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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52 633회 0건
가일 여행기
제 13화
"멋지다...."
레나의 시선은 지금 오우거와 맹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흔들렸고, 마치 빛이 담겨 있는 듯한 그의 검은, 오우거의 주위를 돌면서 번뜩이는 섬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오우거를 혼란시켜 놓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치 상황에 있을 땐, 그의 여자같은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여자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우거라는 상당히 강한 몬스터를 맞아 싸우면서도, 입가에 머물러 있는 미소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보여주었고,

레나에겐 그런 모습이 더더욱 멋진 모습으로 비쳐졌다.

백작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나, 빼어난 미모와 기품으로 지금껏 수많은 남자의 청혼을 받았었지만, 모두 다 신경 쓰지 않았었다. 남자라는 종족(?)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끌리는 남자를 보게 되었다.
19살의 레나. 세네로 여행을 가던 도중에 가일이라는 남자를 만나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의 정체는 뭘까?


"아가씨, 괜찮으신가요?"
전투가 끝나자 바로 레나에게 달려가 안부부터 묻는 마부 아저씨 였다. 마부 아저씨는 무척이나 걱정된다는 표정이었지만, 레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네? 아, 그럼요... 몬스터들은 이 근처에 오지도 않았는걸요."

얼굴에 미소까지 지으며 (약간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아무도 눈치채는 이는 없었다.)말하는 레나를 보며 가일은 웬지 오한이 들었다.
"윽.... 레나씨는 지금 이곳에 널려있는 핏자국 같은 게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매일같이 몬스터를 베었던 나조차도 아직 완전히는 익숙해지지 못했는데..."
방금 전 말 그대로 피가 튀기는 혈전을 보고도, 레나는 마치 옆집 불구경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레나는 레나 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 마차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그냥 단순한 동정심이었지만, 지금은 약간의 변수가 작용되어, 겉으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지금 그녀의 가슴은 심하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지금 가일은 정말 꼴불견으로 보일 정도로 웃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레나가 아까 전 몬스터와의 전투가 있었던 이후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일씨, 방금 보니까 저 호위하시는 분보다 더 실력이 좋으신 것 같던데요..."
"네? 아, 아니 예요... 무슨 그런 말씀을... 그저 여기 저기서 주워먹은 것뿐인데요 뭐..."
가일이 쑥쓰러워 하면서 겸손을 떨자, 말을 몰고 있던 마부가 가일에게 한 마디 하였다.

"이봐,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오우거랑 1 : 1로 싸워서 이긴 정도면 충분 하다구. 자네, 혹시 우리 아가씨 호위직 할 생각은 없나?"
마부 아저씨의 말에 가일은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뇨,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워낙 촌에서만 지내다 보니까.. 세상 구경도 할 겸 나왔는데, 벌써부터 어딘가에 묶여서 지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죠."

"허허.... 그래?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강요하기도 뭐하군...."
마부는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말했지만, 극구 사양하는 가일을 보는 레나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마차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 갔고, 어느새 세네의 성벽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도달하였다.
"우와... 저기가 세네인가요?"
가일은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건축물(성벽) 에 넋을 잃고 말았다. 깊은 산 속에서 내려다 봐봤자, 세네는 언제나 장난감 같은 크기로 보였었다.

"그래요, 저는 이곳으로 관광차 온 것이죠."
"야..... 정말 크네요.."
성벽만 바라보면서도 감탄을 내지르는 가일을 보며 마부는 점점 더 의구심에 휩싸였다.
"도대체가.... 단순해 보이는 촌놈 같은데..."

"참, 아가씨. 이제 성문에도 다 왔는데..."
마부는 마차 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이 동행자들을 내리라고 하셔 야죠... 다른 귀족이라도 만나면 골치 아파 집니다요..."
하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물론, 둔해 빠진 가일은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성벽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됐어요, 어차피 이번에 세네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가일씨의 도움이 컸으니.. 자그마한 성의라도 해야 되지 않겠어요?"
레나가 마부의 말에 반대한 것에는, 은혜에 대한 보답도 보답이었지만, 헤어지기 싫다는 감정이 더욱 큰 영향을 차지했다.

하지만, 정작 가일은 눈치 없게도 그런 레나의 말에 또다시 손을 저었다.
"아이구, 됐어요 레나양.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얼마나 편하게 왔다 구요. 저희는 여기에서 내려갈게요."
"아, 아니.... 궂이 그러실 필요는...."
레나는 당황하여 가일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말을 마부의 말이 가로막았다.

"그래, 그럼 잘들 다니고, 세네가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데면 어디든 존재하는 소매치기, 강도, 사기꾼 조심하고. 나중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세."
"네. 그럼..."
가일은 세이나를 등에 업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황급히 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는 내공을 일으킨 상태에서 말이다.

어제밤에 잠들었던 세이나가,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세네에 도착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일의 발걸음은 지금 더더욱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제 그 나쁜 녀석이 먹인 약이 부작용을 일으키기라도 한 건가....?"
성문을 향해 황급히 달려가는 가일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아무리 레나가 예쁘다고 해도, 레나에게 빠져 세이나를 소홀히 할 가일이 아니었다.

레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색하게 웃음짓는 와중에도, 간간이 세이나의 상태를 살펴보았었고, 몬스터들과 대판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잠만 자니, 걱정이 아니될래야 아니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쏜살같이 성문으로 달려가는 가일을 바라보며 레나의 눈에는 정체 모를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레나는 괜히 화가 나서 마부에게 신경질을 내었다.
"그래도 가일씨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곳에 무사히 도착하지 못했을 거예요. 은혜란 모름지기 갚아야만이 사람의 도리를 다 했다고 볼 수 있는거라구요."
"하, 하지만 아가씨..... "
"됐어요."

고개를 돌려 마부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레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병이라도 걸린 건가....? 훌쩍..... 아무래도 신전에 들러봐야 겠어."
"가장 가까운 신전으로 가 주세요."
"네 아가씨..."
대답을 하는 마부의 목소리에도 웬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헉, 헉..... 아! 사람이다."
워낙에 세네의 산을 넘어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인지, 성문과 성벽은 있지만, 그곳을 지키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가일은 아무런 제제 없이 성문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섰다. 일단 마을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정말 잔뜩 몰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운도 좋지... 때마침,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씩 세네 시 한가운데 광장에서 장이 열리는 시기였던 것이다.
마치 시장처럼, 배를 통해 들어온 물건을 상인들이 팔면,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 형식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어서, 가일은 정말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볼 수 있었다.

"저, 저기요. 말씀 좀 물어 볼께요. 제 일행이 다쳤는데요, 치료를 하려면 어디로 가야 되죠?"
"그야.. 치료를 하려면 신전으로 가야되죠. 이쪽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다 보면, 원만한 비탈길이 나오거든요. 거기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시면 신전이죠. 중상이라면 차라리 대도시로 가는 게 나을 거예요. 이런 촌구석에는 신성력이 강한 성직자는 거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액스트라1의 대사는 모두 끝나 버리고.... 가일은 대본에 적힌 대로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까... 신전으로 가는 사람이 가일 말고 또 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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