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은수의 이중생활 11부

"은수야! 왜그래?"
은수가 출근한 뒤로 무엇에 쫏기 듯이 안절부절못하자 은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은수는 근심어린 은미의 질문이 귓전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새 9시에 5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9시가 되면 그가 온다.
아니 "그"라고 하기 보다 강형사라는 게 이해를 돕기에 편할 것 같다.
집에서 강형사에게 몸을 허락한 후로 강형사는 은수를 숫제 자신의
노리개 취급을 했다. 경찰서에서도 남들 앞에서나 "이형사님"이라고
부를 뿐 조금이라도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은수" 또는 "이년아"가
둘만의 공식 호칭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지나는 은수를 보고 복도로 나오며 "헤이 창녀!" 라고 부르는
바람에 기겁을 한 적도 있었다. 한편으론 그런 관계가 지속될수록
은수는 점점 강형사에게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강형사의 의도대로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강형사는 근무가 끝나면 불쑥 집으로 찾아와
은수를 유린하기도 했고, 가끔씩은 잠복근무 중에도 은수의 손을 이끌고
여관을 찾거나 차안에서 굶주린 성욕을 해결하곤 했다.
그렇게 1개월 정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던 중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강형사는 은수에게 룸살롱으로 출근하기를 강요했다.
"너, 요즘은 술집에 안나가냐? 그래도 안 짤리냐? 하긴 강력계 형사라는
든든한 백이 있으니 짤리진 않겠지?"
하며 은근히 은수의 신경을 거스르더니 마침내 노골적으로 은수를
가게에 내몬 것이다. 이리저리 피하며 일주일을 버티다가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가게에 나와 강형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근 한 달만에
출근한 탓에 지배인은 반색하며 몇 번 은수를 룸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룸에 있다가 강형사를 만날 것이 껄끄러워 거절하고 있었다.
비록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몸을 썩은 사이지만, 지금의
모습은 정말 보이기 싫었다. 은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신분을 숨기려고 했던 치켜올린 머리, 짙은 화장,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짧은 길이에 소매없는 원피스, 영락없는 술집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강형사가 왜 갑자기 자신을 가게에 출근하도록 못살게 구는지 궁금했지만
궁금증은 해결도 못한 채 강형사의 의도대로 행동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은수는 어서 강형사가 와서 이 지루하고 답답한
기다림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때였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은수는 곧
그 소란의 주인공이 강형사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렇다면 혼자 오지 않고 누구를 데려왔다는 소린데...."
은수는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분명히 혼자 온다고 했던
것이다. 색다른 분위기에서 안고 싶다며 은수에게 출근하라고 강요했던 그였다.
그런데 분명 지금의 소란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지배인은 대기실로 오더니 3명의 아가씨를 찾았다.
은수는 모른 체 하려고 했으나, 지배인의 말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은수가 누구지? 우리집에 은수라고 있어?"
자신의 본명이 술집에서 불려진다는 놀라움에 거의 까무러칠 정도였다.
"왜? 혜미 너도 가려고?"
지배인은 일어서는 은수를 보며 말을 건네더니
"은수라는 얜 없지?" 라며 다시 한 번 대기실에다 소리를 지르고는
두명의 아가씨를 더 데리고 룸으로 향했다.
다행히 강형사와 같이 있는 두 사내는 은수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저, 손님! 우리 가게엔 은수라는 앤..."
"아, 됐어."
지배인의 말을 자른 강형사는 은수를 가르키며
"넌 저쪽으로 가고..."하며 웬 사내의 옆에 앉도록 했다.
자신을 옆에 앉히지 않는 것이 의아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은수는 강형사가
지명하는 사내의 옆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혜미라고 해요."
"혜미... 혜미라?"
옆의 사내는 은수의 말을 받으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미 어디서 술을
마신 듯 약간 술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랫배가 나오고 대머리가 약간
벗겨진 것이 강형사가 같이 술을 마실 사내로는 보이지 않았다. 꽤나
나이 들어 보인 탓이다. 더구나 은수가 싫어하는 타잎이었다.
"김사장님! 걔 어때요?"
강향사가 은수옆의 사내에게 은근한 웃음을 띄며 물었다.
"얘가 강형사님이 얘기하던 얜가요? 허허 그럼...강형사님과 제가
동서지간이 되는 건가...하하하"
넉살좋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쪽 손이 은수의 허벅지께로
슬그머니 왔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
강형사도 능글맞게 웃으며 은수에게 말을 건넸다.
"야! 잘 모셔...중요한 손님이니까..."
은수는 강형사의 말에 어깨를 움찔하며 자신의 허벅지께로 반 쯤
들어와 있던 사내의 손을 슬며시 밀어내던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강형사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강형사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때 강형사 옆에 있던 얘가 술병을 들었다.
"저 사장님, 한 잔 하시고 저도 한 잔 주세요!"
"어...그..그래....한 잔하자. 김사장님 한 잔 하시죠"
강형사는 술잔을 들며 옆의 사내에게 말을 건넸다. 이윽고 술이 돌고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 은수는 옆의 사내의 느끼함을 잊어보려는 듯
술을 주는 대로 먹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사내의 손은 은수의 허벅지에서 가슴으로 왔다갔다하며
은수의 몸을 헤집고 있었다. 강형사앞에서 낯선 사내가 자신의 가슴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것이 치욕적으로 느껴졌으나, 이따금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강압의 눈길을 보내는 강형사의 위압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단지 팬티 속으로 들어오려는 사내의 손길만은 안간힘을 다해 막아내고
있었다. 혹시 사내의 기분을 거스릴까봐 눈치채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사내의 손길을 거부하느라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을까? 이미 술자리는 무르익고 있었다. 은수는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을 향했다.
긴장한 채 술을 마신 탓에 괘나 마셨는데도 술은 별로 취하지 않았다.
볼일을 보고 옷을 추스르고 화장실을 나오자 강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왔다. 그리곤 다시 은수를 화장실 안으로 밀어넣더니 말을 건넸다.
"평소처럼 해! 잘하란 말이야! 기분나쁘지 않게...소중한 손님이야...
그리고 2차나갈 생각해...빼지 말고..."
은수는 기가 막혀 강형사를 쳐다보다가 말을 건넸다.
"전, 원래 2차 안나가요..."
"뭐...! 2차..ㄹ...안나가? 이게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 잔 말 말고 제대로
해...좋게 말할 때...나중에 다른 소리 들리면 각오해야 할 껄..."
윽박지르듯이 말을 마치고는 그는 휑하니 나가 버렸다. 은수는 말문이
막혀 한참을 더 화장실에서 분을 삭이다가 룸으로 돌아왔다. 잠깐 사이에
룸의 분위기는 별천지가 되어 있었다.
한 아가씨는 완전히 상체가 드러난 상태에서 사내에게 유두주를 만들어
준다며 가슴에 연신 술을 쏟고 있었고 강형사의 파트너는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채 무릎에 올라타듯이 앉아있었다. 은수의 파트너는 은수를 기다린
듯 은수가 들어서자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은수는 마지못해 사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눈으로는 강형사를 흘겨보면서...
사내는 은수가 앉자마자 우악스럽게 가슴을 움켜잡더니 은수의 입술을
갑자기 훔쳤다.
숨이 막힐 정도로 한참을 은수의 입술을 더듬던 사내는 입술을 떼고는
갑자기 룸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옆에 앉은 은수는 물론 모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자, 우리 옮기기로 하지..."
그 말이 신호가 되었다. 룸의 분위기는 금새 정리가 되고 계산을 마친 일행은
술집을 나섰다. 그런데 모두가 같이 가는지 서로가 만날 장소를 정하고는
은수와 사내가 먼저 출발했다. 강형사도 같이 움직인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은수는 사내와 일행이 되었다.

<1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