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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51 1,386회 0건
가일 여행기 제 26화
제 26화
"아, 엘레제? 여기요, 여기."
가일이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 신전에서 막 나와 두리번거리던 엘레제가 그제서야 가일을 발견하고 가일에게 다가왔다.
"가일씨..... 아, 안녕하세요."
엘레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가일 역시 느긋하게 앉아있던 신전 앞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같이 인사를 했다.

"하하... 또 뵙게 楹六?"
가일은 자신의 습관이 되어버린 뒷머리 긁적이기를 행동으로 실천하며 헤헤거렸다. 그런데, 가일은 어제와는 엘레제의 얼굴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얼라? 엘레제? 어디 아파요? 얼굴이 어딘가 좀 불편해 보여요."
"네? 아, 아무것도 아니 예요."
엘레제는 황급히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일의 말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색한" 미소... 가일이 아무리 둔해도 이렇게까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수가 없지 않은가?

"흐음... 역시.. 이상해... 엘레제, 혹시 지금 뭔가 고민이라도 있는거 아니예요?"
"네? 아.. 그, 그럴리가요..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예요."
과장된 몸짓으로 말하는 엘레제.. 역시 수상해 보인다. 하지만 엘레제도 엘레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잠깐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하루 전, 가일이 엘레제 앞에서 바로 사라진 후.]
아아.. 역시 작가의 힘은 위대하기도 하여라~! 어느새 시간은 반대로 걷고 걸어... 어제로 되돌아 왔구나!

"가일?"
엘레제는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가일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딜... 가는 거죠?"
엘레제의 뒷말은 먼지 속에 파묻혀 버렸다. 하지만, 엘레제는 불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지금 놓치면 가일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남자에게, 아니 사람에게서 이런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엘레제는 처음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것 이외에 오직 자신을 위해 신성력을 사용했다. 지금껏, 먼 길을 여행할 때에도, 보통 사제들이 사용하는 축복한번 걸어보지 않았던 엘레제가, 자신의 불길한 기분 때문에 신성력을 남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피아의 이름으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영광된 신의 권능.. 인간의 부서질 듯한 몸은 천사의 몸처럼 강인해 질 지어다.. 신의 축복.."
신성마법을 사용할때의 공통점 이라면.. 언제나 신의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세상을 창조한 "유피아"라는 말이 항상 들어간다는 점이다.... 물론, 아예 주문을 안 외울 수도 있다. 다만 그 신성마법은 효과가 약간 떨어지지만...

엘레제의 양쪽 손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마치 뱀처럼 엘레제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빛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더니 엘레제의 몸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가일... 어디에 있는거예요?"
엘레제는 신의 축복으로 인해 빨라진 다리와 엄청나게 향상된 안력을 이용해서 가일을 찾았다.
축복을 받는다고 따로 목소리가 커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은 모두가 잠든 밤인지라 가일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신의 이름이라는 것은 대단해서, 신의 능력 중 극히 제한된 일부만을 지상에 내려보내주는 "신성마법" 임에도 불구하고, 엘레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가일이 레나를 부르는 소리를 엘레제가 감지한 것이다.
"가일!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
가일이 여관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간 엘레제는, 가일을 부르려 했지만 중도에 그것을 포기해야 했다.
계단을 조심스레 (사람이 자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올라간 엘레제는, 모퉁이를 채 돌기도 전에 가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지옥의 악귀같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대며 분노하고 있는 가일의 모습을....

"헉.. .. 이.. 이게.... 사람이 낼 수 있는 기운이란 말이야.....?"
특별히 무술이라는 개념이 발달하지 못한 이 대륙에서는 살기로 상대의 움직임을 묶어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엘레제는 숨이 막힐듯한 공포가 자신의 몸을 옭아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가일 도대체 어떻.."
잔뜩 긴장한 채, 자그마한 목소리로 가일을 부르려 했지만, 가일은 엘레제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레나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가일이 무서운 기세로 어느 방안으로 들어갔고, 엘레제는 이상한 기운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방금 전의 무서운 체험으로 온 몸이 덜덜 떨리며 의지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여인의 흐느낌과 말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엘레제는 가일이, 들어갔던 문에서 웬 나체의 미인을 안고서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저런 미인도 있구나...."
엘레제는 자신이 여자임을 잠시 망각할 뻔했을 정도로 완전한 나신의 레나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모순된 것은, 엘레제 자신도 레나 못지 않은 미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사제가 질투도 할 수 있을까? 레나의 미모를 정면에서 본것도 아니고, 숨어서 힐끔 봤을뿐인데도, 웬지 엘레제는 그녀가 얄미웠다. 아니.. 얄미웠다기 보다는 부러웠다.
"가일씨의 품에 안겨있다니... ... 가일씨도 아무여자나 그렇게 덥썩덥썩 안아드는게 아니라구욧!"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엘레제의 마음속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엘레제는 다시금 가일에게 가서 말을 걸기 위해 가일이 들어간 방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방금전의 그 가일의 무서운 모습을 잊지 않고, 무척이나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겼기에, 신의 축복이 서서히 풀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발소리는 듣기가 매우 힘들었다.

비록 무술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철없는 가일이 언제나 내공을 끌어올리고 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앞에 있는 아름다운 미녀에게 정신이 집중된 터라, 그는 엘레제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신음소리...
"아아앙... .... 하악... .... 가이일.. ..... 아흑.. ...."
"뭐, 뭐야....?!"
엘레제는 레나의 비음을 듣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염색하고 말았다.

"이, 이런 것을 훔쳐보면 안된다구.."
엘레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진정 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크게 심호흡을 하려는데..
"두근.. 두근.. 두근.."

"헉.. 시, 심장소리는 또 왜 이렇게 큰거얏~! ...도, 돌아가자... ...돌아가야...."
엘레제는 이상하게 진정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살금살금 문 가까이로 다가가고 있었다..
"내,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는거야?! 엘레제.. 정신차려라... 정신!"
그리고는 살며시 활짝 열려진 방문을 통해 얼굴의 반만 빼꼼히 내밀고는 방안의 광경을 살펴보았다. -_-;

"헉! 지, 지금 도대체 뭘 하는....!"
엘레제의 얼굴이 막 폭발할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엘레제가 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방안에서는 두 명의 미남 미녀가 격렬한 정사를 벌이고 있었기에....

"아흐흑.. .... 아앙... ...... 가일.... .... 커.. .. 아아... ... 커요.. ... 아흑... ..."
레나의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행복에 겨운 목소리가 엘레제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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