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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4:17 1,663회 0건
크로테스 최종회

멀리서 꺄약 꺄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롯데월드에서 방금 자이로드롭이라도 떨어졌는가 보다.

사람들은 추락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면 놀이기구에 올라타거나 번지점프대에 올라 다리에 로프를 매는데에 아낌없이 돈을 지불한다.

생명만 보존된되면 죽음에 이르는 간접체험도 사람들은 즐기려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점점 더 자극을 제공하고 이에 중독된 사람들은 금세 면역이 되고 한 수 높은 자극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꺼내서 무는데 옆에 앉은 성미진은 별로 말이 없다. 촬영장에서 깨어난 그녀는 옆에서 지키고 있던 날 발견했고 옷을 다 입은 그녀는 문득 호수가 보고 싶다고 해서 촬영장 건물 앞에 있는 잠실 호수가로 그녀를 데리고 왔다.

도도한 여자처럼 팔짱을 끼고 말이 없이 호숫가에 어리고 있는 햇살의 반짝임을 보고 있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덥네요...비가 와서 몇일은 시원했었는데"

"당분간은 더 더워지겠죠...그러다가 또 비가 오고 ...그러면 어느틈엔가 계절은 바뀌겠죠"

"더운건 싫어요....숨이 탁탁 막히고 원하지 않는 땀을 흘려야 하고...."

"모기도 많죠...."

"모기라.....우리 집은 고층이여서 모기는 없어요..."

"부럽군요..."

그다지 의미없는 대화를 주고 받던 우리의 머리위로 여름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다 보셨죠?"

"네...첨부터 끝까지.."

그녀가 씁슬하게 웃었다.

"천박하다고 생각하셨죠?....결혼까지 한 여자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후회합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아뇨....어쩌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사장님에게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난 최고의 영화를 봤습니다...감독도 대단히 만족해 하더군요"

그녀가 쓸쓸하게 다시 웃었다.

"최고라....섹스에 미친 여자의 발작이죠..."

"비록 최고의 작품이었지만 아쉽게도 남기진 못했습니다. "

"그건 무슨 말이죠?"

"내가 감독에게 부탁해서 찍는 척만 하라고 했습니다. ...촬영내내 빈필름만 감아댄거에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메이컵이 지워져서 눈가에 살짝 드러난 기미가 엿보였다.

"왜 그러셨나요?...사장님은 제작자 잖아요?"

"글쎄요...나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유를 말한다면 혼자서만 독점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싫었단 뜻인가요?....꼭 제가 사장님과 섹스를 한 기분이네요"

"아무렇게나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

호수의 수면위로 새 한마리가 내려 앉고 있었다.

우아하게 내려오는 모습과는 달리 착지는 영 신통하지 않았다.

두어번 첨벙첨벙 물을 튀긴 후에야 간신히 자리를 잡는 새 주위로 물고기떼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빈 필름이었다니...나도 어쩔수 없나보다...마음이 좀 놓이는걸 보니"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에게 물었다.

"그럴줄 알았다면 남겨둘걸 그랬나요?....민지씨가 나중에 감상하도록 말입니다."

"불행의 씨앗이에요 그런건....감상이라...언젠간 그 모습이 궁금해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아요....사장님이 절 배려하신거에요 "

"고맙단 말은 하지 마세요....배려도 뭣도 아니에요..."

"그래요...그렇겠죠...지금 몇시에요?...그만 가봐야 겠어요...아이가 집에 올 시간이라..."

그녀를 렉스턴에 태우고 잠실을 떠났다.

집까지 데려다 줄려 했는데 그녀가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해서 그녀를 카페 "크로테스" 앞에 있는 정류장에 내려주었다.

그녀가 내리려다가 내 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일 출근을 할지 말씀을 못드리겠어요....내일 만약 제가 나오지 않으면 제가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민지씨가 좋을대로 하세요....내일 나오지 않으시면 민지씨 계좌로 월급을 쏴 드릴꼐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문을 닫고는 정류장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크로테스로 나오든 나오지 않던 그녀에게 천만원을 입금을 할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주는 돈이 아니라 그녀를 두고 내기를 걸어온 그 녀석이 입금해야 할 돈 5천만원중에서 였다.


그녀를 돌려보내고 난 가게로 들어가지 않고 렉스턴을 남쪽으로 몰고 무작정 달렸다. 한참 달리서 서울을 빠져 나온 나는 차선 한번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렉스턴을 몰았다.

용인시에서 샛길로 빠진 나는 사람과 건물이 비교적 뜸해진 곳으로 방향을 잡았고 날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한끼 밖에 먹지 못한 나는 배가 고파졌다. 렉스턴 녀석도 배가 많이 고픈거 같았다.

주유소가 보이는 작은 휴게소 렉스턴을 주차시킨 후에 가락국수를 시켰고 렉스턴에게도 밥을 주었다.
렉스턴에 기대서 설탕이 잔뜩 들어있는 종이커피를 마시면서 깊어져 가는 시골마을의 밤을 그렇게 지켜보았다.

어느덧 내 바램대로 성민지와 오늘 촬영장에서의 모든 기억이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었다.

젠장...이렇게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죄의식도 연민도 느끼지 않고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배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을 쉬고 싶었다.


휴게소를 나와서 조금 더 남쪽으로 달리던 나는 그것도 곧 지겨워져서 다시 머리를 돌려서 서울로 갔다.
카페 "크로테스"로 들어갔을때는 밤 열시가 조금 넘었고 손님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영철이를 불러서 오늘 이만 문을 닫아라고 말한 후에 내가 늘 앉는 창가쪽 자리로 가서 아직도 끝내지 못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 난 청수만 남기고 아르바이트 애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고 가게 문을 완전히 닫은 후에 청수에게 간단히 먹을 정도로 술과 안주를 만들어 오라고 말을 했다.

가게의 조명중 절반을 소등 한 이후 아무 음악이나 틀게 한 이후에 청수와 딤플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의 추종자요 성민지 사건의 결정적인 공범인 청수녀석과 한잔씩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옛날 이야기가 나왔다.

녀석은 옛날 이야기만 나오면 되게 머쓱해 하면서 곧잘 뒤통수를 긁어댄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 벌개진 녀석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끔은 즐겁다.

녀석이 육포를 뜯어서 질겅대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꼭 어제 일 같습니다....사장님도 다 기억하시죠?"

"난 기억없어 임마"

"에이..또 그러신다...사장님은 왜 늘 난 기억에 없다 그렇게만 말씀하시죠?"

"기억에 없는 걸...뭐"

"제가 왜 그때 사장님을 죽인다고 길길이 뛰면서 여기를 찾아왔잖아요...그때도 사장님은 저기 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으셨죠...그 책이 아마 지금도 읽고 계신 "호밀밭의 파수꾼" 맞죠?"

"기억에 없다는대두...."

"그럼 제가 기억을 살려드리죠....2년전...그러니까 제가 3학년때 일이죠...그때 제 여자친구가 사장님하고 잤고 그 애가 포르노까지 찍은 걸 알았죠...그때 전 눈이 뒤집혀서 식칼을 들고 이 가게로 뛰어 들어왔죠...사장님을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구요...근데 사장님은 앉은채로 눈도 깜짝 안하시더군요.."

"글쎄..내가 그랬었나...?"

"내가 소릴 질렀어요...야이 개새꺄...너 씨팔놈 ..너 오늘 죽었어...."

청수가 조금 벌개진 얼굴로 말했다.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술이 담긴 잔을 홀짝마셨다.

"사장님은 들은척도 안했다구요...전 기가 막혔죠...속으로 오냐 너 죽고 오늘 나 죽는 날이다 라고 달려드는데 그 뒤로 생각이 안나더군요..한참후에 눈을 떠보니 가게 내실에 전 누워있었고 옆에는 금발머리의 젊은 남자가 날 내려다 보고 있더군요..."

" 민이에게 얻어터졌나 보구나"

"그게 민이 형님과 첫 대면이었죠...다시 벌떡 일어나서 나가는데 다시 민 형님이 다시 날 죽어라 두들겨 패는데 난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무식하게 사람을 때리는 사람을 첨 봤어요"

녀석은 지금도 그 광경이 생생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글쎄 아마...넌 운이 좋았을거야...민이니까 그정도였지...희한테 걸렸으면 넌 불구자가 되었을거야 두놈다 거칠긴 하지만 민이는 알고보면 그래도 인도주의자야...희는 공산당에 가깝지"

"제 갈비뼈 두대나 나갔는데 인도주의자라구요?.. 여자친구 복수는 커녕 그날 부터 한달동안이나 병원신세를 졌다구요...어휴 지금 생각해도 끔찍 해"

"그런데 내가 너 여자친구랑 잤었다구?...뭐 그럴수도 있겠지...같이 자고 포르노를 찍은 여자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그때 제 눈엔 사장님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마로 보였다구요...병원에 누워있으면서도 몸만 낳으면 꼭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바드득 갈았어요"

"근데 왜 맘을 바꿨지?"

"사장님도....내용을 다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난 기억에 없다니까 그러네"

"병원에 있는데 다시 그 금발머리의 민 형님이 찾아오셨어요...민 형님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알게되었죠...내 여자친구의 추악한 과거...날 사귀기 전에 만났던 숱한 남자들과 날 사귀면서도 몰래 만나던 수 많은 남자들...그중엔 유부남도 두명이나 된단 사실을...."

청수가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남아있는지 얼굴이 굳어진채로 술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반년을 거의 미쳐서 보냈죠..... 매일 같이 술에 절어 보내던 어느날 엄청 취해서 다시 여기 "크로테스"로 쳐들어왔어요....눈에 보이는 모든걸 집어던지고 사람들에게 욕설을 해댔죠...그리고 또 다시 정신을 잃었죠"

청수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탁자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를 꺼내서 녀석에게 건네주자 녀석은 공손히 두손으로 받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그 뒤로도 술만 취하면 다시 여기로 와서 행패를 부렸죠...하소연할 곳이 여기밖에 없었나 봐요...사장님도 밉고 여자친구도 밉고...결국 난"크로테스"와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도 내가 밉냐?"

"후후 글쎄요....사장님은 확실히 악마에요....지금도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사람들의 증오를 밥으로 그들의 눈물을 담궈서 술로 마시는 사장님은 악마이고 여기 "크로테스"는 아수라의 신전과도 같은 곳이죠...그런데 전 그 악마의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죠...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괜찮은 표현이다...증오와 눈물...악마와 집사라..."

"사장님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왜 지금도 그런 일을 하는지 전 몰라요....옛날에 저랑 비슷한 눈물을 흘렸을거라고 생각할 뿐입니다...하지만 이미 전 사장님에게 피를 빨린 뱀파이어가 되어버렸습니다. "


"뱀파이어가 되든 좀비가 되든..내 알바 아니다....쓸데 없는 소리하지 말고 카운터 하나 구해봐"

"그 누나가 그만두시나요?"

"..잘 모르겠어 그럴가능성도 있어"

청수녀석이 괴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한 녀석의 미소가 별로 밉지는 않다.

"다음주 부터 일주일 정도 가게를 비울거야....그렇게 알고 있어...애들 단속 잘하고 가게 잘봐"

"어딜 가시는데요?...저도 따라가면 안되나요?"

"너가 왜 따라온다고 그래?"

"에...그야 저야 사장님의 충실한 비서이자 후계자 아닙니까?...스승과 함께 따라다녀야 하나라도 더 배우죠"

"널 후계자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거야..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게나 지켜"

녀석은 나의 면박에도 계속 헤헤 거리고 있었다.

그날 녀석과 정신없이 마신뒤 가게에서 잤다.



3일 뒤.....


오전 10: 05분


난 출국장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출국장 안쪽에는 미영이가 전송나온 그녀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보딩 시간까지는 1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어떻게 알았는지 인천국제 공항으로 날 찾아왔고 녀석은 뭐가 걱정이 되는지 평소처럼 싱글벙글 대지 않고 이것저것 말이 많았다.

"마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고 또 되게 섭섭하게 생각하신다. 자기에게 아무런 기별도 하지 않고 훌쩍 외국으로 간다고 말이야"

"아주 살려고 가는것도 아닌데 뭘 걱정하시는지...그리고 내가 애들도 아닌데 어디 갈때마다 대모님에게 말을 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투덜댔지만 녀석은 아직도 할말이 많이 남은거 같았다.

내가 시간을 가르키면서 그만 들어가 봐야 겠다고 말을 하자 녀석이 눈치를 살피더니 한마디 더 했다.

"나도 곧 있다가 뒤를 따라갈거야...그러니 도착하는대로 숙소를 알려줘 알았지?"

"뭘 따라 온다는거야?...이거 참 난 혼자 편하게 여행도 못하냐?...너 오지마 임마"

"안돼...이건 마님의 명령이야....나뿐만 아니야 민이도 같이 갈거야 그러니 꼭 연락처를 남겨"

"금발머리도 온다구?...어휴...간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나 했더니 너희 두녀석들 다투는거 또 보겠군"

"갑자기 너가 외국으로 간다고 하니 대모님이 많이 불안해 하시는거 같다...늦어도 이틀 안으로 따라갈거야 "

"젠장...제발 오지 마라 ...확 비행기 빵구 나버려라"

희를 돌려보내고 난 미영이의 부모님과 인사를 했다. 늙은 미영이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는 굽신굽신 하면서 말을 했다.

"사장님...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은혜입니까...별 말씀을..."

그러자 옆에 있던 그녀의 모친도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을 했다.

"우리 미영이에게 외국어 공부도 시켜주시고...정말 감사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

그녀의 부모와 작별인사를 끝내고 미영이와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간단한 여권심사를 거치고 곧바로 기내에 들어선 우리는 비행기의 중간에 있는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았다.

예전에 카페에서 일할때처럼 밝은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저번에 만났을때 보여준 어두움은 어느정도 사라져 있는 거 같았다.

그녀에게 창가쪽을 내어주고 그녀 옆에 앉았다.

한국인 스튜디어스가 나와서 어쩌구 저쩌구 떠들고 있었고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이 기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그녀를 보면서 난 오래전에 본 영화를 하나 떠올렸다.

"중경삼림" 이란 영화였다.

주인공 양조위의 독백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스튜디어스를 유혹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그래서 나는 1만5천피트 상공에서 그녀를 유혹하는데 성공했다]


그녀의 유니폼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매끈한 다리를 감상하고 있는데 비행기가 떠오리기 시작했다.

점점 작아지는 활주로와 사람들을 보면서 겁을 먹은 그녀가 중얼거렸다.

"무서워....이대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동그랗게 열린 창가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비행기 처음 타보니?"

"네...그런데 너무 겁나요...이렇게 빨리 지상으로 부터 멀어질줄 몰랐어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행기 타는 기분이라고 그럴까?"

"...아마....자기들 눈에 모든게 작아져 보여서 그럴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라고 산에 오르는 구나"

그녀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기우뚱하던 기내가 다시 평평해 졌고 더 이상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하얀 구름떼가 보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기체 상승으로 발생한 기압때문에 귀가 멍멍해진 내가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사장님은 비행기 많이 타 보셨어요?"

"기억에 없어..아마 오늘이 처음일거야"

"그래요?..그런데 많이 타보신 분처럼 태연하시네요?"

"태연하지 않으면 별수 있나?...이대로 떨어지면 팔자려니 하는거지...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거야 ..이 퀀타스(Quantas)항공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라고 들었다. ...지금까지 딱 한번 추락했는데 그것도 불시착이란다...툭하면 논두랑에 쳐박히는 국내 항공기와는 다르겠지 뭐"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좀 자둬.... 토끼눈처럼 벌건거 보니 어젯밤 한숨도 못잔거 같은데?"

"으응...네...사실 못잤어요...잠이 정말 안오더라구요"

"잘됐네...앞으로 열한시간은 날아가야 되니까...푹 자둬라....배는 고프지 않니?"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좌석을 뒤로 약간 젖히고 아까 스튜디어스가 갖다준 뜨거운 물수건을 얼굴에 댄체 눈을 감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잘 됐구나...나 잔다..."

어제밤 잠을 자지 못한것은 미영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설레서 자지 못했던 것이고 난 물뽕이 없어서 못잔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다음날 오전 7시에 나와 미영이를 태운 호주국적의 비행기는 시드니 국제 공항에 내렸고 우리가 입국장을 빠져나왔을때는 남반구의 햇살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아무 택시나 집어 타고 무조건 시내 중심가로 갔고 그 곳에서 난 미영이의 도움을 받아서 물어물어 렌트회사로 갔다.

"피테스"(Fitters)란 이름의 렌트회사에서 2000년산 미츠비시 2.0 갈란트를 대여한 이후에 보증금 500달러를 주고 일주일을 대여하고 곧바로 갈란트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달린 갈란트를 내가 쩔쩔매면서 모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미영이는 이국적인 거리의 광경이 신기한듯 잠시도 눈을 창가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미영이가 국내에서 가져온 시드니 시내 지도를 꺼내서 그녀가 묵게 될 뉴사우스 웨일즈 유니버시티를 찾았다.

낮설은 이정표는 영어가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 고역이었고 몇번이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간신히 킹스턴이란 동네에 있는 대학교 앞으로 도착했을때에는 정오 무렵이었다. 갈란트를 주차시킨 후에 그녀의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서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녀가 기숙사 사감과 별로 막힘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으로도 신기해 보였다. 곧바로 그녀는 자신의 숙소를 배정 받았고 그녀의 방에 짐을 날라주고 다시 내려와서 기숙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괜찮은거 같니?"

아직도 들뜬 표정이 가시지 않은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네....다 맘에 들어요"

"학원은 언제부터 나가니?"

"내일부터에요...."

"그래?..그럼 미리 한번 가볼까?"

"정말요?....사실 그렇게 부탁 드리고 싶었는데..."

그녀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다. 외국이 좋긴 좋은가 보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가 묻어있는 한국으로 부터 수만 마일 떨어져 있는 이 곳에서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생기를 되찾아 가고있는거 처럼 보였다.

"뭘 어렵게 생각하냐?..구경하고 싶어요라고 말만 하면 될것을..."

"그래두...사장님 바쁘실거 같아서..."

"오늘은 안바빠...너가 앞으로 반년동안 다닐 학원도 가보고 밥도 먹자...그리고 너 필요한 거 있으면 같이 쇼핑도 하고 말이야"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필요한건 없어요...거의 다 가져온걸요?...정말 필요하다 싶은건 앞으로 천천히 사면 되요"

그녀를 태우고 지도를 참조해서 그녀가 다닐 학원으로 갈란트를 몰았다.


이거...

도대체 몇놈들이나 이 차를 몰았는지 겉보기에는 멀쩡한대도...얼마 몰았다고 벌써 덜덜 거리기 시작했다.

내 차고에 잠자고 있을 렉스턴 녀석이 그리웠다.

"사장님은 어디서 주무실거에요?"

옥스포드 스트리트 쪽으로 차를 모는데 미영이가 물어왔다.

"뭐 호텔같은데서 묵든지 해야지...참 미영아..?."

"네?"

"이틀안으로 한국에서 날 찾는 남자 둘이 올거야....너한테 연락오면 내게 연락을 해라"

"사장님이 직접 연락하시면 되지 않나요?"

"둘다 나처럼 영어는 까막눈이야...내가 나중에 내 연락처를 남겨줄테니 적어둬라"

"네"

전철역이 가까운 곳에 있는 학원은 3층 건물이었다. 그녀가 내려서 학원쪽으로 걸어갔고 난 담배를 피우면서 주위를 구경했다.

지금 한국은 한참 더울때인데 여긴 꽤 추웠다. 계절이 반대라더니 그것이 정말 실감이 났다.

긴 소매를 입고 있긴 했지만 미영이의 모습이 꽤 추워 보였다.

10분후에 그녀가 다시 차로 들어오자 내가 말했다.

" 다 구경했니?"

"네"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내일 부터는 너랑 헤어져야 한다"

"염려마세요...어짜피 반년동안은 혼자 모든걸 다 해결해야 하는걸요"

그녀가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배고프다 밥먹으러 가자..."

"네"

그녀를 데리고 해안쪽으로 갔다.

오페라 하우스가 잘 보이는 항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그녀와 간단한 해물요리를 먹었고 그녀가 소원이라고 해서 항구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고 한바퀴 돌았다.

언제 준비해 가지고 왔는지 그녀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척하고 썼다.

날씨도 추운데 웬 선글라스람....


코발트 빛 바다빛깔과 버터냄새 나는 사람들....반대의 계절...흰색 돛을 달고 둥둥 떠 있는 요트들

"다름" 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그녀는 새롭게 생활을 시작할 것이고 그 다름은 그녀에게 망각의 기회를 갖다줄 것이다.
잊으렴...잊는 다는 사실 조차 까먹을 정도로... 텅빈교실처럼 모든걸 ...전 부 다...

그녀를 데리고 다시 시내로 나온 나는 근처에 있는 할인매장에서 소가죽으로 만든 무스탕을 두개 샀다. 하나는 내 것이고 하나는 미영이 것이었다.

그녀는 한사코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내가 위협을 해서 받게 만들었다.

"너무 이러시지 마세요....벌써 충분하지 않을정도로 많이 받은걸요"

그녀가 어쩔수 없이 옷을 챙기면서 말했다.

"나중에 돈 벌어서 갚아..."

"못갚을지도 몰라요...갚더라도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구요"

"너 자식들한테라도 받아낼거야 "

"그런데 사장님은 여기 왜 오셨어요?...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무슨 뜻인가요?"

"그런게 있어....알려고 하지마...한가지만 부탁하자"

"네"

"여기를 갈려고 하는데 너가 좀 인도해줘라"


그녀를 태우고 어둑해진 도로로 갈란트를 몰았다. 그녀가 옆좌석에 앉아서 내가 찍어준 동네를 열심히 보면서 방향을 가르켜 주었다.


"에지클리프...무슨 뜻이냐?"

"절벽(Cliff)의 끝(Edge)이란 뜻 같아요...동네 이름치고는 특이하네요...아마 이 동네는 고지대인가 봐요"

"절벽의 끝이라... 좋은 이름이다....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뜻이겠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미영이가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물었다.

"시드니에 오려고 했던 곳이 여기였나요?...여기에 아는 분이 계시나 보죠?"

난 대답을 하지 않고 차를 주차시키고 내렸다. 어둠이 내려 앉은 마을에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간간이 지나가는 버스와 불이 켜진 몇몇 술집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느낄수 있을까?....그들의 숨소리를...?


지나다니는 공기를 빨아들여서 그 속에서 그들의 체취를 느끼려고 해보았지만 무감각했다.

미영이가 옆에서 내가 하는 짓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차로 돌아와서 미영이를 태우고 그녀의 기숙사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가 인사를 하고 기숙사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다시 몸을 돌려서 차 쪽으로 다가왔다.

"사장님...저기요..."

그녀가 우물쭈물 하면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뭔데?"

"저기....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그냥 불안해요..."

"새로운 곳에서 혼자 자려니 불안하니?"

그녀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말을 했다.

"제가 아니라요...사장님이 불안해 보인다구요...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여기 왔다는 말도 잘 모르겠고...사장님의 불안한 눈빛도...웬지 무슨 일이 생길거만 같아요"

그녀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떨리고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눈치채었는지 조금 놀랍고 신기하기도 했었다. 속으로 한숨을 몰래 내쉰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자라..."

"사장님...잠깐만요... 할말이 있어요.."

시동을 걸려던 나는 다시 엔진을 끄고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제가 주책없다고 생각하시겠죠?....하지만 약속해 주세요...아무일도 없이 내일 저랑 만나기로요...오늘 점심 먹었던 식당 기억하시죠?....전 내일 5시면 끝날거에요...저녁 8시까지 그곳에서 봐요 네?"

그녀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초조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녀가 그제서야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꼭 오셔야 해요?...알았죠?..."

"알았다니까...어서 들어가"

그녀의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동을 걸었고 나는 차를 몰고 아까 무스탕을 샀던 할인매장쪽으로 갔다.

매장은 마감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고 생활용품 코너에서 난 희의 것이랑 비슷한 스위스제 나이프를 두개 샀다.

시티쪽으로 다시 나온 나는 킹스크로스란 곳으로 가서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호텔에 방을 하나 잡고는 가져간 짐을 그곳에 던져 둔 후에 다시 호텔을 빠져 나왔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이곳만은 활기가 넘쳐 있었다.


활기?...


까짓거 활기라고 표현해 줄까?

벌써 내 앞으로 5명이 마리화나를 팔기 위해서 왔고 거리에는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 비틀대는 사람들과 스트립쇼를 보기 위해서 건물앞에 줄을 서 있는 남자들...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두명의 남자 호모새끼들...190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창녀가 수박덩이 만한 가슴을 드러낸체 팔짱을 끼고 흥
정을 하는 모습들....남반부 최대의 환락가라는 명성에 걸맞았다.

10달러를 내고 스트립쇼 장으로 들어간 나는 호주산 맥주 포스터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컴컴한 실내에는 환기가 잘 되지 않는지 담배연기가 구름처럼 떠돌고 있었고 조잡한 무대옆에 걸린 15인치 브라운관 4개에는 미국 포르노가 보여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자 무대의 조명이 밝아졌고 곧 이어 동양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무대 중앙에 서자 남자들이 삑삑 대면서 휘슬을 불었고 박수소리도 터져나왔다.

스트립쇼에 어울릴거 같지 않은 피아노 음악이 흘렀고 여자는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국내 성인 나이트에서 보여지는 뱀쇼와 별반없는 자세와 몸동작을 몇번 반복하더니 사타구니에 손을 갖다대면서 몸을 배배꼬기 시작했다.

턱을 괸채 그 여자를 유심히 바라보는데 옆에서 맥주를 마시던 남자 둘이서 손을 다정히 잡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 보였다.

여자가 무대를 내려와서 천천히 손님쪽으로 다가오자 휘파람 소리가 더 커졌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단어들도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여자가 몸을 돌려서 애타게 눈빛을 보내는 백인 남자의 허벅지에 걸터 앉더니 엉덩이를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눈빛이 내 눈빛과 마주치자 곧바로 백인에게서 몸을 떼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앉아 있는 내 앞에서 두손을 머리위로 향하고 몸을 흔들자 그녀의 출렁이는 가슴이 내 코에 닿을듯 말듯 했다.

그녀가 내 손을 잡더니 자기의 사타구니쪽으로 이끌었다. 까칠가칠한 그녀의 음모가 느껴졌다.

그녀가 묘한 눈빛을 나에게 주더니 옆에 지나다니는 서빙보는 아가씨에게 윙크를 한 뒤 다시 무대위로 올라갔다.

조금 뒤 서빙보는 여자가 다가오더니 내게 귓속말로 뭐라고 하고 있었다.

난 영어를 잘 모른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손가락을 네게 펴더니 달러라고 외쳤다.


(4달러란 말인가?...아니겠지)

그녀가 한손으로 손가락 네게를 다른 손으로 0을 만들고는 다시 달러! 라고 속삭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빙보는 여자아이가 미소를 짓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녀가 날 데리고 간 곳은 2층이었다.

컴컴한 계단을 올라가자 복도가 나왔고 복도 양쪽으로 3개의 문이 나 있었다. 그녀가 날 복도 끝쪽에 있는 방으로 데려갔고 그녀를 따라가는데 여자의 가느다란 신음소리와 짐승같은 남자의 숨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녀가 방문을 열자 좁은 공간이 나타났고 한쪽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 옆으로 커튼이 있었는데 커튼을 열어젖히자 작은 욕조가 나왔다.

방을 대충 둘러본 이후에 서빙보는 여자에게 서툰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갈수 있냐고 하자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이번엔 어깨에 전갈 문신을 한 덩치좋은 백인 남자가 들어와서는 뭐라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몇번을 되물은끝에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2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같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 남자에게 50달러 지폐를 4장 건네주자 남자가 군소리 없이 받아들고 나갔다.

한참후에 아까 그 서빙보던 여자가 들어왔고 그녀를 따라서 비밀 계단을 따라 주차장쪽 으로 나왔다.

그녀가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는 다시 들어갔고 내가 담배를 반쯤 피우자 아까 그 동양여자가 코트를 입은채 나타났다.


20분 후에 그녀와 난 팔짱을 끼고 호텔의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나보고 어느 나라냐고 물었다.

"코리안..."

"Oh...really?....I"m Japanese"

그녀가 담배 펴도 되냐고 묻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담배를 그녀의 핸드백에서 말보루를 꺼내는 동안 난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서 룸서비스로 이것저것 술을 시켰다.

..... ................


그녀는 술에 취하자 깔깔대면서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영어가 서툰 나는 그녀의 말 태반을 알아들을수 없었고 그냥 술만 계속해서 마셨다.

그녀는 떠들다가 담배를 폈고 담배를 다 피면 내 옆으로 다가와서 내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고 또 술을 마셨다.

그녀가 왜 안하냐고 묻었지만 난 대꾸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그러자 그녀가 일어서더니 등을 내게 돌리고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가 팬티까지 다 벗었을때

시간은

새벽 0:04 였다.



내가 앉은 쪽으로 기다시피 해서 온 그녀는 내 혁띠를 풀고 팬티안에서 내 물건을 꺼내더니 입으로 가져가서 능숙한 솜씨로 빨기 시작했다.


"쩝 쩝...쭈읍...쩍"


그녀의 모습과 자세가 너무 성실했기 때문에 난 신경을 집중했고 그대로 사정이 임박해 오는 것을 느끼고
내가 그녀의 입에서 내걸 빼려고 하자 그녀가 댓츠 오케이...댓츠 오케이를 연발했다.

오랜 터널안을 달린 기차가 빛을 향해 달려가듯이 난 그대로 눈을 감은채 몸을 떨었고 그녀 입안으로
하얀색 내 정액을 쏟아내었다.


그녀가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내걸 받아들이더니 얼굴을 찌푸리면서 욱욱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입을 떼지 않던 그녀는 기어이 내 모든 걸 받아들였고 천천히 입을 떼더니 입술을 다물고 천천히 목구멍 안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방금 내가 토했던 정액의 일부가 새어나오는게 보였다. 티슈를 뽑아서 그녀의 입술을 닦아주고는 다시 그녀와 술을 마셨다.



새벽 01:07


그녀는 벌거벗은 몸을 침대안에 넣고는 깔깔대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난 계속 탁자에 앉아서 남은 술을 들이키면서 그녀를 흘깃 바라보고 또 담배를 피웠다.

발렌타인 30년산을 두병째 비워가고 있었다. 머리속이 먹물을 풀어놓은 듯이 흐리멍텅해졌고 몸이 무거워졌다.

드러나게 풀린 눈으로 그녀가 누운 침대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녀가 듣고 이해하든 말든 한국말이었다.

"사람사는데는 서울이나 이곳이나 차이가 없네 흐흐..."

그녀가 티비를 보다 말고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볼거 없어...그냥 듣기만 해..어짜피 내 말을 못알아 들을테니까"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통제를 벗어난 내 입으로 부터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어떤 남자의 이야기야...그 소년은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소년에게도 부모가 있었지만 소년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 못하지..소년이 눈을 뜨고 세상을 볼때쯤에 소년의 부친이 병에 걸려서 죽었거든..무슨 병인지 옛날에 들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것도 잊어버렸어...소년의 엄마는 소년이 10살이 되던해에 재혼을 했는데 상대는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띠 동갑 남자였어...왜 그렇게 어린 남자랑 결혼을 했냐구?...그건 병에 걸린 소년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 많은 남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 남자가 선택된거지..아니지 선택은 그 남자가 한거고 소년의 모친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


침대에 앉은 여자는 낮선 한국말에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남자가 취했다고 생각했던지 다시 고개를 돌리고 티비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소년의 아버지가 된 사람은 돈도 많았지만 부하들도 참 많은 사람들이었어 소년이 그 남자 집으로 들어간 후에 소년은 거실벽에 걸린 손도끼와 일본도 그리고 석궁들을 보면서 자랐지...소년에게는 또 동생들이 생겼어...자신과 한방울 피도 섞이지 않은 동생들인데 남자와 여자였지...소년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들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어...한번은 무슨일로 남동생과 싸웠는데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아...소년의 주먹이 남동생의 코를 뿌러뜨렸고 다음날 소년은 아버지한테 맞아서 다리가 부러졌지...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지켜주지 못했어 소년이 12살 되던해에 갑자기 가출해 버렸으니까...소년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계부는 또 결혼을 했지... 그때부터 그 집에서 소년의 자리는 없어졌어...소년의 이복 동생들은 아버지라는 끈이 있었지만 이쪽도 저쪽도 없던 소년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밥을 차려주는 사람도 없었지...소년은 첫 가출을 했고 도둑질을 하다가 걸려서 경찰서로 잡혀갔지...계부가 나타나서 소년을 조용히 집으로 데려간 이후에 이틀동안 물도 주지 않고 가둔 후에 매일 밤 소년을 발가벗긴 후에 암소가죽으로 만든 채찍으로 소년을 때렸지...계부가 때리다가 지치면 계부의 부하들이 교대로 나타나서 채찍을 들었고 소년은 한달동안 입원을 해야 했었지"

여자가 드르렁 코를 골고 머리를 침대 모서리에 쳐박고 자기 시작했다.

나는 발렌타인 병을 입으로 나발을 불었다. 의자에 고개를 댄체 나는 듣는 사람도 없었지만 다시 이야기를 했다.

"다음해에 소년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었지...바람을 피었다는 이유로 계부에게 두들겨 맞아서 죽은 엄마는 계부와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야산에 파묻혀 졌단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소년은 그날밤 집에 불을 지른 후에 두번째 가출을 했지...소년은 서울로 올라가서 구두닦이와 신문을 팔면서 야학에서 공부를 배웠고 검정고시를 쳐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지...그때 소년의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한 담임이 학교 숙직실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난생 처음으로 소년은 공부를 할 수 있었어...하지만 밤에 혼자 누울때면 소년은 무서운 계부와 그 의 부하들이 나타날까봐 불안에 떨었지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지...소년은 법대를 가고 싶어했어...검사가 되어서 자신의 모친을 죽게 한 그 계부를 법정에 세우고 싶었던 소년은 열심히 공부를 했지...그런 소년에게 첫 번째 여자가 나타났어 ...그는 자신을 돌봐주던 1학년때 담임 선생의 조카였는데 같은 나이였지....그녀는 늘 알수없는 미소와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은 외롭고 지친 소년의 맘을 잡고는 놓아 주지 않았지
그녀의 삼촌이자 1학년때 담임선생은 소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녀와 사귀지 말것을 조심스럽게 충고를 했엇지...소년은 놀랐어 왜 안되냐고 물었지 선생은 대답을 하지 않았어...
소년이 대학에 합격한 후에 소년은 처음으로 그녀와 키스를 했고 섹스를 했지....그녀는 놀랍게도 처녀가 아니었지만 소년은 신경쓰지 않았어..."

그녀의 코고는 소리가 높아지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들어서 베게에 올려놓은 뒤에 조명등만 제외하고는 불을 껐고 티비도 꺼버렸다. 난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는 그녀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해 주지 않았어...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이런거 였어. [사람을 알려고 하지마...그 사람을 이해할려고도 노력하지 말고...] 그 말뜻을 알수 없던 소년이 다시 물었을때 그녀는 더욱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어

[그건 크로테스크야..... 우린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거야]...


원하던 법대생이 된 남자는 처음 그녀의 외도 사실을 알게되었지...그녀의 과거야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를 만난뒤에도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여자를 남자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남자가 알게된 첫번째 외도 상대는 그녀의 지도교수였어....남자는 여자를 위협했지...한번만 더 그러면 죽여버릴거라고....
그러나 남자는 말뿐이었어...그가 참지 못하고 이별을 선고했만 그는 그녀를 떠날 수 가 없었어....
그럴때면 여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를 대했고 남자가 다시 돌아오면 그녀도 다시 받아들였지 그렇게 몇번을 헤어지고 다시 만났지...여자의 외도는 계속 되었고 남자는 차츰 그녀의 외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받아들였지...남자가 2학년에 올라가던 해에 학교로 경찰이 찾아왔고 몇년전에 있었던 방화범으로 고발을 한 계부의 신고로 남자는 대학교에서 퇴학을 먹었지.. 이미 계부는 호적에서 자신의 존재를 없애 버린 후였고 학교에서 잘린 남자는 군대를 갔지...남자가 입대한 이후 반년이 되었을때 두가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어..하나는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고 두번째는 신랑이 한때 자신의 계부였단 사실이었지....그가 군대를 간 후에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원조교제를 하던 그녀가 호텔에서 만난 남자가 자신의 계부였고...그녀의 매력에 빠진 계부가 프로포즈를 했고 그녀는 선선히 동의했던 거지...모든걸 알게 된 남자는 자기의 소총을 든채 탈영을 했고 결혼식장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와 턱시도를 입고 있던 자신의 계부를 보았지...그녀는 자신 앞에 나타난 남자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지만 고개를 돌렸고 총을 들고 예식장으로 뛰어들던 남자는 계부의 부하들에게 맞아 쓰러졌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헌병들에게 잡혀서 영창으로 끌려갔지.."


세번째 술병을 집어 들었다. 목구멍으로 딸려 들어가는 위스키가 독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졌다.

난 또 다시 말하고 있었다.

"영창에서 한달을 보낸 후에 불명예 제대를 한 후에 곧바로 남자는 민간 법정에서 형을 선고 받고 남한산성으로 보내졌지,...그 곳 감옥에서 1년을 더 보낸 후에 사회로 나온 남자는 더 이상 갈곳도 자신을 받아줄곳도 없었지...남자는 그때부터 불면증에 서서히 시달리기 시작했지...다행히 그 옛날 은사님이 작은 유통업체를 소개시켜주었고...그 곳에서 새롭게 모든 걸 잊고 시작하려던 남자에게 계부의 부하들이 찾아와서 사장을 두들겨 팬 뒤에 남자를 해고 시키지 않으면 공장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지...거기서 ?겨난 남자는 택시를 몰기 시작했지 ..하지만 남자가 가는곳에는 계부의 부하들이 뒤를 따랐고 결국 그 곳에서도 ?겨난 남자는 모든 희망을 접고 살았지...불면증은 더욱더 심해졌고 해만 지면 술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게 된거지...비가 쏟아지던 어느날 취객의 지갑을 터는데 성공한 남자는 술을 잔뜩 마시고 길가에 쓰러졌는데...거기서 어떤 돈 많은 할머니를 노리던 사람들의 칼을 대신 맞게 되었지..."


거기까지 중얼거린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때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면도까지 마친 나는 프론트에서 체크 아웃을 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제법 추웠다.

트렁크에서 어제 산 자주색 무스탕을 입은 나는 갈란트를 몰고 에지클리프로 갔다.

메모지에 적힌 주소까지 차를 몰고 간 나는 근처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아까 사왔던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면서 창밖을 주시했다.


하이에나가 준 정보가 적힌 메모를 다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백범수(41세 남)

1)신장 172센티미터..체중 75키로..

2)과거에 속초에 있는 백호파의 부두목...전과 5범(폭력, 매춘, 절도교사죄등)

3)2년전에 시드니로 이민 온 이후 시드니의 한인촌인 캠시타운을 장악시도중....

4)현재 베트남계 조직인 차오밍파와 연계중이나 결속력이 높아보이지는 않음...

5)시드니에 있는 에지 클리프(Edge Cliff)에 대지 120평에 건평 95평의 2층 목조저택에 부인과 자녀2 그리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자 2명이 같이 거주중

6)저택은 현재 월세 임대계약으로 사용중...


채명인(33세 여)

1) 백범수의 아내.. 164센티..53키로그램

2)한국에서 가정대학을 다니다가 결혼과 동시에 중퇴..백범수와는 9년전에 결혼했으며 자식은 없음...


백신영(28세 남)

1)백범수의 장남 ...175센티...80키로그램

2)백범수의 첫번째 부인의 소생 미혼이며...백범수의 실제적인 오른팔임

3)전과 3범(살인, 마약판매, 특수폭력)

4)당수와 합기도의 각각 초단이상 수준으로 파악됨


백혜진(26세 여)

1)백범수의 막내딸...167센티..51키로 그램

2)백범수의 첫번째 부인의 소생...역시 미혼이며 현재 시드니 시티에 있는 커먼웰스뱅크의 텔러로 활동중

3)찰리라는 호주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으며 집에 백범수의 집에 자주 오는것으로 파악됨


최일순(35세 남)

1) 백범수의 보디가드...181센티미터 77키로 그램

2)백범수의 보디가드로 과거 한국에서 부터 백범수의 행동대원이었음..살인및 방화 폭력의 전과5범

3)유도 3단.. 검도 초단..잔인한 성격으로 보임


태형일(23세 남)


1)백범수의 보디가드...183센티 80키로 그램

2)전과없음...한국교포 2세로 영어에 능숙...백범수가 현지에서 채용한 한인촌의 건달

3)유슈의 달인으로 보임...역시 잔인함


기타....

시덕스(생후 8개월 수컷 강아지) :

1)마르치스 순종으로 채명인이 기르는 것으로 보임

2)공격성 없고 위험요소도 없으나 잘 짖음

3)좋아하는 음식 : LA갈비...프랑크 소세지 ...베이컨



하이에나가 보내준 첨부파일에는 집안의 구조까지 상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다시 한번 더 읽은 나는 종이를 라이터로 태워서 버렸다. 가방에서 어제 저녁 할인매장에서 산 스위스제 단검을 꺼내었다.

대부분의 범죄는 밤에 이루어진다. 어둠이 자신을 가려줄 것이라고 믿는 심리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밤이면 준비하는 쪽도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밤이 더 위험할 수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나이프를 접어서 무스탕 주머니에 넣었고 아까 식품점에서 가져온 것을 검은색 비닐에 넣고는 차문을 열고 나왔다. 한기를 잔뜩 품은 돌풍이 골목으로 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PM 05: 23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이 곳은 지금 겨울이기 때문에 해는 빨리 질것이다.

백범수가 사는 저택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조깅복을 입은 늙은 백인 여자 둘이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면서 뛰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고 프랑스제 생수를 싣고 가는 박스트럭이 골목을 돌고 있었다.

담장은 별로 높지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에 담으로 뛰어 올랐고 소리를 최대한 죽여가면서 착지하는데 성공했다.

누렇게 말라버린 잔디와 꺼져 있는 스프링 쿨러가 있는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간 나는 현관 입구에서 멈춰섰다.

희미한 발자국 소리와 으르릉 대는 소리가 교차하면서 안쪽으로 부터 들려왔다.

이윽고 열린 창쪽으로 하얀색 물체가 보이더니 마당쪽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날 발견한 녀석이 이빨을 드러내면서 다가오자 주머니에서 비닐을 꺼내서 그 안에 들어있는 프랑크 소세지를 나이프로 대충 잘라서 내 발밑에 뿌리자 녀석이 꼬리를 말면서 정신없이 주워먹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먹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녀석에게 속삭였다.

"시덕스...착하구나...배가 많이 고팠니?...너네 주인은 밥도 안주더니?...자 이리와라 더 줄까?"

다 주워먹은 녀석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가 들고 있는 비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앞에 얌전히 앉은 녀석을 살며시 집어들고 시덕스의 뒷통수에 스위스제 나이프를 밀어넣었다.

내가 나이프를 다시 빼어낼때까지 녀석은 한마디 비명도 없이 그대로 축늘어져 버렸다.

마당에 심어진 아카시아 나무들 사이로 시덕스를 던져 넣은 후에 피가 묻은 나이프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안쪽을 살폈다.

안쪽으로 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시덕스가 아까 나온 열린 창쪽으로 다가갔고 창문을 조금 더 열어 젖힌 후에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서재로 통하는 창문이었다. 정리가 잘된 서재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후에 거실쪽으로 걸어갔다.

거실 한켠에는 두 녀석이 체스를 두고 있는게 보였다.

좀 나이든 쪽이 최일순이고 젊고 머리가 짧은 녀석이 태형일일 것이다.

움푹 들어간 거실 한쪽에 몸을 숨기고 녀석들의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태형일이 체크하고 외치자 난처한 표정을 짓는 최일순의 모습이 잘도 보였다.

최일순은 한동안 머리를 벅벅 긁더니 품속에서 100달러 지폐를 꺼내서 최일순 앞으로 밀어주었다.

내기체스를 둔 모양이었다. 최일순의 말이 들려왔다.

"한판 더두자...화장실 갔다 올테니 다시 정리 해 놔"

투덜대면서 최일순이 일어났고 화장실로 통하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00달러를 번 태형일이 싱글벙글 하면서100달러 지폐를 잡고는 자랑스러운 듯이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뒷면을 보기 위해서 지폐면을 뒤집던 태형일이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녀석의 관자놀이에는 내가 던진 첫번째 스위스제 나이프가 꽂혀 있었고 녀석은 시덕스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저승으로 갔다.

잠시 후에 철컥 소리가 들리면서 바지를 올리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던 최일순이 거실에 쓰러져 있는 태형일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최일순은 바지를 올리는 것도 잊어 버리고 그대로 태형일 쪽으로 달려왔고 쓰러진 태형일의 몸을 일으키려다가 얼굴에 꽂힌 나이프를 확인하고는 흠칫 몸을 돌렸다.

녀석이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내 두번째 단검이 녀석의 이마에 꽂혔다. 녀석은 부들부들 떨면서 두 손으로 이마에 꽂힌 나이프를 빼려다가 내 눈과 마주쳤다.

최일순의 눈이 더욱 커지는가 싶더니 녀석이 나이프 손잡이에서 손을 내리고는 그대로 태형일의 몸위로 풀썩 쓰러졌다.


두 녀석에 다가가서 각각 관자놀이와 이마에서 나이프를 뽑아들면서 나는 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힘으로 던지는 게 아니야...어깨에 힘을 빼고...스냅을 사용해서 가볍게 뿌리는 거야..나이프가 손을 떠나 목표물로 날아갈때까지 시선은 계속 유지해)


체스판위로 떨어진 백달러 지폐를 품에 집어넣은 뒤 피가 묻은 손수건으로 나이프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하이에나가 준 집안내부도에는 이들 부부의 침실이 2층에 있었다.

목조 계단을 올라갈때는 신경을 써도 삐꺽 대는 소리가 났다. 발끝을 들고 발앞꿈치로만 조심조심 내 딛으면으서 올라가는 내 귀에 사람소리가 들려왔다.


"아..으흐윽..."

"어때...이제 안프지?.."

"아..여보...너무 좋아...."

"그러게 내가 뭐랬어?....첨에만 그렇고 곧 좋아질거라 그랬지?"

"아...그래도 아직도..조금..아퍼..으윽"


부부는 방문도 반쯤 열어놓고 그 짓을 하고 있었다.

나이프를 주머니에 찔러넣고 침실 방문앞까지 온 나는 고개를 내밀어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퀸 사이즈 침대 위에 내 또래의 여자가 엎드린채 흐느끼고 있었고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뒤에서 헐떡대고 있는게 정말이지 볼만 했다.

열린 문을 밀어 젖히면서 내가 들어갈때까지 두 사람은 너무도 집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계속 헐떡대고 신음을 지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열기가 후끈하군요...."

두 남녀가 흠칫 하더니 동작을 멈추고 내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더니 두 남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남자가 자기의 물건을 급히 빼고 시트로 하체를 가렸지만 여자는 아직도 개구리처럼 엎드린 자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인이 변비인가? 그렇게 똥구멍에다 찔러대면 똥은 잘 나오겠지만....그러다 병걸려"

남자가 몸을 일으키면서 날카로운 그러나 당황함을 감출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넌 누구냐?"

냉소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얼굴도 잊었나?...앨범에 내 사진도 있을텐데...아 참 없겠군...난 이제 당신 아들이 아니지"

엎드린 그녀가 그제서야 내 얼굴을 기억해 내고는 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그녀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너...넌?"

"안녕..정말 오랜만이야...금실이 참 좋아 보인다 다행이야 "

백범수도 뒤늦게 내 존재를 파악했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마 태형일과 최일순을 찾는 몸짓일 것이다.

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둘은 지금 사이좋게 체스를 두고 있어...물론 거실이 아니라 저승에서 말이야"

백범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네 네녀석이..? 어쩔 셈이냐?..."


난 백범수의 질문을 외면하고 채명인...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내가 입을 燦駭?

"좋은 집에 살고 있구나...내가 궁금한게 있어서 그래 그러니 말을 해줘"

백범수는 시트를 가린채로 몸을 일으키면서 눈빛을 날카롭게 사방으로 던졌다. 무기 따위를 찾는거라고
생각했다.

"대답해줘....당신은 지독히도 내가 가는 곳마다 당신 개들을 풀어서 날 따라다녔는데 왜 최근 3년동안은 왜 날 찾지 않았지?"

"그건...."

백범수가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다.

난 씩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대답해줄까?...아마 내 소식을 들었겠지...아마 당신이라도 철마녀는 부담스러웠을거야...그래서 여기로 허겁지겁 도망와서 힘없는 교민들이나 주무르면서 왕노릇을 하려고 했던거겠지?"

백범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외면하고 아직도 엎드린채 떨고 있는 채명인에게 물었다.

"너도 옛날보다는 많이 늙어보인다..그래 요즘은 남자들 안만나나?...여기라면 파란눈에 금발의 매력적인 남자들 많잖아..."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혀..현우야....."

"너한테 묻고 싶은것이 있어서 여기 까지 왔어..그러니 꼭 대답해줘....너 대답이 실망스러우면 너도 죽여줄거야...그러니 대답해봐...."

"뭐...뭔데?"

"넌 늘 나에게 말했지...인생은 크로테스크 한거라구....그런데 너 말이 맞는거 같더라...세상은 뒤죽박죽에 온통 혼돈투성이야....남편이 마누라를 때려 죽이고 산에 파묻고 ..사랑하는 여자는 남자의 아버지랑 신방을 차리고 말이야...자..그건 그렇고 내가 알고싶은건 뭐냐하면 너에게 있어서 나도 크로테스크였냐는거야"

"그...그건"

그녀가 다시 떠듬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엉거주춤 서 있는 백범수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그게 좋을거야...방금처럼 딴 짓을 한다면 거실에 쓰러져 있는 너의 부하들 뒤를 따르게 해줄테니까"

바닥에 뒹굴고 있던 골프클럽 쪽으로 손을 가져가려던 백범수가 흠칫하고는 손을 뒤로 뺐다.
나는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서 탁자에 놓고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자 말해봐....너에게도 난 크로테스크였어?"

그녀가 갑자기 울면서 말했다.

"미안해....미안해...범수야...내가 잘못했어...."

"내가 듣고 싶은건 그 말이 아니야...대답을 해줘...너에게 난 크로테스크한 존재였어?"

"그딴거...난 몰라...다 개소리였어...난 아무것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거였어 엉엉"

"무슨 소리야?..."

그녀가 주저 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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