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화
"모이아, 레나!"
"엘레제 언니..."
말발굽소리의 정체는 엘레제가 구해온 마차였다. 보석 한 개로 마부까지 매수(?)해 온 엘레제는 운 좋겠도 담을 막 넘어온 레나 일행과 만난 것이었다.
엘레제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을 한 것은 모이아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도 밝을 수는 없었다. 엘레제는 다급하게 우선 일행들을 마차에 태웠다.
"빨리 올라타! 병사들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 언니... 가, 가일님이... .. 주인님이...."
레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우선 타기나 해! 웬만한 상처라면 내가 치료할 수 있어."
재촉하는 엘레제의 말에 모두들 그제서야 마차에 몸을 실었다.
"이랴!"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자 마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엘레제 언니... 주인님이... 상처가 너무 깊으셔.."
레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걱정과 슬픔이 가득했다.
"다 저 때문 이예요.. 괜히 제가 따라나와서..."
세이나는 자기 때문이라며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걱정마.. 내가 사제라고. 애초에 가일님이 다치실 건 어느 정도 예상했잖아... 설사 죽기 직전이라고 해도 내가 살려낼 거야! 걱정하지 말라구!... 꼭... 가일님을 살려낼 거야.... ..."
모두를 위로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건지... 엘레제의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일단 마차를 탔으니까 무거운 갑옷을 걸친 경비들은 쫓아오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이대로 세네를 빠져나가려 했다간 가일님이..."
모이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러자 엘레제가 신성력을 발현해서 모두에게 축복을 걸어주고, 가일에게 약간의 회복마법을 걸어주면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마차로 시선을 끄는 거야. 우리는 이 마차에서 몰래 빠져나가서 그 여관으로 돌아가자. 가일님의 상처를 치료해야해... 마부 아저씨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어. 전력으로 달려서 세네시 입구까지 간 다음에, 마차를 그대로 버린다고 하셨으니까...."
엘레제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달리고 있는 마차의 문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졌다. 엘레제가 가일의 손을 잡아 계속해서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작게 소곤거렸다.
"주인님... 돌아가시면 안돼요..."

"모두 내리자."
엘레제가 말하자 자연스럽게 마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들은 축복으로 강화된 몸을 움직여서 여관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들은 무사히 여관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피곤한 몸을 채찍질 해 가며 엘레제는 가일의 회복에 전념했다. 결국 그녀는 온 몸의 신성력을 모두 뽑아내고 탈진해 쓰러졌다.

신성력을 이용한 회복마법은, 사람의 회복능력을 극대화, 회복 속도를 초 고속화시키는 방법으로 사람을 치료한다. 만약 다친 사람이 살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회복속도도 그 효과도 더 뛰어난 것이다.
엘레제가 모든 신성력을 쏟아 부었지만, 가일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모든 상처는 치료한 듯 보이지만, 제아무리 신성마법이라도 사람이 사용하는 이상 한계가 있었다. 바로 "피"를 보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엘레제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상처는 회복되었고 피부도 흉터 없이 깔끔해 졌지만, 출혈이 너무 심했던 가일은 아직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벌써 이틀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이틀동안 가일이 깨어나지 않았지만, 그 공백은 너무 컸다. 단 며칠 사이에 미인 넷을 거느리게된(?) 가일이지만, 그 며칠사이에 그녀들에게 이미 가일은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제인 그녀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가일은 죽지 않은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의 큰 부상이라는 것을..

"가일님... 가일님.. ...."
남은 것은 가일의, 정말 가일 스스로의 회복력 뿐... 엘레제는 가일이 자고 있는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눈도 꼭 감고 조용히 가일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가일님... 제발 일어나세요... ... 주인님. .... 주인님.. .... 일어나 주시기만 한다면 ... ..... 일나만 주신다면..... ..."
엘레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부끄러운 말이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할 말이 가슴속에서만 맴돌았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가일의 회복일 뿐.. 그녀는 다시 간절한 소망을 담아 가일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가일님... 일어나 주신다면.... 가일님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할게요... ... 벗으라면 벗고.. .... 개가되라면 되겠어요.. ... 전 가일님의 노예니까요.. .... 제발..... 일어나만 주세요..."
엘레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데, 엘레제의 말에 대답을 하는 짓궂은 목소리가 있었다.
"그 말 정말이야?"
"그럼요.. ... 가일님만 일어나 주시면... 거리에 나가서 남자들에게 몸을 대주라고 해도 모두 대 주겠어요.. .... 일어나 주세요... ... 제발....."
다시 힘은 없지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엘레제 내가 대 주라면 남자들한테 진짜로 몸 대줄 거야? 난 그런 거 싫은데..."
"네?"
엉겁결에 대답했던 엘레제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엘레제가 바라보는 곳에는 침대 위에 앉아서 그녀에게 미소짓고있는 그녀의 주인님이 있었다.

"가... 가일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순수한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었다.
"언니.. 왜그래..? 어..!"
엘레제의 목소리가 컷기 때문일까? 침대 위에 잠들어 있던 모이아, 세이나, 레나들이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주인님...."
"가일님... ....일어나셨군요!"
그리고 그녀들 모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일은 막 일어나자 마자 그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자 오히려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내가 몇 달이나 잠들어 있었길래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 이틀이요.."
"엥? 겨우 이틀가지고? 하하.."
가일은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실 일이 아니예요 ... 숨도 미약하게 쉬시고.. 얼마나 걱정 했다구요.... 못 일어 나시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 가일님..."
가일은 엷게 미소지으며 그녀를 살짝 안아주었다.
"그래, 그래... 알았다구... 괜히 걱정을 끼쳤구나...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할게... 에구구... 내가 이젠 맘놓고 죽지도 못하겠군...."
가일의 장난 섞인 투덜거림에 오히려 지금까지 울고있던 모두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녀들은 웃으면서도 가일을 걱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일님... 그러니까 앞으론 절대로 이렇게 다치시면 안되요... 아셨죠?"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신 거예요?"
세이나가 가일이 다쳤던 부위를 살살 어루만지며 묻자, 가일이 한쪽 팔을 빙글빙글 돌려보더니 엘레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으음.. ... 어깨랑... 등이랑... 흐음... 아예 못 쓸 줄 알았더니만... 역시 엘레제의 치료는 굉장해. 괜히 사제가 아니라니까."
가일의 칭찬에 엘레제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저 혼자 치료 한 것도 아닌걸요... 모이아의 약이 없었다면 기력이 모자라서 피가 보충되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 그럼 모이아한테도 고맙다고 말해야겠는걸."
빙그레 미소지으며 모이아를 바라보는 가일의 얼굴이 그녀들이 볼 땐 너무나도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다.

가일의 환한 미소에 덩달아 다른 미녀들의 얼굴도 환하게 펴졌다. 이틀만에 방에 활기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