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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3:12 1,436회 0건
SF] 혹성상인 56. --- 사랑의 조건

56.

장리웨이와 리에의 춤을 보던 한스는 우울해져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별장으로 가는 모터보트를 타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별장에 도착한 한스는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는 방안을 서성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불쑥 벽에 걸려있는 말채찍이 눈에 들어오자 그걸 꺼내 들었다. 손으로 채찍을 만지작거리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역시 잘되지 않았다. 한스는 어찌됐든 부딪혀보자는 생각을 하고는 마농에게 마칼레나를 부르라고 했다.

자려고 했었는지 허름한 옷차림의 마칼레나가 차분하게 걸어 들어왔다. 한스가 쳐다보자 마칼레나는 고개를 숙였다. 한스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서있는 마칼레나의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한스는 마칼레나를 보자 솟구치는 감정과 회한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할 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말이 아니라 마칼레나를 어떻게 해야할 지 두서가 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머리 속 생각과는 달리 말이 먼저 나갔다.

“마칼레나, 어제 좋았어?”
“…”
“대답해 봐. 내가 묻고 있잖아. 좋았냐고?”
“…”
“멋진 남자랑 섹스를 해보니 무척 좋았지?”
“…”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그런 신음소리를 냈던거야?”
“…”

“말해봐, 마칼레나.”
한스의 채찍이 마칼레나의 앞가슴을 강타했다. 그러나 마칼레나는 몸만 움찔햇을 뿐 역시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장리웨이가 좋았어?”
“…”
“나하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좋았냐고?”
“…”
“그에게 보내줄까?”
“…”
“네가 원한다면 너를 그에게 주겠어. 자 말해봐, 그에게 가고 싶어?”
“…”

마칼레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스는 돌아서서 창밖을 보았다. 어둠이 대지와 호수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그 어둠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한스는 이런 상황이 화가 났고 묵묵부답의 마칼레나에게 화가 났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잠시 보였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한스는 돌아섰다.

“엎드려, 엉덩이를 내밀고 엎드리란 말야.”
한스의 난폭한 말에 마칼레나는 낮은 탁자를 짚고 엎드렸다. 한스는 채찍을 들어 있는 힘껏 마칼레나의 엉덩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래, 말해봐. 그 놈이 좋았어?”
“…”
“그놈 어디가 좋았어? 굵고 힘찬 자지가 좋았어?”
“…”
“아니면 유들유들한 얼굴이 좋았어? 아니면 허리 놀리는 테크닉이 좋았어?”
“…”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다른 남자랑 한다는게 좋았냐구?”
“…”
“말해봐, 이 화냥년아.”
“…”

마칼레나는 한스가 아무리 윽박질러도 그리고 아무리 세게 때려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매질과 욕설을 견뎌냈다. 하지만 매질이 계속되자 마음과는 달리 엉덩이는 매를 피하려 움찔거리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런 마칼레나를 보면서 한스는 웬지 모르게 설움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손에 힘이 빠지고 채찍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칼레나… 나, 나는… 난 너를 사랑했어… 그건, 그건 너도 알잖아…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어.”
“…”
“마칼레나! 뭐라고 말 좀 해봐. 넌 아직도 내꺼지. 넌 누가 뭐래도 내 암캐지. 너는 그 육체 뿐만 아니라 네 영혼까지도 내 소유물이지. 넌 그래도 나를 사랑하지?”
“…”
“마칼레나, 난 정말로 너를 사랑했어. 난 진심이었단 말야. 난, 나는 너도 그런 줄 믿고 있었어. 그런데…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
“어떻게 내 순정을 이렇게 짓밟을 수가 있는거야? 이래서, 이래서 여자는 못믿을 존재라는 거지. 옛날 아이리스가 나에게 그랬듯이 너도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그에게로 덥썩 가버리는 거지.”
“…”
“그래, 이러니 어쩔 수 없어. 서버는 모두 어쩔 수 없어. 서버는 모두 지들에게 합당한 대접을 받는거야. 회사가 잘못하고 어쩌고 하는 건 다 개소리야. 서버는 그만한 값어치 밖에 없어. 그리고 마칼레나, 너도 어쩔 수 없는 서버에 불과해. 너를 사랑한 내가 바보지, 멍청이지. 난 이지스 전체를 파멸시켜 버릴거야. 온통 쓰레기 같은 서버들 밖에 없는 이지스 전체에 철퇴를 휘두를거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뭐야!”

갑자기 마칼레나가 낮고 단호하게 한스의 말을 반박하자 한스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칼레나를 보았다.
“도련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저도 도련님을 사랑했어요. 저도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한 남자를 사랑했어요… “
“…”
“그런데 도련님은 나를 어떻게 했나요? 도련님을 사랑하는 나를 어떻게 했냐구요? 도련님은 나를 서버로, 소유물로, 암캐로만 취급했어요.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태도는 바뀌지 않았어요.”
“…”
“도련님의 사랑이 뭔가요. 여러 여자들 중에 한두번 더 데리고 자면 사랑인가요? 조금 더 자주 매질을 하면 사랑인가요? 전, 저는 그래도 도련님이 저를 사랑한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저도 도련님을 사랑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참고 참으면서 그 더러운 링링년의 모욕에도 참고 참으면서 도련님이 나를, 여자로, 연인으로 대해주길 기다렸어요.”
“… 마, 마칼레나.”
“그런데 이젠 도련님이 저를 다른 남자에게 주어버리기 까지 했어요.”
“마, 마칼레나, 그 그건…”

“도련님이, 도련님이 나를 그냥 그런 서버로, 암캐로 취급하는데… 그래도 저는 그런 도련님의 뜻에 따르는게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를 따르는 것,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남자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 이런게 여자가 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
“그런데 도련님은 나를 그 남자에게 주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도련님이 시키는 일이니까…나는 참기 힘들어도,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도련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그것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칼레나…”
“그런데 그 남자를 맞으며 나는 느꼈어요. 이건, 이건 아닌데 라고요.”
“…”
“그런데 그러자 나도 화가 났어요. 그 남자를 맞으면서, 그 남자의 밑에 깔려 허우적거리면서, 그 남자의 몸놀림에 내 몸에서도 쾌락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에요. 이건, 이건 아니라구요. 그러면서 도련님의 사랑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도련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결국 남자와 서버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리 마음 속으로 깊이 사랑한들 도련님과 나는 주인과 암캐에 불과하고. 이 이지스에서는 어떤 여자와 남자의 사랑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칼레나!”
“그래요. 나는 일찍 주제를 깨달았어야 했어요. 나는 한낱 서버에, 그것도 도련님의 암캐에 불과한데 감히 사랑을 꿈꾸다니요.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어요. 이 이지스에서 남자와 서버는 죽어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마칼레나, 나는…”
“자, 이제 맘대로 하세요. 이제 더럽혀진 나를, 도련님이 도저히 사랑할 수 없게 더럽혀진 나를 그 남자에게 주어버리든, 아니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겼다는 이유로 죽여버리든, 아니면 바깥 우주에 팔아버리든 맘대로 하세요. 나도 이제 더 이상 사랑을 꿈꾸지 않을 거에요. 이지스에서 불가능한 사랑을 기대하지 않을 거에요.”

마칼레나.
한스는 입속에서 맴도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멍하니 마칼레나를 쳐다 보았다. 말을 마친 마칼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리기 시작했다. 마칼레나의 연약해 보이는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스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스스로 마칼레나를 사랑했다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 어쩌면 이런 운명은 회사가 존재하는 이지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몰라.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회사를 파괴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마칼레나와 둘만의 피난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아버지는… 회사는… 야망과 쾌락은… 내가 정말 마칼레나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것마저 헷갈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흐느끼던 마칼레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쨌든 도련님을 사랑했어요. 도련님을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마칼레나!”
한스는 마칼레나를 부등켜 안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마칼레나, 미안해, 미안해. 난 언제나 너의 진심을 오해했어. 난… 난 너를 사랑할 자격도 없는 놈이야. 마칼레나, 나를 용서해 줘, 마칼레나.

한스와 마칼레나는 잠시동안 서로를 부등켜 안고 회한과 설움이 복받치는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한스는 몸을 일으켜 마칼레나의 얼굴을 잡고 그녀의 눈물젖은 눈에 입을 맞추었다. 마칼레나는 눈을 감고 젖은 눈을 감미롭게 감싸는 한스의 입술을 느꼈다.

“그림 좋네.”
갑작스러운 여자의 목소리에 한스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리에가 빈정거리는 눈초리로 그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리에 여긴 어떻게…”
한스가 눈물을 훔치며 계면쩍게 리에를 대했지만 리에는 한스는 거들떠도 안보고 마칼레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잠깐 마칼레나가 리에를 보자 두 여자의 눈에서는 불똥이 일었다. 그러나 마칼레나가 바로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년이 그 유명한 마리브의 마칼레나인가 보군요.”
“리에,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오빠, 정말 실망스럽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뭐가?”
한스는 리에의 질책에 발뺌을 하며 마칼레나를 막아섰다. 과거에 링링이 그랬던 것처럼 여자들끼리 부딪히게 놔두면 리에가 마칼레나에게 무슨 짓을 할 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년에게 해꼬지 하지 않을 테니 그년을 내보내요.”
리에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백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스는 마칼레나에게 눈짓을 했다. 마칼레나는 일어서며 한스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에요?”

“뭐야?”
마칼레나의 당당한 말에 리에가 폭발했다. 담배가 한켠으로 날아가고 리에의 앞발이 마칼레나를 향해 날아갔다. 마칼레나는 사뿐하게 움직여 그 발길질을 피했다. 그러자 리에가 다시 발길질을 했다. 한스가 두 여자의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렸다.
“마칼레나, 제발… “

한스가 리에를 붙잡고 마칼레나에게 사정을 하자 마칼레나는 리에를 한번 쏘아보고는 방밖으로 나가 버렸다. 도로 소파에 앉는 리에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씩씩 거렸다.
“리에,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정말, 정말이지… 오빠는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군요.”
“…”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땐데 저런 년하고…”
“…”
“거기다가 저년 태도는 또 뭐에요. 오빠가 어떻게 했길래 저년이 무슨 안주인이나 되는 듯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거냐구요. 서버 주제에.”
“… 리에, 난, 난 마칼레나를 사랑해.”

한스의 말이 끝나자 리에는 마치 쇠망치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하얗게 굳어진 얼굴로 한스를 쳐다 보았다.
“그래, 리에, 너 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마칼레나를 사랑해.”
리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넌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야.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마칼레나야. 하지만 난 널 동생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네가 좋고 너와 잘지내고 싶어. 리에, 내 말 알아듣지?”

한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리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잠시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던 리에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 전 그만 갈께요.”
“리에, 가지마, 기왕 온김에 나랑 이야기나 좀 하다가 가.”

리에는 한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나가 버렸다. 잠시후 모터보트의 스큐류가 도는 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멀어지고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스는 소파에 허탈하게 앉아 있었다. 리에가 활짝 열어 놓고 가버린 문으로 바깥의 바람이 밀려들어와 한스의 블라우스를 흔들리게 했다.

나의 사랑과
나의 동생과
나의 아버지와
나의 회사

한동안 별이 흐물흐물 흐르는 밤이 계속되었다.







시크릿 (2003-08-22 10:14:54)

모자님 화이팅~^^~



cksdn852 (2003-08-22 13:15:30)

재밌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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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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