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전 상서 1
이제는 나도 20여년전의 일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라’에서는 근친상간도 당당히 말을 하는데 사제상간이야 그 보다는 정도가 덜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나는 끙끙거리며 살아왔다. 친구녀석들이 술자리에서 씹에 대한 각종 무용담을 펼칠 때에도 왠지 나는 선생님과 씹을 한 2년간의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것은 선생님에 대한 비밀유지 차원을 너머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교생 시절, 선생님이 하나하나 가르쳐준 씹.... “이렇게 쑤셔 볼래?” 하면 나는 그렇게 했고, “내 보지 좀 빨아봐! 더 세게, 응 그래 그렇게 빨아!” 하면 나는 좆나게 빨았다. 선생님도 “니 좆 참 귀엽게 생겼다”고 하면서 내 좆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빨아주셨다. 나도 선생님 보지가 참 좋았다. 새큼한 보지물도 참 맛이 있었다. 선생님 보지 소음순은 마치 꽃잎처럼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는데, 그 소음순을 입에 넣고 ‘쪼옥 쪽쪽’ 빠는 것을 나는 좋아했고 선생님도 그 것을 참 좋아하셨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70년대말, 내가 고2때 속리산 기슭의 어느 충청도 면소재지에서였다. 그 때는 나만 선생님을 보았다. 늦가을 일요일, 나는 내일부터 전학해 다닐 M고교를 슬쩍 훑어보고는 하숙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련된 여대생(처음 보았을 때)이 청색 파카에 청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저 만큼 보인 모습이, 긴 머리가 바람에 날리어 시원스럽고 아름다웠는데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면서 본 그녀의 얼굴을 정말 ‘도회풍’이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멀어져 가는 자전거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내 눈에는 길가의 코스모스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싱그러움은 비포장도로의 황토길과 어울려 한동안 나에게 가을의 미학으로 각인되었던 모습이었다.
내가 전학간 이유는 C고교에서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1년 후배 상민이 녀석이 D고교 3학년 다섯 놈들에게 두들겨 맞고 오자 내가 주동이 돼 우루루 몰려가 녀석들을 혼내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중 두 녀석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갔고, 나는 경찰조사를 일주일이나 받고는 그대로 퇴학 조치돼 산골 고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나는 전학간 학교에 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우선 교무실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 나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그 자전거 여대생이 학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몰랐다. 나는 일부러 그 여선생님에게 가 인사를 했다.
“저 오늘 새로 전학온 일완인데요”
“아 네가 그럼 그 애니?”
하고는 당시 새로운 담임이 되실 어느 선생님에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선생님도 이미 나의 소문을 듣고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학교가 처음이었지만 이미 아버지가 보름전에 전학서류를 들고 오셔서는 선생님들에게 술 한잔 거하게 사시며 “내 자식 사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에, 선생님이 나를 알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선생님 주변을 맴돌았다. 1학년 담당 국어선생님..... 왠지 먼발치에서나마 선생님을 보기만 해도 나는 좋았다. 선생님의 해맑은 모습이 처음 본 그 코스모스길과 어우러지면서 나는 늘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집을 떠난 외로운 심정과 어울려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 나는 왠지 속을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에 피하기 일쑤였다. 선생님 역시 나를 보아도 그저 본체 만체였다. 그럴 때면 왠지 속상했지만 나로서는 별다른 방법 또한 없었다. 더구나 나는 2학년이었기에 가르치고 배울 일도 없었다.
그런데 학교가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곧 발생했다. 내가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간 사건이었다. 지금도 고등학교에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낯모르는 놈이 전학을 오면 텃세라는 것을 했는데, 나는 그 학교 뒤 냇가의 제방뚝(그곳에서는 뚝방이라 불렀다)으로 끌려가 정말 죽도록 얻어맞았다. 나도 이전 학교에서는 제법 한 주먹 한다고 했는데, 녀석들 열 댓 명이 달려들어 패기 시작하는데는 정말 당할 수가 없었다. 내가 김두한도 아니었으니까....
병원에 입원을 하고 사흘 정도 지났을까. 나는 죽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내 병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선생님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음에 또 올려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나도 20여년전의 일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라’에서는 근친상간도 당당히 말을 하는데 사제상간이야 그 보다는 정도가 덜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나는 끙끙거리며 살아왔다. 친구녀석들이 술자리에서 씹에 대한 각종 무용담을 펼칠 때에도 왠지 나는 선생님과 씹을 한 2년간의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것은 선생님에 대한 비밀유지 차원을 너머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교생 시절, 선생님이 하나하나 가르쳐준 씹.... “이렇게 쑤셔 볼래?” 하면 나는 그렇게 했고, “내 보지 좀 빨아봐! 더 세게, 응 그래 그렇게 빨아!” 하면 나는 좆나게 빨았다. 선생님도 “니 좆 참 귀엽게 생겼다”고 하면서 내 좆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빨아주셨다. 나도 선생님 보지가 참 좋았다. 새큼한 보지물도 참 맛이 있었다. 선생님 보지 소음순은 마치 꽃잎처럼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는데, 그 소음순을 입에 넣고 ‘쪼옥 쪽쪽’ 빠는 것을 나는 좋아했고 선생님도 그 것을 참 좋아하셨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70년대말, 내가 고2때 속리산 기슭의 어느 충청도 면소재지에서였다. 그 때는 나만 선생님을 보았다. 늦가을 일요일, 나는 내일부터 전학해 다닐 M고교를 슬쩍 훑어보고는 하숙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련된 여대생(처음 보았을 때)이 청색 파카에 청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저 만큼 보인 모습이, 긴 머리가 바람에 날리어 시원스럽고 아름다웠는데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면서 본 그녀의 얼굴을 정말 ‘도회풍’이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멀어져 가는 자전거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내 눈에는 길가의 코스모스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싱그러움은 비포장도로의 황토길과 어울려 한동안 나에게 가을의 미학으로 각인되었던 모습이었다.
내가 전학간 이유는 C고교에서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1년 후배 상민이 녀석이 D고교 3학년 다섯 놈들에게 두들겨 맞고 오자 내가 주동이 돼 우루루 몰려가 녀석들을 혼내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중 두 녀석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갔고, 나는 경찰조사를 일주일이나 받고는 그대로 퇴학 조치돼 산골 고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나는 전학간 학교에 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우선 교무실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 나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그 자전거 여대생이 학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몰랐다. 나는 일부러 그 여선생님에게 가 인사를 했다.
“저 오늘 새로 전학온 일완인데요”
“아 네가 그럼 그 애니?”
하고는 당시 새로운 담임이 되실 어느 선생님에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선생님도 이미 나의 소문을 듣고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학교가 처음이었지만 이미 아버지가 보름전에 전학서류를 들고 오셔서는 선생님들에게 술 한잔 거하게 사시며 “내 자식 사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에, 선생님이 나를 알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선생님 주변을 맴돌았다. 1학년 담당 국어선생님..... 왠지 먼발치에서나마 선생님을 보기만 해도 나는 좋았다. 선생님의 해맑은 모습이 처음 본 그 코스모스길과 어우러지면서 나는 늘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집을 떠난 외로운 심정과 어울려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 나는 왠지 속을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에 피하기 일쑤였다. 선생님 역시 나를 보아도 그저 본체 만체였다. 그럴 때면 왠지 속상했지만 나로서는 별다른 방법 또한 없었다. 더구나 나는 2학년이었기에 가르치고 배울 일도 없었다.
그런데 학교가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곧 발생했다. 내가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간 사건이었다. 지금도 고등학교에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낯모르는 놈이 전학을 오면 텃세라는 것을 했는데, 나는 그 학교 뒤 냇가의 제방뚝(그곳에서는 뚝방이라 불렀다)으로 끌려가 정말 죽도록 얻어맞았다. 나도 이전 학교에서는 제법 한 주먹 한다고 했는데, 녀석들 열 댓 명이 달려들어 패기 시작하는데는 정말 당할 수가 없었다. 내가 김두한도 아니었으니까....
병원에 입원을 하고 사흘 정도 지났을까. 나는 죽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내 병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선생님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음에 또 올려 드리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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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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