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부 여인 장 미라
"오랜만이군" 방안은 어두웠다. 방안의 전등을 끄고 데스크 등만 켜두어 사람의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5월의 밤바람이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을 실어다 방 곳곳에 뿌려 놓은 듯 했다. 데스크 위에는 한 장의 A4용지만 하얗게 불빛을 반사하고 있을 뿐 깨끗하다. 용지 위에는 이름 장 미라가 뚜렷하게 보인다. 남자가 종이를 들더니 가까이 대고 다시 들여다본다. 칼라사진의 얼굴. 기억이 되살아난 듯 여자에게 눈길을 던지며
"왜 이런 험한 길을 선택했지? 자유? 젊음?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군. 그보다 별일 없었는지......"
부드러운 눈길이다. 작년인가 전 국민 등록기간에 만난 여대생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향기. 풀잎의 향기. 아니 작은 산의 구릉 같은 느낌. "노루"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아니요.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 옷을 입고 있어 안보이지만 제 몸은 상처투성이예요. 그래도 좋아요. 몸은 없어져도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비도덕적인 모든 것을 없애겠다고 했죠? 부정과 부패를 뿌리 뽑겠다고요?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외치던 그 때의 그 정신은 어디에 있죠? 국민을 잡아다가 위안소를 차리고 노동을 시키고 죽음을 주고 있는 정의인가요? 아니면.."
"그만!" 김 대근 과장은 그녀의 말을 끊는다. 사실이다. 처음의 김 대근이 아닌 변해버린 자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다는 그렇게 생각지 않을 거야. 일부분이야. 오히려 더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어. 너희들의 오판이야." 억지일지도 모른다. 자신도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그녀를 보면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계속 서있을 거야. 앉지." 옆의 작은 의자를 꺼내 그녀 앞에 놓는다.
"아니요. 나의 이 두발로 서있고 싶어요. 내 땅에 내가 서있고 싶습니다." 초라한 푸른 빛 수의에 검정 고무신. 눈은 그때처럼 맑다. 옷에 가려진 몸이지만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많이 변했군. 그때는 그저 순수한 여대생으로 보였는데. "한자련" 때문인가?"
미라는 피곤한 듯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좌우로 흔든다. 아니라는 듯.
"제가 여기에 끌려와서 왜 선생님을 찾았는지 알아요?" 당신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바뀌자 그는 내심 당황한 표정이다.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작년 제가 4학년이었을 때 처음으로 제 벗은 몸을 본 남자예요. 입술로 제 몸을 어루만진 유일한 남자. 전 그때 아무것도 모른 대학생이었죠. 제 몸을 진지하게 어루만지던 손길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육욕으로 이글거린 눈이 아닌 차분한 눈빛이었을 겁니다. 제도에 허물어지는 한 남자의 모습보다 제 몸을 소중하게 다루는 남자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제 몸을 만지고 싶나요? 망가진 몸이지만..... " 그녀는 고무신의 발을 들어 남자의 다리 위에 올린다. 생채기가 나있는 하얀 발. 회초리로 많이 맞았겠지. 그는 손으로 그녀의 발을 들어 입에 맞춘다. 붉게 그어진 줄 위에 입술을 대고 따뜻한 입맞춤을 준다.
"그래서 나를 찾았나?" 발을 놓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래요. 그때 또 보자는 말이 기억에 남은 것도 있지만 설마 코브라에 계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아는 사람은 선생님뿐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가족을 구해달라는 말인가? 그것은 내가 할 수 있을 거야. 미라의 얼굴을 보니 가족이 생각나는군. 너무 심했던 과거였지. 나도 자신을 모르겠어. 어떤 광기가 흘렀던 것일까? " 그는 지난 세월을 광기로 덮고 싶었다. 너도나도 미친 듯 한쪽으로 치닫던 60년대의 중국 문화혁명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판단은 필요치 않았지. 내가 왜 이렇게 하고 내가 왜 저렇게 해야 하는가. 그 당시 판단은 우리들이 옳았다고 생각해. 너도나도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들을 오도하고, 가치관이 흔들린 젊은 세대들은 무조건 기성세대의 잘못을 꺼내 매도하고, 동네 개모냥 여자, 남자만 찾아대던 사람들, 진정한 통일은 뒷전인 채 말로만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에 기대어 또 다른 식민지 사관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이 땅위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어. 우리는 일어났지.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진정한 통일을 이룩하자, 아시아의 강국으로 떠오르자, 도덕적인 유교사상을 전 국민에게 불어 넣어주자 우리들은 뜨거운 사명감으로 일어난 거야. 그런데, 왜 너희들은 반대하는 거지? 제로운동 때문에 아니면 충정작전 때문에? 그것은 공화국의 더 큰 미래를 위해서 했던 일이야. 후회하지 않아. 다만, 미라의 가족은 약속대로 내가 지켜주지."
"아니 필요 없어요. 이 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지킬 필요 없어요. 잘 산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 국가가 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 지금은 다 필요 없는 거예요. 선생님. "통일"이라고 말씀하셨죠?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통일인가요? 고구려의 강한 기상을 본 받아 만주대륙을 찾자고 했던가요. 신라가 통일을 하듯 중국의 힘을 빌어 같은 민족을 죽이면서요. 고구려를 본 받자고요. 중국 대륙을 뺐기고 좁은 반도 땅으로 내려 온 고구려가 아니던가요. "광개토"왕을 욕하지는 않지만 그들도 백성들을 이렇게 탄압했었나요. 반대하면, 사상이 의심스러우면 모두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 이렇게 했나요?" "눈빛은 변하지 않은 그대로인데 정신은 바뀌었군" 김 과장은 문득 동생이 생각났다.
" 그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이것은 정책적인 판단이야. 내가 뭐라고 말할 순 없어. 그런데, 동생은 어디 있지? " 동생을 꺼내자 눈빛이 흐려진다. 한참 생각을 하듯
"아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자살폭탄 테러를 하지 않았다면 붙잡혀 와 있을 거예요. 동생만은 구해주세요. 작년 그 날 이후로 변했어요. 똑같이 대항하겠다고 ......."
"토끼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토끼처럼 움직이는군" 인터폰을 누르자 방문을 열고 사내가 들어오자 "장 한나 있으면 찾아서 데려와" 짧은 지시, 그리고 그녀를 다시 본다. 의자에서 일어나 푸른 수의를 벗는다. 속옷은 없다. 작지만 탐스러운 가슴이 불빛에 드러난다. 밤바람이 향기를 한웅큼 쥐고는 그를 찾는다. 군살이 없는 허리 그리고 엉덩이 다리 차례대로 불빛에 드러나자 그는 눈을 돌려 창 밖 5월의 밤하늘을 본다. 맑은 하늘이다. 별이 밝다. 그는 일어나 그녀의 입을 찾고 영혼을 마시듯 숨을 들이킨다. 그녀 몸 속의 모든 순수를 빨아들이듯. 손으로 채찍이 지나간 자국을 더듬다가 엉덩이의 부드러운 살을 매만진다. 사르르 떨리는 가슴이 느껴진다. 역시 붉은 자국이 난 가슴을 배어 물고 오른손으로 그 곳을 어루만지자 그녀의 떨림이 느껴진다. 울고 있는 것일까. 눈을 보자 수백 개의 셀 수 없는 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으로 별을 훔친다. 볼이 따뜻하다.
안았다. 가벼운 몸. 노루를 안고 있는 착각이 든다. 책상 위에 눕히고는 그녀의 맑은 샘을 찾아서 입안 가득 마신다. 5월 풀밭에 앉아서 네잎크로바를 찾던 추억이 밀려온다. 하얀 허벅지의 맨살을 입술로 더듬자 그녀의 손이 머리에 와 끌어안는다. 한없는 우물 속으로 두레박이 되어 떨어진다.
"똑똑" 소리에 두레박은 우물에서 건져 올려진다. 맑은 샘물을 머금고.
"들어와!"
"언니!" "한라야" 수의를 다시 입은 그녀가 동생을 껴안자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의 얼굴을 만진다.
"언니 미안해! 언니한테까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 남자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 자매가 부둥켜안고 있자 남자가 가까이 다가선다.
"오랜만이군. 한라"
"헉! 아니, 누구시죠? 혹시 코브라......아, 안 돼. 너무 힘들어..." 동생은 공포에 휩싸인다.
며칠 동안 계속된 심한 취조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한라다. 국부는 물론 항문까지 쑤셔 댄 전기봉은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정신을 다 태워버리는 고통. 오줌을 질질 싸는 수치감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눈앞에서 동지들이 "기계"라고 불린 남자들에게 앞뒤를 능욕 당할 때는 차라리 죽고 싶기도 했다.
"이분은 바로 작년 그 분이야.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그때서야 생각이 난 듯
"아! 나쁜 사람들" 목소리가 차갑다.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들이야. 내가 싸우는 것도 그래서야. 우리가 승리하면 똑같이 해주고 말 거야"
김 과장은 표정 없이 두 자매를 쳐다보다가 얼굴을 돌린다. 미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문다.
"오랜만이군" 방안은 어두웠다. 방안의 전등을 끄고 데스크 등만 켜두어 사람의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5월의 밤바람이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을 실어다 방 곳곳에 뿌려 놓은 듯 했다. 데스크 위에는 한 장의 A4용지만 하얗게 불빛을 반사하고 있을 뿐 깨끗하다. 용지 위에는 이름 장 미라가 뚜렷하게 보인다. 남자가 종이를 들더니 가까이 대고 다시 들여다본다. 칼라사진의 얼굴. 기억이 되살아난 듯 여자에게 눈길을 던지며
"왜 이런 험한 길을 선택했지? 자유? 젊음?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군. 그보다 별일 없었는지......"
부드러운 눈길이다. 작년인가 전 국민 등록기간에 만난 여대생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향기. 풀잎의 향기. 아니 작은 산의 구릉 같은 느낌. "노루"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아니요.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 옷을 입고 있어 안보이지만 제 몸은 상처투성이예요. 그래도 좋아요. 몸은 없어져도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비도덕적인 모든 것을 없애겠다고 했죠? 부정과 부패를 뿌리 뽑겠다고요?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외치던 그 때의 그 정신은 어디에 있죠? 국민을 잡아다가 위안소를 차리고 노동을 시키고 죽음을 주고 있는 정의인가요? 아니면.."
"그만!" 김 대근 과장은 그녀의 말을 끊는다. 사실이다. 처음의 김 대근이 아닌 변해버린 자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다는 그렇게 생각지 않을 거야. 일부분이야. 오히려 더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어. 너희들의 오판이야." 억지일지도 모른다. 자신도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그녀를 보면서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계속 서있을 거야. 앉지." 옆의 작은 의자를 꺼내 그녀 앞에 놓는다.
"아니요. 나의 이 두발로 서있고 싶어요. 내 땅에 내가 서있고 싶습니다." 초라한 푸른 빛 수의에 검정 고무신. 눈은 그때처럼 맑다. 옷에 가려진 몸이지만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많이 변했군. 그때는 그저 순수한 여대생으로 보였는데. "한자련" 때문인가?"
미라는 피곤한 듯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좌우로 흔든다. 아니라는 듯.
"제가 여기에 끌려와서 왜 선생님을 찾았는지 알아요?" 당신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바뀌자 그는 내심 당황한 표정이다.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작년 제가 4학년이었을 때 처음으로 제 벗은 몸을 본 남자예요. 입술로 제 몸을 어루만진 유일한 남자. 전 그때 아무것도 모른 대학생이었죠. 제 몸을 진지하게 어루만지던 손길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육욕으로 이글거린 눈이 아닌 차분한 눈빛이었을 겁니다. 제도에 허물어지는 한 남자의 모습보다 제 몸을 소중하게 다루는 남자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제 몸을 만지고 싶나요? 망가진 몸이지만..... " 그녀는 고무신의 발을 들어 남자의 다리 위에 올린다. 생채기가 나있는 하얀 발. 회초리로 많이 맞았겠지. 그는 손으로 그녀의 발을 들어 입에 맞춘다. 붉게 그어진 줄 위에 입술을 대고 따뜻한 입맞춤을 준다.
"그래서 나를 찾았나?" 발을 놓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래요. 그때 또 보자는 말이 기억에 남은 것도 있지만 설마 코브라에 계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아는 사람은 선생님뿐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가족을 구해달라는 말인가? 그것은 내가 할 수 있을 거야. 미라의 얼굴을 보니 가족이 생각나는군. 너무 심했던 과거였지. 나도 자신을 모르겠어. 어떤 광기가 흘렀던 것일까? " 그는 지난 세월을 광기로 덮고 싶었다. 너도나도 미친 듯 한쪽으로 치닫던 60년대의 중국 문화혁명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판단은 필요치 않았지. 내가 왜 이렇게 하고 내가 왜 저렇게 해야 하는가. 그 당시 판단은 우리들이 옳았다고 생각해. 너도나도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들을 오도하고, 가치관이 흔들린 젊은 세대들은 무조건 기성세대의 잘못을 꺼내 매도하고, 동네 개모냥 여자, 남자만 찾아대던 사람들, 진정한 통일은 뒷전인 채 말로만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에 기대어 또 다른 식민지 사관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이 땅위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어. 우리는 일어났지.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진정한 통일을 이룩하자, 아시아의 강국으로 떠오르자, 도덕적인 유교사상을 전 국민에게 불어 넣어주자 우리들은 뜨거운 사명감으로 일어난 거야. 그런데, 왜 너희들은 반대하는 거지? 제로운동 때문에 아니면 충정작전 때문에? 그것은 공화국의 더 큰 미래를 위해서 했던 일이야. 후회하지 않아. 다만, 미라의 가족은 약속대로 내가 지켜주지."
"아니 필요 없어요. 이 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지킬 필요 없어요. 잘 산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 국가가 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 지금은 다 필요 없는 거예요. 선생님. "통일"이라고 말씀하셨죠?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통일인가요? 고구려의 강한 기상을 본 받아 만주대륙을 찾자고 했던가요. 신라가 통일을 하듯 중국의 힘을 빌어 같은 민족을 죽이면서요. 고구려를 본 받자고요. 중국 대륙을 뺐기고 좁은 반도 땅으로 내려 온 고구려가 아니던가요. "광개토"왕을 욕하지는 않지만 그들도 백성들을 이렇게 탄압했었나요. 반대하면, 사상이 의심스러우면 모두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 이렇게 했나요?" "눈빛은 변하지 않은 그대로인데 정신은 바뀌었군" 김 과장은 문득 동생이 생각났다.
" 그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이것은 정책적인 판단이야. 내가 뭐라고 말할 순 없어. 그런데, 동생은 어디 있지? " 동생을 꺼내자 눈빛이 흐려진다. 한참 생각을 하듯
"아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자살폭탄 테러를 하지 않았다면 붙잡혀 와 있을 거예요. 동생만은 구해주세요. 작년 그 날 이후로 변했어요. 똑같이 대항하겠다고 ......."
"토끼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토끼처럼 움직이는군" 인터폰을 누르자 방문을 열고 사내가 들어오자 "장 한나 있으면 찾아서 데려와" 짧은 지시, 그리고 그녀를 다시 본다. 의자에서 일어나 푸른 수의를 벗는다. 속옷은 없다. 작지만 탐스러운 가슴이 불빛에 드러난다. 밤바람이 향기를 한웅큼 쥐고는 그를 찾는다. 군살이 없는 허리 그리고 엉덩이 다리 차례대로 불빛에 드러나자 그는 눈을 돌려 창 밖 5월의 밤하늘을 본다. 맑은 하늘이다. 별이 밝다. 그는 일어나 그녀의 입을 찾고 영혼을 마시듯 숨을 들이킨다. 그녀 몸 속의 모든 순수를 빨아들이듯. 손으로 채찍이 지나간 자국을 더듬다가 엉덩이의 부드러운 살을 매만진다. 사르르 떨리는 가슴이 느껴진다. 역시 붉은 자국이 난 가슴을 배어 물고 오른손으로 그 곳을 어루만지자 그녀의 떨림이 느껴진다. 울고 있는 것일까. 눈을 보자 수백 개의 셀 수 없는 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으로 별을 훔친다. 볼이 따뜻하다.
안았다. 가벼운 몸. 노루를 안고 있는 착각이 든다. 책상 위에 눕히고는 그녀의 맑은 샘을 찾아서 입안 가득 마신다. 5월 풀밭에 앉아서 네잎크로바를 찾던 추억이 밀려온다. 하얀 허벅지의 맨살을 입술로 더듬자 그녀의 손이 머리에 와 끌어안는다. 한없는 우물 속으로 두레박이 되어 떨어진다.
"똑똑" 소리에 두레박은 우물에서 건져 올려진다. 맑은 샘물을 머금고.
"들어와!"
"언니!" "한라야" 수의를 다시 입은 그녀가 동생을 껴안자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의 얼굴을 만진다.
"언니 미안해! 언니한테까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 남자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 자매가 부둥켜안고 있자 남자가 가까이 다가선다.
"오랜만이군. 한라"
"헉! 아니, 누구시죠? 혹시 코브라......아, 안 돼. 너무 힘들어..." 동생은 공포에 휩싸인다.
며칠 동안 계속된 심한 취조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한라다. 국부는 물론 항문까지 쑤셔 댄 전기봉은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정신을 다 태워버리는 고통. 오줌을 질질 싸는 수치감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눈앞에서 동지들이 "기계"라고 불린 남자들에게 앞뒤를 능욕 당할 때는 차라리 죽고 싶기도 했다.
"이분은 바로 작년 그 분이야.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그때서야 생각이 난 듯
"아! 나쁜 사람들" 목소리가 차갑다.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들이야. 내가 싸우는 것도 그래서야. 우리가 승리하면 똑같이 해주고 말 거야"
김 과장은 표정 없이 두 자매를 쳐다보다가 얼굴을 돌린다. 미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문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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