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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2:48 779회 0건
비오는 날(9)

키도 크지만 애들 가졌던 몸 답게 가슴이 탱탱하게 솟아있다. 미쳐 빨려보지 못한 유두는 가슴에 비례하여 너무 왜소해서 조그만 사마귀와 같다. 조금 볼록한 아랫배는 비너스 신상에 비해 더 아름다운 곡선을 연출한다. 동여멧던 머리를 치렁치렁 내리니 허리까지 흘른 것이 침을 바짝 마르게 한다. 곱슬거리는검은 물결과 하얀 허벅지의 조화에 갑자기 현기증을 느꼇다. 맘껏 치오른 엉덩이며 곱게 각을 지고 내려간 허리 아래의 균형이 이렇게 아름다운 형상을 빗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걸쳤을 때만 미인이고 벗으니 개걸레라고 난리치던 박사장은 도대체 뭘 원했던 걸까? 이렇게 뛰어든 사람을 향해 놀라운 눈 빛을 보이면 사단이 난다. 그냥 당연한 일로 욕망의 불꽃을 진화해야만 한다.

"그래, 얼른 씻고 여길 나가자. 씻는게 더 더러워지는건 아닌지 몰라."
"제 몸을 보고도 아무 생각 안들어요?"
"좋아, 멋져~"
"겨우 그정도요?"
"가슴이 진탕돼, 하지만 얼른 씻고 나가지 않으면 병 걸릴 것 같아."
"저 한번 안아주세요."
아직 물기를 닦지 않은 머리칼 때문에 고개 숙이고 있는 나에게 불쑥 다가온다. 나는 얼른 수건을 꺼내서 급한 물기를 닦는 척 한다. 어쩌면 내 욕망을 닦고 있었다.
"아주 예쁘고 탄력적이다. 뽀얀 피부며, 누가 이런 아일 버렸을까?"
"전 이제 괜찮아요. 아저씨 말처럼 절망은 잊고 희망만 생각하며 열심히 살래요. 하지만 얼마간은 술집에 나갈꺼에요. 돈 더 벌면 학원도 다닐래요."
"그래, 하루 아침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 큰 경계만 그리고 세부적인 그림은 천천히 그려 나가야 하는거야."
"네, 아저씨."
격정적으로 달려 든 그녀도 사실은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었던지 더 이상의 진행은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럴 때 나는 여자를 어떻게 다뤄야 활화산처럼 터지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은 활화산처럼 터져 버린 여자의 감정을 진화하는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버린 화산을 다시 봉합하는 기술을 체득한 셈인가.
"이런 기회를 외면하는 사람이 있을꺼란 것은 생각도 못해봤어요. 제가 못생겨서 그런건 분명히 아니죠?"
"아가씬 정말 예뻐, 앞으론 더 예뻐질꺼야. 난 아가씨 사는 방법까지 간섭하진 않아. 하지만 담에 또 보면 영화도 보고 음악도 함께 들어보자."
"감사해요. 저를 그렇게 평범한 여자로 만들어주려 노력하시니."
"아냐,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지만 마음을 읽으면 환경은 바꿀 수 있어."
"알았어요. 늦기 전에 어서 씻죠. 간단히 샤워만 할건데 물튀기니까 나가계세요."
활짝 열린 좁은 화장실에서 그녀는 알수 없는 노래를 응얼거리며 신나했다. 나는 그녀의 손이 가는 곳마다 눈길을 같이 하며 충렁이는 가슴의 율동을 즐겼다.
"이렇게 신나는 밤은 첨이에요. 전 이제야 옛날의 일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새 세상을 보게됐어요. 아저씨의 은혜는 잊지 않을꺼에요."
"하하,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 어떤 일이든 모두 밝은 것만 있는 것은 아냐. 그 반대로 잃는 것도 있어. 하니까 모든 일의 한쪽 면만 보고 좋아해선 안돼."
"무슨 말이죠?"
"아가씨가 오늘 일로 어떤 흥이 났겠지만 경계해야 할 일도 있다는 거지. 가령 나를 맘 속에 두면 더 큰 불행이 되거든. 나까지 옛 일에 묻어둬야만 행복이 열리는거야."
"싫어요. 아저씨 때문에 새로운 불행이 온다해도 아저씨는 내 맘속에 항상 있어야 해요."

아아, 나는 감언이설로 또 다른 인생을 얽메게 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 나름대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 어린 뇌리속에 나를 잘못 각인 시킨 꼴이 되고 말았구나. 내가 살아오면서 나를 각인 시킨 숫한 일 중에서 아직까지도 나를 따라 다니는 것들이 무엇인가. 어쩌면 어린 마음에 오늘 하루 결심을 하고 삼일이 채 가기 전에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저, 명함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저를 그 룸싸롱에선 만나지 말아요. 보고 싶을 땐 제가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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