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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3:12 760회 0건
SF] 혹성상인 59. --- 신고식

59.

자신을 증명하라? 어떻게? 뭘 어쩌라는 말인가? 대부분 이사들은 앤슬롯의 말이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사로 지명될만큼 그동안 회사를 위해 노력해왔으면 이미 자신을 증명한 것이 아닌가. 뭘 또 증명하라는 건지… 하지만 모두 잠자코 앤슬롯이 무엇을 요구하려나 기다렸다. 그러나 한스는 앤슬롯의 말에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가 말하는 투로 봐서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마칼레나도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고 하면? 한스는 그 순간부터 앤슬롯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여 시선을 아래로 낮추었다.

“저는 여러분에 대한 존안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카드의 내용이 맞는지 제가 질문을 할 테니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야마니이사.”
“네.”
“이사는 페비안 행성에서 한 어린 서버를 입양하여 집에서 키우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네.”
“그 서버의 이름은 뭐죠?”
“나리프입니다.”
‘나리프 야마니 맞나요?”
“네.”
“그 서버는 지금 몇살이죠?”
“지금 18세입니다.”
“그녀와 관계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저는 그런 짐승 같은 짓은 안합니다.”
“지금 짐승 같은 짓이라고 했나요?”
“네.”
“그 서버를 입양한 이유가 뭡니까?”
“예전에… 제가 어릴 때 저를 돌봐준 친척 누나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하지만 그 서버는 이제 18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서버등급 심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죠?”
“심사는… 의무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성인이 되면 해방 신청을 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심사는 무의미한…”
“그렇지요? 하지만 이사님들은 해방서버도 서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석방 된 것이지 사면된 것이 아닙니다. 야마니 이사, 이제 회사가 그 서버를 스키타이 파크로 보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야마니 이사. 이사는 나리프를 이곳 중남해에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그녀가 이곳에 왔다면 나는 그녀를 이 자리로 불러 이사와 다른 이사들에게 그녀를 강간해 보이라고 했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야마니 이사에게 요구하겠소이다. 그녀를 회사에 반납하시오.”
“…”
“뭐라도 대답해고 좋소. 그 답변은 기록될 것이고 회장님과 감사위원회에 보고될 것이오.”
“…”
“답변이 없었다고 적어도 되겠소?”
“… 회사에 반납하겠습니다.”

칼리프 야마니가 얼굴에 식은 땀을 흘리다가 마침내 고개를 숙이며 답변을 했다.
“고맙소, 야마니 이사. 이번에는 메사 이사에게 묻겠소.”
앤슬롯이 카를로스에게 시선을 돌리자 카를로스는 예의 창백한 얼굴로 앤슬롯을 쳐다 보았다.

“메사 이사는 이번 회의에 두 명의 서버를 데리고 왔지요?”
“네.”
“그녀들은 메사 이사가 소유한 서버인가요?”
“아닙니다.”
“그녀들과 관계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메사 이사는 가장 최근에 서버와 관계한 것이 언제요?”
“…”
“잘 기억이 나지 않소?”
“네. 그렇습니다.”
“서버와 관계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서버와 관계하지 않아도 성적인 매질을 한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죽인 적은 있소?”
“네.”
“그게 성적인 측면과 관계가 있었나요?”
“아닙니다. 임무 수행상 필요했었습니다.”
“그럼, 서버말고 가장 최근에 여자하고 관계한 적은 언젭니까?”
“그건 사생활입니다.”
“메사 이사. 당신은 전략정보처를 맡아왔고 이제는 회사의 이사가 되었소. 나는 이사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사의 가치관을 알기 위해 묻는 것이요. 그리고 이사가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존안 카드의 사실을 들어 좀더 구체적으로 묻게될 것이오.”
“그런 이유라면 앤슬롯 감사위원님과 따로 만나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생활입니다.”
“메사 이사. 당신은 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회사 상품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성향을 갖고 있소. 그런 태도로는 부분적인 일을 맡을 수 있어도 어떻게 회사 전체의 경영을 수행하는 이사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소?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서버를 매질하고 강간하라고 요구한다면 할 수 있겠소?”
“… 너무 유치한 말씀입니다.”

카를로스, 이자는 정말 엉뚱한 면이 있구나. 한스는 칼리프와 카를로스에 대한 앤슬롯의 질문을 들으며 그들에게 그런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앤슬롯이 다음에 자신과 마칼레나의 관계를 캐물을까봐 가슴이 무거웠다.

“이오츠카 이사.”
“네.”
“이사는 사외이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의 이사요. 트윈과 회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그땐 어떻게 할건가요?”
“저는 트윈의 후계자입니다. 트윈의 이익을 지킬 것입니다.”
“그건 좋습니다. 아직은 회사도 트윈이 필요하니까요. 그럼 다른 것을 묻겠습니다. 이오츠카 이사의 어머니이신 레이코 전이사께서도 서버였고 이오츠카 이사 자신도 서버라는 것을 인정합니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렇습니다.”
“존안카드에는 어머니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누굽니까?”
“저는 서버입니다. 서버는 어머니만 있지 아버지는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드린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말티야 A705-6521kt 가 제 아버집니다. 저는 서버들의 일반적인 체세포 수정방식으로 태어났습니다.”

한스는 입에 침 하나 안바르고 아무런 꺼리낌없이 거짓말을 줄줄이 늘어놓는 리에의 예쁜 입술을 보며 역시 무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신이라면… 물론 거짓말을 했겠지만 그래도 결국 어색한 모습을 보이고 말텐데… 이렇게 무서운 여자인 리에와 마칼레나 문제로 인해 척을 진다는 생각에 머리가 더욱 무거워 졌다.

“이오츠카 이사는 자신도 서버이면서 회사가 서버를 상품으로 다루고 학대하고 죽이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할 수 있습니까?”
“트윈의 주요 산업은 서버매매입니다. 저는 제가 서버이기 때문에 서버의 속성을 이용해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어머니보다 하신 것보다 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남자와 관계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서버와 동성애를 즐긴 적은 있습니까?”
“네. 저는 그들을 학대하길 좋아합니다.”

터무니없는 문답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대화에 한스는 숨이 턱막히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쉼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그것도 전혀 아무런 꺼리낌이 없이. 원래 여자가 거짓말을 더 잘한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한스는 여자의 교활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엄한데로 번졌다. 혹시 마칼레나도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오츠카 이사. 존안 카드에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이사가 회사 직원인 남자 세 명과 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대해서 해명해 보시오.”
“제가 카를로스를 속였습니다.”

리에의 말에 모두가 놀라 리에를 쳐다보았다. 기록에 대해 해명을 하라니까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카를로스를 지목하고 나선 그녀에게서 대부분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무슨 뜻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전략정보처는 의도적으로 저에게 남자를 접근시켜 왔습니다. 저는 그들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저도 여느 서버와 다름없이 남자에 환장한 서버라고 확인시켜주는 것이 그들의 주목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렇게 보이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남자와 관계한 것은 관계한 것이 아니다, 이런 뜻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저에게 접근한 남자들에게 약물이나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마치 저와 관계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실제 저와 관계한 적은 없습니다. 다른 서버와 관계한 것은 있습니다.”

“존안카드의 마지막 기록에는 회사 직원 제임스가 트윈을 방문했을 때 그와 조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기록에는 두 사람의 관계 가능성에 대해 ‘상세불명’이라고 적혀있는데 그 남자와 만나서 무엇을 했습니까?”
“바가지를 씌웠습니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네. 이곳 중남해에 와서 보니 그 사람은 김이사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메사 이사, 이오츠카 이사의 진술에 대해 이사의 견해를 말해보시오.”

카를로스는 리에가 말할 때 뭘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앤슬롯의 질문에 손가락을 깨물고는 이마를 찡그리며 답변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오츠카 이사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일처리를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첩보의 제반 정황을 다시 되씹어보니 리에의 말이 맞다는 것을 카를로스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카를로스의 시인으로 인해 앞에 말한 리에의 모든 거짓말이 모든 사람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며 한스는 이 우주에서 진실과 허위를 식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이오츠카 이사,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이사는 왜 남자와 관계하지 않는 겁니까.”
“저도 여자고 서버입니다. 남자에 환장한 서버입니다.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한가지 소망이 있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 그러니까 이 회사의 회장이 될 남자하고만 사귈거에요.”

리에의 선언에 장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회장이 될 남자. 그렇다면 지금 여기 있는 사람중에 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 누가 그 사람이 될 것인가. 그리고 만일 리에가 한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는 리에에게서 가장 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된다. 카를로스는 리에가 자신을 속여 넘겼다고 말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럼, 네가 보기에 나는 차기 회장이 아니라는 얘기구나. 이 기집애. 널 보통 서버로 되돌려 놓고 말 테다.

“김이사.”
마침내 앤슬롯이 한스를 불렀다. 한스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앤슬롯을 쳐다 보았다.
“기록을 보니 김이사는 여자를 무척 좋아하는군요. 여자를 밝히고 또 한 서버에 직찹하지 않고 더욱 많은 서버를 원하는 태도는 바람직스럽습니다.”

저자는 지금 내가 회장 아들이라고 아부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바람둥이라고 조롱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스는 마칼레나 문제로 무척이나 긴장해 있는데 앤슬롯의 이야기는 부드럽게 시작되었다. 한스에게는 늘 링링이 붙어있었다. 링링은 한스의 사생활과 심리상태까지 꿰뚫고 있다. 그리고 링링은 마칼레나의 숙적이다. 그 링링은 전략정보처 요원이고 카를로스의 심복이다. 존안 카드 정보의 대부분은 전략정보처에서 수집됐을 것이다.

그런데 왜 마칼레나 이야기가 안나오는 것일까. 링링은 그걸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인가. 링링은 왜 그걸 보고하지 않았을까. 한스는 앤슬롯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칼레나 이야기가 존안카드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앤슬롯이 일부러 그 얘기를 안하거나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앤슬롯의 평범한 질문에도 긴장이 늦춰지지 않고 식은 땀이 흘렀다.

“김이사가 여기 온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요. 고향에 있을 때 사귄 여자는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녀를 여전히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딴 남자와 약혼했습니다.”
“지금 김이사에게는 일반 우주에서도 충분히 행세할 힘이 생겼습니다. 그 힘을 이용해 그녀를 되찾고 싶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와 보니 더 예쁜 여자가 많습니다.”
한스의 말에 잠시 좌중에 웃음이 흘렀다. 대부분 이사들은 중남해에서 한스를 보고 여색에 빠진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가 회장 아들이니까 이사가 되었지 그저 여체나 탐하는 별볼일 없는 놈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와서 특별히 남다른 느낌으로 여겨지는 서버가 있습니까?”
“네, 마농과 마칼레나 이 둘은 다르지요. 워낙 예쁩니다. 아, 그리고 미샤도…”
횡설수설하는 한스의 말에 다시 모두가 웃음을 지었다. 이상한 것은 리에마저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리에, 내 동생이긴 하지만 끝까지 연극으로 일관하는 여자구나.

“패트리샤 공주는 어땠습니까?”
그동안 부드럽게 이야기하던 앤슬롯의 억양에 갑자기 날이 섰다. 패트리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을 들으며 한스는 진짜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 패트리샤 공주, 네, 저… 그녀도 예쁘고 착했습니다.”
“왜 그녀를 놓아주었습니까?”
“놓아주다니요?”
“김이사는 그녀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 그녀의 도주를 방조했습니다. 그녀는 한 행성의 수괴로 매우 중요한 목표물이었습니다.”
“제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는 그녀에게 잡혀서 죽을 뻔했고…”

“메사 이사, 야마니 이사. 김이사가 이 내용을 부인하고 있소. 두 이사의 견해를 이야기 해주시오.”
“그녀가 도중하는 순간 김이사님이 그녀와 같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기록은 모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칼리프 야마니의 증언에 이어 카를로스가 나직이 말했다. 한스는 성난 눈빛으로 카를로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앤슬롯에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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