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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5 1,259회 0건
3부
띠리리리~~ 띠띠띠리리리리~~
요란한 시계 소리에 잠이 깬 승우는 침대에 누운 그대로 시계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탁!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시계를 가격하자 요란한 벨소리는 곧 멈춰졌다. 시계 소리가 멈춰지자 승우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조금씩 잠이 깨는 것을 음미했다.
곧 제 정신이 들긴 했지만 몸은 아직도 잠이 덜깨어 찌부둥했다. 찌푸둥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오늘 있을 동창회를 생각했다.
그동안 몇 번씩 연락하던 친구들도 있을것이고 개중에는 7년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을것이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자연스레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지난 몇년간 지속되어온 일상적인 아침과는 다른 매우 상쾌한 아침이었다.



"그나저나 뭘입고 가나..."

세수를 끝내고 전신 거울앞에 선 승우는 자신의 벌거벗은 상체를 보며 무얼 입고가야 할까 하는 사소한 고민에 빠졌다.
유난히 정장을 입는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승우에겐 정장이 딱 두벌 뿐이었다. 겨울용과 봄,가을에 입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부모님이 억지를 써서 겨우겨우 사다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있던 딱 두벌의 정장 중 겨울용은 지난번에 입고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마이가 찢어지고 바지에도 길다란 상처를 남기면서 지금은 난지도에서 분리수거라는 운명을 맞이했을것이다.
그뒤로 옷을 사러가긴했지만 옷 사러갔다온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정장이 아니라 캐쥬얼한 옷 세벌이 전부였다. 정장을 사러갔다가 다른 옷을 사오고 만것이었다.
집으로 들어선 승우는 뒤늦은 탄식을 내뱉었지만 이미 사버린것이었기에 어쩔수 없이 넘어가야만 했다.
정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비록 정장은 없었지만 그 외의 옷은 많았기 때문에 별 걱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혼자만 정장을 안입고 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이 홀연듯 들었을뿐...


12월초라 그런지 날씨가 많이 추웠다. 특히 올해는 예년보다 몇 배는 더 추운거 같았다.
열려진 커텐 사이로 보이는 바깥 세상엔 간간히 하얀 눈발이 촘촘히 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이는 대로 하얀 눈송이들이 살랑살랑 춤을 췄다.
눈발에 바람마저 부는 날씨.
엄청 추워 보이는 날씨에 승우는 하얀색의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고 그위엔 작년에 산 두툼한 외투를 걸쳤다. 마지막으로 목도리와 장갑을 챙기고는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뼈속 깊이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 바람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다른 날들보다 더욱 춥게만 느껴졌다.
혼자라는 생각때문일까? 아니면 옆에 누군가 자신을 지켜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니 자신을 바라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승우는 씁쓸히 웃고말았다. 혼자가 된지 벌써 많은 시간들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가 허전하고 적응이 잘 안되는 승우였다. 그랬기에 더 춥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씁쓸한 미소를 안고 승우는 발걸음을 떼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몇몇 남녀들이 다정스럽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매우 다정해보이는 연인들.. 서로를 위하는 느낌이 팍팍 와닿았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을 보는 승우의 시선에 따스함과 함께 부러움이 잠시 감돌았다.
하지만 승우는 곧 그들에게서 눈을 떼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일터로 걸음을 재촉했다.


승우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으로 집 근처에서 50여평짜리 작다면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집에서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기에 채 오분도 되지않아 자신의 서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인해 가게 앞은 물론 회색빛의 우중충한 셔터 위에도 하얀 눈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알바 학생이 한명 있었지만 저번주에 갑자기 그만둔 후로는 승우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서점은 혼자서 운영하기엔 턱없이 넓었지만 당장 알바 학생을 구한다는게 너무 어려웠다.
승우는 셔터위에 쌓인 눈들을 발로 치우면서 빨리 알바 학생하나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셔터를 올렸다.

드르륵~

승우는 철창위로 눈이 수북히 쌓인 셔터를 올리고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서점 한쪽 벽면에 덩그러니 놓인 시계를 바라보니 작은 바늘이 11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열한시군"

늦었다면 늦은 시각.
승우는 청소를 하기전에 환기를 시키기위해 서점 안을 가리고 있던 하늘색 커텐을 젖히고 서점안의 모든 창문들을 활짝 열어제꼈다. 열려진 창문사이로 차가우면서도 맑은 겨울 공기들이 서점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십분도 채 되지 않았을때 입에서 하얀 바람이 숨결을 따라 규칙적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승우는 서점안의 공기가 싸늘해지자 환기가 다 됐다는 생각에 열어두었던 창문들을 모두 다시 닫았다.
카운터 뒤에 설치된 히터를 켜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빗자루로 그 넓은 서점 안을 한 차례 쓸고 난후 대걸레를 가지고 나와 물을 묻혀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매끄럽게 닦여나갔다. 대걸레가 지나간 자리에 적지않은 물기때문인지 반짝반짝 윤이났다.
이십분도 채 되지않아 청소를 모두 끝마친 승우는 카운터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이제부터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를 하고 찾는 책이 있으면 찾아주던지 아니면 그저 찾아가지고 나오길 기다리고 계산을 하고 다시 인사를 하면 끝이었다.
가끔씩 책정리를 할때도 있었지만 그건 새 책들이 들어올 때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새 책이 들어오려면 아직 사흘이나 남았기에 지금 당장 승우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카운터에 앉아서 키보드 자판이나 두들기며 시간을 때우는 일밖에 없었다.
승우는 그제 와레즈 사이트를 돌아 다니면서 받아놓은 겜을 실행시켰다.
곧 모니터 화면에 승우가 실행시킨 게임의 오프닝 동영상이 나타났다.


딸랑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조용하던 서점안에 조금은 요란스럽게 울려퍼졌다. 오늘 첫 손님이다.

"어서오세요"

반가운 첫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겜을 하느라 정신을 팔린 승우는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를 건넸다. 오늘 첫 손님이 잠시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손님이 아니라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게임이었다. 첫 손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카운터에서 멀어져갔다. 손님의 가벼운 발걸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여자 손님인가 보다.
승우는 여전히 게임에 열중이었다.

찾는 책을 골랐는지 첫 손님은 다시 카운터로 다가왔다. 그러나 손님의 기척이 들리지 않아서 였을까? 아니면 게임에 너무 몰입해있어서 였을까, 승우는 손님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채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한편 카운터에 몸을 기댄 손님은 계산할 생각은 하지않고 승우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고 다시 승우의 옆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훗!"

바로 옆에서 들리는 작은 웃음소리에 승우는 다급히 게임을 중지 시키고 계산을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

"안녕!"

"희,희영아"

희영이었다. 일요일 아침의 첫 손님은 어제 처음 만난 희영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밝은 피부와 잘 어울리는 하얀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생긋생긋 웃음을 짓고 서있는 그녀의 모습이 승우의 두눈 가득 들어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녀는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언제 왔었어?"

"아까 왔었지~ 너 난 쳐다도 안보구 게임만 하더라, 아니 그것보다 손님이 들어오는데 쳐다도 안보던데"

"하.하.하 그게 게임 하느라..."

희영이의 추궁하는 듯한 말투에 승우은 애꿎은 뒤통수를 슥슥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의 모습에 희영이는 또 다시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그치만 너무해~ 보니깐 게임두 못하던데"

"무슨소리 이거 첨 하는거라서 그래.. 근데 왠일이야?"

그녀는 승우의 물음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가 입을 삐죽이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바보야~ 서점에 책사러 오지 놀러 오냐?"

"하.하 그런가.."

"근데 너 여기서 알바하는거야?"

"아니, 나 여기 주인이야"

"진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 모습에 승우는 순간 그녀를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여자를 껴안았다간 변태내지는 치한으로 몰리기 십상이었기에 승우는 가까스로 인내하며 참아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난지 이틀도 채 안된 여자를 안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다니... 참 한심하다니 생각이들었다. 어쩌면 정에 너무 굶주려 있었서 그랬는지도.. 하지만 웬지 정에 굶주려 있었다는건 자신에 대한 변명같았다. 무언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희영이를 볼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두근두근 긴장되는 것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승우는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들킬세라 조금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하냐, 나 여기 주인 맞어"

승우의 확신 어린 답변에 희영이는 곧 귀여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카운터에 기댄 그 자세에서 상체를 좀더 승우를 향해 내민채..

"아앙~ 승우야앙~"

"책값 깍아 달라거나 그냥 주라고 하지마! 나두 먹고는 살아야지"

"피이~ 그래도 친군데"

"안되네요~"

그녀는 자신의 애교가 통하질 않자 곧 뾰루퉁한 표정으로 승우를 향해 혀를 낼름거렸다.

"치사하다.. 얼마야?"

"만원이네"

"구래 잘먹구 잘살아라~"

희영이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홱 들고는 갈 준비를 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들이 너무 귀여워서 승우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희영이가 막 문을 나서려는 순간.

"희영아 차나 한잔하구가라, 찻값은 공짜야!"

"....."



"넌 무슨일 하는데?"

"나? 난 주로 번역해주구 그 번역료루 먹구사는데"

"그럼 작가네?"

승우의 물음에 희영이는 피식 웃어보이곤 차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차를 음미했다. 말을 하지않고 차만 음미하는 그녀를 향해 승우가 다시 되물었다.

"보통 실력있는 사람들은 번역두 해주고 글도 쓰잖아, 넌 그렇지 않아?"

승우의 물음에 희영이는 뭐가 약간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나두 쓰고 싶은 글은 있긴 있는데 잘 쓰여지지 않아서 지금은 중단했어, 그리고 솔직히 글은 아무나 쓰니"

"그래? 그런데 요즘은 바뻐?"

"아니, 요즘 일거리가 별루 안들어와 이러다가 나 굶어죽는거 아닌지 몰라~"

그녀의 농이 섞인 말에 승우는 히죽 웃어보이며 슬쩍 장난을 걸었다.

"걱정마, 넌 내가 먹여살릴게~"

"호호~ 니가 내 남편이니? 그런말 하게"

"모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미래에 우리 둘이 어떻게 되 있을지도 모르잖어, 어쩌면 이대로 계속 친구사이로 지낼수도 있고 또 어쩌면 한 이불 뒤집어 쓰고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같이 자는 사이가 될수도 있구 말야, 안그래?"

승우의 대담한 말에 볼이 약간 발그레해진 희영이는 그저 살포시 웃음만 머금었다. 희영이의 그런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승우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 요즘 일거리가 없댔지?"

"응"

"여기서 일해보지 않을래? 알바하던 학생이 저번주에 그만x거든.. 당장 사람이 필요한데 구할수가 없어서, 여기서 일하면 번역일도 할수 있고 또 글도 쓸수 있잖아. 어때?"

갑작스런 승우의 제안에 희영이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곧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다음 번역이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진즉부터 알바자리를 구하고 있던 희영이는 이왕이면 자신의 마음에 든 승우와 같이 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그녀는 눈을 가늘게 치켜뜨면서 물었다.

"근데 월급은 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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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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