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패니스 수호지 -이타로 이야기 (2)

이타로는 서찰을 들고 서둘러 서재로 달려갔다.
아씨가 심었다는 벚나무를 지날 때쯤 의식적으로 발을 쳐다본다.
항상 담벼락을 돌아 안채로 들어서는 쪽문을 지날 때마다 이타로는 자신도 모르게 뒷발꿈치를 들어올려 걷고 있는 걸 발견하곤 했다. 그는 긴장하면 발목에 힘을 주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15살 때인가, 그는 지방관리를 맡고 있는 어느 가의 한 여자아이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 이름이 히비키라는 그녀는 동갑내기로 에도의 어느 막부관리의 첩으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고, 자신은 그저 하급무사의 자식일 뿐이였다. 그런 닿을 수 없다는 애틋함 때문이였을까 그녀를 보면 자신도 주채 할 수 없는 격정의 물결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훔쳐보게 되었다. 담벼락 맞은 편에서 엿보는 이타로의 발은 담벼락보다 작은 자신의 키 때문에 항상 까치발이였던 것이다.

누군가를 훔쳐본다는 것, 그것은 견뎌내기 어려운 흥분과 초초함을 만들어 낸다. 내면에서는 뜨거운 불기둥이 솟아나 자신의 오장육부를 그리고 다시 혈관을 통해 자신의 모든 살갗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묘한 흥분 그리고 자신을 휘감는 격정
그때부터 이타로는 긴장할 때마다 까치발이 되었다.
순간 이타로는 자신의 무엇 때문에 긴장하고 설레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케시꼬 아씨"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벚나무를 한번 처다보고는 다시 안채로 향해 발을 떼었다.
안채는 좁은 마당을 감싸는 구조로, 마당 가운데는 인공적인 작은 연못이 위치하고 있다. 연못안에는 요시유키어른이 직접 나가시마에서 가지고 왔다는 나가시마연꽃이 잠을 자는 듯 자리하고 있다.
연못을 돌아 난간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번하고는
"이타로입니다"
하고는 컬컬한 목소리로 인기척을 했다.
"무슨 일이세요?"
여자의 목소리다.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그는 나무에 짚으로 끈이 달린 신발을 벗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앙상하게 말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내가 누워있다. 두 눈이 심하게 움푹 들어간 것이 일부로 손가락으로 누른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불위로 나타난 그의 어깨는 어린아이 어깨마냥 좁았고 손톱만큼의 반점들이 아무렇게나 나있었다. 그 점들은 다시 어깨에 이어진 팔을 따라 어지럽혀져 있다. 그리고 손끝에는 다섯 개의 바늘의 꽂혀있다. 그리고 다시 바늘에는 아주 가는 철실이 이어져 그 철실을 따라 눈을 돌리면 쇠뭉치로 된 이상한 기구가 "삑삑"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이타로는 잠시 그 기구가 궁금해졌다. 서양에서 어제 들여왔다는 기계인가. 그러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요시유키가문은 옛부터 보수적인 일파의 길을 걸어왔다. 항상 무의 형식을 중요시했으며 그 어떤 외부의 변화에도 300년 동안을 외골수처럼 한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전쟁, 그리고 그에 따르는 수많은 명분들, 그런 것들은 이 가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까이는 몇 개월전에는 수하중 한녀석이 청나라에서 들여온 검을 들여왔다가 파문당했던 경험을 그는 잊지않고 있다. 그런데 서양에서 들여온 이런 기계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모습. 조금은 웃기는 현실이였다.
다시 방안에는 "양"이라는 열매를 다려서 만든 약냄새와 비리한 체액냄새가 섞여 이타로의 코를 심하게 자극했다. 다름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항상 불켜져 있던 창호로 된 등의 불이 꺼져 있을 뿐.......
그 사내 머리맡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곱게 머리를 땋아 올린 연분홍색의 기모노의 여인이 앉아있다. 하얀 얼굴의 옆모습에서 보이는 그 눈은 감긴 듯 살며시 떠있을 뿐이였다. 하얀 목선 위에는 몇가닥이 머리카락이 풀어져 하늘하늘 거리고 있었다. 목선을 내려오면 연분홍색의 기모노-연분홍 향기가 나는 배경이 펼쳐져 있고 그 배경은 여성의 가슴선과 만나 봉긋한 언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허리를 메고 있는 오비(일본여인들이 메는 허리띠), 강하게 메어진 그 오비는 유난히 허리를 가늘게 만들고 있다. 하루종일 허리를 껴안고 있는 녀석 때문에 허리에는 유난히 땀냄새가 풍기리라. 녀석이 부럽다.
이타로는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다시 발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밑에부터는 요시유키의 가문의 문양이 짙게 새겨져있다. 그리고 하얀 타비(버선).마주 대하고 있으면 눈이 쉽게 거할 곳이 없어졌다.
"케시꼬"
이타로의 입속에서는 세글자의 이름이 맴돌고 있었다.
"그 자는 그이가 이렇게 된 걸 모르는 눈친가요?"
하얀 목이 실룩거리며 온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인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잠시 간격을 두고 대답하자 대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시 이타로의 잘려진 머리를 발견하고는 우스꽝스러운지 살짝 보조개가 나타났다.
"그는 강하군요!"
"........"
순간 이타로는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빨개졌다.
이타로는 대답대신 서찰을 자신의 무릎앞으로 내려놓고는 쭉 밀어냈다.
케시꼬의 시선은 서찰을 한번 훑고는 다시 자신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읽어볼 필요도 없다는 뜻일까.
침묵이 흘렀다. 케시꼬는 다시 눈을 돌려 작은 장롱위의 놓여 있는 하나의 화분을 쳐다본다.
푸른색의 꽃.
"이것은 고대 인도에서 들여왔다는 눈물이라는 꽃이에요"
"...."
"그중에서도 푸른색의 꽃을 피울 가능성은 100만분의 1"
"이꽃을 만들기위해선 수많은 노력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적당한 수분과 그에 맞는 온도, 그리고 다른 색의 꽃에 대한 계속적인 가지치기. 그리고 우성만의 교배, 즉 근친교배를 해야만 하죠"
이타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이 하나의 색을 가진 꽃을 만들기위해서 수많은 나머지 꽃들의 희생을 요구해야만 하는 거죠. 우리 요시유키도 이 푸른 꽃과 같아요. 하나를 지키기위해 수많은 목숨을 받아왔어요.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은 변합니다. 그에 따라 이념과 무의 가치도 변하죠. 그 속에서 하나를 지켜나가는 것은 뒤쳐짐을 의미하는 겁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치고는 비효율적인 것이죠"
케시꼬는 무릎을 끌어 꽃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꽃잎에 자신의 긴 손가락을 갖다 데었다.
"우성만의 교배는 더욱더 그 가능성을 줄여만 가는 과정, 그 귀착점은 결국 .....열성화"
그리고는 꽃을 가지에서 떼어낸다.
"우리 요시유키도 이 꽃처럼 이제 더 이상 우성이 아닙니다. 아니, 오래전부터 그래왔었죠, 단지 고집으로 우성이라 착각하며 살아왔을 뿐...... "
"아씨 그럼 말씀은........"
이타로는 목청을 높이며 케시꼬의 말을 잘랐다. 이타로는 그말이 어떤걸 의미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아직 우리 요시유키는 건재합니다."
"아니에요. 꽃도 한가지 색만 존재한다면 아름다울 수 없듯이 세상도 각각의 색을 필요로 한 겁니다. 남은 것은 꽃들의 반란, 그것이 이 서찰 "
"오가타상도 이제 떠나야할 때인것 같군요!"
이타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떠날 수가 없는 것이였다.
"이제 요시유키는..... 해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