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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 제왕이 되다. - 4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4:54 1,164회 0건
1
어슴푸레 날이 밝아왔다.
용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산 정상을 바라보고 앉아 눈을 감았다.
할아범의 편지를 읽고 생겼던 상념들을 씻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세상과는 남으로 살아온 20년인데 혈육이 무슨 소용이며 돈은 또 무슨 소용일까?
누구도 자신의 삶에 개입할 수 없으므로 산을 내려갈 것인가의 판단도 자기 몫이었다.
명상에 잠길수록 화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깊게 잠든 그녀를 버스 터미널에 내려두고 왔다.
그녀의 잠든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 자신이 끼어들 곳은 없다는 생각이 그렇게 하게 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 자신의 나이는 스무 살이거나 그보다 한 두 살 넘었다.
그런데 자신을 남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여자는 이미 어머니뻘도 넘는 나이였다.
그녀와 자신이 맺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
용주는 그 생각으로 그녀를 잠들게 한 뒤 세상으로 보내준 것이다.

정미경...
고성환...

할아범의 편지에 남겨진 자신의 부모 이름이다.

“잊지는 말되 찾지도 말아라”

할아범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는 슬픈 탄생의 비화를 가진 아이였다.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

고성환....

이 나라 모든 지하 경제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사람이다.
지금은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의 힘은 대통령도 어쩔 수 없었다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회장이 7순의 나이에 잠시의 일탈로 스무살 정미경을 안았는데 아이가 생겨버렸다.
고회장의 궂은 일을 도맡아서 했던 내게 너와 정미경의 목숨이 맡겨졌다.
낙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진 정미경이 고회장에겐 고역이었던 것이다.
이미 나이 70이 된 그에게서 또 자식이 태어났다고 세상에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떻든 숨길 수 있었으나 자식이라면 필경 생기게 될 유산 분배도 문제였다.

“아이가 살아서 태어나면 안 돼”

내게 고회장이 내린 명령이었다.
검은 세상을 장악하고 70평생을 살아 온 고회장에게 여자 하나의 목숨은 파리목숨이었다.
그를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을 다녀 올 사람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감옥이 20년이라도 돌아와서의 20년이 해피할 것을 알기에...
고회장의 상벌처리에 대해서 알기에 더욱 그랬다.
내게 그런 명령이 내려왔으니 나는 만삭의 미경이를 죽여야 하는 일을 맡은 것이었다.
아니라면 미경이를 살리되 아이는 약물투입을 통한 유산이든지 충격에 의한 사산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회장의 뜻과 다른 길을 택했다.
미경이도 살리고 아이도 살리는 길...그 길은 나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다.
둘 다 살리되 고회장이 모두가 죽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완전 격리해야 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세상에 없는 사람을 만드는 일 뿐이었다.

너는 난산이었다.
미경이가 어린 것도 그렇지만 태중에서 이미 거인의 풍모를 가졌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미경이는 결국 너를 낳다가 실신했다.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실신하면서 병원이 어수선할 때 신생아실로 옮겨진 너는 내가 빼돌렸다.
병원에서야 신생아 실종사건으로 신고했겠지만 나는 그 길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생목숨 죽일 수는 없었으나 살아나면 그 또한 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용의 아들이었다.
신생아답지 않은 등치에 무엇보다 남자의 상징이 일반 신생아들과 달랐다.
갓 태어난 아이의 오줌발이 예닐곱 아이들보다 강했다.
귀두를 덮고 있는 표피가 용의 비늘 같았다.
너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제대로만 크면 고회장보다 더 큰 인물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분유를 사고 기저귀를 사고 아기용품을 사고 그럴 때마다 꼭 내 아들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네게 호적을 해줄 수는 없었다.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어서는 안 되었다.
이곳으로 들어 온 뒤 세상과 절연했다.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행불자로 처리되도록 그냥 버려뒀다.

나 또한 그렇게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대동아전쟁 때 고아로 태어나서 60여 년을 검은 세상에서 살았으니 여한도 없었다.
나를 통해 고회장의 근심덩어리가 없어진다면 그것으로 내가 고회장 은혜는 갚은 것이다.
그러나 자라는 너를 보면서 바보로 만들 수는 없었다. "용근"을 가진 너인데...
네게 무예 공부를 시킨 것은 네 몸 하나 간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호적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다.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 세상에 나가서 무식쟁이는 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철들무렵부터 나는 너에게 그토록 심하게 닦달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공부를 하게 한 것이 바로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일이어서였다.

이제 나는 이 한 많은 세상과 아주 절연한다.
네가 기연을 만나서 세상을 호령하며 살든지....
아니면 그냥 이곳에서 내가 살던 방식대로 살던지 그것은 너의 선택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절대로 검은 세상과는 인연을 맺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다.
너의 생모가 되는 정미경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이런 선택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너희 모자는 서럽게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너의 모친이 어디서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모르겠으나 내 판단은 그렇다.
혹여 필요할지도 몰라서 네가 태어났던 병원의 약도를 남긴다.

용주는 그의 편지를 한자 한자 또박또박 끝까지 몇 번이고 읽었다.
몇 번을 읽어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울분도 비탄도 원망도 적개심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만큼 자랐다. 신세를 생각할수록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일단은 내려가자. 가서 이 약도의 병원이라도 확인하자’

긴 상념에서 빠져나온 용주가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어슴푸레 밝아왔던 동녘엔 언제 올라왔는지 붉은 태양이 뜨거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2
"우후~~~~"

철우는 긴 한숨을 날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섹스 후에 느끼는 허탈감으로 다시 우울함이 밀려왔다.
어릴 적 혼자 남았다는 적막감과 고독으로 인해 언제부턴가 찾아온 우울증이다.
이 우울증은 그런데 섹스가 끝난 뒤엔 어김없이 철우를 휘어 감았다.
특히 치열한 전쟁을 치른 뒤 나눈 섹스가 더 그랬다.

‘쩐의 전쟁’

이 전쟁은 끝이 없다.
아마 이 지구에서 인류가 다 없어지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두고 하는 전쟁...성산업과 사설 도박장...
이 싸움은 조직간의 싸움이 아니다.
공권력과의 싸움이다. 이 와중에 조직끼리의 싸움은 서로 죽자는 것이다.
어제도 마찬가지다. 수억의 판돈이 돌아다니는 도박장에 경찰이 급습했다.
돈도 챙기고 선수들도 빼돌려야 했다.
선수가 체포되면 그 도박장 개설자는 다시 손님을 끌 수 없다.
손님들은 안전한 도박장을 원한다. 그리고 강남에는 그런 도박장이 널려있다.
급습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
그러나 철우가 누군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희생자가 단 한 명도 생기지 않도록 정리했다.
미리 돈질을 한 짭새가 단속반장으로 뜬 것이 철우에겐 행운이었다.
그와 잠시 노닥거리는 것으로 시간을 벌었고 선수들을 대피시켰다.
돈도 물론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그리고 출동한 단속반도 문책을 면하게 할 수순의 작은 도박판 선수 서넛이 잡혀갔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선수가 아니다.
조직원들이었고 심심해서 삥바리를 한 정도라고 둘러댈 수 있는 돈만 남겼다.
아마도 이들 중 ‘상습’자가 붙은 사람만 없다면 훈방될 것이다.
조직원 중에 꼭 그런 정도의 선수만 남겼다.
다 정리한 뒤 철우는 자연스럽게 옥선을 호텔로 불러냈다.

지금 철우의 몸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는 여자는 정확히 엄마의 나이다.
철우는 이처럼 나이가 많은 여자에게서만 섹스 욕망을 느낀다.
마더 콤플렉스다.
엄마 또래의 여자를 짓눌러 그녀들이 복종하는 모습을 봐야 희열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철우에게 맛이 들려버린 옥선이 더 문제다.
아들 또래인데 이미 그의 섹스에 중독되었다.
그에게 복종하면서 느끼는 오르가즘의 여운은 크다.
옥선은 아직도 몸에 남아 짜릿함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희열의 조각을 잊을 수 없다.
아니....... 사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와의 첫 관계는 정말 얼떨결에 이뤄졌다.
화영의 딸 지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남편없이 딸 둘을 키운 화영은 의사이기는 하되 친구들 사이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
큰 딸 지수는 신혼여행을 떠나고 둘째 연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날 왠지 모르게 화영은 더 힘이 없어보였다.
부러울 것 없는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50대 후반의 아줌마들은 무서울 것도 없었다.
힘 빠진 화영을 위로한답시고 명희와 화영과 어울린 옥선은 노래방에서 3차까지 했다.
좋은 기분에 한 두잔 더 먹은 술이 몸을 지탱할 수 없도록 했다.

“나 화장실 좀”

그렇게 친구들 방에서 나온 옥선이 찾은 곳이 여자 화장실이 아니라 남자 화장실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눈앞에 시커먼 대물이 덜렁거렸다.

“어? 뭐지?”

얼떨결에 비틀거리며 우스게소리를 한다는 것이 대물의 주인에게 들렸던 것 같았다.
대물의 주인이 비틀거리는 옥선의 몸을 잡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손을 뻗어 가슴을 쥐어왔다.
술김에 전달되는 가슴의 알싸한 아픔이 오래 전에 잊은 감촉을 되살렸다.

“누구세요?”

말이 없었다. 정신도 없었다. 그냥 힘에 의해 끌려 들어간 화장실 칸...
그곳에서 우악스럽게 팬티가 벗겨졌다.
그러더니 지독한 고통을 동반한 아픔이 사타구니를 통해여 전신을 때렸다.

“아 악”
“조용히 해”

우악스러운 손이 입을 막았다.
그리고 하체는 힘에 의해 왕복하기 시작했다.

“어억...푸웁”
‘퍽퍽퍽’

아무런 정신적인 교감 없이 일이 치러지고 있었다.
엄연한 강간이었다. 그런데 옥선은 이 강간이 그리 싫지가 않았다.
사내의 물체를 가랑이 사이에 넣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오래되었다.
남편은 있으되 그의 기계가 쓸모 없었다.
한약도 지어주고 남자에게 좋다는 것은 쉴 새 없이 먹였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그애들은 사랑하느라 바쁘고 남편은 사업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오늘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있다.

‘철벅철벅’

어느 새 가랑이 사이의 샘에서 물이 솟았다.
잊은 줄 알았는데 가랑이 사이의 샘은 아니었다.
샘에서 물이 솟아나자 몸이 흥분했다.
그런데 또 몸과 달리 마음은 착잡하고 혼란스러었다.
옥선에게 섹스는 남녀 간에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행위다.
그런데 사랑이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한 상태에서 엄청난 흥분을 경험하고 있다.
옥선으로선 얼토당토않은 상황임에도 몸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일주일을 지낸 지금 옥선은 다시 그와 격렬한 섹스를 나눴다.
일주일 전 엉겁결에 당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그가 전화를 했었다.
신고할 수 없도록 한다며 무작정 폰에다 자기 전화번호를 심었던 사내였다.
희열의 끝과 황당함의 끝에서 방황하는 옥선에게 사내는 자신의 이름이 철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했던 말...

“아줌마 보지 좋은데?”

얼굴이 뜨거웠다.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보지라는 단어가 있는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사내가 자신을 겁탈하고 보지가 좋다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가랑이 사이에서 흐르는 그의 정액을 처리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도대체 알 수 없는 황망함 속에서 지냈는데 그가 전화를 했다.
이후 오늘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끄러운 행위도 했다.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리는 올가즘... 이젠 그를 사랑한다고 해야만 했다.
이 희열이 사랑이 아니라면 결국 자신은 육욕을 다스리지 못한 동물일 뿐이다.

“당신은 이젠 내 여자야. 날 벗어날 수 없어"
"................!"

옥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그가 갑작스럽게 꺼내 버렸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현실이 그녀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고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옥선은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난 어릴 적부터 늘 혼자였어요.”
“....”
“누구의 보호도 없이 날 지켜야 했죠”
“....”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조금은 거칠게 자랐어요”

꼬박 3시간 동안 옥선의 몸을 탐하고 옥선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뒤 사내가 독백처럼 말했다.
옥선은 그렇게 시작된 사내의 말을 그냥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사랑을 할 대상도 없었어요”
“....”
“내가 자란 보육원에서 밥이 작으면 남의 밥을 뺏어서 먹듯이....사랑도 그렇게 뺏거나 훔치곤 했지요......지금처럼...."
".............!!"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끊고 그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의 것이 허전하게 빠져나간 곳으로 시원한 바람이 몰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주위의 근육들이 작은 경련을 일으키더니 실룩거리며 안에 쏟아진 액체를 내놓았다.

"그런데 난 우연찮게 연상의 여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아니 내가 연상의 여자들을 일부러 찾았는지도 모르죠..."
“....”
“아마도 난 여자를 대할 때 엄마에 대한 사랑과 분노가 함께 하는 것 같아요.”
“아~~하”

그의 말끝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옥선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그래서 엄머또래 여자들하고 섹스를 할 때면 힘이 더 나요”
“???”
“내 정력으로 여자를 굴복시키고 복종을 받고 싶어요”
“세디즘이예요?”
“그게 뭐지요?”
“섹스 상대를 학대하면서 상대가 고통을 당하면 더 흥분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렇지는 않아요. 동년배거나 연하와는 아주 정상적인 섹스를 하니까”
“....”
“그냥 엄마또래의 여자...그녀들에겐 때론 욕도 하죠. 말도 함부로 하고..."
"으..응....욕을 해요?"
"나이 많은 상대가 육욕에서 허덕이는 것 같으면 알 수 없는 분노에 휘말려요."
"...."
" 그러나 그 분노가 내게 더 큰 쾌감을 쥐요"
"분노.....?"
"그래요...분노...섹스에 미쳐서 남편이 죽자 자식을 보육원에 버려두고 떠난 여자를 향한 분노"

옥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뒤치기를 당하면서 엉덩이를 맞았다.
그런데 그때 자신도 알 수 없는 흥분에 쌓였다.
그리고 자신은 이 남자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더 깊게 들었다.
옥선은 다리를 사내의 허벅지에 올리며 머리를 사내의 어깨 아래로 파고들었다.
자신에게 과거를 꺼내놓는 그가 갑자기 안쓰럽기도 했다.
거칠게 자란 남자의 말투가 없어지고 언제부턴지 존대어로 깍듯하게 말했다.
그의 몸을 안을수록 새록새록 사랑의 감정이 솟아났다.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완벽하게 몸을 풀고 나면 바로 잠드는 것은 동일한 것 같았다.

옥선은 땀으로 온통 젖은 몸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물의 온도를 맞출 생각도 없이 그냥 샤워기를 틀고 그 밑에 섰다.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도 몸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런 몸을 애써 모른 체 하며 끈적거리는 땀을 씻어 냈다.
깍듯이 존대를 하던 사내의 말투가 더 좋았다.
무자비하게 욕설로 대하며 자신을 육욕의 환락으로 빠뜨린 것보다 더 좋았다.

샤워를 마친 옥선은 수건에 물을 적셔서 침실로 돌아왔다.
길게 다리를 뻗고 누워있는 사내의 몸은 완벽한 남자의 몸매였다.
검게 그을린 몸과 근육들........
그리고 우뚝 솟은 육봉은 그의 당당함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옥선은 그의 것을 정성스럽게 수건을 닦아 나갔다.
그의 다리를 들어 불알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부분까지 샅샅이 닦아주었다.
어쩌면 그에 대한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옥선과 철우가 밖으로 나왔을 땐 강남 거리는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다.
철우의 팔짱을 끼고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옥선은 아랫도리가 허전했다.
얄팍한 원피스 하나에 팬티도 입지 못하고 호텔을 나왔다.
물론 철우의 부탁이었지만 반은 그녀의 호기심이기도 했다.
밑이 허전한 상태로 지나는 사람들과 부딪칠 때 비밀스런 희열이 동반했다.
그 비밀스런 희열은 격렬한 섹스로 인해 움찔거리던 사타구니가 다시 젖어들게 했다.
옥선은 이제 그를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3
“재미가 좋다며?”
“뭘...”
“그래 어린 애인하고 연애하니까 기분이 어때?”
“응...좋아. 정말 좋아”
“야~아...너무한다?”
“뭐가?”
“웃겨...정말...그렇게 좋은 걸 어찌 참고 살았어?”
“그러게, 나도 어찌 살았나 모르겠어”

환갑을 바라보는 아줌마들 서넛이 초저녁인데 한 호텔의 일식당 방에서 조잘거렸다.
그런 조잘거림에 동참하지 못하는 화영은 옥선이 부러웠다.

“내가 미쳐...그렇게 좋아? 친구들 앞에서?”
“뭐 어때? 좋은 건 좋다고 해야지”
“그래도 그렇지. 화영이 봐라”
“아냐 난 괜찮아...”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화영은 한 곳이 비어있었다.
벌써 3개월이다. 그에게서 여자가 된 것이....
정리하고 온다고 하더니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어져 버렸다.
보다 못한 지수의 닦달에 다시 지리산을 찾았으나 그의 흔적은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만든 작은 무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잘못 찾은 것은 아니었다.
움막의 흔적은 있었으되,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가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옥수수가 따지 않아서 말라진 채 바람에 흩날렸다.

“난 그이 나이 생각 안 해. 그냥 내 몸의 주인을 뒤늦게 만난 거지”
“점점...뭐 주인?”
“옛부터 그러잖아. 우리 바깥주인...난 그 말을 지금 실감한다니까...”
“이 아줌마가..정말..하다하다 이제 별 말을 다한다”
“난 사실만 말해. 이미 다 알려진 거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그렇지...”
“젊은 애들도 연애할 때 넌 내꺼...그러고, 우리도 남편은 내남자 그러잖아?”
“그건 그러네”
“결국 남녀간의 사이는 소속감이고 소속이 생기면 주인이 생기는 거지. 그러니 지금은 남편보다 그이가 내 주인이지”
“호호호”
“호호호”
“호호호”

옥선의 말에 모두들 동의하는지 결국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화영은 더 이상 그곳에 있다가는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 먼저 일어설게”
“왜?”
“응...지수가 지 남편하고 집에 온다는데 곧 올 시간이야”
“그래? 그럼 내가 태워다 줄게”
“아냐...지하철로 가도 돼”

화영은 그를 만난 뒤부터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했다.
혼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안심이 되지 않는다며 지수가 차 키를 가져가 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내가 대려다 줄께”
“아냐 혼자 갈께”

말을 마친 화영이 백을 들고 일어섰다.
그런 화영의 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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