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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07 1,483회 0건
병채루 부어도 술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저녁 나절 사 들고 들어왔던 소주 다섯병이 어느새 빈병으로 방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 제길 "

민철은 빈 소주병을 들고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술이 그렇게 세진 않았다
기껏해야 소주 한병이면 친구들에게 업혀서 돌아오곤 했었다
별로 즐기지도 안 했고...취하는건 참 싫어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취하고 싶어 그렇게 부어대도...술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술에라도 취해서 잠 들고 싶었지만...정신은 갈수록 또렷해져갔고
그럴수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한마디가 귓전에 메아리 쳤다

" 이제 더 이상은 못 기다려.. "

그녀가 그에게 들려준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녀는 예뻣다...세상 누구보다도..
같이 길을 걸어가면 항상 주위의 남자들이 부러운 눈길로 흘낏거리곤 했엇다
167cm...약간 말랐지만 전혀 각지지 않은 부드러운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
사람을 빨아드리는 마력같은 눈을 가진 여자였다
원래 허영심 많고 도도한 여잔 싫어했었지만 그녀만큼은 민철로선 도저히 거부할수 없었다

" 너 돈 많니? 난 말야..구질구질하게 사는건 딱 질색이야 "

군대를 재대하고 우연히 동창회에서 만난 그녀에게 민철은 술기운을 빌어 말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짝사랑했었다고...사실은.
그런 그에게 그녀가 첫마디로 내뱉은 말이었다
서영은 그런 여자였다
도도하고 허영심 많은 공주병이 단단히 걸린 여자였다
항상 주위에 짝사랑하는 여자들이 쫓아 다니던 민철이 그런 서영을 사랑하게 된건
역시 그래도 포기할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움때문이었다
빈약해 보이는 몸매에도 그녀의 가슴은 봉긋하게 솟아올라 뭇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즐겨 입는 미니스커트 아래로 쭉 뻗은 다리는 항상 적당한 윤기를 빛내며 민철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학교에 다닐때도 그녀는 언제나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다
누구나 탐을 냈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높은곳에 있었다
그리고 고교시절 삼년동안 그녀를 소유했던 민 역시 다른 아이들보단 너무 높은곳에 있었다
민이란 녀석은 모 그룹 부회장 아들이었다
고교 입학식날 세까만 리무진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그는 황제였다
그는 항상 그 리무진을 타고 학교에 다녔고 언젠가부터 서영도 집에 갈땐 리무진을 타곤 했다
처음부터 그들은 로얄패밀리였고 감히 서영이나 민에게 추파를 던진다는건 생각도 할수 없었다
아마도 민이 졸업여행에서 행글라이더를 즐기다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이미 서영은 재벌가의 식구로 살고 있을것이었다
민이 죽고 난 후에도 서영의 곁엔 몇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모두들 서영의 장난감이었을뿐 그녀를 만족 시켜주진 못했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제 군대를 갓 재대한 민철이 구애를 했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냉소를 보내며 차갑게 대꾸한것이었다
민철이 어떤집 앤지 서영이 모르는건 아니었다
사실 민 이전에 서영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민철이었고
민철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멋진 남자였다
178cm 에 어릴때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몸에 잘 생긴 얼굴
사실 서영이나 민 만큼 민철도 인기많은 킹카였다
다만 민철의 집은 그저 하급 공무원이신 아버지가 버는 돈으로 그냥 가난하지만 않게 살았었다
서영이 애초에 민철보다 민을 택한것도 민의 돈때문이었다

민철이 사업을 하겠다고 아버지의 퇴직금을 요구했을 때
아버진 긴 시간 민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말 없이..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민철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통장과 도장을 민철에게 건네주었다
평생을 아버지께 순종하며 살아온 어머니로서도 그때만큼은 순종만 할 수는 없었다

" 여보...이건 안 돼요...저 어린게 멀 한다구..당신이 평생 공무원해서 남은 전부인데.."

" 나두 저놈이 한번에 성공할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내가 비록 저놈이 성공할때까진 못 밀어 준다고 해도 한번 실패할 기회는 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잔소...그저 저놈이 저 돈을 다 없애기전에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수 있었으면..하는 마음뿐이에요... 내 아직은 경비라도 하면
우리 식구 먹고 사는거야 어떻게 돼겠지... "

민철이 영화사를 차렸다고 할 때 주위 친구들이나 서영이나 황당함 뿐이었다
그쪽을 전공한것도 아니고 평소에 영화를 좋아하던것도 아니었는데 웬 영화사..
민철은 영화사를 차리고 서영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영화에 대해서 알아서 하는건 아니야...단지 네가 있기 때문에 하는거야
널 세계 최고의 배우로 만들고 싶어 "

서영에게 민철이 잘못 돼면 어쩌나..그런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기회가 생겼으니 해 보는거구 잘 돼면 좋구..아니면 그만이었다
서영으로선 민철을 이용하며 적당히 민철이 원하면 한번씩 자주면 되는거였다
지난 일년은 민철에겐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서영이 자신한테 웃어 주었고 자신의 애인으로 데리고 다닐수 있었다
물론 잠자리에서도 그녀만 만족하면 자신은 사정하기도 전에 섹스를 끝내야 했고
밖에서도 서영에게 무시당하며 그녀를 떠 받들고 살아야했지만
그래도 민철은 행복했다..단지 그녀가 옆에 있는것만으로

6개월정도의 촬영이 끝나고 민철의 첫 영화가 개봉 될 때 감독을 비롯한 스텝 모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서영만을 신데렐라로 꾸미는 어설픈 시나리오
대사 따로 표정 따로 어색하기만 한 서영의 연기
이억원이 못 돼는 저조한 제작비
민철의 영화는 애초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작품이었다
예상대로 흥행은 실패였고 영화는 개봉 일주일만에 간판을 내렸다
1년이 채 안돼는 시간에 아버지가 30년을 공직생활을 해 받은 대가는 물거품이 되었다
민철은 그제서야 다급한 마음이 들었고 그때부터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철에게 영화제작비를 대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서영은 그런 민철을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이제 민철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민철의 지갑에 남아있는 30만원 남짓한돈이 그의 전재산이었다
그러나 그런건 상관 없었다
민철이 견딜수 없는건 서영이 자신을 떠난것이었다
민철은 죽을때까지 술을 마시다 죽기로 마음 먹었다
서영이 떠난 이상 이제 그에게 세상을 살아갈 이유따윈 없어졌다
촬영기간중에 사흘정도 짬을내어 서영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곳
민철은 낙산으로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마 이틀정도면 이 차도 차압이 붙을 것이다
낙산에 도착해서부터 민철은 꼬박 세시간을 술을 마셨다
얼마나 마신건지..얼마나 취한건지...그저 세상이 뿌옇게 보일뿐이었다
주머니에 남은돈으로 소주 몇병을 사서 바닷가 바위위에 걸터 앉았다
이미 일출시간도 지나서 훤하니 세상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래..이 술만 다 마시고 미련없이 죽자..."
바다가..넘실대는 파도가 너무나도 편안해보였다
마치 어서오라고 자신한테 손짓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리고...작은..바다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작은 배가 바위에 다가왔다
노인은..배를 멈추자마자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 뭘 멀뚱멀뚱 보구 있어 어서 타지 않구 "

" 네? "

" 아 귀가 먹었어? 어서 타라구 "

" 아...네..."

누구인지...왜 타야 돼는지는 몰랐다
그냥..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민철이 배에 타자 아무말 없이 노를 저어 배를 바다로 끌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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