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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뫼비우스 - 23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5 00:06 1,408회 0건
악의 뫼비우스 23부 프로잭트 T

23. 프로젝트 T

황 경감, 아니 황 서장은 T시 외곽 하얀집의 응접실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요일 밤이 지나갔는데도 딸은 돌아오지 않고 휴대폰조차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이다. 짜증이 섞인 말투지만 딸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음은 분명하다.
"너희 새끼들은 뭣들 하는 거야. 이럴려고 내가 너희 놈들 키웠나, 엉?"
목소리의 각을 더 세우며 듣기 싫은 과거를 덧붙인다.
"니 놈들을 그 곳에서 빼내줄 땐 이럴 때 쓰려고 한 거지..... 청풍,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황 앞에 서있는 세 명 중 왼쪽이다. 가장 신임을 받고 있어 직접, 지금은 부소장으로 불리는 있는 강 수진을 바로 옆에서 모시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이시스와 동거 비슷하게 함께 살고 있기도 한 그는 소장의 이렇게 화난 모습을 처음 봤다.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은 그를 보고 존경심을 가진 풍이라 난감했다. 옆의 쌍비와 당초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별일 아닌 듯 해서........경호를 마다하고......친구들하고 있고 싶다고 해서....."
쌍비의 대답을 끓으며 황은 그대로 주먹을 날린다. "어쿠!!" 얼굴을 부여잡는 쌍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당장 나가서 찾아 와. 내가 경찰인데 경찰한테 맡겨둘 수 있어? 밑에 애들 다 풀어서 오늘 해지기 전까지 잡아 와. 갈만한데 알지?"
"마지막으로 계시던 곳이 "아피스클럽"이었습니다. 거기서 친구들하고 나갔다고 합니다. 아 또 있습니다. 괜찮아 보인 청년이 한 명 앞서갔다고 합니다"
쌍비의 말을 끓으며 황은 단호하게 지시한다.
"그 놈을 찾아. 알았어. 이 시를 다 뒤져서라도.......이상."

황이 화를 낸 그 시간, 바로 옆방엔 강 수진이 인너서클과 함께 있었다. 남편인 황 서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로 한 날이 공교롭게도 오늘이다. 자신은 뒤로 빠지고 직접 인너서클을 이끌겠다는 남편이 멤버를 전부 호출한 한 것이다.
"부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마 큰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그 만한 나이에는 가끔 친구들하고 어디론가 가고 싶어하고 그럽니다. 곧 돌아올 것입니다."
아피스 코엔터의 주사장이 놓치지 않고 위로의 말을 꺼내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글쎄요........흑!"
그녀는 슬픔이 솟구치자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애미 맘을 이렇게 모르고....... 사창가를 운영하면서도 눈물 한번 흘리지 않은 강 수진이었다.
"근데 강 여사님. 그 청년 있잖습니까? 외모나 분위기가........"
"뭔데요? 말씀하세요. 알고 있나요?"
유 승겸은 머뭇했다. 사람들 있는데서 처와 딸년들이 당한 걸 말하기가 난처했기 때문이다. 황 소장에겐 바로 그 날 말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소식이 없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온 처는 말수가 줄었다. 뿐만 아니라 딸들은 병원에 다녀 온 후 방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처음엔 상처가 커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묘한 느낌을 주었다.
"저.....그게......흐음. 그 남자 인상착의가 꼭 제 식구가 말한 남자 같아서요. 잘 생기고....덩치가 좋고.......이름을 "찬"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만.......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고 했는데 그 점이 좀 다릅니다만...... 여하튼 그 찬이란 남자를 찾아보면 어떻겠습니까?"
이름을 알아낸 데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겨우겨우 윽박지르고 달래서 알아낸 이름이 찬이다. 또 한 명의 이름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찬이라고요?"
그 때 황의 뒤를 따라 들어 온 청풍이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묻는다.
"찬이라면...... 혹시 그 때 도망치던 그 놈 아닌가 싶은데요"
"뭐라구........그럼 그 때 앙갚음을 하려고 그랬단 말이야. 어떻게 알아서....?"
강 수진의 부정적인 말. 그러나 역시 황은 경찰이었다. 감이 왔다.
"니 들 셋은 빨리 흩어져 그 놈을 찾아.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부소장은"
멤버 모임엔 반드시 직함을 부르곤 했다. 강 수진을 보며
"잠시 쉬어. 금방 찾을 수 있을 꺼야. 그 녀석 사춘긴가 보지 뭐."
그러나 강 수진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청풍의 말이 끝나면서부터 가시지 않았다. 검정 투피스 차림의 강은 널따란 응접실을 나와 청풍의 뒤를 찾으며 허둥댄다. 입이 무거운 청풍이지만 혹시라도 자기가 했던 그 간의 일이 퍼질까 두려웠다. 찬의 건도 그렇고 "이시스" 건도 그렇고 얼마 전 모란회 건도 찝찔했다. 남편을 위해서, 남편의 야망을 위해 나서서 했지만 전부 다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오면서도 그 속 깊이를 알 수 없는 게 남편인 황이었다. 2년 전부터 <아피스 당>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리고 먼저 T시의 시장이 되고 다음엔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뭔가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왜 <아피스>라고 물었더니
"아피스는 그저 이집트의 신이 아니야. 아피스는 황소의 신이야. 인도에서 신수로 모시는 소, 그 중에서도 황소야말로 이 나라가 진정 필요한 거야. 열심히 일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 <아피스> 아래서 그래, 고대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를 열어 이 나라를 처음 열었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멀리 떨어진 Y시에서의 사창가였고 지금은 <아피스>와 <미래>계열의 여러 기업체를 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청풍은 깨면서
"소장님, 어디 가십니까?"
"아? 아..... 청풍..... 그냥....... 혹시 그이에게 말 안 했겠지?"
"무슨 말씀을...... 제 임무가 부소장님을 지켜드리는 건데.......... 지금 따님을 찾으러 가는 길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찬이라는 놈은 제가 잘 아니까요? 혹시........ 그 때 그 일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맘, 놓으십시오. 이번엔 확실히 그어 버릴 테니까요"
강 수진. 겉은 차갑기만 했지만 그녀 역시 속은 뜨거웠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욕구는 쌓이고 그 욕구는 남편의 성공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풀곤 했던 것이다.
청풍은 강의 앞을 떠나면서 이시스가 문득 떠올랐다. 오늘 이 자리엔 참석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정식 멤버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리라. 이시스라는 여자 아니 김 순미를 만나게 된 것도 기실 강 수진 때문이 아니었던가. 강이 남편의 출세를 위해 마취강도를 잡아다가 모란회를 초청, 마음껏 재미를 보게 하고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했었는데, 그 때 엉겁결에 잡혀온 여자들 중 한 명이 "김 순미"였던 것이다. 세상 참....... 씁쓸한 웃음이다.

"시작합시다. 다들 편히 앉아요. 우선 그 간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부턴 그 고생이 빛을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프로젝트 T. 이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더 나아가 이웃들과 우리 T시, 크게는 이 나라를 위해 섭니다. 물론 아주 조금, 선의의 피해자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피해라 기 보담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범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우린 그 범죄에 조금 더 플러스 알파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최근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 아시죠? 살인은 아니지만 살인 보다 다 무섭고 잔인하게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프로젝트 T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1단계 사회 불안과 여론 조성, 다음 2단계입니다. 2단계는 행정 조치- 경찰, 군사 등의 치안력 투입과 T시 장악, 마지막 3단계는 새로운 정당 - 아피스 출범과 시장 선출까지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 잘 아실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힘이 모이면 충분합니다. 마침 이 자리에 유 회장께서도 참석을 해주셨는데.......... 잘 아시겠지만 우리에겐 땅이 있습니다. 그동안 확보해온 미래건설의 토지와 임야만 풀어도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몇 백 억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일단 다음이고 우선 여러분들이 확보한 자금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아피스 상사의 제 아들이 또 한 몫 할겁니다. 여러분들은 그저 묵묵히 주어진 업무만 충실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오늘 이 자리엔 참석하지 않았지만 언론과 방송은 제가 따로 처리하겠습니다. 기간은 3개월 이내 끝내야 합니다. 11월이면 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장이 되는 그 순간부터 여러분들은 영원한 영광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상입니다."
단도직입적인 어투로 말을 마치자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단아하지만 단단한 표정의 얼굴은 위압적이다. 단순한 몽상가는 아니라고 본다.

태식과 찬이 그 한옥을 떠난 후 3일째 되던 날. 거의 다 죽어가고 있는 여섯 명의 남녀 청소년이 발견되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발가벗겨진 몸 여기저기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지경으로 엉망이었다.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모두 다 생식기가 엉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은 아예 칼로 잘려 있었다. 세 명중 한 명은 끝내 발견된 지 몇 시간만에 과다출혈로 죽었고 남은 둘 중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은 아랫도리의 상처가 악화되어 그 날을 못 넘기고 죽었다. 부모들의 참담함은 너무 컸지만 누가 왜 그랬는지는 다음 날 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동부서 이 과장은 여섯 명의 배에 날카롭게 긁힌 상처 , ∞ 이 무엇인지 알고서 서둘러 사진을 들고 버들여고를 찾았다. 그 때 그 과장은
"아....! 이 학생, 이 학생은 아주 유명하죠. 아버지가 거 뭐시냐....경찰서장이라고 하던가 아마 그럴 꺼요. 그래서 이 학생도 아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다녀었죠. 근데.......쯧쯧..."
사진을 보자마자 내 쏟아낸 말이다.
이 과장은 혼란스러웠지만 하나 하나 정리를 해 갔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과의 범죄 동기나 관련성, 학교 내 문제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한 범죄스타일. 그리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한 소녀의 죽음. 수사과장의 이런 혼란은 강 인구 기자를 만나면서 한 줄로 세워졌다. 그 때 소녀의 사체를 신고하면서부터 가까워진 둘은 강 인구가 T일보에 복직한 이후에도 자주 만나 피로감을 털곤 했던 것이다.

"제가 볼 땐 "복수극"인데요. 처음 죽은 소녀가 누구라고 했죠? 아.... 미영이......그 소녀가 죽은 이후 1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않아요? 또 이번 피해자들이 같은 학교 친구들이고. 그러나 같은 피해자는 아니죠. 미영이란 학생은 죽었지만 애들은 죽지는 않았습니다. 즉, 미영을 죽인 자들은 처음부터 죽이려고 했었지만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고. 그리고 그 죽은 학생은 심하게 성폭행 당했다고 했죠? 이번에 당한 애들 역시 성폭행을 당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기를, 악의 씨를 뽑아내듯 훼손시켰고....."
"그럼 교사들은.........왜 그랬을까?"
"잠깐 만이요. 정리를 다시 해보자고요. 그 교사들 역시 성기가 잘리고 가족들도 성폭행을 당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부홉니다. 미영은 없고 나머지는 다 있고. 그리고 그 교사들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더군요. 반반하거나 만만한 여학생을 유혹해선 몸을 유린하곤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고요. 미영의 제적이 가출 때문이었고. 가출의 원인은 가족보다 학교가 문제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거 하나. 떠도는 소문이 유 회장 가족 역시 .......그랬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글쎄요........ 기자에게 입열면 안 되는데......사실입니다."
"맞군요. 그 사람들은 그 이상한 부호가 없겠죠? 물론. 그 피해자 중 한 명도 버들여고 다니고....... 이 사건은 버들여고에서 일어난 미영에 대한 랑의 집단린치와 파렴치한 교사들의 여학생 유린을 미영의 부모나 아니면 남자친구가 저지른 복수극이 아닐까 합니다."
단호하게 말을 마치자 수사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견과도 맞다는 듯
"정말 그럴까요? 그러고 보니 그럴 듯도 싶네......"
그러나 실제 강 기자는 그 내용을 기사화하지 못했다. 데스크에서 가차없이 잘라버린 것이다. 이유는 추측이야, 라는 단 한마디였다. 그러나 강 기자는 피해자의 연결고리에서 이미 냄새를 맡았다.

때 이른 여름장마는 T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갖가지 사건으로 얼룩진 도시를 씻어 내버리려는 듯 억세게 내렸다. 총기 강도, 마취 강도 그리고 이상한 부호 사건까지 장대비 속에 파묻힌 듯 했다. 사람들은 눈앞에 내린 비만 생각하며 추억에 잠기거나 농사 걱정을 하거나 했지만 비가 잠시 그친 아침,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본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렸다. 살인사건의 발생이었다. 그것도 엽기적인 사건으로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부서 이 과장은 밤을 꼬박 샜다. "찬"이라는 사내를 찾아내려고 혈안이었지만 끝내 못 찾고 말았다. 소재지에 가도 집 나간 지 오래, 라는 대답만 들었고 가까이 지낸 친구들을 찾아봐도 파악할 수 없었다. 빗속을 다니며 동분서주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지친 몸을 밤늦게 쉬려고 자리에 앉았다가 사체발견, 보고를 접하자마자 현장으로 출근했다. 비가 잠시 멈춘 아침 6시 출근길에 한 직장인이 사체를 발견하고 신고한 것이다. 20대 여성으로 보인 발가벗겨진 사체는 참혹했다. 유방은 도려내어지고 아랫도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핏덩어리가 빗물에 씻겨 내려 그 부분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날카로운, 메스 같은 걸로 도려내어진 부분은 마치 처음부터 뚫려있는 듯 했다. 비위가 약한 한 순경은 입을 가리며 토할 정도다.
"이럴 수가....... 야수로군. 인간이 한 짓이라고 할 순 없어. 짐승이 아니면.......근데.....저 표식은......."
하얀 아랫배 위에 바로 그 부호가 칼 같은 걸로 그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새벽 6시쯤 20대 여성이 살해되어 골목길에 그대로 유기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며칠 전에 발생한 연쇄성폭행범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나섰습니다. .....>
태식과 찬은 뉴스를 보면서 서로 얼굴을 봤다. 외곽의 농가를 떠나 제3의 장소로 몸을 피하고 있다 TV뉴스를 본 것이다. 뭔가 이상한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은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 애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비로 습기찬 방안이 갑자기 축축해져옴을 느꼈다. 벌레가 기어 나와 입으로 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온 것 같았다. 태식은 매일 술을 벗삼았다.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찬을 벌건 눈으로 보자
"나, 아니에요. 어떻게 저럴 수가........"

사건은 골목길을 시작으로 계속 발생했다. 동부에서 시작한 살인사건은 다음 서부로 옮겨졌다. 빗속의 살인마로 불리운 범인들은 하루걸러 강간살인을 일삼았다. 20대 직장여성의 난자당한 사체가 발생한 지 이틀, 이번에는 한 다가구주택에서 피냄새가 진동했다. 20대 후반의 주부와 그 친구가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방문을 열자 비릿한 피냄새가 파리떼와 함께 수사관의 얼굴을 덮었다. 안방엔 얇은 이불이 깔려있고 그 이불 위에 벌거벗은 두 나신이 다리를 활짝 벌리고 누워있거나 가슴을 대고 누워 있었다. 결혼 한 지 한 달도 안된 신부와 그 친구로 밝혀졌지만 살해 이유는 없었다. 무차별 살인. 빗속의 살인마는 이렇게 무차별이었다. 벽에 피로 쓰여진 그 이상한 부호만이 동일 범의 소행이란 걸 알려주고 있다.
"야 이거 너무 심한데.......... 푸줏간 주인도 이렇겐 못하겠다. 정육점이지 이게...."
괄괄한 수사요원 중 한 명이 엎어진 여자를 고무장갑 낀 손으로 반드시 눕히며 찡그리자 이 과장 역시 악취에 코를 감싸며
"이 여잔 더 심한데 그래. 아예 껍질을 벗겨버리지..... 쯧쯧......"
하얀 젖가슴이 있어야 할 자리엔 붉은 빛 잘려진 가슴의 살이 보이고 있다. 젖가슴은 여자들의 두 손안에 잡혀져 있고, 입안에다는 두 개의 분홍색 유두를 잘라 내 집어넣었다. 마치 포도를 먹은 듯...... 배꼽 주위로 원을 그리듯 칼로 둥글게 껍질을 벗겨내려다 그만 둔 자국이 보인다. 아랫배의 검은 음모를 따라 있어야 할 여성기는 흔적조차 없다. 예리한 칼로 도려내어졌다. 골목길 사체처럼 어디에서고 그 국부를 찾을 수 없었다. 국부만이 아니라 항문까지 이어진 금을 따라 솜씨 좋게 베어냈다. 골목길과는 달리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지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부드러운 살갗을 칼로 주욱 그은 자국이 보였다. 죽이기 전에 그었는지 종아리와 발목 주위엔 칼자국이 드문드문 보인다. 얼굴은 손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뜬 얼굴은 죽기 전 고통이 얼마나 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산채로 살을 도려낸다면 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범인들은 두 여자를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유린한 것이 분명했다. 목과 어깨 엉덩이 곳곳에 이빨로 깨문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턱 아래로 남자의 정액이 흘러내리다 말라 붙어있는 것도 보인다. 그러나 빗속 살인마는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너무 약해. 그렇게 해서 되겠어. 더 강하게 하라구. 그리고 불은 어떻게 되었어?"
"그건...... 요즘 비가 계속 내려서......."
"이 자식 뭐라는 거야. 이 놈아 넌 빗속에서 담배 안 피어, 응. 알아서 하라구...."
" 네, 네, 알았습니다."
"당초"는 전화를 내려놓으며 검은 셔츠차림의 강해 보인 다섯을 부른다. 이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쓰려고 밀항선에 태워 온 것이다. 혹시 붙잡히더라도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끓기로 했다. 대신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겐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젠 방화까지 해야한다고 하자 당연한 표정이다. 무슨 일이든 하겠다, 다 죽이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 이렇게까지 다짐한 친구도 있다.

새벽에 그친 비로 아스팔트가 검게 보인 오전. 김영란은 동생을 먼저 학교에 보내려고 아침을 막 끝낸 시간이었다. 동생은 올해 시골에서 올라와 이곳 대학교를 진학, 한참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은 곧 졸업이라 수업이 많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보단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편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대충 식탁을 치우는 데 갑작스레 문이 열리고 먼저 세 남자가 들어서고 이어서 두 명이 들어섰다. 놀란 자매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남자의 억센 손이 더 빨랐다. 언니를 후려친 후 곧바로 등교 차림으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동생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흐으으....." 배를 안고 그 자리에 쓰러지는 언니와 동생. 21살 영란은 쓰러지면서도 동생을 안으려고 하지만 남자는 벌써 그녀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방안으로 쑤셔 넣어버린다. 남자 한 명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한번 복부를 내려친다. "끄으으....." 허파에 남은 마지막 숨을 내쉬며 정신을 잃는다. 열아홉 동생 "영주"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채 질질 끌어 안방으로 던져버린다. 가물거린 의식으로 남자들의 두런대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빨리 빨리 하라우......왜 이리 늦네......"
"알갔어. 해치운 것 빠르니까 재촉하지 마라우"
침대로 영란을 던진 검은 상하의 남자는 미리 준비한 포승줄을 꺼내 손과 발을 활짝 벌려 침대 다리에 묶는다. 익숙한 솜씨다. 편한 차림의 그녀는 손이 위로 올려지고 다리가 벌려지자 티셔츠는 아랫배를 다 보이고 반바지는 말아 올려져 희멀건 허벅지를 음영 짙은 곳까지 보여준다. 아름다운 몸매다. 탄력 있는 몸은 남자의 성욕을 끝없이 자극할 것 같다. 매끈한 다리 역시 남자들의 바지 속을 부풀리게 하긴 충분했다. 자그마한 남자가 바지춤에서 날이 시퍼런 군용 나이프를 꺼내곤 셔츠 아래에 대고 위로 죽 긋는다. "찌이익" 천이 갈라지며 탐스런 노브라의 유방이 이글거린 남자들의 눈길에 유린된다. 반바지 역시 옆으로 칼을 넣어 아래로 "죽" 그어 내리자 꽃무늬 팬티가 따뜻한 둔덕을 안은 채 드러나고 역시 팬티를 찢어발기자 분홍색 귀여운 음순이 검은 털 아래부터 엉덩이 금을 따라 피어난다. 성숙한 여자의 진한 페로몬 향기가 느껴진다.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주물럭거리던 하나가 속옷 채 벗어 던진다. 불뚝 선 음경. 핏줄이 붉다. 몸의 모든 피가 모인 듯하다. 한 손으로 자신의 음경을 잡은 채 아름답게 갈라진 틈새에 혀를 넣어 여자를 즐긴다. 윗 껍질을 이빨로 걷어내자 거기엔 조그마한 클리토리스가 붉은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부분을 물 끊긴 수도꼭지를 빨 듯 집중적으로 빨아댄다. 점점 더 붉은 모습이 되며 커진다. 8천여 개의 신경섬유가 모인 크리토리스는 남자의 자극에 부풀어오른다. 영란은 의식을 잃은 중에도 등골을 타고 전해오는 자극에 입을 벌리며 연한 신음을 토한다. 동생은 책상 의자에 엎드린 자세로 엉덩이를 높이 들고 사지가 묶여있다 어수선한 남자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눈에 들어 온 것은 언니의 벌려진 다리다. 다리 한가운데 검은 숲에 쌓인 곳은 지금 한 남자의 강한 혀와 입술에 유린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힘을 주고 다리를 모은다.
"이거 보라우. 흥분하니까 커지쟎네. 이젠 찔러 넣기만 하면 되네. 누가 먼저네?"
"나부터 하자우요. 못참갔어"
칼을 든 남자다. 상의까지 찢어발기자 하얀 젖무덤이 드러난다. 젊은 탄력있는 유방은 누워있어도 모양이 일그러지지 않는다. 분홍 젖꼭지와 유륜을 칼끝으로 이리저리 장난치다가 성난 물건을 흥분인지 공포인지 바르르 떨고 있는 질 속으로 깊이.....깊이 박는다.
"그으으으......" 김 빠진 소리. 아니다 거대한 음경이 자궁까지 밀고 들어오자 아랫배가 불룩해지며 몸 안의 모든 공기를 밀어젖힌 것이다. 다리를 모으려하지만 안된다. 상체를 피하려하지만 그것도 안된다. 그때서야 영란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른다. 그것도 비명을 끓으며 다른 남자의 음경이 입안에 박히자 그렁그렁 숨죽인 소리만 낸다. 억센 남자의 손아귀는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양옆을 누른 손아귀는 그녀의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마치 동그란 공처럼 만든 입을 여자의 구멍으로 생각한 듯 침으로 번들거리는 음경을 넣다 뺐다 한 거다. 세 명의 남자가 돌아가면서 입과 아랫도리를 유린할 때 남은 둘도 바빴다. 따뜻한 체온이 있을 때 즐기려는 듯 의자에 얼굴을 들고 묶인 동생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아수라 광경에 머리가 아득해진 동생은 저항의 기력도 잃은 채 남자들에게 몸을 맡긴다. 먼저 얼굴 앞에서 바지를 내린 남자를 입에 받아들인다. 이빨로 물어뜯어야 된다는 생각은 나중에 그랬으면 한 상상일 뿐이다.
"빨아라우. 개새끼가 주인 손을 핥듯......"
"난 여기를 빨아주갔?quot;
엉덩이의 볼륨 좋은 갈래를 잡고 양옆으로 펼친다. 큰 엉덩이다. 이렇게 큰 엉덩이에 깔려죽고 싶어한 남자처럼 코와 입을 들여대고 여자의 진한 향을 맛본다. 작은 별모양의 구멍. 주름을 걷으며 혀를 말아넣자 축축하며 뜨거운 느낌이다. 소름 돋은 엉덩이. "싫어......." 그러나 남자의 혀는 동물의 촉수처럼 파고든다.
"이 애미나인 아주 향기가 좋구만....... 맛도 좋갔어"
"야, 빨리 꽂으라우...."
"알았어야....."
"으으으악..." 입안의 물컹한 물건을 뱉어내며 내지른 비명.
"야, 시끄럽다야. 조용히 시키라우..."
"이 애미나인 안되갔어. 죽고 싶네?"
가냘픈 목을 휘어잡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조금조금 더, 더.
"야 천당이 따로 없다야. 꽉 물어주는 게 싸겠구만 그래"
들이쉬는 공기가 더 이상 없어지자 동생은 크게 뜬 눈과 푸른 얼굴이 되어 죽어갔다. 영란은 쉼 없이 박아댄 남자들의 무기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어갔다.
"불 질러라우. 다 태워버리라우......."
출근을 마친 한 주택가의 반지하방은 검은 연기와 빨간 불길이 솟아났다.

"잘 했어. 마음에 들어. 더 강하게.....알지?"
"네, 알았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황은 지긋이 눈을 감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신문과 방송에도 이미 지시를 해놨다. 나발을 불어, 사람들이 이런 도시에서는 살기 어렵다는 걸 똑똑히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다음은 계획대로 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한 달간 신문과 방송에선 연일 대서특필이다. 경찰은 뭐 하는 가? 치안은 어디 갔는가? 공직자들이 썩었다. 선량한 시민만 죽어가야 하는가? 자극적인 레이아웃이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황의 이런 생각을 멈추게 하며 또 하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있었다. 딸이다. 랑은 그 날 이후 목숨은 건졌지만 세 살 배기 어린애만도 못했다. 아무런 지적능력이 없었다. 기장 기본적인 먹고 자는 일 뿐이었다. 배변도 주위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예쁜 10대의 소녀였지만 움직이거나 말을 걸면 동물 이하의 모습이었다. 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놈을 잡아 껍질째 벗기고 소금을 뿌려 사거리에 매달고 싶을 뿐이었다. 잡으러 간 쌍비, 청풍은 소식도 없다. "죽일 놈들........."
빗속의 살인마가 날뛰고 있는 무렵. 갈수록 수법이 잔인해지고 방화까지 가해지자 경찰은 물론 신문사도 바빴다. 근 한 달간 사건 현장을 경찰과 같이 뛰어다닌 강 인구는 이젠 웬만한 사체는 우습게 보였다. 처음엔 혼자 잇는 여자를 대상으로 하다 점점 자매나 친구들을 대상으로 집단 폭행과 방화를 일삼던 범인들은 대상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빗줄기만큼이나 많은 선혈을 뿌린 범인들이 단독범이 아닌 집단범행으로만 파악될 뿐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었다. 강 기자 역시 이 과장을 만나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다만 그 이상한 부호가 부호만큼 이상하다는 것은 둘의 견해가 같았다.
"무한대라는 표식. 처음 이 표식이 나타날 땐 살인사건은 아니었죠? 즉, 인명을 해하거나 하진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 목숨 알기를 개, 돼지보다 못하게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그 사건과 이번 사건은 전혀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범인들은 예전 범행을 모방했거나 아니면 범행 자체를 그때의 범인들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도 일리는 있지만 경찰 입장에선 동일선상에 두고 수사를 하고 잇습니다. 어차피 그때의 범인들도 잡아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두 사건의 연결고리는 없다고 봅니다. 저번 사건은 강 기자의 말대로 딸에 대한 복수극 같습니다. 학교에 가서 겁을 좀 주며 수사를 한 결과 두 교사는 미영이란 여학생에게 성적 폭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랑이나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미영과 친구 유 은미 학생들에게 여학생에겐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주고 그것도 모자라 남자들을 시켜 윤간하게 하고......... 참 말세는 말셉니다. 미영이란 여학생의 부모를 찾았지만 미영이 죽은 후로는 소식이 없다고 합니다. 어머니 쪽 역시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우선 미영의 아버지 - 김태식을 찾아야 자세한 사건 경위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은 수첩에 김 태식이란 이름과 랑, 미영, 은미의 이름을 적었다. 나란히 적어놓고 보니 서로 묘한 연관성이 있었다. 랑의 어머니 강 수진은 미래연구소 소장이며 지금은 부소장인 그녀였고, 랑의 아버진 미래건설 주주, 은미의 아버지인 유승겸은 신화건설 회장이지만 미래건설의 하수인. 랑과 미영, 은미는 서로 동기지만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성적폭행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집안에만 박혀있고 랑은 그야말로 식물인간처럼 되었고.......그렇다면 김 태식이란 사람과 유회장이란 사람은....? 뭔가 고리가 있을 것이다.

그 무렵 뉴스로 살인사건을 접한 태식은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분노가 사라지고 나면 후회가 찾아오는 것인가 자신이 했던 범행이 빗속의 살인마에 겹쳐 떠올랐다. 눅눅한 이불 속에 몸을 묻고 있는 그는 마치 벌레 먹은 배추껍데기였다. 무성히 자란 턱수염과 굉한 눈은 그를 더 초라하게 보이게 했다. 아내를 찾는 일도 포기한 상태였다. 딸 무덤에 다녀온 한 달 전이 마지막 외출이었다. 포기한 삶은 죽음이 일찍 찾아온다. 언뜻 비추이는 햇살에 용기를 내어보지만 죄책감이 다시 주저앉히곤 했다. 찬은 오늘도 아침부터 나간 것 같다. 어디로 간지 말하지 않은 채 아침마다 나갔다 오후 늦게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젊은 몸은 가만히 있는 게 힘든가 보다. 지나온 세월이 스쳐간다. 하나 씩 하나 씩 정지시켜 음미한다. 요즘의 그가 하는 일이다.
찬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시 외곽에 있는 종합병원 앞의 등나무 벤치에 앉아있다. 여기에 앉으면 3층 하얀 커튼이 쳐진 유리문이 보이고 그 유리창 안으로 해맑은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가 빙그레 웃는 소녀는 마치 자신을 쳐다보고 웃는 것 같아 찬은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목 아래로 반드시 자른 머릿결이 단아하게 보인 소녀는 랑이다. 그가 다시 사랑에 빠진 소녀. 미영의 웃는 얼굴에 자꾸 겹쳐진 얼굴은 그 소녀였다. 투명한 눈, 커다란 눈망울, 맑은 눈물, 뽀얀 보조개까지 미영과 너무나도 닮았다.
"난 너를 영원히 잊지 않는다. 약속. 너의 땀구멍 하나까지........네 영혼의 줄기 하나라도...."
"오빠, 나도 오빠를 사랑해. 영원히......"
소녀의 작은 젖무덤을 붕어가 수초를 간질이듯 입술로 물면서 그와 미영이 나눈 말이다. 둘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이지만 그때는 우주처럼 넓었다. 이마가 마젤란 운하라면 예쁘게 뻗은 귀여운 다리는 안드로메다 은하계였다. 그 가운데 참새 같은 아랫배는 생명체를 모금은 지구였다. 찬은 미영의 아랫배에 얼굴을 올려놓고 생명의 소리를 듣곤 했던 거다. 지금 찬은 그 생명의 소리를 유리창 안의 저 소녀에게서 듣고 있었다. 어 또 나를 보고 웃네, 그는 같이 웃음을 주었다. 점심을 굶은 배가 허기진 신호를 보낼 때야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은 유리창 안의 소녀도 몰랐다. 찬의 머리 속에 랑의 미소를 가득 채운 그 순간 강한 남자의 팔이 어깨를 잡아끌었고 그 뒤론 의식을 잃었다.

"또 사건입니다. 함께 가실래요? 어차피 기사 쓰려면......"
"그러시죠. 이번엔 어딥니까?"
"서부서 관할인데.......두건이 동시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현장은 벌써 서부서 형사들이 들쑤신 자국이 역력하다. 여기저기 핏자국이 묻어있는 신발자국을 보고 이과장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야 이 새끼들아. 이게 뭐야. 이래가지고 어떻게 족흔을 뜨겠나, 엉?"
"벌써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몸집이 큰 형사가 나서며 과장을 이끌자 화를 삭이며 거실을 들어선다. 비위가 약한 강 기자가 먼저 입을 막고 고개를 돌린다.
"야 이거 심하구만......형사질 수 십 년이지만.........이럴 수가 있나."
"피해자는 고부간입니다. 쉰 두 살 시어머니와 서른 살 며느리. 대낮에 당했습니다. 죽기 전에 물론 심한 강간을 당했고......"
"저래가지고 알 수 있겠어?"
나이 들어 보인 몸이 시어머니 같고 통통한 몸이 며느리로 보이지만 그렇다는 것이지 형체를 자세히 보기 전에는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두 여자는 서로 몸을 거꾸로 하고 묶여 있는데 젊은 여자가 위에 엎어져 있다. 발목엔 묵인 자국은 없지만 강한 손자국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한 놈이 강간할 때 남은 놈들이 발목을 잡아 벌렸던 것 같다. 종아리에 남은 이빨자국은 허벅지를 따라 올라 엉덩이와 등까지 붉은 반점을 남겼다. 특히 엉덩이 쪽은 심하게 깨문 탓인지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간 틈새론 허연 정액이 방울져 뭉쳐있다. 계간을 한 것이리라. 변태짓이거나 아니면 여자에게 고통을 주려고 한 성행위다. 거기뿐이 아니다. 뒤로 보인 음부에도 정액이 뭉쳐있고 더 놀란 것은 거기에 박혀 있는 군용 나이프였다. 손잡이는 시어머니의 입안에 물려있다. 먼저 누인 채로 칼을 물리고 그 위에 며느리를 얹고 발로 짓뭉갠 것일 것이다. 잔인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 과장은 며느리의 얼굴 쪽을 살펴본다. 얼굴이 엉망이다. 주먹으로 으깨지도록 맞은 듯 턱이 부서지고 부러진 이빨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보인다. 입가에는 피와 정액이 묻어있다. 역시 유방은 잘려져 있고 배를 몸을 따라 갈랐다. 피냄새는 거기서 계속 난 것이다. 누워있는 시어머니 역시 음부에 칼이 꼽혀 있는데 이 칼은 부엌용 칼이다. 부엌에 있는 하얀 냉장고에 그 이상한 부호를 피로 그려 놓았다. 그리고 잘려진 유방은 냉장고 안의 냉장실에 놓여져 있다. 유두는 이빨로 깨물어 먹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서부서 관할의 다른 사건 장소도 마찬가지였다. 부녀가 함께 당했는데 딸은 열아홉이었다.
아버지 배 위에 엎어진 채 죽었는데 범인들이 강간을 한 후 죽인 다음 그렇게 둔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성기는 잘려진 채 딸의 입안에 넣어져 있다. 딸의 사체는 심하게 훼손되어 마치 야생동물에게 공격을 당한 것은 아닌가 판단될 정도다.
"이건 인간이 했다고는......... 도저히 눈으로 볼 순 없군"
"근데 과장님.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원한 관계라면 모르지만 지금까지 범행을 보면 이렇다할 원한관계는 없었지 않습니까? 고부살인사건이나 이 부녀 살인사건이나 딱히 원한을 살만한 이유가 없는 걸 보면......."
"강 기자 말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의도적인 살인이나 아니면 성도착자가 그냥 즐기기 위한 살인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해가 돼지 않는단 말이야."
혼잣말처럼 되뇐 이 과장은 강 기자의 시선을 비키며 현장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한 두 명이 아닌 듯 하다. 그렇다고 성도착자가 떼거지로 모여 자기들만의 파티를 열었다? 너무 지나친 비약이다.
"강 기자는 어떻게 생각해?"
코를 막고 딸의 하복부를 보고 있는 강에게 시선을 던지며 묻는다.
"같은 생각입니다. 의도적인 것 같아요. 마치 내가 범인이니까 잡아봐라 한 것 같지 않습니까? 단순히 살인을 즐기거나 사체를 훼손하는 데 만족을 얻는다면 저런 표식도 없을 테고 무엇보다 방법이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도 하복부가 도려 내지고 젖가슴이 잘려있는 데........ 지금까지의 범행방법이 똑 같다는 것은 마치 이렇게 해야 된다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어찌됐든 경찰만 바쁘겠군요"
"허......."
과장은 탄식인지 피로감인지 긴 숨을 쉬고 여자의 사체 부분 부분을 눈여겨본다. 목과 어깨, 아랫배에 검붉은 자국, 이 자국은 허벅지에서 더 심했다. 마치 살을 끌로 파낸 듯 군데군데 찢겨진 자국이 보일 정도다. 목의 손자국을 보면 목을 조이면서 성행위를 했다는 것이 다. 빗속의 살인마는 언제 그칠 것인가.

다음날 아침 신문과 방송에서는 대대적으로 이 엽기적인 사건을 물론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 시 책임자인 시장과 경찰책임자, 검찰까지 뭉뚱그려 도배를 했다. 내용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더 이상 맡기지 못하겠다는 목소리였다. 간단히 말하면 물러가라는 의도였다. 사설은 노골적으로 시장과 경찰청장의 무능을 드러내며 총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시급히 치안유지위원회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처음 시작한 주장은 계속되는 살인사건과 방화,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마약도 한 몫을 했다. 청소년 사이에 급속히 퍼진 마약류는 시 전체적으로 번져 마치 빗물이 마약 같았다. 프로젝트 T는 성공인가? 황의 미묘한 웃음사이로 여름은 익어만 갔다.

T시의 연속 엽기살인사건과 마약에 찌든 폭력은 Y시에서는 남의 일로 보였다. 뭉치 일당은 네 명의 대학생들을 철저하게 농락하고 있었다. 여름 더위를 식히며 비가 퍼붓는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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