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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52 1,164회 0건
제 14화
"헉, 헉, 헉...... 갈림길에서.... 오른쪽이라구 했지..?"
가일은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평소 자신의 살던 곳이 험하기로 유명한 산이었던 터라, 그곳에서 단련된 가일의 몸놀림은, 상당히 날렵했다.
속도에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정도 빠른게 다지만, 유연한 몸놀림은, 아무리 수련한 기사라도 따라오지 못할 무엇인 가가 있었다.
그 증거가 사람들이 그렇게 와글와글 모여있던 시장을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떤 사람과도 충돌 없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것이다.

설명을 해 줄 때에는 상당히 길어 보였지만, 사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 가일이 달려가면서 바라본 시점에서...)
가일이 전력으로 달려가자, 갈림길은 금방이었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간 가일은 점점 초조해지는 심정을 마음껏 즐기며(?) 전력질주 했다.

"헉, 헉... 다 왔구나!"
실제로 그다지 오래 걸린 것도 아닌데, 가일에게는 마치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듯 했다. 어쨌든, 그다지 크지는 않은 규모의 신전 앞으로 달려간 가일은, 너무나도 정신이 없는 나머지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 중 아무나 붙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헉, 헉... 여, 여기 제 일행이 어디가 아픈지 좀 봐주세요! 잠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일어날 생각을 안해요..... 죽은 건 아닌 거 같은데.... ....... 급하다구요! 빨리요!"


"아가씨, 그나저나 신전에서는 얼마나 계실 건지요?"
"그건 왜요?"
레나의 물음에 마부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 뭐... 신전 같은 경우에는 칼을 찬 무사가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곳이 아닌지라... 저는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이라도 좀 사둘까.. 해서요... 저, 절대로 아가씨한테 해가 가거나 ... 뭐, 그런게 아니라... 저기.... ..."

마부는 레나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해 없는 핑계 있는 핑계 붙이며 말하였지만, 레나는 지금 평소와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냥.... .. 조금 있을거예요... .. 뭐, 필요한게 있다면 갔다와요. 참, 그리고 가는 김에 오늘 묵을 만한 장소도 좀 찾아보세요..."

"네? 아니.. 오늘 저녁 계실 장소라면... 저... 메타라 라는 부자가 이곳에 산다는데...... . 거기에 그냥 찾아가면... 될 것 같은데요... ...... 아가씨의 신분이 신분이신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으실 겁니다. 예, 그럼요.."
"오늘은... 그냥 혼자서 자고 싶어서 그래요. 아무대나 여관 하나만 잡아두세요...."

"예... 뭐..... 그러죠... . 아가씨께서 그러시다면...."
마부는 그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아가씨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근데 아가씨... 식사는... 아직 안 하시지 않으셨나요...?"
"됐어요.. 혼자서 먹고 오세요. 전 신전에서 해결할 게요...."

"하, 하지만... 신전 음식이 아가씨께 맞을지.... ..."
"됐다니까요!!"
"아, 네, 네! 그, 그럼... 이만...."
갑자기 화를 내는 아가씨의 행동에 마부는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 져갔다.


"어, 어떤가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 이 녀석이 어떤 약을 잘못 먹었었거든요... 어제저녁에.... .. 아... 음... 그, 그런데요... 어, 어쨌든, 독은 해독 된 것 같은데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가일의 얼굴은 지금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침 까지 튀겨가며 말하는 그의 얼굴은, "뭔가 다급한 일이 있는 미소년" 이었던 처음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 놓았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지금 이 분의 상태는 수면제를 먹은 듯한 그런 상태니까요. 오늘 저녁쯤이면 일어나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은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의 표본을 보여주는 가일을 보며, 세이나의 상태를 살펴보던 여 사제는 말했다.

눈뜬장님(?) 가일은 잘 모르는 듯 했지만, 세이나를 살펴보는 이 사람은 정말이지 엄청난 신분의 사제 였다.
신을 모시려 하는 견습사제(?)는 자신의 신앙심을 더더욱 굳건히 하기 위하여 사제가 되는 시험으로 전국을 여행하여야 한다.
그 나라의 방방곡곡을 살펴보며,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수많은 사람들을 돌보며 신을 모시는 사람으로써의 신앙과 자비를 쌓아나가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세네의 신전을 들렀다가 마악 다른 도시로 떠나려는데 가일을 만나 별 수 없이 세이나를 봐주게 되어버린 이 여 사제도 그런 견습사제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견습사제라고 무시하지 마라. 이 여성은 최연소 사제시험 도전자로써, 현재 나이 23살의 파릇파릇한 나이를 지닌 여인이었다.

흐음.. 23살이 파릇파릇....?... 어디까지나 성직자들의 입장에서다. 사제가 되기 위한 관문 중 이 "여행" 이라는 이름의 시험은 최소 5~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시험을 14살에 떠나 벌써 9년째 하고있으니.. 바보라고 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미 이 여인이 9년째 시험을 치르는 이유이다. 이 여인은 벌써 타리아모스 대륙을 세 번 이상을 여행했다. 하지만, 오직 병든 서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으로 아직까지도 신전에 들어가지 않고, 견습사제로써 보내는 것이었다.
비록, 남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녀를 보고 손가락질 해대지만, 그녀는 그런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걱정을... 많이 하셨나봐요?"
여 사제는 가일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만난 지는 얼마 안되도....... .."
"좋아하게... 되버린 사람인데........"
가일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무 일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가일의 얼굴이 그제서야 풀어지기 시작했다.
"참, 그런데... 동료 분께서 드신 약이 뭐죠? 제가 아는 약 중에는 해독 후에도 저렇게 수면상태에 빠질만한 약이 없는 것 같은데..."
"그, 글쎄요..... ... 남겨둔게 하나 있기는 한데....."
가일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품안에서 마지막에 태우지 않고 남겨뒀던 약을 꺼냈다.

"흐음..... 색도 그렇고.. ... 향도 그렇고..... .... 잠시만요.."
여 사제는 그렇게 말하더니 두 손위에 약이 든 병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집중을 하자, 손위에서 미약하기는 하지만 빛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 안에 들어있던 물약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 이, 이거...."
가일은 처음 보는 현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잠시 후 사라졌고, 약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약 병안에 얌전히 담겨져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가일은 여 사제의 손목에 있는 맥을 짚어보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저 마법을 이용해서 무슨 약인지 알아보려고 한 것뿐인데..."
"하하.... 다행이네요.... 맥박도 이상 없구... 괜한 걱정을 했구만.... 하하..."
가일은 괜히 호들갑을 떤 것이 창피한지, 일부러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사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 얼라? 사제님, 혈색이 안 좋으신데요... 열이 있으신가...?"
가일은 여 사제의 이마를 짚어보며 말했다.
"음....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아, 저, 저기.... 소, 손 좀 치워 주세요... ..."

"네?"
가일은 그제서야 자신이 여 사제의 이마와 손목에 무단으로 손을 올려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 헉... 죄, 죄송합니다... 신을 모시는 성직자의 몸에 손을 대다니..."
"아.... 저, 저야 말로요.... .. 신관들이 지켜야 할 규율이니 저를 걱정하셔서 한 것을 알면서도..... ... 죄송합니다."

사제의 얼굴은 정말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신을 모시는 성직자들은 원래 이성간의 접촉이나, 교제는 허락이 되지 않게 되어있다. 규율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제의 꿈을 키워왔고, 14살때부터 신성력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된 이 여사제에게는, 남자와 손끝이 스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제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일은 또다시 자신이 신체 건장한 남자라는 걸 확인 시켜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 하지만... 피부는 보드라웠어......."
가일은 자신의 손가락 끝에 남아있는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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