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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54 1,455회 0건
N.W.R.S. chapter 52

상당히 넓어 보이는 공간의 한쪽 벽에 매달린 작은 전등은 내부의 구조를 쉽게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약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빛은 곳곳에 놓여있는 무엇인가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어슴푸레한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었고 정 가운데로 보이는 위치에 누군가 앉아 있는 듯한 그림자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습하거나 좋지 않은 냄새가 풍겨오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있다면 중세시대의 감옥으로 착각할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의 한 가운데에는 실제로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지금의 자세를 유지하기가 힘든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낮은 신음을 흘리고 있다가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전신의 근육을 팽팽히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방금 들린 소리가 환청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똑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금씩 커지면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분명했다. 잠시 후 소리가 멈추었고 이번에는 나직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한쪽벽에 위치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열려진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밝은 빛은 조금씩 어두웠던 공간을 비추다가 마지막에는 가운데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게 만들었다.

" 일어나. "

외출에서 돌아온 인한은 하나가 체벌실에 가 있다는 얘길 듣고 현성에게 자신이 벌을 주겠다고 말을 했었다. 현성에게 맡겨두면 심한 벌을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자신이 벌을 주겠다고 말해놓고 체벌실로 내려온 것이었다. 인한은 현성의 방식대로라면 하나가 교육기간 동안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는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눈이 부시지 않았더라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 ...네... 주인님... "

하나는 인한의 명령에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일어설 수가 없었다.

" 주... 주인님... "

그녀는 자신을 부축해 주는 손길을 느끼며 놀라 자신도 모르게 인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았다.

" 이러니까 자꾸 현성이한테 혼나는거잖아. 그렇게 조심하라고 해도. "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떨구며 시선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비록 교육을 받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였지만 인한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가는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여야 할지 생각해 낼 수 있었다.

" 감사합니다, 주인님. "

그녀는 제대로 땅을 L고 설수도 없을만큼 저린 발을 억지로 움직여 똑바로 서려 했지만 조금씩 비틀거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는 않겠지? "

차라리 ?생각하기도 겁이나지만- 호되게 매를 맞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러움을 느낀 하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이녀석 또 우는구나. 뚝 그치고 올라가자. "

인한은 하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소영양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은데 좀처럼 진전이 없어 보이는군요. "

"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 "

소영은 채소를 썰다 말고 손에 들었던 칼을 내려놓으며 요리실습 담당 선생인 이선생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 괜찮으니까 어서 요리에 집중하도록 해요. 이러다가 시간에 못 맞추겠어요. "

" 네, 선생님. "

소영은 다시 식칼을 집어 들고 도마위에 놓인 무를 썰기 시작했지만 역시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슬쩍 옆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옆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주영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는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국물의 간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간단한 토스트나 샐러드-그것도 대충 썰어서 만들었던- 외엔 요리다운 요리를 만들어 본 적이 전혀 없는 소영에게 얼마전부터 시작된 요리실습은 결코 즐거울 수가 없었고 반 전체에서 가장 요리가 서툰 학생으로 인식이 되어버린 결과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 좀 도와드릴까요? "

주영은 소영이 자신이 요리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 아... 아니에요. 혼자 할 수 있어요. "

지금 소영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요리가 싫다 좋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태도가 많이-누가 보기에도- 바뀐 소영의 첫번째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제 시간에 요리를 마치지 못해 벌을 받게 될거라는 걱정보다도 오늘도 제대로 된 요리를 못한 채 실습 시간이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 그녀였다. 이선생이 특별히 꾸짖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도 이런 소영의 생각을 그녀의 태도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영은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칼을 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썰어진 채소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았고 냄비속에서 끓고 있는 국물의 맛도 보장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정성이 담긴 요리가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 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들 그릇에 요리를 옮기고 최대한 보기 좋게 꾸며서 마무리를 하세요. "

이선생의 말이 끝나자 마자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선생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리 실습 시간만큼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진행되곤 했었기에 이런 소란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요리가 완성된 것을 확인하고 다 만들어진 해물전골을 커다란 그릇에 옮겨담고 함께 준비한 다른 음식들로 접시를 채우기 시작했지만 소영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아직 다 끓지 않은 자신의 냄비를 들여다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 오늘 시식은 교장선생님이 직접 해주실거에요.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실습실을 방문해 주시기로 했어요. "

학생들은 손님이라는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시에 이선생을 쳐다보았다.

"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한분은 이사장님이시고 다른 한분은 아마 여기 있는 누군가가 아주 기뻐할만한 손님이 될꺼에요. "

다시 한번 웅성거림이 실습실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 다들 조용히 하세요. 조금 있으면 알게 될테니까요. 마무리에 신경들 쓰도록 해요. "

그러나 이선생의 말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학생들은 챗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해 있었기 때문인지 이사장과 또 한 사람이 실습실까지 방문을 한다는 소식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소동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 안타까운 눈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망쳐버린 요리를 쳐다보고 있던 소영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나에게는 요리에 대한 재능이 없는걸까? "

동민이 식탁에 앉아 기대에 가득찬 표정으로 풍겨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 있고 자신은 그런 남편의 모습을 훔쳐보며 즐거운 표정으로 요리를 준비하는 식의 장면은 소영의 머리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 미안해... "

소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 소영양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나요? "

" 죄송합니다. 이제 막 끝냈습니다. 선생님. "

소영은 다른 학생들이 모두 끝난 후에도 한동안 바삐 움직여서야 겨우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아직 그 때 맞은것도 다 낫지 않았는데... "

소영은 아직까지 자신의 엉덩이에 남아 있는 멍을 생각하며 한손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만져보고 거의 다 나아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민감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제 교장선생님과 손님들이 오실 시간이에요. 모두 자신의 테이블 옆에 똑바로 서도록 해요. "

학생들은 일제히 요리가 담긴 접시와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테이블 옆에 차렷자세로 서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실습실의 문이 열리며 교장이 들어왔지만 이사장과 다른 한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교장은 의아해 하는 학생들을 보고 편안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 이사장님께서는 손님을 모시고 학교를 구경시켜 드리느라 조금 늦으실겁니다. "

교장은 말을 하며 학생들을 한명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교장의 시선이 왠지 불안해 보이는 소영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 소영양은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

" 아닙니다. 교장선생님. 신경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모든 선생들을 통해 학생들의 교육상황을 보고 받고 있는 교장은 지금 소영이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천천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학생에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각각의 테이블에는 먼저 준비한 순서대로 번호가 붙여져 있었고 교장이 다가가고 있는 테이블에는 "1"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 어디보자... "

주영의 인사를 웃는 얼굴로 받아준 교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시식용 숟가락을 들어 맛깔스럽게 담겨 있는 찌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 ...... "

교장은 잠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다가 다시 눈을 떠 주영을 쳐다보았다.

" 주영양은 언제나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교장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던 주영은 그제서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교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

교장은 다시 함께 준비된 요리들을 몇가지 집어 맛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테이블로 이동했다. 소영은 실습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 너무 서둘러서 만들었군요. 빨리 만드는게 능사는 아니에요. "

교장은 학생들이 준비해 놓은 요리의 맛을 보며 한마디씩 조언을 해주며 조금씩 소영의 테이블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 요리에 시간이 많이 걸렸나보군요. "

" 죄송합니다. 요리에 재능이 없어서... "

교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소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정성이에요. 소영양은 그런 요리를 만들었나요? "

" 네, 교장선생님. "

비록 모양이 좋지 않고 맛은 없을지 모르지만 소영은 교장의 마지막 말에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교장은 찌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찌개옆에 놓여져 있는 접시에서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 계란말이군요. 이걸 만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라서... "

교장은 소영의 대답을 들으며 들고 있던 것을 다시 내려놓았다. 소영은 맛을 보려고조차 하지 않는 교장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의 요리솜씨를 알고 있었기에 나직히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 이건 내가 맛을 볼 요리가 아닌 것 같네요. "

교장은 노크소리를 들으며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소영이 의아해 하는 동안 실습실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의 남자가 실습실로 들어왔고 모든 학생들의 시선은 두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 모두 이사장님과 손님께 인사를 드리도록 해요. "

" 어서오십시오. "

학생들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두 남자의 모습을 뒤늦게 확인한 소영은 혼자만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표정으로 한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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