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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50 711회 0건
제 44화
"그쪽이야말로. 방 밖에서부터 내 존재가 드러났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어."
긴장을 풀기 위해서 일까? 상대방을 자극하려는 듯, 가일의 목소리는 비꼬는 듯한 톤이 되어 표출되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런 가일의 목소리는 신경 쓰지도 않는 듯, 몸을 살짝 돌리며 가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끌끌끌... 칭찬으로 받아주지.. 칭찬 겸.. 유언 겸 .. 해서 말이야..."
그 남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본 가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얼굴이 흉측하게 생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얼굴 표정이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무표정. 그 남자는 무표정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두 눈동자는 힘없이 풀려있는 것이, 제정신도 아닌 것 같았다.

"네 녀석이야 말로 누구냐?"
가일은 잽싸게 몸을 움직여서 세이나가 누워있는 침대와 그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외쳤다. 이 남자는 생각보다 강적이다..
"끌끌끌..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난 네 녀석을 보지 못하고 끝났을 터인데... 멍청하구나.. 일단 종적을 드러냈으니.. 살아나가긴 글렀어..."
"스윽.... 반짝.."
남자의 품안에서 여러 개의 단검이 흘러나와 남자의 양손에 들렸다. 어느새 그 남자의 양 손에는 7,8개의 단검 들려 있었다.
양팔을 가슴높이에서 교차시켜 들고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이 정말 끔찍하다고 가일은 생각했다.
"왜 내 말에 대답은 않고 딴소리냐? 미리 말해두지만, 난 강하다."
약간 거만해 보일듯한, 아니, 어쩌면 오만해 보이는 듯한 말투. 그러나 그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였다.

"끌끌끌...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흥분하고 있잖아... 강한 녀석과 싸우는 건 즐거운 일이지.... 한 두 군데쯤 베이는 것도 괜찮고... 넌 느껴본 적 있니...? 상대방의 칼이 내 가슴을 꿰뚫을 때의 그 쾌감... 큭큭큭큭..
내 칼은 상대의 살을 벗겨 낼 때마다 나에게 속삭여... 더 많은 피를 달라고.... 그리고 나는 상대의 칼에게 속삭여... 내 몸을 해부해 버리라고. .... 끌끌끌끌..."
"미친놈."
가일은 단 한마디로 그 남자의 말을 씹어버렸다.
"끌끌끌.. 뭘... 보통이지.....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의식 전에 가벼운 운동이나 해 볼까..? 자네도 참가하지 않겠나..? 참가비는 네놈의 심장이다!"

"쇄애애액∼!"
그 남자가 뒤쪽으로 크게 뛰며 양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공기를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챙!"
그리고 곧 그 소리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원인 제공자는 단검이 날아들던 궤도에 자신의 검을 집어넣은 가일이었다.
"단검을 던지는 거냐? 의외로 소심한 공격이군..."
"끌끌끌... 오히려 이렇게 근접전 에선 내가 잘 피하기만 하면 더 까다로운 공격으로 변해버리지..."
그 남자는 계속해서 위치를 옮기며, 들고있던 검을 하나하나 가일에게 뿌렸다. 검과 단검이라면, 먼 거리에서부터 견제하며 일정거리에서 순식간에 접근해서 상대방의 목을 따버리는 것이 검사의 전술이겠지만, 세이나의 방안이 넓다고는 해도 운동장이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워낙에 거리가 가까우니, 빠른 손놀림으로 뿌려대는 단검에 가일은 계속해서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오히려 단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가일의 검이 움직임이 거추장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아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날아드는 단검들을 긴 검으로 쳐내는 가일이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래서는 끝이 나지 않겠군.."
가일이 중얼거렸다.
"아니. 곧 끝날거야. 너의 패배로... 킥..."
미친 듯이 헤죽 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가일은 싸울 의욕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 괴한의 공격도 단조롭기 그지없고, 살기라든가 하는걸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장난을 치는 듯 한...
그 남자는 단검을 던진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거리"의 이점을 살려 가일이 접근하는 것만을 저지하고 있었다. 직접 부딪혀본 가일이 장담하건데, 지금껏 견제구(?)는 있었지만, 스트라이크는 단 한 개도 없었다.
가일의 팔, 다리를 노리고 날아든 것은 있어도, 심장이나, 머리같은 급소를 노리고 날아온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한 것은 가일이었다.

"젠장! 장난하자는 거냐? 지금 나랑 싸우려는 의향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진심으로 싸울 의향이 없다면 그만 꺼져!"
자신도 모르게 가일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오히려 방 밖에서 인기척을 느꼈을 때 잔뜩 긴장한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상대편은 사라질 의도가 없는 것 같았다.
"끌끌끌.. ... 싫은데.. 네놈이 날 본 이상 네 목은 가져가야겠어..."
"이 자식이... 그래도...."
쓸데없이 만용을 부리는 것 같은 태도가 가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넌 한 대 맞고 끝날 거 특별히 두 방에 보내주마."
그리고 가일의 검에 푸르스름하게 검기가 맺혔다. 가진 내공의 양이 많지는 않아서 오래 동안 끌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일이, 검기를 맺힘과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끌끌끌... 한가지 방심한 게 있구나.... ..."
"멈칫.."
그저 살짝 스치듯 지나간, 마치 중얼거림처럼 들린 말이 가일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가일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찝찝한 느낌이 그의 몸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괴한의 몸이 가일의 몸 쪽으로 바짝 붙었다. 어느샌가 그 양 손에는 단검 두 개가 날을 세우고 가일을 물기 위한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큭...."
가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자그마한 단검이 가일의 배와 옆구리에 정확하게 틀어박힌 것이다. 지금까지 움직임과는 다르게 놀랍도록 빠른 몸놀림이었다.
지금까지의 실력과 몸놀림이 전력을 내보인 것이라고 방심해 있던 가일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다.
얼굴가득 악귀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뱉는 남자의 중얼거림이 가일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난 항상 내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단다.. 끌끌끌... 모름지기 검사라면 방심해서는 안되는 법이지... 끌끌끌..."
"큭... 너야말로.. .... 너무 오래 붙어있는 것... 같은데...?"
"뭣이?!!"
가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서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일의 검에 검기가 맺히고.. 상대방과 격돌...
단검이 박히고... 괴한의 몸이 둘로 갈라지기까지..
자신의 옆구리와 배에 박혀있던 단검을 손으로 뽑아내며 가일의 혼잣말이 절반으로 쪼개진 시체 위를 덮었다.
"크흑.. ... 헉... 헉... .. 난 아직 죽지 않았어.. 너야말로 고작 단검 두 개 박아놓고... 너무 방심한 거 아니야? 헉... 쿨럭!..."
기침과 함께 가일의 입에서 붉은 피가 튀었다. 가일은 배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저항하며 세이나 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누워있던 세이나가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을 꼭 감고 겁에 질려 떨고있던 세이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가일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가, 가일님!"
"크흡.. .... 걱정하지 마... 별 거 아니니까... 실력은 나보다 조금 떨어지는 놈이었는데... 방심해서 그래..."
가일이 세이나를 달래기 위해서 그렇게 말 하기는 했지만, 절대로 별거 아닐 수가 없었다. 상대의 실력은 가일과 막상막하였었던 것이다. 때문에 자신도 칼침 두 방을 내 주고 상대의 몸을 벨 수 있었던 것이었다.

가일에게 유리했던 것이라고는 검기가 맺혀 훨씬 더 날카로운 무기와, 내공 덕에 날렵한 몸놀림, 그 두 가지가 다였다. 아니, 몸의 움직임은 가일과 그 남자가 서로 엇비슷해 보였다. 그것도 모든 기를 끌어올린 상태의 속도와....
순전히, 상대의 방심과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검기의 존재가 가일을 승리로 이끈 것이었다.
정말이지 가일은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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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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