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을 꿈꾸는 모든 이들을 위해..1
소라의 가이드를 접한 지도 벌써 꽤 된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주 관심사는 근친에 관한 내용들이었고,
여러 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해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이 글은 한치의
거짓도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힘으로써,
근친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그 실체에 대한 이정표를 드리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고향은 경기도 평택이지만, 조선소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포항에 살았었다..
평택에는 할머니와 삼촌이 사시기 때문에, 늘 방학이면 평택에 가곤 했다.
방학이 되어서 시골에 갈 때면 나의 마음은 항상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나보다 3살 많은 사촌누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성격이 아주 별났다. 오랜만에 내가 가면 나를 이끌고 이리저리 동네를 싸돌
아 다니며 사고를 쳤다. 함께 새총을 만들어 놀다가 동내 아이들 머리를 빵꾸낸 일이
며, 개구리를잡 아다가 뒷다리를 튀겨 먹던 일, 명절 땐 밤새도록 화약총과 폭음탄
을 터트리며 온 동내를 시끄럽게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는둥, 누나와 나는 한번 만나
면 그야말로 죽이 잘 맞는 친구처럼 장난을 치고 다녔었다.. 그리고 몇 년후, 포항에
서 회사를 다니시던 아버지가 회사에서 부하직원과의 시비 끝에 폭행을 행사하셨
고, 그 때문에 회사를 사직하셨다. 부모님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서울로 이주를 하셨
으며, 나는 평택의 할머니 댁에 잠시 맏겨지게 된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였다. 누나와 한 집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행복이었고, 약 6개월 동안 함
께 생활했던 그 시절이 누나에 대한 연민이 싹트게 된 출발점이었던것 같다..
그 당시 롤라 스케이트장이 유행이었고,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누나는 나를 데리
고 롤라장을 많이 데리고 갔으며, 당시 박남정 노래만 계속 틀어주던 시골 롤라장에
서 누나와 손을 잡고 뒤로 타는 법을 배우며, 누나의 롤라 스케이트에 열쇠고리등 이
것저것 주렁주렁 장식을하며 낄낄거리곤 했었다..
그럭저럭 시골에서의 생활이 지나가고, 6개월 후...서울로 가신 부모님들은 어느 정
도 자리를 잡으셨는지 나를 불러 올리셨다. 한창 사춘기 때 이리 저리 전학을 하면
서, 나 역시 공부와는 멀어지며, 점점 날라리가 되어갔다. 평택에서 누나덕분에 재미
를 붙인 롤라를 타러 다니면서 날라리 친구들을 사귀며, 싸움박질도 하면서 남들처
럼 정상적(?)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고3이었던 누나가 중3인 동생을 보고싶어서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
었고, 우리는 신촌의 한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1년만에 누나는 많이 망가져 있었
다..완전 양아치 였다.. 어른이 되고싶어 발버둥치는 그런...한 껏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에 구두에...
당시의 대화 주제는 서로 자기가 동네에서 더 잘나간다는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
던 것 같다. 컴컴하고 칸막이된 카페에서 우리는 돈까스를 시켜서 밥도 먹고 후식으
로 커피도 마시며, 서로 맞담배도 피며 껄렁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화제
중 하나는 담배키스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도 지지 않을세라 담배키스에 관한 내가
아는 지식과 동네 지지배들과 해본 경험담을 자랑한 기억이 난다. 물론 누나도 지지
않을세라 나에게 잘난 척을 했고... 그리고 잠시후...우리는 두 입술이 포게어 져서
할딱거리며 담배연기를 서로의 폐 깊숙히 불어 넣어 주는 행동을 3차례 정도 하게 된
다..그때는 서로 담배키스를 할 줄 안다는 증거를 대기 위한, 철없고 약간은 순수한
행동이었지만, 누나는 확실히 자기가 더 프로라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 주기 위해,
내 목을 끌어 안고 입술과 입술에 약간의 틈이라도 주지 않기 위해 힘껏 끌어당겼
고, 목에 감겨진 누나의 얇은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남자인 내가 리드
를 해야 쪽팔리지 안다는 생각에, 이래뵈도 아다가 아니라는 것을 누나에게 보여주
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누나의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현재 누나
의 키는 170정도로 힐을 신고 마주서면 나와 키가 똑같다. 그러니 그때 당시엔 나보
다 키도 크고 허벅지도 얇고길쭉했기에, 맨날 친구들하고 또래의 지지배들 꼬셔서
술먹이고 따먹고 하던 기분하고는 확실히 틀렸고, 마치 어른과 키스를 한다는 기분
이 들었었다.
그렇게 누나가 한번불어주고, 그 다음엔 내가 담배를 쪽 빨아서 불어 넣어주고,
세 번째 누나가 다시 연기를 불어 넣어줄땐, 누나의 뾰족한 혀가 먼저 내 입속으로
담배연기와 함께 쑤욱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의 혓바닥에 있는 쌉사름한 담배
맛을 다 빨아먹기 위해 숨이 벅차 오를 때가지 혀를 감아 돌려주며 키스를 하였다.
한참을 할딱거리며 서로의 혀를 빨아먹다가, 자연스럽게 누나는 입술을 내 목덜미
부근으로 가져가더니 귓볼부터 시작해서 빨아 주었다. 귓구멍 깁숙히 혓바닥을 쑤셔
넣고는 누나의 침을 흘려 넣어 줬다. 우리 누나는 목이 참 길다. 난 누나의 목을 빨아
주면서 확실히 어린애들하고는 틀리다는것을 느꼈다. "쪼가리 남기지마..." 누나는
목을 대주면서도 자국이 남을까봐 걱정한 모양이다.
그렇게 한바탕 후루룩 쩝쩝을 한 후에 우리는 담배를 같이 붙혀 물었다.
연기를 후...뿜던 누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사까시도 해줄까?"
하지만 누나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 들어있던지라, 나는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시발, 양아치냐?..차라리 방을 잡던지..."하며 받아쳤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누나는 손수건에 물을 적셔 와서는 내 입술이랑 귓구멍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난 자지를 딱아줄려고 그러는줄 알고는 살짝 놀랬었다..
저녁에 친구녀석들을 만나 쭉쭉빵빵한 우리누나를 자랑하기 위해 약속을 해 놓았던
나는 누나와 함께 카페를 나서서 이대입구의 먹자골먹으로 향했다..-2편에 계속-
소라의 가이드를 접한 지도 벌써 꽤 된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주 관심사는 근친에 관한 내용들이었고,
여러 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해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이 글은 한치의
거짓도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힘으로써,
근친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그 실체에 대한 이정표를 드리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고향은 경기도 평택이지만, 조선소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포항에 살았었다..
평택에는 할머니와 삼촌이 사시기 때문에, 늘 방학이면 평택에 가곤 했다.
방학이 되어서 시골에 갈 때면 나의 마음은 항상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나보다 3살 많은 사촌누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성격이 아주 별났다. 오랜만에 내가 가면 나를 이끌고 이리저리 동네를 싸돌
아 다니며 사고를 쳤다. 함께 새총을 만들어 놀다가 동내 아이들 머리를 빵꾸낸 일이
며, 개구리를잡 아다가 뒷다리를 튀겨 먹던 일, 명절 땐 밤새도록 화약총과 폭음탄
을 터트리며 온 동내를 시끄럽게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는둥, 누나와 나는 한번 만나
면 그야말로 죽이 잘 맞는 친구처럼 장난을 치고 다녔었다.. 그리고 몇 년후, 포항에
서 회사를 다니시던 아버지가 회사에서 부하직원과의 시비 끝에 폭행을 행사하셨
고, 그 때문에 회사를 사직하셨다. 부모님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서울로 이주를 하셨
으며, 나는 평택의 할머니 댁에 잠시 맏겨지게 된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였다. 누나와 한 집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행복이었고, 약 6개월 동안 함
께 생활했던 그 시절이 누나에 대한 연민이 싹트게 된 출발점이었던것 같다..
그 당시 롤라 스케이트장이 유행이었고,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누나는 나를 데리
고 롤라장을 많이 데리고 갔으며, 당시 박남정 노래만 계속 틀어주던 시골 롤라장에
서 누나와 손을 잡고 뒤로 타는 법을 배우며, 누나의 롤라 스케이트에 열쇠고리등 이
것저것 주렁주렁 장식을하며 낄낄거리곤 했었다..
그럭저럭 시골에서의 생활이 지나가고, 6개월 후...서울로 가신 부모님들은 어느 정
도 자리를 잡으셨는지 나를 불러 올리셨다. 한창 사춘기 때 이리 저리 전학을 하면
서, 나 역시 공부와는 멀어지며, 점점 날라리가 되어갔다. 평택에서 누나덕분에 재미
를 붙인 롤라를 타러 다니면서 날라리 친구들을 사귀며, 싸움박질도 하면서 남들처
럼 정상적(?)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고3이었던 누나가 중3인 동생을 보고싶어서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
었고, 우리는 신촌의 한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1년만에 누나는 많이 망가져 있었
다..완전 양아치 였다.. 어른이 되고싶어 발버둥치는 그런...한 껏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에 구두에...
당시의 대화 주제는 서로 자기가 동네에서 더 잘나간다는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
던 것 같다. 컴컴하고 칸막이된 카페에서 우리는 돈까스를 시켜서 밥도 먹고 후식으
로 커피도 마시며, 서로 맞담배도 피며 껄렁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화제
중 하나는 담배키스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도 지지 않을세라 담배키스에 관한 내가
아는 지식과 동네 지지배들과 해본 경험담을 자랑한 기억이 난다. 물론 누나도 지지
않을세라 나에게 잘난 척을 했고... 그리고 잠시후...우리는 두 입술이 포게어 져서
할딱거리며 담배연기를 서로의 폐 깊숙히 불어 넣어 주는 행동을 3차례 정도 하게 된
다..그때는 서로 담배키스를 할 줄 안다는 증거를 대기 위한, 철없고 약간은 순수한
행동이었지만, 누나는 확실히 자기가 더 프로라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 주기 위해,
내 목을 끌어 안고 입술과 입술에 약간의 틈이라도 주지 않기 위해 힘껏 끌어당겼
고, 목에 감겨진 누나의 얇은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남자인 내가 리드
를 해야 쪽팔리지 안다는 생각에, 이래뵈도 아다가 아니라는 것을 누나에게 보여주
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누나의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현재 누나
의 키는 170정도로 힐을 신고 마주서면 나와 키가 똑같다. 그러니 그때 당시엔 나보
다 키도 크고 허벅지도 얇고길쭉했기에, 맨날 친구들하고 또래의 지지배들 꼬셔서
술먹이고 따먹고 하던 기분하고는 확실히 틀렸고, 마치 어른과 키스를 한다는 기분
이 들었었다.
그렇게 누나가 한번불어주고, 그 다음엔 내가 담배를 쪽 빨아서 불어 넣어주고,
세 번째 누나가 다시 연기를 불어 넣어줄땐, 누나의 뾰족한 혀가 먼저 내 입속으로
담배연기와 함께 쑤욱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의 혓바닥에 있는 쌉사름한 담배
맛을 다 빨아먹기 위해 숨이 벅차 오를 때가지 혀를 감아 돌려주며 키스를 하였다.
한참을 할딱거리며 서로의 혀를 빨아먹다가, 자연스럽게 누나는 입술을 내 목덜미
부근으로 가져가더니 귓볼부터 시작해서 빨아 주었다. 귓구멍 깁숙히 혓바닥을 쑤셔
넣고는 누나의 침을 흘려 넣어 줬다. 우리 누나는 목이 참 길다. 난 누나의 목을 빨아
주면서 확실히 어린애들하고는 틀리다는것을 느꼈다. "쪼가리 남기지마..." 누나는
목을 대주면서도 자국이 남을까봐 걱정한 모양이다.
그렇게 한바탕 후루룩 쩝쩝을 한 후에 우리는 담배를 같이 붙혀 물었다.
연기를 후...뿜던 누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사까시도 해줄까?"
하지만 누나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 들어있던지라, 나는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시발, 양아치냐?..차라리 방을 잡던지..."하며 받아쳤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누나는 손수건에 물을 적셔 와서는 내 입술이랑 귓구멍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난 자지를 딱아줄려고 그러는줄 알고는 살짝 놀랬었다..
저녁에 친구녀석들을 만나 쭉쭉빵빵한 우리누나를 자랑하기 위해 약속을 해 놓았던
나는 누나와 함께 카페를 나서서 이대입구의 먹자골먹으로 향했다..-2편에 계속-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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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 2024-09-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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