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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2:56 1,341회 0건
Chapter 23
몇번이나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소영의 다리는 이제 누가봐도 안쓰러워 할만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마치 금방 세수라도 한 것처럼 땀으로 뒤여 있었다. 그녀는 숟가락은 들지도 못한채 두손으로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느덧 다시 고개를 내민 소영의 부질없는 자존심이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듯 그녀는 아랫입술을 아프도록 세게 깨물고 있었다. 이제 겨우 20여분이 지나갔을 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몇시간이나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천천히 -적어도 소영이 생각하기에-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여자들이 원망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밥을 먹지 않고 이렇게 남겨놓아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은 이미 잊은지 오래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그녀의 심정이었다.

" 소영양, 이제 일어나요. "

소영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괜찮으니까 똑바로 서도록 해요. "

소영은 그제서야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고 일어서려고 다리에 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일어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테이블을 짚고 억지로라도 일어서려 했지만 힘이 빠져버린 다리는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소영이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던 사람의 손이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 조금만 힘을 내요. "

소영은 그제서야 그것이 미라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 처음 만나 몸서리가 쳐지도록 그녀를 벌준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갑게 들렸다. 지금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미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고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 선... 선생님! 흑흑..."

소영은 두팔로 미라의 목에 매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었다. 오직 이순간에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미라는 그런 소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 김선생님. "

김선생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미라가 자신을 부르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자, 이제 그만 울어요. 여기에 있는 누구도 소영양을 미워하지 않아요. "

미라는 자신에게 매달려 아이처럼 흐느끼고 있는 소영을 달래주었다.

" 방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

미라는 소영을 부축한채로 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무리 여자라고 하더라도 힘이 없어 똑바로 서있지도 못하는 사람을 부축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텐데 미라는 조금 힘겨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소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미라는 그런 소영을 침대에 똑耽?자신도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잠시 일어나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티슈를 몇장 가져다 살며시 소영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 이런, 얼굴이 엉망이 되었잖아요. 이게 뭐에요?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가 어린아이처럼 계속 울기만 하면 안되잖아요. "

미라는 한손으로 흘러내린 소영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고 아직까지 조금씩 떨리고 있는 그녀의 다리를 똑바로 펴게 했다. 소영은 미라의 손이 자신의 다리에 닿자 감전된 것처럼 놀라며 몸을 움직였다.

" 괜찮아요. 금방 좋아질거에요. "

미라는 그녀의 스커트 앞부분을 허리까지 올리고 두손으로 조심스럽게 다리를 마사지해 주었다. 소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의 떨림이 멈추고 편안해 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 선생님, 이제 괜찮습니다. 그만 하셔도... "

한참 동안 소영의 다리를 마사지 하던 미라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굳어진 인격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아요. 강해지지 않으면 소영양을 여기에 보낸 사람에게 또 다른 실망을 주게 될거에요. "

소영은 미라의 목소리가 엄마의 그것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 아무 걱정 하지말고 오늘은 이대로 푹 쉬도록 해요. "

" 선생님... "

미라를 부르는 소영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 이제 그만 울어요. 아직도 더 흘릴 눈물이 있어요? "

미라의 말을 듣고 소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규율집은 꼭 외워두도록 해요. 내일도 이런일이 생기면 용서하지 않을꺼에요. "

그제서야 소영은 아까 김선생이 반성실로 오라고 했던것을 기억해 냈다.

" 저... 김선생님께서... "

" 그거라면 걱정말아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잠들기 전에 규율집 외우는 것에만 신경쓰도록 해요. "

" 네, 선생님. "

소영은 반성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생각했다. 그리고 미라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언니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라같은 언니가 있었다면 이곳에 들어올 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억울하다고 느낀 소영은 샤워라도 해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다리에 힘이 없었지만 그런대로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땀에 흠뻑젖어 그리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교복을 벗으며 거울을 보다가 엉망이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 엉망이네... 이렇게 울어본게 얼마만이지? "


어렵게 찾아간 샤워실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여자로서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소영은 조심스럽게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보기만해도 몸이 따뜻해 질것 같은 물속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속에 몸이 잠기자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 소영은 눈을 감으며 욕조 가장자리에 머리를 기대었다.

오늘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로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던 소영은 은근한 아픔이 느껴지는 엉덩이로 손을 가져갔다. 아직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서인지 평소의 매끄럽고 탄력있는 자신의 엉덩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라가 아니었다면 지금 반성실에서 무서운 벌을 받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따뜻한 물속에서도 소름이 돋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망과 고마움, 이것이 오늘 하루종일 그녀에게 벌을 주고 또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견딜수 없을때 기댈 수 있도록 해준 미라에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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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생님! "

" 말씀하십시오. 김선생님. "

교장실에는 교장과 최미라 선생, 그리고 식당에서 소영에게 벌을 주었던 김현영 선생, 이렇게 세명이 마주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지 현영의 목소리는 잔뜩 높아져 있었고 교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 반성실로 오라는 했던 것까지 취소할 수는 없어요. 분명히 첫날이라 식당에서의 잘못은 용서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텐데요? "

"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똑바로 서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지쳐있는 학생에게 또 벌을 준다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소영양이 살아온 환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

현영은 미라의 말을 듣고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 최선생님의 말대로라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생활해온 여자들은 벌을 받지 않아도 되겠군요. "

미라는 현영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영과는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 단 한번도 편하게 지내지 못한 사이였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미라를 원수지간 처럼 대해왔던 것이다. 당연히 미라도 그런 현영에게 좋은 마음을 가질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학교에서의 지위도 높기 때문에 마지못해 예의를 갖춰줄 뿐이었다.

" 그런 말씀을 드린게 아니잖습니까? "

"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규칙은 규칙이에요. 선생의 신분으로 규칙을 어기겠다는 것은 아니겠죠? "

" 무엇을 위한 규칙입니까? 학생을 "

" 규칙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학교도 없었을 거에요. 규칙을 지키는 것만이 학생을 위하고 학교를 위하는 길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

현영은 미라의 말을 끊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도 현영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다고 느꼈다.

" 당장 소영양을 반성실로 보내도록 하세요! "

" 교장선생님. "

미라는 교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 계속해서 아무말 없이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교장은 미라가 자신을 부르자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 소영양의 입학원서를 봤어요. 쉽게 교육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

"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선생님. 소영양은 충분히 반성을 했고 벌써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너그럽게 "

" 최미라 선생. "

"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

교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자 자신의 말이 무례했다는 것을 깨달은 미라는 금방 사죄를 했다.

" 하지만 체벌만으로 교육을 하는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

" 앞으로도 이런일이 있으면 계속 용서를 할 생각인가요? "

" 교장선생님, 더이상 최선생의 말을 들으실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

교장은 김선생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미라에게 말을 계속했다.

" 이미 한번은 용서를 했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두번은 안됩니다. 최선생. "

"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

미라는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현영은 차가운 미소를 떠올리며 미라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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