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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사원의 여행자 - 2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2:16 1,388회 0건
돌사원의 여행자 2
그 동안 나는 방안을 둘러본다. 만일 여관방의 이데아가 있다면 이럴 것이라고 확신해 본다. TV, 침대, 옷장, 작은 냉장고, 높다란 창문. 군더더기는 없다.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시력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모름지기 인간의 문화라는 것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녀의 혀가 목젖을 살짝 건드린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젖혀준다.
- 말해봐. 무슨 일이야....
결국 그녀는 나의 사정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결국은 하고 말 것이다. 끝까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들어선 안되는 이야기거나 너무나 하찮아서 말할 가치도 없거나 일게다. 예의와 같은 것이다. 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묻는다.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평화. 이만큼 나이를 먹으면 그런 일들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래도 모든 ‘이야기’라는 것에는 테마가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 그녀가 왜 빨래를 널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모르기에는 그녀와 나의 관계는 너무나 패턴화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해 내려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뭐 중요한 일은 아니다. 남는 사실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흔한 이야기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소년과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소녀가 어느날인가 만났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예외없이 문제가 생겼다. 소년은 큰 도시로 대학을 갔고 소녀는 고향에 남아 취직을 해야했다. 또한 소년은 군대를 가야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 사이 서로 동시에 사랑하기도 하고 한쪽은 싫증을 내고 한쪽은 여전히 사랑을 하고 하는 시기들이 반복되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소녀쪽의 주기가 훨씬 짧았을 것이다. 둘은 점점 지쳐갔고 결국 소녀는 적당히 조건을 따져 결혼을 했다. 소년은 혼자 남았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소녀때문일까.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나 같으면.
이제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소녀의 남편은 가정적이라는 덕목에 관한한 불성실로 일관하는 듯 보였다. 아이도 없다. 소녀는 예전의 소년을 간간히 만나며 무료함을 달랜다. 뭐, 그런 이야기다. 재미없다.
- 울....어.....?

누가 나에게 불륜에 대해서 묻는다면 별 망설임 없이 말릴 것이다. 윤리적 - 불륜이라는 말자체가 너무 광범위하고 즉물적이라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倫이 不이라니... 맙소사 - 인 기준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이 마음아프다는 것이 보기 싫을 뿐이다. 그럼 너는 뭔가. 그래... 나는 무언가. 만약 그녀의 남편 - 그를 두 번인가 본 적이 있다. 결혼식, 우연한 식사 - 이 나를 고소한다면, 아니 지금 당장 여관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훅을 먹인다면 달게 맞을 것이다,라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변명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누가 봐도 확실한 불륜이다. 그 말에는 뭐 여러 가지 가치 평가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메이크 러브. 그 행위의 이름이다. 흐음.... 우리의 불륜으로 마음아파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그녀를 남몰래 흠모하던 옆집의 총각이라도. 두 가지 밖에 없다. 그만두거나 절대로 들키지 않거나. 자, 슬슬 결심을 해야할 때였다.
- 이혼한 여자는 살기 힘들거야, 응?
그녀가 물었다.
- 총각보다야 삼십 배쯤 힘들겠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운동화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 비오는 동물원을 갔다. 그녀의 운동화가 찢어졌고 나는 곤란해하는 그녀를 집에까지 대려다 주었다. 그리고 15년이다.

여름이 나에게는 유일하게 바쁜 시기다. 가끔 일. 출판사를 가지고 있는 선배가 있다. 그래봐야 정기 구독자가 1500명 쯤에 불과한 이론 계간지를 간판으로 가끔 여유있을 때 단행본을 내는, 당장 문을 닫아도 아무도 모를 그런 곳이다. 독자관리도 하지 않는다. 원고료는 지독할 정도로 짜다. 문을 닫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 계간지의 교정을 보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다. 대충 대학을 나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무던함이 필요하다. 지독히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200페이지 가량 꼼꼼히 읽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다. 네 개 정도의 꼭지에 대략 12개에서 15개 정도의 글들을 단 한 사람이 교정을 본다는 것은. 하지만 3년 전 그 일을 하기로 하고 처음 선배로부터 원고를 넘겨 받았을 때 조금 화가 났었던 것은 다른 이유였다. 이 사람들은 내가 아는 말은 왜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일까.
- 형 있잖우...
- 응, 뭐?
- 그러니까... 형은 그 글들 무슨 말인지... 다 알우?
- 알거라고 생각하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1500명이나 그런 글을 보고 있다. 그걸로 된 것이다.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일감에서 페이지가 빠진 글이 두개나 된다. 선배는 다른 할 이야기도 있으니 만나자고 말했다. 선배와 만나는 일은 두 가지 면에서 곤란한 문제가 있다. 하나는 분명히 무슨 일인가를 떠맡기려는 것이 분명하고 또 하나는 그 복잡한 인사동 골목을 해매며 약속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이야 어떻게든 거절하면 되지만 원래 길눈이 어두워서 그런지 인사동의 복잡함에는 질려버렸다. 선배는 그런 곳에서 잘도 새로운 집들을 찾아낸다. 원래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런가보다하고 봐주려고 해도 아무튼 그의 그런 능력은 분명히 범상하지 않은 것이다.
- 자 여기가 수도약국이야. 모든 인사동의 지도는 여길 중심으로 그려진단 말이지. 그러니까.....
하고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갈때마다 결국은 해매고 만다.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면 체념하고 한 30분쯤 일찍 집을 나설 수 밖에 없다.
- 잘 챙긴다고 하는데 늘 이 모양이다. 미안.
- 뭐, 어차피 형도 혼자하는 거니깐. 근데 할 말이란게 뭐유?
- 아, 그 왜 있잖아. 신문사나 출판사같은데서 강좌여는거.
- 형도 할라구?
- 응응. 뭐... 잡지 낸지 5년 째 돼가고.... 그동안 쌓인 필자들 하며 구독자들하며... 좀 썩히기 아까워서.
- 좀 벌었수? 꽤 들텐데...
- 그니까 너한테 부탁하잖아.
- 무임봉사같은 건 취미 없수.
- 자식아, 준다 줘.
그 재미없는 걸 책에서 모자라 강좌까지 연다니 재정신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미 기획에서 강사선정까지 끝난 상태고 내가 할 일이라는 건 그 강사진들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관리지 상당한 노동이다. 대학원 다니면서 몇 번 해본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있다. 강좌 들어가기 이전에야 전화 몇통이지만 일단 강좌에 들어가면 모니터에 수강생 관리에 접대는 기본이고 까딱하면 강의실 관리, 복사, 회계까지 해야한다. 특히나 선배의 출판사처럼 영새한 곳이 주최라면 꾸벅하고 절을 할밖에.
왜 일을 하기로 했을까. 가끔가다 바쁜 것도 좋을 것이다. 그녀가 약간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선배하고의 정, 뭐 그런거.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한다고 결정한 일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누구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도데체 누가 괴로워한다는 말인가. 연구실, 혹은 자택. 핸드폰. 이메일 주소. 모두 여덟명이다. 이 사람들하고 엮여서 자분거릴걸 생각하면 약간 어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하기로 한 일이다. 아무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나도 괴로워하지 말자. 수화기를 든다. 신호가 울린다.
- 여보세요?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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