙 들어와있으니 어째예."
알밤주먹을 쥐어 탁의 머리에 내리 꽂았다.
"정신 차려라 이놈아. 몫이 다른 여자를 넘봐서 어쩔라고?"
"이혼하라구예. 지금 마누라 싫어예."
"이놈이 정신을 못차렸네.
한번 생각해 봐라, 너랑 열두살 차이가 난다.
지금은 너도 젊고 명옥이도 젊으니까 견딘다 치지만 니 나이 오십 넘기면 걘 겨우 삼십대란 말이다.
그땐 여자 관리도 어렵지만 명옥이가 너무 불쌍해 질것이란 생각도 안해봤니?"
"그땐 그때지예. 지금은 확 바꾸고 싶어예."
"너 가족을 많이 사랑했잖아!"
"아니야예, 바가지 엄청 심해서 떼어 버리구 싶을 때가 하루이틀이 아니라고예."
"얌마, 바가지 때문에 이혼한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
"행님도 교수님이랑 심상치 않던데, 제 눈치 빠른거 알잖아예."
"얌마, 날 협박하냐? 쟈슥이..."
"그니까 제 문젤 진지하게 카운세링해줘예."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올챙이 프로젝트 때문에 자금란에 허덕이면서도 문제를 풀어 보려고 애쓰는 내 마음도 모른채 사랑타령으로 나를 괴롭히는 놈이 생겼다.

"너 퇴근시간 지나서 명옥이랑 함께 우리가 잘가는 중국집으로 와라.
거기서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니?"

"싫어예, 애들도 아닌데 어린 명옥일 앞세워 그런 고민을 어떻게 털어놓고 해예."
"대안이 없어. 관계가 깊어지면 끊을 수도 없고,
어쩌면 네 업보일 수도 있겠지."
"뭐 그딴 문제로 업보까지 들먹이며 겁줘예. 그냥 이혼하고 갸랑 팍 살아뿔라는데."
"그럼 나랑 상의할 일도 없잖냐? 너 나한테 통보하는거니?"
"아니예, 상의하는겁니더."
"알았어. 이따가 명옥일 데리구 그 집으로 와.
일에 지장 없도록 표 내지 말고 챙겨가며 꼼꼼이 일하고."

평소 명락한 녀석이 머쑥한 표정으로 고민의 빛을 역력히 드러내는 걸 보면 사랑은 눈빛 만으로도 만들어지는 듯 싶었다.
나 역시도 빗속에 마주친 눈빛 하나 만으로 사랑을 얻었잖은가.
나는 되고 탁이는 안된다는 일방적인 생각이 현재 사회에서 통용될 수는 없겠지 하는 생각에 조그마한 퇴로를 마음속에 마련해 둔다.

"김박사님, 이번 올챙이 프로젝트에 들어갈 블록도가 개략적으로 완성됐습니다." 양과장이 종이 한 장을 딸랑 들고 뛰어 왔다.
"어디봐." 양과장이 내민 종이를 기쁜 듯이 받아 쥐며 올챙이프로젝트 블록도를 살펴봤다.
"음, 개략적인 구성은 잘 되어있군.
그런데 외부에서 들어온 신호를 리시브하는 부분과 회로에서 직접 발생한 신호를 센드하는 부분이 동일 라인을 타고 있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외부신호가 먹스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센드와 리스브를 분리하려면 엄청 많은 회로가 투입되야 하거든요.
그래서 일단 리시브와 센드의 구분없이 모든 신호를 증폭하기로 했지요."
"그렇게 되면 데시벨 차이가 심해서 올챙이를 통해 신호를 감지했을 때는 편차가 너무 많이 나겠는걸.
이쪽 IC 처리부에서 드라이버를 조정해서 센드와 리시브 양방향을 처리하지 말고 단일 채널만 핸드링 하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저의 기술로는 로딩된 신호를 다시 구분하는 기술이 없어요."
"그럼 일단 구분하지 말고 증폭하게.
나중에 회로를 빠져나가는 신호의 임피던스를 계산해서 표준치 이상으로 나오는 값이 있으면 일방적으로 감쇠시켜도 될 것 같아."
"어, 그러면 되겠군요?"
"그리고 이 칩의 기능 중에서 판단능력을 제거해 버리게."
"왜죠?"
"이 칩이 판단까지 한다면 프로세스가 너무 느려지니까, 차라리 병행처리를 통해서 독립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칩셋을 몇 개 추가해 보게."
"그러면 생산 단가가 상승할텐데요."
"부품 가격은 얼마 되지 않네. 프로세스가 딜레이 되어 성능이 저하되는 것을 막는 설계가 더 중요하지."
"하지만 기능 중복이 생길텐데요."
"그래, 중복 기능은 주된 기능만 남겨두고 모두 제거해 버리게."

양과장의 기본 블록도는 잘 만들어져 있었다.
블록도를 놓고 IC칩을 결정한 후 주변 저항을 조절하면 쉽게 올챙이 프로젝트는 구현될 것 같다.
"양과장, 자네의 블록도는 몇가지 수정만 하면 훌륭한 설계도가 되겠어.
기대한 이상의 결과에 만족스럽네."
"감사합니다. 김박사님."
"어서 수정한 후 아트작업에 들어가게."
"저를 믿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양과장은 기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앞으로 두달만 있으면 회로도가 완성된다.
회로도를 근거로 필요한 칩들을 수배하는데도 한달은 걸릴 것이다.
김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내 방으로 들어오도록 지시했다.

"부르셨어요?"
"응, 고생많지?"
"아뇨, 기분 좋은 날만 계속 되서 신나요."
"그래, 양과장이 블록도를 완성했더군. 자넨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해서 양과장이 구현하려는 컨셉에 맞는 부품을 수배하게.
아무리 빨라도 한달 이상은 걸릴테고, 각 부품이 연구실까지 도착하려면 또 한달이 걸릴테니까 특정 칩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매일 나에게 보고하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씩씩한 말을 남기고 김대리가 방에서 빠져 나갔다.

두달 이내에 적어도 한달 이내에 테스트용 부품을 구입할 자금을 구해야 한다.
생각같아서는 다른 회사로부터 회로설계 용역을 몰래 맡아서라도 자금을 마련하고 싶다.
이때 벨소리가 울렸다.

"김박사, 자네 내 방으로 좀 오게."
"네, 사장님."

온갖 상념에 젖은 채로 황급히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어깨를 탁 친다.

"이 사람아, 뭘 골돌히 생각하고 있나?" 곽상무였다.
"아, 네, 상무님." 무심한 듯 말을 받아 간단히 반응만 보이며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다.
곽상무는 내 어깨 끝을 잡으며 자신의 앞으로 나를 당기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자네, 사장님에게 보고하지 않고 추진하는 것 있지? 사장님이 엄청 화내더군."

순간적으로 머리가 확 돌 것 같았다.
적어도 우리 팀에는 올챙이 프로젝트를 발설할 사람이 없다.
조그만 프로젝트에 산업스파이가 개입했을리도 없고 무심한 듯 오랜시간 기다려주던 사장님이 새삼스럽게 내가 하는 일에 관여할 이유도 없다.

"도대체, 누가 이 일을 알렸을까?" 혼자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어이, 들어와. 이리 앉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자네, 올챙이 프로젝트 진행한다며?"
"네? 무슨말씀이신지?"
"다 아는 수가 있네. 자네가 고마울 따름이야."
"글세, 전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중간 산출물 생산을 위해 로봇 프로젝트를 축소해서 올챙이 프로젝트로 전환했다고 하더군. 개인적으로 오랜기간 동안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였는데 내 맘을 어찌 알고 그 일을 시작했나?"
"글쎄요, 전 감이 안잡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넬 야단치려고 부른게 아닐세. 너무 기뻐서 자넬 부른거지."
"혹시 올챙이랑 개구리를 혼동하셔서 저를 부른 것은 아닌지요."
"됐네. 썰렁한 얘기 그만하고 자네의 이번 프로젝트도 자금 지원을 해 보겠네."
"자금지원이라뇨? 지금도 인건비로 부담 스럽잖습니까?"
"아니네, 지난 주 자네가 영업팀 지원한 이후 점차 회사 사정이 좋아지고 있네.
어쩌면 자네 개인한테 보너스를 주고도 싶지만,
이번 올챙이 프로젝트를 위해 자금을 추가 투입하겠네."

사장님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올챙이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산을 집행하겠다고 나온 이상 숨겨야 할 일도 없어진 셈이 되었다.

"사장님 모르게 추진해서 깜짝 놀랄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정보망 확실하시군요."
"이 사람아, 내가 사람 볼 줄 아네.
자네를 스카웃해서 오랜시간 공짜 밥만 먹였다고 생각할 필요없네.
적어도 자넨 밥값 수천배를 내게 돌려줄 것이란 확신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회사가 어려웠어도 자넬 의지하는 마음을 버려본적이 없었지."
"그렇게 믿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면서 자리를 일어서는데 사장님이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꼭 성공하게, 나는 서너달 동안 마케팅을 준비하겠네."

일이 잘 풀린 것인지 아니면 엉킨 것인지 모르겠다.
사장실을 나서면서도 자금문제가 풀린 것에 대한 홀가분함과 함께 누가 그런 정보를 흘렸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함께 일었다.
회사의 자금사정이 호전됐다 하더라도 그 몫은 다른 부서의 몫일뿐인데 또 한번 신세를 지게 되어 부담이 가중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올챙이 프로젝트만 놓고 본다면 자금문제와 마케팅전략 부분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제거된 셈이다.

퇴근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손목시계를 계속 쳐다봤다.
날이 어둑해 지려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탁이 먼저 퇴근한다며 인사한 후 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