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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2:04 743회 0건
일탈의 미소
-1부 -

[ 오늘도 당신을 먼 발치에서 지켜만 보았읍니다. 언제나 바보처럼 이렇게 당신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볼수 없음이 내겐 죽음의 고통과도 같지만 이렇게 먼발치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것이 당신의 행복을 위함이기에 오늘도 이렇게 당신을 향한 그리움만을 가슴에 품은체 먼발치에서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을 혼자서 달래봅니다 ]


- 후우.. -

편지를 모두 읽은 승혜는 긴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려진 편지를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벌써 삼개월째다. 처음 현관앞에 놓여있던 편지를 발견할때만해도 승혜는 그저 누군가의 장난쯤으로 여겨왔지만 삼개월동안 사흘 간격으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전해지는 편지를 통해서 이것이 결코 단순한 장난이 아님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전해지는 편지를 막을 길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남편에게 이런 상황을 숨기기 위해 전전 긍긍해 왔을 뿐이다.


편지를 다시한번 읽어내린 승혜가 화장실로 들어가 편지에 불을 붙여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고 빨갛게 타오르는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도대체 누가 자신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 따르르릉!! -

편지가 타오르는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혜가 전화벨 소리에 황급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 여보세요 -
- 나다 -
- 네.. 어머니 -

승혜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주눅이 든듯 낮은 음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 약은 먹고 있는게냐 -
- 네.. 어머니 -
- 아직 아무 소식은 없니 -
- 네.. -
- 알았다 -

시어머니의 짧은 대답뒤로 수화기의 단절음이 흐르자 승혜는 지긋이 자신의 아랫 입술을 깨물며 수화기를 내려놓은뒤 무거워진 마음을 감추기 힘든듯 긴 함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전화기를 내려다 보았다.


벌써 삼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승혜는 아직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대 독자인 남편탓에 시어머니는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적지않는 불만을 승혜에게 쏟아붙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나 승혜를 힘들게 하는것은 정작 시어머니의 불만때문은 아니였다. 시어머니야 집안의 대를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다 하지만 승혜의 남편인 대진은 그런 승혜에게 힘이 되주지는 못할망정 은근히 승혜를 무시하며 밖으로만 나돌고 있다는 점이 승혜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우기 요즘 들어서는 남편인 대진은 마치 기계처럼 종족 보존을 위한 잠자리만을 가질뿐 남편의 따뜻한 남편의 손길을 기대하는 승혜에게 언제나 넓은 등만을 보일뿐였다.

그런데 그런 승혜에게 언제부터인가 낯선 편지가 계속 전해지고 있는 것이였다. 처음 그 편지를 받을때만해도 황당함에 어이가 없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승혜는 그 편지에 묻어있는 애절함에 조금씩 연민의 정이 가슴에 흐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편지를 받아들때마다 조금씩 설레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남편의 무뚝함과 시댁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승혜에게 그 편지는 일종의 작은 희망과고 같이 여겨지고 있었다.


- ... -

한참을 편지지를 내려다보며 망설이던 승혜가 무언가 결심을 한듯 조심스레 편지위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누굴까.. 어디에 사는 사람일까.. 또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것일까 하구요..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때로는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네요.. 저 같은 여자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것은 고맙지만 한 가정을 지키는 여자로써 다른 사람의 눈길을 의식해야 한다는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써봅니다.
만약 이 편지를 읽게 되신다면 앞으로는 편지를 삼가해 주세요. 더 이상 편지때문에 전전긍긍 하기도 싫고 혹여 남편이 편지를 발견이라도 하게 된다면 남편에게 죄를 짓게 되는것이 될테니까요.. 전 남편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 가정도 소중하게 생각하구요.. 그러니 이런 장난은 더 이상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곡히 부탁드려요. 그럼 이만.. ]

편지를 모두쓴 승혜가 정성스레 편지를 봉한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 후.. -

벌써 두시간째 계단 한귀퉁에 몸을 숨긴체 우편함을 지켜보던 승혜는 여전히 자신이 써놓은 편지가 우편함에 꽃혀있는 것을 바라보며 긴 함숨을 내쉬었다.

지난번 편지를 받은후 꼭 삼일째인 오늘 승혜는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오늘만큼은 꼭 알아내고 싶었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편지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는것을 알기라도 하는듯 번번히 편지의 주인공은 승혜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였다. 이렇게 몇 시간을 지켜보다 승혜가 지쳐서 집으로 돌아간후 다시 얼마후 우편함을 살피기 위해 내려오면 편지는 어김없이 우편함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것이였다.

- ... -

승혜는 그렇게 마치 자신과 숨박꼭질을 하듯이 자신의 시선앞에 나타나지 않는 편지의 주인공을 꼭 알아내고 싶었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눈치라도 챈듯 나타나지 않고있는 편지의 주인공을 알아내기에는 오늘도 틀렸다는 생각에 그저 자신이 써놓은 편지를 그 누군가가 볼수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몸을 돌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시장을 다녀온후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던 승혜의 눈에 언제나처럼 분홍색 편지 봉투가 덩그라니 놓여있는것이 보여지자 두근 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편지 봉투를 꺼내들었다.

승혜는 편지 봉투를 꺼내들며 자신이 써놓았던 편지가 사라졌음에 편지의 주인공이 자신의 편지를 읽게 될것이라는 생각에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조급은 착찹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내려놓았던 장꾸러미를 집어든체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 편지를 넣어 놓으려다 당신이 써놓은 편지를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놀랬읍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읽고 난후 다시 한번 놀랬구요.. 그래서 먼저 써놓았던 편지는 불살라 버리고 다시 이렇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먼저 제가 그동안 보내왔던 편지로 인해 승혜씨가 그토록 힘들어 할줄은 생각 못했읍니다. 전 그저 승혜씨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너무도 힘들어서 편지를 쓰게된것이였는데 그게 그토록 승혜씨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니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승혜씨의 부탁대로 이제 더 이상 편지를 쓰지않겠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먼발치에서나마 승혜씨를 바라보는 제 시선까지는 멈출수가 없을것 같군요.. 그점은 승혜씨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혜씨에게는 어떤 부담감이나 고통을 주지는 않도록 노력하겠읍니다.

그동안 제 편지로 인하여 힘들셨던점 다시한번 사과드리고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빌겠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

- ... -

편지를 모두 읽어내려가던 승혜는 까닭없이 자신의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이제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겠노라는 말에는 일단 안심이 되었지만 더 이상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앞에서는 서운함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승혜는 그렇게 자신의 가슴에 휘몰아치는 이중적인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 남자의 아내로써 한 가정의 안주인로써 어쩌면 이런 상황을 단호하게 외면해야 하거늘 이토록 자신의 가슴에 아쉬움이 스쳐가는 것에 대하여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 화르륵.. 화르륵.. ]

마지막 편지라서일까.. 오늘따라 세찬 불길을 내뿜으며 사그라지는 편지를 바라보며 승혜는 까닭모를 서글픔이 가슴에 젖어옴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서글픔뒤로 자신을 힘겹게 억누르는 시댁의 식구들과 차가운 남편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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