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4)


사랑에 대한 공포로 퍼득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나를 기다렸었나.
가여운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천사로 내 모습이 비춰졌다면 나는 그저 한 마리 야수가 되어 그녀의 온 몸을 ?아야 한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당신을 봤어요.
가로등 불 빛마져 흡수해버린 폭우 속에서 무언가를 갈망하는 당신을 보았죠.
또렷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심장을 찌르는 비수와 같이 날카로운 설레임으로 다가왔어요.
난 처음으로 낯선 사람을 태웠고 당신을 알게 된 것에 대한 흥분으로 몇일을 보냈어요."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니오.
평범한 셀러리맨이고, 집과 직장을 시계바늘처럼 이탈하지 않고 오가는 사람일 뿐.
설레임의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운명이라 해야 편할까요?"
"그래요 내겐 운명처럼 다가왔지만 당신에겐 우연이겠죠?"
"우연이란 장난같은 것. 당신의 마음을 받는 것을 어찌 장난으로 치부하라고 합니까?"
"당신에 대해 알아본 후 절망에 빠졌어요. 가족을 아낀다는 것이 내겐 큰 장애가 되더군요. 그 틈에 내가 끼면 너무 불행해 질 것 같은 두려움과 또 나를 아는 사람들로 부터의 질타를 견디기 어렵다는 그런 생각이 힘들게 했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봐요."
"아뇨, 당신에 관한 문제는 어떤 논리와 설득이 통하지 않아요.
난 눈이 멀었고 귀도 멀었죠.
첨부터 당신 여자가 되기 위해 존재했었던 것으로 생각됐고 그래서 기다렸던 것으로 믿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몇일간 계속 됐으니까요."
"그건 사랑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생긴 집착일 뿐..."
"첫 사랑을 믿나요?"
"첫 사랑이란 뒤돌아 보면 그때 있었던 감정일 뿐이지 사전에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첫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첫사랑을 운운하는 애들을 보면 우습고 또 우스울 따름이오."
"날 비웃으세요. 난 첫사랑을 믿고 그 사람과 영원히 영혼까지 함께 하고 싶으니까요."
"..."
"당신은 내 첫사랑이에요. 첫사랑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분해하든 외면하든 그건 당신 몫이지만 비맞아 초라한 모습에 감춰진 당신을 본 순간 나를 알았죠. 내 운명이란 것을..."

애처럽게 지금의 상황을 합리화 시키는 단순한 고집이라고 믿고 싶다.
이런 만남이 운명이었다면 왜 진작 나타나지 않았을까.
내가 한 여자를 정신적으로 지배한다는 것, 아니 육체적으로 지배한 다는 것은 이 사회가 조성한 도덕적 틀을 깨지 않는 범위내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데 나는 이미 가정을 갖고 있고 구성원을 깊이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
유희의 대상으로 이 여자를 대하면 한때는 즐겁겠지만 많은 시간은 암울한 상처로 남게 된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겠다고 고집하는 이 여자는 어쩌면 남은 내 평생의 또 다른 상처로 나를 괴롭힐 수 있다. 갈등은 그 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가슴이 한 손에 들어오고 탄력이 넘쳐서 참 좋아요."
"너무 작아 한 손에 꽉 안차죠?"
"아니 큰 산 봉우리를 잡은 느낌인걸."
"당신을 위해 더 크게 성형수술을 할까봐요."
"젖가슴 큰 여자는 좋아하지 않아요. 헤퍼보일 뿐이지."
"가슴성형이 유행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안키우길 잘했네요."

넘어야할 산이 있다. 오늘은 가슴까지만 진격하고 나머지는 절제를 통해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한 마리 야수로 변하려는 심연의 본능을 억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득도의 길이다. 이 여자의 본능을 일깨워 나를 유혹하게 하고 나는 그 유혹을 우회하여 더 깊은 나락에 빠진 채 나를 갈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그녀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택한 일에 마지못해 빠져든 것으로 해야만 한다. 그래야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완전한 지배를 할 수 있다. 사악한 마음으로 그녀를 지배해야만 가정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흐~억"
손이 배꼽 위를 스치는 순간 온 몸이 뒤틀리듯 경직되며 인내의 소리를 낸다. 뽈록하게 솟은 내 배와 반대로 그녀의 배는 깊이 패여있다. 한 팔은 베게삼아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며 가슴의 돌기를 만지고 나머지 한 팔은 그녀의 배꼽 근처를 맴돌고 있다.
"두려워요?"
"구름에 떠 있다 갑자기 추락하는 아득함이 온 몸을 감싸고 있어요.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내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덮고 한 손을 가만히 아래 둔덕에 올려놨다.
"아~으"
몸이 간질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다.
"헉~헉.
여기서 멈춰요.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