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스산 하게 불어온 날 .금새 하늘이 어두워 지고 빗줄기 다발을 안고 있는 구름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조금씩 밀려온 날 . 사람들은 평소 때와 같은 생활을 살고 있었지만, 가슴 한 곳으로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가라 앉히려 할수록 더 큰 소리를 내고 조금씩 제 살을 파고드는 불안을 느낀다. 어둠이 가진 악처럼, 자신의 몸 안에 신경 조차 통제 하지 못하고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여 지는 그대로 몸을 내 던지고 , 내가 가진 것이 모두 껍데기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 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기운을 얻어간다.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어느 시간엔가 그 시간은 결코 존재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고 도시는 검게 그을려지고 천둥이 갑작 스럽게 호통을 치고 사라진다. 천둥마저 두려워 하고 있는 것. 그것을, 그것의 존재가 너무나 크고 거대한 몸집으로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져 숨을 못 쉴 만큼 목을 죄어 온다.
오페라 공연이 있었던 밤이였다. 악을 지키는 수호신 악녀의 마지막 비수를 맞은 관객들은 오페라 극장을 떠나지 못했다. 막이 내렸을 때에도 지금 몸 속으로 기어 든 악령의 심장을 목구멍으로 쳐 넣는 다는 아찔한 생각을 하며 한동안 그 좌석 그대로 앉아 동공이 심각하게 풀린 눈동자로 넋을 잃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오늘 오페라를 준비한 사람들의 물결이 이루고 그제서야 관객들은 뒷 편 오른쪽 끝과 왼 쪽 가장자리에 위치란 출입구를 통해 하나 둘 씩 빠져 나갔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린 비좁은 출구를 빠져 나온 사람들은 극장 안에서 느낀 어둠을 밖에 나와서도 느끼고 있었다. 저녁 시간에 갑자기 찾아든 굵은 빗방울 , 오늘 아침 기상예보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던 난데 없이 나타난 두려울 만큼 어두운 밤 하늘과 소리를 꼭 맞추어 땅에 찾아든 굵은 빗줄기에 사람들은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내고 중앙 현관에 모여 창 밖에 내리는 빗줄기가 빨리 그치기 만을 다소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0분 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전영은 절망적인 눈빛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밖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빗 속을 향해 뛰어 갔다. 이처럼 온 몸이 따갑고 무거운 강한 빗줄기는 처음 이였다. 그래서 주차장으로 뛰어 가다가 비를 어떻게 다소나마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주차장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영은 겉옷이 다 젖어 속옷까지 축축해진 자신의 몸을 차 안에 밀어 넣고나서 문을 다고 히터를 가동 하였다. 그리고 나서 , 차를 몰았다. 시간대가 원래 붐비는 때 인데다가 갑작스런 비로인해 차는 계속 막혔다. 문득 가까운 곳에 혼자 기거하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급하게 차를 돌려 곧장 그 곳으로 향했다.
전영의 어머니인 윤숙은 늘 하던대로 저녁 식사를 일찍 끝내고 머리를 매만지기 위해 안방 커다란 침대 옆에 있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활력이 있고 심도있는 아름다움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신경질적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외면했다. 항상 보아도 똑같은 얼굴은 자신을 신비롭게 여기는 그녀에게 비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 이였다. 그 때 머리를 풀어 내렸다. 단정하게 올린 머리가 출렁이며 어깨보다 조금 아래까지 흘러 내려왔다.
목선을 자극하는 그녀의 머릿결은 그녀의 매력을 한층배가 시켰다. 윤숙은 화장대 밑의 보석함을 꺼내 그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목걸이를 하나씩 꺼내어 자신의 목에 걸었다가 또다시 놓았다. 결국 맘에 든 것은 매일 목에 하고 아침부터 자신의 목에 있었던 금실 목걸이 였다. 보석함 속에 있는 목걸이 중에서 값어치가 제일 나가지 않는것이 그 목걸이 였는데,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의 손으로 사지 않은 것이 그 목걸이 였다. 그녀는 보석함을 다시 제자리로 밀어 넣고 거실에 나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