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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36 958회 0건
야수... (2)
2.
혼자 눈을 뜨고나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였기도 했지만 내가 깨어난 곳이 낮선데라는 이유도 있었다. 싸구려 러브호텔.... 원색적이고 야한 티가 나는 인테리어와 방한가운데를 차지하고있는 이 침대로 알수 있었다. 나는 이런곳에서 나 혼자 자고 있었다는 것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왜 러브호텔에 들어오게 됐는지를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동안 씨름했다. 정신없이 욱씬거리는 머리 속에서 떠오른 기억은... 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겨질대로 구겨진 침대 이부자리와 인간의 체액냄새.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걸 어쩌지..."
그제서야 내 허리와 자지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술마시다 술집아가씨 하나를 끌고나와 해버린 모양이다. 필름이 끊겨 어쩔수 없었다 해도 상당한 액수가 깨졌을 거라는건 안봐도 비디오였다.
"어허..."
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내 이외의 여자와 잠자리를 한적이 없다. 그럴 기회는 많았었지만 난 그때마다 아내에게 충실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지금 그걸 깨버린 것이다. 아내에게 무슨 낮으로 고개를 들지 나는 뼈속 깊이 뉘우치며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빌고 또 빌었다.
"아무래도 이일은 비밀로 해야겠군... 그나저나 어제 그 아가씨는 상당했어. 젊었던 것 같은데.. 글구 나도 아직은 쌩쌩하군. 후훗!!....여보 미안해..."
나는 담배 하나를 피워물며 어제의 광란의 시간을 떠올렸다. 기억은 내가 지금 내뱉는 담배 연기처럼 흐릿했지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순식간에 자지가 꿋꿋해져 아파왔다. 나는 마치 변태처럼 씨익 웃으며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꽁초를 버리기 위해 재떨이를 찾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리던 나는 문득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회사!! 지각도 보통지각이 아니었다. 정확히 5분뒤 나는 미친사람처럼 러브호텔을 튀어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병원 영안실 앞 의자에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병원안에 마련된 분향실에서 아내의 우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극도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 나는 홀로 앉아 있었다. 마치 머릿속의 핀이 티잉하고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가슴이 욱씬댄다. 아프고 간지럽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딸아이가 죽었다는데 나라는 놈은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왜 이럴까? 왜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염없이 내리는 눈처럼 그렇게 감정이 꾹꾹 쌓여지고 얼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5시간을 앉아 있었다.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쌍판의 의사가 말하길 선영이는 약 3시에서 4시사이에 욕조에 물을 채우고 칼로 손목을 끊었다고 했다. 후에 간단한 옷가지들을 챙기러 집에 가보니 욕조엔 선영이의 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인은 출혈과다. 그리고 위에서 다량의 수면제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선영이는 손목을 끊지 못하는 것을 대비해 먼저 수면제부터 복용한 것이었다. 치밀한 자살계획... 유서는 없었지만 분명한 자살이었다. 경찰도 그렇게 결론짓고 간단하게 끝냈다.
푸른 빛의 영안실 내부... 뼈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지옥의 추위가 이럴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는 여러차례 실신하여 링거를 맞으며 입원해있다. 직원은 익숙한 솜씨로 시신 보관용 냉장고문을 열고 시신을 꺼냈다.
"시간은 일분입니다."
직원은 그말을 하고 영안실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나는 영안실 안에 선영이와 단둘이 남게 됐다. 나는 아주 천천히 선영이에게로 다가갔다.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선영이를 덮고 있는 천을 들어올려 치웠다. 새하얀 얼굴로 내 딸은 거기 누워있었다. 살아있을때와 다를바없이 아름다운 모습. 선영이는 아내를 닮았다. 어려서부터 주위로부터 예쁘다는 칭찬을 달고 살정도로 예쁘고 귀여운 아이였다. 거절했지만 모델제의도 있었다. 자랑스런 딸이었다. 내게 시집온다던 말을 장난처럼 하던 내 딸. 그 아이가 이렇게 싸늘하게 누워있다. 나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 선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선영이의 육체는 막피우기 시작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나오지가 않았다. 그제서야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3.
어찌됐든 남겨진 자들은 살아야 한다. 나는 주위에 딸의 죽음을 알렸다. 아내가 몸져누웠기 때문에 나는 딸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녔다. 선영이는 화장시키기로 했다. 6월 17일... 딸의 시신을 싣고 영구차로 가는 나는 멍하니 있었다. 선영이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선영이가 죽어가고 있던 시간에 나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분탕질을 치고 있었다. 나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자신이 한없이 벌레처럼 느껴졌다. 관이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푸른하늘에 뭉게구름 하나 떠있고 바람이 분다. 여름 초입이지만 햇볕도 그리 따갑지는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노라니 지난 3일동안 뒤죽박죽이었던 머리가 차곡차곡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 3일동아 병원에 딸의 분향실을 놓았었다. 그런데 선영이의 학교친구들이라고는 단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나는 학교에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도 선영이의 담임이라는 작자만이 찾아왔을 뿐이다. 너무 이상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단 한명도 딸의 분향소에 찾아오지 않다니.... 그때 내 머릿속에는 희끄무레한 의혹같은것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아내와 나 단둘이 있으면 30평 아파트는 휑하니 넓어 보였다. 그만큼 선영이의 존재가 우리 부부에게는 컸던 것이리라. 아내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누워만 지냈고 매일 울었다. 나는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선영이가 죽은 후 대부분의 집안일은 내가 하게 되었다. 아내는 베란다에 키우던 꽃들에게도 물을 주지 않고 죽여버렸다. 나 역시 화사한 꽃들을 바라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선영이의 방은 살아있을 때 그대로 놔두었다. 아내가 그것을 원했고 아내는 선영이의 방안에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선영이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무서웠다. 한심했던 자신을 한없이 자책했다. 그리고 며칠 뒤 새벽 내가 곤히 잠든 사이 아내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딸의 자살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 뒤따라 자살." 아내의 죽음은 신문 한구석 아주 조그맣게 실렸다. 아내도 역시 화장을 했다. 아직 선영이의 재도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는 아내와 딸의 골분이 있게 되었다.
아내의 화장 직후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사표를 수리하면서 부장은 나에게 맘에도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 내 모습은 완전히 실성한 사람이었다. 수염은 텁수룩했고 머리는 어느새 반백이 되버렸다. 20년간의 회사생활의 댓가는 꽤 짭짤했다. 나는 그날밤 독하디 독한 위스키를 몇병이나 스트레이트로 들이켰다. 술에 약한 나였지만 마실수록 마실수록 정신은 또렷해졌다. "왜니...? 왜 죽었니...." 불도 켜지 않은 채 나는 거실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마셔댔다. 그리고 대답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물었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지경이었다. 감정이 마비된 듯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은채 의미없는 고함을 질렀다.

4.
며칠동안 술을 마시며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했다. 나는 10여가지의 자살방법을 늘어놓고 어떤 방법이 제일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 일주일쯤 고민했을까 나는 격렬한 복통을 느겼고 병원을 찾아갔다. 검사는 복잡했지만 결과는 간단했다. 위암2기 얼른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햇병아리처럼 보이는 의사가 나불댔다.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병원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젠 어떻게 자살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군...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면 돼잖아."
이상하게도 전혀 무섭다거나 위기감같은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웃은일이 없었다. 나는 어느새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엉망으로 어질러진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시기만해서 집안이 온통 술병 천지였다. 치우던 도중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외판원이겠거니 하며 도어 스코프를 확인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왠 여자애가 문 밖에 서있어 나는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학생...?"
"안녕..하세요.... 선영이 아버님..이신가요?"
여자아이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왔다.
"...맞는데 학생은 선영이의 친구인가?"
물어본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집안으로 들였다. 교복이 잘어울리는 단정한 외모의 아이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아이가 입은 교복은 선영이네 학교의 교복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순간적으로 아차했다. 집안은 아직 치우던 술병과 쓰레기들로 엉망이었다.
"저... 집안이 좀 어지럽지..?"
"아뇨..."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고민하다 선영이방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여기가 선영이.... 방이다"
나는 약간 떨렸다. 선영이가 죽은 뒤 선영이방에 들어서는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대로다. 예쁜색의 벽지나 몇몇 유명 연예인들 사진과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는 것이나 또래의 여자애들과 다를게 없는 방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방의 주인은 없다. 나는 먼저 방안으로 성큼성큼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앉은뒤 따라들어오는 선영이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선영이가 죽은 건 알고있을테고 와줘서 고맙구나. 그런데 뭐 때문에 온거지?"
"선영이의 학교 물건... 그리고 편지랑 일기...돌려주려고요..."
선영이의 학교물건. 그러고 보니 선영이 물건을 가져가라는 전화가 학교에서 왔었는데 깜박하고 있었다.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미안하게 됐구나... 선영이랑은 친했니? 그리고 아직 이름을..."
"아!! 죄송해요.. 제 이름은 오지연이고... 선영이랑 같은 반이...었어요."
예의 바른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안할것까지야... 지연이한테는 내거 더 고맙구나. 그런데 선영이랑은 친했니?"
나는 한동안 지연이와 얘기를 나눴다. 조금이나마 집안이 밝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만류하는데도 지연이는 내가 집안을 치우는 걸 도와주었다.
"저... 아저씨. 굉장히 피곤해 보이시는데 제가 도와드릴께요."
지연이는 성의있게 내가 청소를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좋은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쓰레기가 많았던터라 손이 늘어났음에도 한참 걸렸다. 청소가 모두 끝나고 쓰레기 봉투들을 처리하고 온후 한숨을 돌리며 나는 지연이에게 말했다. 저녘때가 가까웠는지라.
"이거 미안하구나... 맛있는거 시켜줄테니 먹고 가거라."
"그러고보니 선영이 어머니께서 안보이시네요. 어디 가셨나요."
지연이는 아내에 대해 물어왔다. 지연이는 선영이가 살아있을 때 우리집에 자주 놀러온 듯 했다. 아내를 잘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담담하고도 차갑게 말했다.
"죽었지..."
"예!? 죄송해요!! 그,그런... 언제...."
나는 아내의 자살에 대해 간단히 말해 주었다. 지연이의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을 관찰하며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
"뭐시켜줄까? 짜장면? 피자?"
나는 침울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지연이에게 물었다.
"아저씨... 그러면 그동안 뭐 드시고 사셨어요?"
"뭐?"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내가 죽은 이후로 술과 어설픈 안주로만 먹고 살았다. 지금 내 얼굴이 사람의 얼굴일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
"나가죠! 우리 쇼핑해요."
이건 또 무슨 소리....? 황당해하는 날 끌고 지연이는 근처의 대형마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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