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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1:53 1,148회 0건
가일 여행기 제 5화
제 5화

별도 달도 영업중에 잠이 든 깊은 밤.
세네의 뒷동산 어느 오두막집 앞에서 웬 청년이 서 있었다.
그 청년은 등에 붓짐을 메고 있었는데, 얼굴엔 웬지 모를 기쁨과 그리고 또 우울함이 배어 있었다. 한 얼굴에 어떻게 극과 극의 감정이 표현 되냐고 물어오실 테지만, 사실이었다.
물론, 당연히 그 청년의 이름은 가일. 올해로 17세에 가출을 결심한 비행 청소년이었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소자 길을 떠나겠습니다."
가일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고는 절을 세 번 올렸다. 그리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하지만, 집이 보이기 전까지 계속해서 등뒤를 보는 것으로 보아 뭔가 묻어둔 꿀단지라도 있나보다.

"휴우... 그 늙은이 혹시 깬 건 아니겠지...?"
.....
집에서 점점 멀어지는 동안에도 가일은 방심할 수 없었다. 발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수시로 미행자를 확인하며 집에서 멀어져갔다.
가일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꼽으라면 첫째도 할아버지요 둘째도 할아버지요 셋째는... "여자가 고파서 눈 뒤집어진 할아버지" 라고 말할 것이다.

조심 또 조심... 한 발짝 한 발짝씩 내딛는 그의 모습에서 은밀한 사냥꾼이나 암습자의 그것과 비슷한 정말 신중함의 극의를 볼 수 있었다.
"이대로 곧장 산으로 내려갈까? 아니야... 혹시 경신술 펼쳐서 내려가다가 할아버지가 그 소리라도 들으면 어떡해? 차라리 가장 빠른 길로 접근해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틈에 섞여서 가자."

가일은 신중히 생각했다. 만약 여기까지 왔다가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말 그대로 가일의 인생은 "쫑" 이었다. 남은 여생은 할아버지 시중을 들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일에게 있어 가출이란, 인생을 전부 건 도박이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드는 그림자처럼, 흐르지만 잡히지 않는 맑은 물처럼....."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조차 잊혀진 듯.. 가일의 주변은 고요했다.
분명 낙엽을 밟으며 상당히 비탈진 길을 내려감에도, 자신의 기를 다리에 집중시켜 극의에 달한 집중력으로 걸어가니, 그 소리가 정말 개미 지나가는 소리보다도 더욱 작았다.
"예전에 봤던 지도에 의하면.. 이쯤에.... ... 인간들이 지나갈 때 쓰는 길이..... 있을 텐데...."
가일은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살폈다.

"아, 저긴가? 불빛이 보이잖아!"
발걸음도 가볍게~. 가일은 할아버지 의외에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에 웬지 들뜨기 시작했다.




스네이크. 그의 진짜 이름은 그 자신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머리가 나빠서 전부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뱀같이 치사하고, 악독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스네이크는 오늘 정말 간만에 비싼 손님을 맞이했다.
그의 직업은 도적님이다. 그냥 도적이 아니다. 도적"님". 도적은 단순히 금품을 강탈하지만, "님"은 다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뭔가의 위에 서 있는 존재..
(물론 이 직업은 그가 멋대로 생각해낸 직업이다. 산도적 주제에...)
도적님은, 여자라면 사양하지 않는 성격이다. "뭔가의 위에 서 있는 존재"에서 "뭔가" 란 물론 여자였던 것이다. 오늘은 간만에 도적"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보통 세네의 뒷동산을 지나는 사람들은 상단이나 국가에서 세금을 받으러 나오는 수금원 정도였다. 물론 그들은 세네 주변에 쫘악 깔린 몬스터를 대비해 용병이나 기사들이 대동해서 움직인다.
스네이크의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혼자서 그럭저럭 훈련된 기사 세 명을 혼자 상대하는 정도... 물론, 훌륭한 솜씨이기는 했지만, 혼자서 그 많은 용병들과 기사를 상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 도적"님" 스네이크는 세네시의 시장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받는 돈으로 먹고산다. 사실, 도적이 활동하기에 몬스터가 우글대는 이곳은 위험한 감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도적질도 하기는 하지만, 보호비가 수입의 대부분 이었다.
그러던 그가, 오늘 손님을 만났다. 세네시에서 유명한 부자집의 딸이 관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 딸은 기사들을 데리고 오는 길에 한차례 몬스터들과 혈전을 치렀었나 보다.
호위기사가 고작 대여섯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들 조차도 매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그녀는 정말 미인이었다. 타지방으로의 관광에서도, 세네가 시골이라고 무시 받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만 들었으니... 철부지 그녀가 얼마나 거만해 졌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어쨌든, 스네이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도적"님" 이라는 것을 착실히 인식하여, 여자도 물론 죽이지 않고 자신의 거처로 데려 왔던 것이다.
"무, 무슨 짓이냐? 네 녀석은 최소한의 인격도 없느냐?"
거만한 말투... 방금 전 소개된 "그녀" 다. 이름은 세이나. 허영과 자만에 가득 찬 말씨. 돈과 권력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_-a;

"놀구 있구먼... 그보다 너.. 얼굴이 꽤 예쁜데..? 어디... 몸매는 어떤가 궁금한걸...."
스네이크의 노골적인 음흉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은 세이나는 갑자기 오한을 느꼈다.
"뭐, 뭐야? 그 눈빛은?"
"참나, 진짜 까탈스럽게 구는 구먼.. 이봐, 이래뵈도 내 "자지"가 세네에서 크기로 보면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구. 맛보는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이 계집년이...."
위협적인 어투로 세이나를 협박하는 스네이크.

하지만, 오만과 허영의 화신이 되어있던 세이나는 꿋꿋했다.
"네, 네녀석 같이 천한 것이 어디 감히!!"
"움... 그래? 별수 없지.... 이거는 쓰기 싫었는데... 어디 효과나 볼까...? 킬킬킬... 저번에 세네에서 구한거야.. 키득키득... 한번 맛이나 보셔....."
"이, 이게 도대체 뭔.... 흐읍...... "
스네이크는 갑자기 서랍에서 자그마한 병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는 냅다 세이나에게 병 안의 액체를 먹이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키키키.... 이래뵈도 이게 중독성이 쪼까 있지... 키키키... 한번 맛봤으니. 넌 이제 끝이야"
한 병을 몽땅 먹인 스네이크는 느닷없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뭐, 뭐라고?"
세이나는 어이가 없어서 약을 다 들이키자 마자 외쳤다. 하지만, 스네이크는 간지럽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쫌만 기달려 보라구.... 너도 곧 효과를 알게 되."
"도대체 무슨 짓이냐? 천한 녀석 주제... ..."
세이나는 말을 마치고 싶었지만,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풀썩..."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한 세이나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키키키... 내가 말했잖아? 효과를 알게 된다구..."
그리고 그때...
"펑"
소리는 작지만, 그 작은 소리에 스네이크의 집이 크게 흔들렸다.
"이, 이게 뭐야? 엉?"
스네이크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소란의 발생지를 찾았다. 그 곳에는 웬 청년 한명이 서 있었다.

"얼레? 사람이 계셨네요... 죄, 죄송.. 저는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빈집 인줄 알고..."
".... .... 이...... ... 야!! 너!!! 빈집이 문이 잠겨 있냐? 엉? 빈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변명을 할려면 좀 제대루 하시지!!"
스네이크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막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웬 녀석 하나가 자신의 일을 방해하다니... 게다가.. 그 청년은 자신의 집 벽면을 완전히 박살을 내놓은 것이다.
"뭐? 벽 한쪽을 완전히 박살내?"
뒤늦게 스네이크가 깜짝 놀라서 청년을 다시 보려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목 언저리의 통증을 느끼며 의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런, 이런... .. 소리 지르면 할아버지가 깨실지도 모른다구요...."
물론 그 청년은 가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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