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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59 1,265회 0건

이혼이라는 파도를 넘고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재석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것도 있고, 애들 아버지가 준 돈의 힘도 컸다. 떡볶이 장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생길지, 그것을 내가 잘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죽음은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살면서 자아성취를 이룰 수 있다면 그건 그것으로 만족스런 삶이다. 그걸로 인생의 행복을 찾을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사람에는 자신도 포함된다. 나에게 있어 자아성취란 화목한 가정이었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뭐가 남을까? 개인의 행복이 남았다. 비록 사회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스스로 행복하게 살다 죽으면 그 또한 후회는 없을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 사회적 성공만큼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사랑을 한다.

거기에 4분의1에 해당하는 유산을 상속받고 나니 경제적으로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장작도 준비 되었고, 불도 붙었다. 남은 수순은 그저 타오를 뿐이다.

현주아빠가 애들, 특히 재석이를 불러내는 것이 싫고 불안했지만 두 가지 때문에 막지 못한다. 하나는 재석이가 그의 아들이면서 내 아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현주아빠가 재석이를 뺏어 가면 법이든 뭐로든 막지 못할 것 같았다. 또 하나는 그가 준 돈이다. 그 돈을 받을 때는 정말 고마웠고, 또 근심을 덜었던 것도 사실이어서 모질게 대할 수 없어졌다.

재석이는 일주일에 이틀을 외박하고, 하루는 술에 취해서 온다. 술에 취해 오는 날이면 여자냄새가 났다. 그때마다 신경질이 나서 현주아빠에게 따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외박하는 이틀도 분명 술도 먹고 여자랑 놀기도 할 것이다. 현주아빠 버릇이 어디 가지는 않을 것이니 분명 그럴 것이다. 외박하는 날 전날은 재석이가 어찌나 달려드는지 잠을 안 재운다.

일주일에 두 번 그러고 나면 재석이에게 주눅이 들어 말대꾸도 잘 못하게 된다. 이미 엄마로서의 체통이나 위엄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별로 아쉽지도 않다. 아니 좋다. 그런 재석이가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재석 이한테는 술 먹고 와도 찍소리도 못했다. 그저 현주아빠만 죽일 놈이다.

그럼. 왜 현주아빠와 이혼하기 전에는 이러지 못했을까? 현주아빠는 카리스마가 없어서일까? 3년을 넘게 굶어서 그랬을까? 만약 그렇다면 부부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의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른 것일까? 재석이는 정식 부부가 아니라서 신의의 원칙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하지 않는 것일까? 재석이가 여자랑 관계를 한다는 확신이 없어서일까? 사람 마음은 본인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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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기승전결이 있고, 사람은 아이, 청소년, 성인, 노인의 단계를 거치고, 역사는 창업, 발전, 안정, 쇠퇴의 시기가 있다. 나의 여자관계는 그 중 유지의 단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동연누나, 그리고 수영과 나는 저울의 추처럼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의미로는 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원래 아버지의 여자들이었다. 엄마는 이혼한 지금도 아버지 말에 잘 따랐다. 아버지가 불러내면 엄마는 아무 말 않고 보내주셨고, 그 후에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이제는 편하게 아버지랑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다.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 아방궁에서다. 그때는 동연 누나랑 아버지. 그리고 매번 달라지는 아버지의 파트너랑 넷이서 놀았다. 한번은 넷이 돌아가며 관계를 가진 적도 있다. 아버지 집에는 내 옷들과 속옷들이 있는데, 집에 갈 때 갈아입고 간다. 아버지가 시켰다.

일주일에 한번 보는 아버지는 여전히 검게 죽은 얼굴이었다. 그게 마지막 단계인지 아니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상태였다. 내가 안가는 5일간 수영과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른다. 아버지에게도 수영에게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 두셨다. 회사라고 해봤자 얼굴만 비쳤다고 하면서 별 미련을 두지 않으셨다. 대신 어른의 비자금 관리에 집중하는 눈치다.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아직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수영에게 가는 두 날은 하루는 평일이고 하루는 주말이었다. 평일은 과외가 끝나고 10시가 넘어서 간다. 일반적인 연인이라면 10시가 넘었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다. 내가 그녀에게 하는 것은 노출과 체벌이었다. 체벌은 말 그대로 잘못을 해야 하는 것이고, 보통은 노출만을 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다리를 좀 더 벌리고..손으로 그것도 벌려..”

“이렇게요?”

“그래..좋아.”

찰칵!

그래서 배운 것이 사진이다. 그녀의 사진을 찍어 사이트에 올렸다. 물론 포토샵으로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것과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일본어와 함께 사진과 홈페이지까지 배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진은 공유사이트에 올리고, 홈페이지는 따로 운영한다. 이미 방문객 수가 10000명을 넘어섰다. 그녀의 사진은 항상 리플이 100은 넘었다.

“이걸로 갈아입어..”

“네..”

사진을 올리는 것이 그녀의 노출증을 어떻게 만족시켜 줄까 회의적인 마음도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효과가 좋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속는 셈치고 시도했다. 의외로 결과가 아주 좋았다. 사람들은 어떤 자세나 의상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수영은 그런 것들을 아주 좋아했다. 야한 리플들을 보면서 혼자 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댓글도 달아주고 있었다.

“먼저 전신샷..”

“네..”

“팔을 들어서 손으로 머리를 잡아..허리를 약간 틀어..좀더..다리 벌리고..오른쪽..구부려..”

“........”

찰칵!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엉덩이와 털 없는 그곳이다. 그리고 스타킹도 선호하는 아이템이었다. 교복을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지금 입고 있는 교복을 사려고 일부러 멀리까지 갔었다. 그리고 특별히 짧게 수선을 했다. 상의도 배꼽은 항상 보이고, 팔을 들면 가슴 아래까지 드러났다.

“손을 넣어 가슴을 만져..”

“아..이렇게요..음....”

“꼭지를 꼬집어..”

“흑..”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음..아..”

모자이크로 저 표정을 가려야 하는 것이 아쉽다. 수영은 여자의 몸 중 가장 섹시한 부분은 얼굴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수십 개의 근육이 모여 만들어내는 다양한 표정 가운데는 보기만 해도 싸버릴 것 같은 음란함이 숨겨져 있었다. 저 표정만으로 리플 300개는 따 놓은 당상인데..

“저..여보..”

“왜?”

“어떤 사람이..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누가?”

“쪽지로..”

“네가 만나고 싶으면 만나..그러면..내가 필요 없겠지?”

“싫어요!”

“..........”

“잘못했어요. 저..체벌 받을게요..”

“.....아니..네 잘못이 아냐.....”

“제발..저를 벌주세요..그리고 용서해주세요..”

“...........”

수영의 행동이 모든 여자들을 대표하는 본능이고 자신과 아버지의 행동이 남자들의 본능이라면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수영이 쪽지를 보낸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걸 내가 혼낼 권리는 없었다.

“잠깐 생각 좀 해보고..너도 쉬고 있어..”

“.............네....”

그녀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풍만한 육체로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어울리면서도 비정상적이었다.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다니는 많은 여학생들을 봐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교복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몸의 굴복을 가려주게 되어 있었다. 단지 교복이 주는 상징성에 흥분하는 것뿐이었다. 그건 수녀복을 입은 미녀와 비슷하다. 그 순결함이 오히려 더러운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들인 자신은 괜찮다는 논리는 내가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도 없으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다. 그저 아버지가 괜찮다면 그걸로 되었다. 아버지 여자니까.

수영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그녀는 원하기만 하면 나나 아버지 몰래 남자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엄마를 속이고 그녀를 만나는 것과 똑같다. 그녀가 쪽찌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말로 나와 함께 셋이서 만나고 싶어서일지. 아니면 그녀가 sexual masochism 성적 피학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어 체벌이 받고 싶어서일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 쪽찌남..만날까?”

“.......싫어요..”

“아니. 난 괜찮으니까 셋이 만나 볼래?”

“.......당신이 원해요?”

“난..좋지는 않아. 네가 원한다면 그래줄 용의는 있어..”

“싫어요..”

“그럼 왜 그 사람 이야기를 했어?”

“.....당신이 좋아할까 해서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번에 지하철에서...”

이 여자 말대로라면 내가 그것을 원하는 줄 알았다는 것인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이유로 내가 원하는 것을 그녀는 하려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내가 엄마의 말을 듣는 것은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동연누나와 관계를 갖는 것은 그녀의 육체가 탐이 나서였다. 그녀도 나한테서 뭔가 원하는 것을 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좋아. 회초리를 가져와.”

“네.”

우리 담임처럼 나도 풀대를 준비했다. 그녀는 그것을 가져와 나에게 두 손으로 내밀고는 내 앞에 사선으로 섰다. 치마가 짧아서 그대로 있으면 더 이상의 준비가 필요 없었다.

“몇 대 맞을래?”

“100대요.”

너무 많다. 나는 지금까지 이 여자의 생각을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만약 100대를 맞는다면 분명 피가 터질 터였다.

“팬티를 벗고 치마를 완전히 들어.”

“네.”

“네가 물을 쌀 때까지 때린다.”

“네..”

착~

“음..”

힘껏 때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약하지는 않아서 종아리에 빨간 줄이 생겨났다. 10대가 넘어가면서 그곳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여자의 향기가 집 전체에 진동을 했다. 20대가 넘었을 때 수영이 떨면서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지 않으면 맞지 않아도 되는데 그녀는 더 맞기 위해서 참고 있었다.

착~

“으흑~”

종아리 전체가 붉고 파랬다. 안에서 실핏줄이 터진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도 선생님께도 맞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고통은 잘 모른다. 눈으로 보기에 맞은 그곳은 상당히 끔찍했다. 싸움을 하면서 때리는 것과는 달랐지만 비슷했다. 주먹으로 상대를 가격하게 되면 때리는 충격이 나에게도 똑같이 온다. 그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였다. 그래서 손목이 어긋나기도 하고 금이 갈 때도 있다. 수영의 다리에 살들이 부어올라 흉측해질 때마다 내 마음도 아팠다. 애정과는 상관없이 폭력에 대한 혐오감일 수도 있다.

착~

“아아...”

그녀의 육체와 교복, 상처와 신음소리, 15살과 23살의 뒤바뀐 위치, 이 집에 정상적인 것은 없다. 엄마와 가까워지면서 아버지에게, 아버지와 밀착되어갈수록 엄마에게 죄의식을 느꼈었다. 그것 역시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며 정상일지도 모른다.

착~

“아아..안 돼..”

결국 30대가 되기 전에 애액이 분사되었다. 양 허벅지를 움켜잡고 약간 숙인 자세로 터져 나오는 물줄기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나는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풀대를 내려놨다. 그녀가 풀대를 들고 가려고 했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 가져와.”

“네.”

그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는 ‘네’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좋은 성격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녀 같다면 분쟁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돌아온 그녀를 앞에 눕히고 상처에 약을 발랐다. 종아리가 뜨겁다. 조심하며 한참을 바르고 있는데 그녀는 아픈지 울었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심하게 상처에 약만을 발랐다.

“그만 자.”

“고마워요.”

때려줘서 고맙다는 것인지 약을 발라줘서 고맙다는 건지 모호했다.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다.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의 말도 의미가 애매하다. 나는 엄마. 아버지 때문에 어른이 되고, 동연누나 때문에 남자가 되었고, 이 여자 때문에 늙는다.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오늘 찍은 사진들을 수정하고는 사이트와 홈페이지에 올렸다. 언제나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였다. 숲이 없는 그녀의 그곳은 사진을 찍으면서 흘린 액으로 항상 번들거렸고, 한번만 만나달라는 리플은 수십 개에 쪽지도 수십 개씩 싸였다.

“똑똑..”

“들어와.”

그녀는 커피를 한잔 타 와서 책상에 놓고 언제나처럼 옆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복이 마음에 드는지 아직 입고 있었다. 짧게 줄인 치마 밑으로 통통한 허벅지가 반 이상 드러났고, 깊이 파인 V넥 안으로 가슴도 보였다. 먹어달라고 꼬리치는 싱싱한 잉어가 연상되고,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기 힘들었다.

“저..오늘 같이 자도 되요?”

“.............그래..”

“고마워요. 여보..”

“여기서 네 인기가 최고다.”

“당신..덕분이에요.”

“다리..괜찮아?”

“네..좋았어요.”

“............”

“여보. 어떤 옷으로 갈아입을까요?”

“음..파란 잠옷.”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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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은 조금씩이지만 분명 변해가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집에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입은 것이라기보다 걸쳤다는 표현이 맞았다. 알몸에 원피스 하나를 걸치고 생활을 했었다.

“재석이랑 뭐했어?”

“사진 찍었어요. 보실래요?”

“응..”

지금은 속옷도 입고, 스타킹에 가터벨트까지 착용하고 허리가 조이는 치마에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약간의 변화는 있어도 거의 그런 계열의 옷들을 집에서도 입었다. 수영의 몸이 얼마나 민감한지 아는 나로서는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입는 옷들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새롭고 좋았다.

“오~꽤나 자극적인데? 자극 많이 받았겠어..그래서 그건 했어?”

“아니요.”

“왜?”

“그 사람이 원하지 않았어요.”

“너는 원하는데?”

“네.”

희주에게 모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너무 민감한 유두 때문에 먹이지 못했는데 이상해서 물으면 그냥 참을 만 하다고 한다. 얼굴에 붉은빛이 돌고 눈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끼고는 있었다. 그런데 모유를 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딸에게 잘하는 것이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사진 말고는 뭘 해? 그것도 안한다면서..”

“음..밥도 먹고, 아빠 일본소설을 읽어주고, 일본어 공부할 때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희주와 셋이서 산책도 하고, 그 사람 앞에서 자위도 하고, 밖에 나가서 노출도 하고 그래요.”

“그래? 즐거워 보이네?”

“네. 좋아요.”

“다리는 왜 그래?”

“그 사람이 벌줬어요.”

“왜?”

“제가 잘못했으니까요.”

“뭘 잘못했는데?”

“........다른 사람이랑 셋이 만나자고 했어요.”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전공서적이 서재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다음 학기에 복학하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그런 모든 변화가 재석이와 있고부터였다. 약간은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나도 그녀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면 했기 때문이다. 재석이와 셋이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재석이랑 셋이 보낼까?”

“...아빠 뜻대로 하세요.”

“으음...재석이에게 물어볼게. 너는 좋은 거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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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엄마소리. 이제는 싸늘해서 창문을 닫고 있는데도 들린다. 창문을 통해서 들리는 것이 아니다. 거실을 통해서 들린다. 연주에게도 더 이상 비밀로 할 수가 없어서 아빠 이야기부터 엄마와 재석이 일까지 전부 이야기 했다. 연주가 오해하는 것보다 내 입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차라리 낳은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랬구나..”

“알고 있었니?”

“재석이가 엄마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어..”

“아윽..으음..”

얼마나 소리를 지르면 방 두 개를 뚫고 거실을 가로질러 들리는지 어이가 없다. 더구나 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래..엄마가 좀 티를 냈지..”

“재석이랑 하는 것도 봤어..”

“언제?”

“음..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낮에..물 먹으로 나가다가 봤어.”

“괜찮아?”

“지금은..”

“그래..마음 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야지..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고, 너도 네 인생이 있는 거니까..”

“응..나 대학 들어가면 나가 살려고 해..”

“그래..그 때가서 네 마음이 그러면 너 하고 싶은 데로 해. 언니가 도와줄게..”

“아냐..아버지가 준 돈도 있고..”

“아아아..아..”

최근 들어 심해졌다. 내일은 재석이가 아빠에게 가는 날이니 오늘은 밤새도록 저럴 것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다 알고 있다. 엄마는 새벽까지 저러다가 아침을 먹고 재석이와 연주를 내보내고 나면 오전 내내 잔다.

“아빠는 왜 재석이만 부르고 우리는 안 불러?”

“글새..”

아빠랑 재석이가 뭘 하는지 궁금했다. 엄마도 저렇지만 아빠도 문제였다. 15살짜리 애한테 매주 술을 먹이는 것도 그렇고 외박을 시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내일은 한번 미행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아..”

“어서 자..”

“언니는 지금 잠이 와?”

“그래도 자야지..”

“언니도 저래?”

“.............아직은 안 그래..그래도 부부생활을 오래하면 저렇게 된데..”

“흥. 재석이랑 얼마나 오래했다고?”

“잠이나 자. 내일 학원가야 하잖아..”

“알았어.”

“아아..미칠 거 같아..”

‘나도 그래..엄마..’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한다. 연주 역시 비슷해서 눈이 힁하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는 시각에 민감하고 여자는 청각이 예민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이 각종 영상물을 찾아다닌다고 들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엄마의 소리를 듣는 동안 몸이 예민해진다. 오랜 시간 개미가 기어 다닌 것 같은 감각에 시달리다 아침을 맞이하면 몸살을 앓았던 때처럼 땀도 많이 흘렸고 몸에 기운이 없었다.

“얘들아 밥 먹어..그만 자고 어서 일어나..”

“...............”

밥이 꼭 모래 씹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그리고 지금 전신에 요염한 색기를 얼마나 뿌리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재석이보고 눈웃음친다고 야단치던 게 겨우 반년전인데, 엄마 자신은 눈웃음을 달고 다닌다. 연주는 눈을 도끼처럼 뜨고 엄마를 노려보기도 하지만 엄마는 엄마만의 세계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왜들 그래? 많이들 먹어..맛이 없어? 이상하네..엄마는 맛있는데..”

“.............”



재석이가 나가는 것을 뒤따라 나섰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지갑하나만을 들고 멀찍이 떨어져서 ?아갔다. 어차피 토요일에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재석이는 걸어서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여기는 와 본적이 있다.

‘역시 아버지는 그 여자랑 사는 구나..’

집에서 만나는 모양이다. 괜히 나왔다. 나온 김에 편의점에 들러 호빵이나 몇 개 사고 새로 나온 잡지 한권을 샀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 싫어서 편의점에서 잡지를 뒤적이며 호빵을 먹었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높고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에 호빵이나 뜯어 먹으며 동생을 미행하고 있는 처지가 한심스럽다.

“뭐하는 건지.. 맞선이나 봐?”

재석이가 그 때 봤던 여자와 함께 나왔다. 아버지는 없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재석이가 밀면서 편의점 앞을 지나갔다. 여자는 그 옆에서 귀저기 가방을 들고는 다소곳하게 따라간다. 묘한 기분이었다. 부부처럼 보였다. 집에서 입고 나간 옷이 아니라 세미정장을 입어서 원래 나이보다 많아보였다.

“...............”

뒤따라갔다. 그들은 지하철을 타고 시외로 가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잡지로 얼굴을 가렸다. 시외로 나가는 지하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긴 의자에 한 두 자리는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재석이가 카메라를 꺼내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런 카메라를 D-SLR카메라라고 하던가? 전문 사진사가 쓰는 크고 검은색의 카메라였다. 사진을 찍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재석이는 카메라만 만지작거렸지 카메라를 들고 파인더를 보지 않았다.

그들이 내린 곳은 시외의 H미술관 앞이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따라간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재석이는 큰 카메라를 넣고 담뱃갑만한 카메라를 꺼내 주머니에 숨긴다.

“..................”

그들이 하는 짓은 정말 놀랬다. 아무도 없는 곳이면 여자가 치마를 걷어 올리거나 가슴을 열어 보이고 그것을 찍었다. 점점 대담해지는 그녀는 팬티까지 벗어 재석이 주머니에 넣고 치마를 허리 위까지 올리고 다리를 벌리거나 엉덩이 쪽을 내밀며 촬영을 한다. 옷은 점점 얇아졌다. 보는 내가 들킬까봐 두근거렸다.

“.............”

다른 사람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면서 아이와 유모차, 그리고 긴 코트를 적당히 이용하며 촬영을 해 나갔고 나는 그림보다는 그들에게 도취되어 따라다녔다. 내가 그들 대신 망을 봐주는 꼴이었다. 미술관을 나온 그들은 옆에 있는 동물원으로 옮겨갔다.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동물원 앞에 있는 노점에서 음료수 두 개를 사 들고는 근처 벤치에 앉아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다정하게 본다. D_SLR 카메라에도 사진이 들어 있는지 두 개의 카메라를 번갈아가며 본다. 멀리서도 여자의 얼굴이 붉어지며 교태를 부리는 것이 보였다. 아빠 여자와 재석이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와 아빠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그럴 수는 없었다. 오늘도 행복한 웃음을 짓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엄마한테도 화가 난다. 아빠에 이어 재석이까지 잃고 있었다.

“여~아들.”

깜짝 놀랐다. 아빠가 불과 5~10미터 옆을 지나가며 소리쳤다. 나는 급히 잡지로 얼굴을 가렸다. 그들이 이쪽을 볼 것이다. 들켰을까 봐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오셨어요?”

“그렇게 늦지는 않았지?”

“네..금방 왔어요. 옆 미술관에서 사진 찍었어요. 보실래요?”

“응..나중에..우선 들어가자..”

재석이가 설마 그 사진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고, 미리 찍어 놓은 다른 사진이 있을 것이다. 그 교활함이 무섭다. 따라 들어가서 결정적인 순간에 업어 버릴 계획을 세웠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1시간도 넘기지 못했다. 아빠는 그 여자를 재석이 앞에서 더듬었고, 재석이는 그 모습을 찍었다. 아빠의 손은 점점 대범해져서 가슴 속으로 치마 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지금 노팬티라는 것이 생각난다.

그들은 인기 없는 곳으로만 다녔다. 뱀들이 유리벽 안에 갇혀있는 곳에서는 삽입도 하는 듯 했다. 재석이가 열심히 촬영한다. 그들은 주위 경계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따라가기가 힘들지는 않았다. 차라리 호텔이나 모텔을 갈 것이지. 그들은 그런 곳에 갈 생각이 아예 없어 보였다. 몇 번인가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도 봤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피했다.

“재석아 너도 할래?”

“아녀. 전 싫어요.”

“그래?”

“슬슬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그러자..”

아빠 모습에 실망했다. 재석이가 그것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막판까지 추락했다가 간신히 절벽 나뭇가지에 걸려 구사일생을 한 기분이었다. 바닥까지 추락할 줄 알았던 만큼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작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건 아버지를 도와준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취미일수도 있었다.

띠디디띠띠디띠띠디디디

“누나?”

“응..나야..”

“왜? 무슨 일 있어?”

“으응..그런 건 아닌데..오늘 집에 들어와..할 말이 있어..”

“그래..알았어..언제까지 가?”

“음..저녁은 먹고 와..술은 먹지 말고..”

“응..그럼 이따 봐..아버지 바꿔줄까?”

“으응..나중에 전화한다고 그래..”

“알았어..”

우선은 그들을 나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이제 안 된다. 어차피 엄마는 재석이에겐 엄마가 아니었다. 지금은 더욱 그렇다. 아빠 역시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집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나는 이 집의 큰 딸로서 아빠, 엄마의 딸이고 재석이에게는 큰누나다. 충분히 엄마 대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주에게도 전화해서 들어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데?”

“응..일단 앉자..”

“엄마는 차 한 잔씩 부탁해.”

“으응...”

모질게 마음먹었지만 재석이가 바라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요게 요즘 들어 어른 분위기가 났다. 옛날에는 장가가면 상투 틀고 어른 대접을 해 줬다고 하더니 이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엄마.”

“응..”

“이제 연주도 알아. 엄마가 재석이랑 자는 거..”

“.........”

“휴..요즘 엄마가 얼마나 티를 내는지 엄마는 모르지? 엄마는 좀 자제를 할 필요가 있어.”

“.......그건...재석이가..”

“두말할 필요 없고. 내말대로 해. 알았어?”

“.......응...”

엄마는 쉽게 제압이 됐다. 약점도 있고 재석이 옆에만 있으면 고양이 앞 쥐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간단했다. 다음은.

“재석이 너.”

“응~”

“웃지 말고. 너 말이야. 아빠 만나서 뭐하는 거야?”

“음...아버지 도와드리고 있지..”

“사진 찍는 거?”

“봤어? 히히.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뭔데? 그게..”

“그게..아버지에게 물어봐..”

이놈은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실실 웃고 있는 모습에서 제다이들의 ‘포스’가 느껴졌었다. 거기다 엄마 아빠까지 등에 업고 있었다. 약점도 없어 보였다. 재석의 약점인 엄마는 엄마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써버렸다. 재석이부터 제압할걸 잘못했다. 제석이만 제압했으면 엄마는 덤으로 딸려왔을 텐데 아쉬웠다.

“좋아. 그럼 너. 중학생이 술 마셔도 돼?”

“안 돼?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누나도 줬잖아?”

“......................그래도 정도가 있지..”

“아버지, 엄마, 누나는 내 보호자지?”

“그래!”

“난 항상 보호자하고만 마셨어. 의심스러우면 물어봐.”

“..............”

이게 아닌데 엄마 아빠 때문에 큰누나의 위엄이 치명적이 대미지를 입었다.

“그럼..나도 좀 물어볼까?”

“뭐. 뭐를...”

“사진 찍는 건 어떻게 알았어? 혹시 미행했어?”

“.....누가? 증거 있어?”

“나 오늘 사진 찍었잖아..그 카메라 비싼 거거든..아버지 카드로 긁어버렸지..렌즈도 좋은 걸로 샀고..줌이 몇 배인 줄 알아? 렌즈가 12배고, 카메라에 달린 것이 10배야. 합쳐서 120배..”

“.................”

“빨간 추리닝을 입고 미행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그건..좋아. 미행했다. 너랑 아빠랑 뭐하는지 궁금해서 그랬다. 됐어. 또 할 말 있어?”

“누나..” 실실 웃는다.

“.............”

“술 먹고..” 노골적으로 웃는다.

“하지 마.”

“오줌..”

“하지 마..”

“쌌다며?”

“풋~”

“악~~~~~~~~~~~~~~~”

엄마다. 엄마가 재석이에게 이야기 한 거다. 둘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재석이에게 술과 관련된 이야기는 평생 못할 것이다. 연주의 입에서도, 엄마의 입에서도 웃음의 파편이 터지고 얼굴까지 붉히면서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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