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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16 1,408회 0건
루아의 의식 3부

오늘밤처럼 루아는 갑자기 엄마에게 방으로 불려왔다. 무슨일일까 생각하며 방에 들어선 루아에게 엄마는 담담하게 성교육을 시작했다.
루아가 놀란 것은 성교육 때문이 아니었다. 그 후에 마을에서 정해 행해지고 있는 "의식"때문이었다.
"지금 얘기한대로, 남자와 여자가 몸을 섞는 것은 자손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매우 중요한 거란다."
"남자 앞에서 옷 벗는 건 싫은데..."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 전에 꼭 치루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중요한 일?"
"그래. 우리들의 몸에는 사악한 피가 흐르고 있단다. 먼 선조가 저지른 잘못때문에 마족의 피가 섞인 거야."
"응, 알고 있어요. 성서에 쓰여 있어. 그래서 14살이 되면 모두 교회의 사제님께 세례를 받죠?"
"그렇지. 남자는 단련도 겸해서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일주일 동안 혼자서 정령산에 머물며 생활해. 그래야만 몸 속에 남아 있는 마족의 피가 정화되는 거지."
"응. 알고 있어요. 난 여자라서 하룻밤에 끝난다면서요."
"그래."
"난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천진난만하게 루아는 방긋 웃었다.
"여자아이는, 하룻밤 교회에서 머물며 사제님과 자야해. 사제님과 몸을 섞는 것으로 사악한 피를 사제님의 신성한 힘으로 소멸시키는 거야."
조금 전까지 웃던 얼굴이 일순 얻어맞은 듯 파랗게 질렸다.
"그, 그런... 거짓말이죠! 엄마!"
"거짓말이 아니란다. 이 마을의 여자라면 누구나 치루어야 하는 의식이야."
"아까 말했잖아요.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몸을 허락해야한다고!"
"이건 경우가 달라. 루아, 몸 속에 잠들어 있는 악마의 피는 사람이 자라면 자랄수록 사악한 힘을 더욱 키워가는 거야. 특히 태어나서 13년에서 14년이 지나면 그것이 급격히 빨라지지."
"그럼 나도 남자아이들처럼 산에 갈래!"
"정령산은 여자들은 못들어 가. 여자들은 갓난아기도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그럼 사제님이 내 몸을 만지는거야? 사제님의 성기를 내 몸 속에 넣는다고? 그러다가 아이라도 가지면 어떻게 해."
"괜찮아. 루아는 아직 아이가 안생겨요."
"그래도 싫어!"
루아는 완전히 날뛰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많은 얘기를 듣고, 피하고 싶은 운명의 날이 갑자기 눈 앞에 닥쳐있다고 통고 받았으니 무리도 아니다.
"나, 집 나갈래요!"
역시 엄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니!"
"이미 결정했어요. 집을 나가서 이 마을 아이가 안되면 그런 의식 치루지 않아도 되잖아요."
"루아, 차분히 들어봐. 그런다고 해도 네 피는 악마에 오염된 채야. 나쁜 마음에 지배되어 마지막엔 인간이 아닌 무엇이 되는 거야."
"그래도 좋아!"
철썩!
엄마의 손바닥이 루아의 뺨을 때렸다. 갑작스런 일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눈물이 흘러 고였다.
"엄마가 날 때렸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금방 울것 같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엄마의 눈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존엄과 자애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자신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족에게 지배되어도 상관없다니, 말도 안되는 얘기야."
"......"
"하느님께 받은 소중한 몸과 마음을 좀 더 소중히 하거라."
"......"
"대답 안해?"
"......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 의식일까지 이제 몇일도 안남았다. 그날 이후 엄마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다.
"엄마..."
"왜?"
"일년 전, 사라의 생일 다음날, 놀러 가도 만나주지 않았어요."
"그래."
"사라도 분명히 의식을 치루었죠?"
"물론."
"하지만 정말로 의식을 치룬건 아니죠? 분명히 사라가 그런 의식을 치루었을리가 없어요. 충격으로 죽어버릴테니까."
"그 아이는 보기에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무척 강한 아이란다. 그러니 너도 그래야지..."
"나, 분명히 사제님 얼굴을 할퀴고 도망가버리고 말텐데..."
"괜찮아요. 그때가 되면 자연히 사제님이 시키는대로 의식을 잘 치루게 될테니."
"무서워지면 어떻게 해야되요?"
"하느님께 빌어보렴. 저를 지켜주세요... 하고."
"그래도... 의식 안치루면 안되요?"
"루아."
엄마는 일어서서 책상 서랍을 열어 은색빛이 나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루아의 등뒤로 와서 그것을 못에 걸어주었다. 순은으로 만든 십자가 네크레스였다.
"십자가?"
"엄마의 엄마의 엄마,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대대로 물려준 거란다. 엄마도 루아 나이 때 의식을 싫어했거든, 그래서 할머니가 많이 속썩으셨지."
"엄마가? 설마. 믿을 수 없어요."
"정말이야. 하느님이 지켜주셔서...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루아는 십자가를 양손에 쥐고 소중한 듯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조그만 십자가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조금, 용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어젯밤, 제대로 잠을 못잔 루아는 언제나처럼 늦게 눈을 떴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꽤 높아서 벌써 10시는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일부러 깨우지 않은 것이다. 현관에서 이야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루아. 있어요?"
"미안해서 어쩌지? 아직 자는데..."
사라가 온 것이다.
"기다려 사라-. 나 일어났어-."

둘은 사람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근데, 언제나 경솔한 짓을 하는 릿츠가, 내가 막 부르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겁에 질린 얼굴로 마을도 아닌 쪽으로 가버렸어."
"나도 그 전에, 가게에서 만났었는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더니 그냥 가버리더라구."
"마을사람들도 요즘 검술 수행도 안하고 마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한다고 하던걸."
"제 아버지처럼 검술사가 되겠다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결국 릿츠는 말 뿐이야."
거기서 사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루아, 우울해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응, 생각해 봤자 수가 없잖아. 게다가 이러는 쪽이 더 나답지 않아?"
"맞아. 루아는 남자아이들처럼 활발한 쪽이 더 잘 어울려."
"그래. 나는 일주일 정도 깨작깨작 하는 거 말고 한 한달정도 산에서 지낼 자신 있는데."
"한 반년은 어때?"
"그건 좀 심하다, 사라."
"그래? 푸후후후..."
"하하하하..."
둘은 오랫동안 웃고 구르고 하며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루아가 조용해졌다.
"왜그래?"
"산에서 지내는 걸로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루아..."
"왜 여자로 태어나서..."
사라는 뭐라고 말해야 될지 망설였다. 지금 루아에게 무어라고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자 루아는 사라의 집에서 나왔다. 작별 인사로 사라가
"나도 잘 견뎌냈으니까 루아도 힘내야 돼. 다음에 놀러갈 땐 호수로 가보자. 몇일이든 루아가 아무렇지도 않게되기를 기다릴께."
라고 말해주어서 너무 기뻤다.
집에 돌아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몸을 씻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탕에 몸을 담그며 이것이 마지막 목욕일까...하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 왜 마지막이지? 내일이 되어도 나는 나인데... 욕실에서 나오자 엄마가 준비해둔 후드가 달린 원피스 형태의 로브(robe)를 입었다. 그것 이외에는 속옷도 걸치지 않았다.
방에 돌아가 십자가 넥크레스를 목에 걸었다. 두손에 꼭 감싸쥐고 기도했다. 하느님 루아를 지켜주세요.
현관 앞에서 아빠와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여기까지 밖에 배웅할 수 없단다. 힘내라, 루아."
"루아... 넌 내 딸이야. 분명히 무사히 끝날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루아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다.
"엄마..."
루아는 램프에 불을 붙이고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은 아무말없이 끄덕였다. 쾅하고 문이 닫힌 후에는 그저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만14살의 부끄러운 의식을 치루러 떠나는 루아...
천진난만한 루아에겐 어떤 일이 닥칠까...
4부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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