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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16 1,173회 0건
이제 은정이나 시어머니 상미가 예전처럼 수연을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그리고 수연의 얼굴도 처음 보았을 때에 비해 많이 좋아진 듯 했다. 그러나 언뜻 언뜻 보이는 옆 얼굴엔 아직 슬픔이 묻어 있었다.
매형과의 관계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상준이 이 집에 온지도 어언 2달이 다 되어 가지만 매형 얼굴을 본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아무리 사업이 바쁘다해도 두 사람의 태도에는 냉냉함이 있었다.
하루는 상준이 작심을 하고 술 상을 보았다.
"아니 애는, 나 술 잘 목먹잖아..."
"그냥 분위기만 잡으면 되..."
"치, 내가 뭐 니 애인이니? 분위기 잡게?"
"내가 인심써서 늙은 누나 하루 애인해 줄테니까 고마워나 하라구요 누나..."
상준은 맞은 편에 앉아 가벼운 이야기부터 풀어 나갔다.
수연은 상준이 감옥에 있을 당시 이야기를 들을 땐 항상 눈물이었다.
"아 참, 분위기 못맞추는데 선수라니까 우리 누난....하여튼..."
"미안해 상준아....내가..주책이다..."
어쩔 땐 깔깔거리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어쩔 땐 괴로웠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느 새 시간이 많이 흘러 양주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부분 상준이 마시긴했지만 수연도 홀짝거리다 보니 평소보다 많이 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상준은 서서히 매형 이야기를 시작하자 수연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바뻐도 그렇지, 매형이 너무 한거 아냐?"
한참을 듣던 수연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니 매형.......딴...살림....차렸어.."
"뭐? 뭐라고? 정.....정말..이야?"
설마 설마했는데 그냥 한순간 바람도 아니고 딴 살림이라니...
상준은 기가 막혔다.
"아니, 그걸 알면서 그래 가만히 있는다말야?"
상준은 심성 고운 누나가 그때만큼 아둔해 보일 때가 없었다.
수연은 이제 더 이상 숨길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조용히 말 문을 열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나, 그 사람 이해 해"
상준은 수연에게 석녀라는 말을 듣자 더욱 큰 충격이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떠나 남자와 몸을 섞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누나.
그래서 스스로 죄책감에 빠져 있고 시댁식구에게 당당하지 못하는 수연.
상준은 큰 눈에서 흐르는 수연의 눈물을 닦아 줄 생각도 못하고 집을 나섰다.
혼란스러웠다. 한 순간 의붓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당해 그렇게 고생하더니.
이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받으며 잘 사나 했던 누나가 아직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야속했다.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편의점에서캔 맥주를 사서 걸으면서 마시다 술이 떨어지면 또 편의점으로 들어 갔다.
집에 들어 가고 싶지가 않았다. 고통스런 누나를 쳐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준이 도착한 곳은 상미 집이었다.
어쩌면 살을 섞어서가 아니라 중연 여인의 푸근함을 기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은정의 동생이자 상미의 막내 딸인 은지는 이제 대학 2학년 생이다.
은지도 상준을 몇 번 보아 낯이 익었지만 그래도 술이 취해 자신의 집으로 들어 온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은지는 그런 상준을 잠자리까지 봐주는 엄마가 평소와는 달리 참 따듯한 사람이구나 하고만 생각했다.
은지는 아침 일찍 영어 학원에 가려고 식탁으로 갔다.
간단하게 빵 하나만 먹고 나가려는 생각이엇는데 얼핏 보니 상준의 방 문이 열려 있었다.
어제 밤 상준은 술이 취해 화장실 갔다가 문을 닫지도 못하고 잠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준은 열이 나는데다가 남의 집인줄도 모르고 다 벗고 잠이 든 것이다.
"어머, 어머!!"
새벽 바람에 추울까 문이라도 닫아주려고 다가선 은지는 깜짝 놀랐다.
상준은 어제 먹은 술 때문에 방광이 꽉 차 있는데다 습관처럼 새벽에 발기를 하는 바람에 그의 물건은 어느 때 보다도 팽창해 있었다.
포르노를 보았던 은지. 남자 친구는 있어도 아직 깊은 관계를 가지지 않은 은지는 처음 본 남자의 실물에 너무 놀라고 말았다.
"하악...저럴...수가.."
처음엔 너무 징그러웠지만 보면 볼 수록 대단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당당함이 보기 좋았다.
은지는 대문을 나섰지만 아직도 가슴이 뛰는 것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목이 말라 잠이 깬 상준은 깜짝 놀랐다.
낯선 방에 자신이 완전히 다 벗은 상태로 잠이 든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거실로 나와서야 상미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준은 상미를 부를까 하다 면목도 없어 조용히 빠져 나왔다.

한편 상준은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상준은 누나가 아직 자겠지 하는 마음에 거실로 들어 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수연이 어제 그 상태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술병이며 술잔도 그대로였다.
수연은 상준을 보자 일어서더니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이내 안방으로 들어 갔다.
상준이 따라 들어가자 수연은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상준은 누나가 가여워 가볍게 어깨를 잡고 안았다.
"난 니가 나간 뒤...안들어 오면, 영영 내 곁을 떠나면 어쩌나 밤새 무서웠어...."
수연은 밤새 더 수척해졌는지 가는 어깨가 더 가벼워 보였다.
"미안해 누나. 더 이상 속 안썩일게, 그리고 내가 떠 나긴 어딜 떠나"
"나, 지켜줄꺼지? 그렇지?"
상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연을 침대에 뉘였다.
"한 숨 푹자고 일어나 누나"
상준은 수연의 가슴께까지 시트를 씌워 주었다.
그리고 일어서 나오기 전에 수연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잔잔하지만 뜨거운 입김이 이마를 통해 수연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수연은 그 입맞춤이 무슨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까무룩 잠이 들었다.

수연은 그렇게 편안하고 달콤하게 잔 기억이 없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했다.
전날 자지 못해 피곤하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상준이 자신의 이마에 달콤한 입맞춤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상준을 불렀다.
"잠시 누나 방에 좀 들어 올래?"
"응, 나도 이제 막 자려고 하던 참이야..."
"저기 있잖아....."
"뭔데"
"............"
"아이 빨리 말해 봐. 누구 보다 누나를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이해하는 사람이잖아"
"그래, 알았어....저기....상준이 나가기 전에.....어제처럼.....누나....이마에...."
"알았다. 누나 이마에 입맞춰 달라고?"
수연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옛날엔 엄마 손이 약손이었는데 이젠 내 입이 약손이네? 히히히. 대신에..."
"대신에 뭐?"
"아침에 누나가 나 깨울 때, 누나도 나한테 해줘. 응?"
"피. 그래 알았어"
상준은 베게를 베고 누운 수연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반듯한 이마가 참 고왔다.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이쁜 우리 누나 잘 자요"
그 소리와 함께 상준이 수연의 이마에 애정이 담긴 긴 입맞춤을 해 주었다.
수연은 따듯함이 퍼지며 달콤하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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