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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50 689회 0건
제 48화
대치상태의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녹색의 피와 각종 하급, 중급, 심지어 상급몬스터로 추측되는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짙은 피 냄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두 사내였다.

한 사내는 칼에 몸을 기댄 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그 전신은 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히 그 사내의 허리에서 약3cm 정도 윗 부분에는 단검 한 자루가 손잡이만 남기고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내는 수염을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기른 노인이었는데, 왼손엔 지팡이를, 오른손엔 한 손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의 몸엔 오른쪽 팔에서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기다란 검상이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입고 있음에도 그 수염 노인의 기도가 얼마나 음침하고 으스스한 지, 마치 주변의 공기를 차갑고 칙칙하게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그 검은 수염의 노인이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살짝 핥으며 생긴 것만큼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크큭..... 드디어 내가 자네 죽는 꼴을 보는구만...."
"쳇. 늙은이하고는. 이렇게 치사하게 날 쓰러뜨리는 주제에 그렇게 정정당당해 보여도 되는건가?"
"하하하하.... 이런이런... 몬스터들이 자네의 체력을 미리 쏙 빼놓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것 도 실력이라네. 억울하면 자네도 흑마법을 배웠어야지.."
조롱하는 듯한 말투. 온 몸이 엉망진창이 된 사내가 억울하다는 듯한 말투로 반박하였다.
"네 녀석이 언제 나한테 "마법 배워서 널 쓰러뜨려 주마" 라고 말한 적 있었나?"
"당연히 없었지. 유비무환. 미리미리 배워두지 않고 ... 쯧쯧..."

가엾다는 듯 혀를 차는 행동도, 으스스한 늙은이가 하자 마치 낄낄대는 악마의 비웃음 같이 들렸다.
"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구만... 쩝.. 죽을 땐 여자의 야들야들한 속살 맛을 보면서 죽자고 다짐했었는데... 야들야들은 커녕 몬스터들의 찝찝한 피 냄새나 맡으면서 가게 될 줄 누가 알았누..."
"무리하지 말라구...나도 내가 이렇게 까지 치사한 방법으로 나올 줄은 몰랐으니... 크큭.. 그래도 나도 상처를 입었지 않은가... 사실 내 계획은 티끌만한 상처 없이 네녀석을 밟아 주는거였는데 말이야... 덕분에 한동안은 "약" 제조에 차질이 있겠어...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으면 되지 않겠나..?"

"젠장.... 나도 한물 갔어..."
마치 툭 내던지듯 말을 내뱉은 사내의 몸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큭... 원래 흐름이란 게 다 그런 거라네... 강자는 더 새로운 강자에게 밀리게 되는게 이치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 않은가.. 크크큭... 그런 의미에서 자낸 너무 고여 있었구만... 큭큭큭...."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음침한 노인의 뒤편에서 또 다른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후드까지 깊이 눌러써 도저히 나이, 성별조차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사부님."
로브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의외로 미성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너무나도 으스스했다. 설혹 여자, 미녀라고 해도 그 분위기 때문에 남편에게 사랑받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오오.. 그래... 일은 어찌 되었느냐? 약의 효과는 어떻든? 이번 실험은 성공이더냐?"
마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장난감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의 표정같이 초롱초롱한(?!) 모습에 음침한 사내의 "제자로 추정되는" 자는 순간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윽.... 시도도 못해보고 실패했습니다. 라고 했다간 그대로 살해당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 큭..."
"그, 그게.. 이번에도 다른 시험들과 결과가 비슷했습니다. 효과가 일어날 듯 했지만, 전혀 였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요?"
음침한 노인은 제자의 대답이 완전한 거짓이라는 것도 모른채, 그 말을 믿는 것 같았다. 하긴... 시도도 못해봤던 어쨌던 실패한 건 사실이니까....
"흠.. 아쉽구나.. 이번엔 무슨 약의 조절을 잘못 한거지...? 뭐, 좋아. 그렇다면 어서 다음 실험지로 장소를 옮기자. 하지만, 한동안은 계획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지 못하겠구나.. 보다시피 상처가 상당해서 더 이상 "의식"을 진행시키기 힘들어... 뭐, 그렇지만 오늘은 내 생에 최대의 라이벌도 무너뜨린 경사스러운 날이니.... 큭큭.... "
"다행입니다. 드디어 첫 번째 소원을 이룩하셨군요."

얼굴 가득 음침한 미소를 띄고 있던 노인이,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자신의 제자에게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괜찮겠느냐? 이 녀석은 그래도 네 녀석의 첫 번째 사부 아니더냐. 내가 차마 아쉬워서 죽이지는 않았다만.... 단전이 파괴되었으니 앞으로 무공을 펼칠 수도 없이 힘겹게 살아야 할텐데도?"
"저자는 사부이기는 하지만, 옛 사부, 그리고 어머니의 원수 외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무능력한, 약하디 약한....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다 죽어 가는 사내를 바라보는 음침한 제자의 눈에서 불꽃이 이는 듯 했다. 그 소리를 죽어가던 사내도 들었는지, 그의 눈가에서 한방울 이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큭큭큭...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사실, 나도 이 녀석을 죽이고 싶지만, 좀더 나약해져서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며 죽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살려둔 것이란다.... 큭큭큭... 내가 지금 생각해도 제자 하나는 잘 구했어...
안그런가..? 이런.. 온 몸에 피 칠을 하고... 내 말이 들리기는 하는지 모르겠군....
제자야.. 가자.. 내가 너무 즐거워서 이 상처의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구나... 큭큭...
한 두 달간은 상처 회복도 겸해서 다음 실험지 에서 좀 쉬어야 겠구나.. 크크큭...
잘 있게나...... 친구.."

그리고 그 음침한 노인이 갑자기 왼손의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제자도 자신의 지팡이를 양손으로 들어올리고는 자신의 사부와 같이 마법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기운이여! 워프!"
"워프!"
두 사람이 동시에 시동어를 외치자, 순식간에 그 두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은 검에 몸을 기댄 채 간신히 주저앉아 있는 상처 입은 중년사내뿐이었다.
"큭... 쿨럭.... 현아..... 크윽.... 남궁 현.... 쿨럭, 쿨럭.... 이노...옴.... 어찌.... 어찌... 현이를.... ..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큭....
이 남궁혁.. 쉽게 물러 날줄 아느냐... 쿨럭.. 널 쫓아 여기까지 왔어.... 이곳까지.. 널 죽이기 위해 왔었다... 끅... ... 넌.... 날 살려둔 걸 후회하게 될 거다... ...
그때처럼.. 후회하게 해주마... 큭큭.... 혁우혈... 내게 가일이란 후계자가 있는건 몰랐나보군.... 쿨럭.. 내가... 반드시... 큭."
원한에 찬 목소리... 그의 옷은 온통 피로 물들어있었다. 그는 검을 자신의 앞에 꽂아 놓고,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가만히 앉아서 몸 하나 움직이지 않는 사내의 주변으로, 피냄새를 맡고 왔는지 서서히 사나운 야생 동물들과 몬스터 들이 모여들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서늘한 어느 날. 일명 "세네의 뒷동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새근..... 새근...... 새근...

햇빛이 방 안 가득 따스함과 온화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햇빛을 이불 삼아 방안에는 세 명의 아름다운 미녀와 한 명의 사내가 나체로 뒤엉켜 자고 있었다.
상당히 커다란 침대 중앙에 사내가 "차렷" 자세로 쓰러져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고, 좌 우로 한 명씩 아름다운 미녀 둘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사내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이 호강한 사내 녀석의 몸 위에는, 또 한 명의 보라 빛 머리카락의 미녀가 사내의 허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가슴에 머리를 파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미남 미녀들이 자고 있는 침대 바로 옆에서 햇살이 부서질 듯 매끄럽고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또 한 명의 미녀가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사내녀석인지... 부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주인님... ..."
깨어있는 미녀가 침대 위에서 자고있는 사내의 옆구리와 어깨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말이었다. 물론, 사내는 가일이고 깨어있는 미녀는 엘레제이다.
그녀는 세상 모른 채 자고있는 레나, 세이나, 모이아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가일의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가일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래도 제 때에 레나와 모이아가 가 줬기에 망정이지..."
깊은 한숨과 함께 엘레제의 정신은 이틀 전 밤, 메타라 남작의 저택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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