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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55 1,167회 0건
N.W.R.S. chapter 44

미연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히 허리를 숙이며 현성을 향해 인사하는 여자를 발견했다.

" 주인님이라고? "

그 여자는 오래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녀복장을 하고 있었다. 무릎위로 올라오는 검은색 유니폼은 속에 무엇을 입었는지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고 저런 신발을 신고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높은 하이힐에 검은 스타킹, 그리고 먼지하나 묻지 않은 순백색의 앞치마, 같은 색상의 손가락이 없는 장갑과 머리장식까지. 미연은 하녀의 모습에 매료되고 있는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인한이는? "

" 인한님은 1시간 전에 메시지를 남기시고 외출하셨습니다. 주인님. "

" 들어가자. "

현성은 하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에서 하녀의 잘록한 허리와 적당히 솟아오른 가슴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던 미연을 향해 말했다.

" ...네? 네. "

현성은 아까까지의 두려움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녀의 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미연을 보고 밝게 웃어주었다.

" 이제 긴장은 다 풀렸나보구나? "

" 네. "

"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야. "

" 이주희라고 합니다. "

하녀는 현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손으로 유니폼의 양쪽 끝자락을 잡고 살짝 무릎을 구부리며 고개를 숙여 미연을 향해 인사했다.

" 네. "

미연은 어떻게 인사를 받아야 할지 몰라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 그런 인사는 실례잖아. 너도 이름을 말해야지. "

" 아... 송미연이라고 합니다. "

" 감사합니다. "

주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녀는 미연에게 다시한번 인사를 했다.

" 네. 저도요. "

" 하하, 이제 들어가자 여기 계속 서 있을건 아니지? "

" 네, 오빠. "


미연은 주희의 안내를 받으며 거실로 가서 보기만 해도 편안해질 것 같은 쇼퍼에 앉아 유럽풍의 화려한 장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현성은 잠시 메일을 체크해 봐야겠다며 2층에 있다는 자신의 서재로 가버렸고 주희는 마실것을 가져오겠다며 주방쪽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미연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 엄청난 부자인가봐... "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진 미연이 나직히 중얼거렸다.

" 불필요한 장식들 뿐이지? "

미연은 쇼퍼에 깊숙히 몸을 기대고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현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급히 쇼퍼에서 일어났다.

" 괜찮아. 그냥 앉아 있어. 아까 밥먹을때는 그렇게 말도 잘하더니 지금은 왜 그럴까? "

현성은 미연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질문을 했다.

" 그... 그건... "

" 차를 가져왔습니다. 주인님. "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리고 있는 미연을 구원해 준 것은 주희였다. 주희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차를 담은 은색빛으로 반짝이는 쟁반을 들고 있었다.

" 인한이가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나? "

현성은 테이블 위에 찾잔을 내려놓고 있는 주희를 보며 말했다.

" 네, 주인님. "

" 얘기해봐. "

" 그... 그것이... 죄송합니다. 주인님. 말씀드리기 곤란한 메시지라서... "

" 이녀석 또 장난 쳤군... 괜찮으니까 얘기해. "

주희는 인한이 남겼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지 현성의 명령에도 쉽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희는 메모를 적어두거나 하는 행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 말로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 현... 현성... "

주희는 현성의 허락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함부로 주인의 이름을 부르기가 두렵다는 듯이 떨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 현성, 또 어디서 순진한 여자를 꼬셨냐? 재주도 좋다. 집으로 데려올것이 뻔하니까 난 자리를 피해주마. 몇이나 더 울려야 만족하겠냐? 라고 하셨습니다. "

" 하하하하. "

현성은 주희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젖히기까지 하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 그래, 알았어. "

미연은 주희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성을 잠깐 쳐다보았지만 이내 그럴리 없다는 생각을 하며 보이지 않게 고개를 흔들며 주희가 준비해 온 차를 한모금 마셨다.

" 다음부터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 그 내용이 어떤 것이라도 긴장하지 말고 말해. 또 오늘처럼 더듬지 말고. "

" 네, 주인님. "

주희는 자신이 전달한 말 때문에 현성이 화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였다.

" 됐어. 가서 일보도록. "

" 네, 주인님. "

주희는 미연이 보기에 어떻게 보면 우아하기까지 한 자세로 인사를 하고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주방쪽으로 사라졌다.

" 우선 차를 마시면서 긴장을 좀 풀어. 긴장을 하고 있으면 오늘 어떤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채로 하루를 보내게 될텐데 그래도 좋은가? "

현성은 말을 마치며 미연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 아니에요. "

미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현성의 웃음에 답했다.

현성은 미연의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얼굴을 바라보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사실 소희나 미연 모두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예 한번 못해본 처지였다. 처음에는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미팅, 소개팅에서도 마음이 끌리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서 운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몇 년이 지나고 몇 번 체념하는 마음으로 아무-두 사람의 생각으로는- 남자나 만나고 사귀면서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소희와 미연 두사람이 내린 결론은 자신들의 눈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해서 두 사람이 눈을 낮춰서까지 남자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싶을 뿐이었다. 두사람은 빨리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없다고 해서 특별히 불편하거나 답답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둘이서만 붙어 다녔던 것이다. 그 덕분인지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웬만한 남자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돈독한 상태였다.

"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

미연은 잠시동안 소희와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무엇인가 결심을 한듯이 조금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 하하, 긴장을 풀라고 했더니 무서운 여자가 되어버렸네? "

" 그... 그건... "

미연은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높았다는 것을 알고 금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 정말 감정에 솔직한 아가씨군요. "

" 지금 울 것 같단 말이에요. 놀리지 말아요. "

" 그래, 그래, 알았어. "

현성은 자신의 가벼운 농담에 미연이 금방이라도 울듯한 모습을 보이자 황급히 미연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너무 짖궂어요. "

몇마디를 나누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미연은 진짜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미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 미안해. 그러다가 이쁜 얼굴에 화장 번지겠다. "

현성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소희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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