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과제가 남아있다는 핑계로 난 피로연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식장 밖으로 빠져나오니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햇빛이 눈부시다. 양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하나 빼어 물고 불을 당겼다. 진득하고 무거운 공기가 폐를 감싸자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쉬고 싶었다. 반쯤 태운 담배를 땅에 던지듯 버리고 구두 끝으로 밟아 불을 껐다.
큰 길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지친 듯한 기색의 운전수와 나는 한 마디 대화도 없이 묵묵히 집으로 향했다. 창 너머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노라니, 점점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얼른 집에 가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쇼.”

운전수에게 요금을 건넨 뒤 택시에서 내렸다. 외부인의 출입을 꺼리는 고급 아파트의 스크린 도어에 카드 키를 대자,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다행히도 미리 1층에 도착해 있어서 기다리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거울을 보니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피로감에 찌든 중년 사무원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다녀왔어.”
“아, 오빠. 왔어?”

문을 열자 내 여동생, 소영이가 날 반갑게 맞아준다. 난 소리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아야!”
“왜 네가 아직 집에 있는 건데. 벌써 3시잖아. 오늘도 학교 안 갔어?”
“일어나니까 11시였어. 그래서 그냥 다시 잤어. 나 잘했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귀여운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소영이. 고양이처럼 약간 눈 끝이 올라간 커다란 눈망울, 작고 오똑한 코, 분홍빛의 작은 입술 이라는 미인의 삼박자를 갖추고 덤으로 우윳빛의 깨끗한 피부까지 갖춘 주제에, 도통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얄미운 사회 부적응자. 김소영. 내 동생이지만 새삼스레 귀엽긴 하다는 생각을 하며, 한 번 더 머리를 쥐어박은 뒤 거실의 쇼파에 몸을 던졌다. 침대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 그만 눈을 감으려는 찰나, 소영이가 물이 든 컵을 내 눈 앞에 내밀었다.

“오빠, 지금 되게 피곤해보여. 자. 일단 좀 마셔.”
“응. 고마워. 우리 착한 동생. 이리와, 이리와.”
“꺄악!”

물을 한 숨에 다 비워버린 뒤 난 소영이를 안고 자는 베개처럼 뒤에서 끌어안았다. 바깥 공기로 식은 몸이 소영이의 온기로 덥혀져 간다. 소영이는 부끄러운 듯 내 품 안에서 발버둥을 치지만 진짜로 빠져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중학교 2학년 치고는 꽤나 발육 상태가 좋다.

“소영아, 소영아. 벌써부터 이렇게 학교를 안 나가고, 커서 뭐 할래? 으이구.”
“우, 우씨. 방금은 착한 동생이라고 해 놓고.”
“착한 거랑 장래 문제는 별개야.”

소영이는 투덜투덜 대며, 나에게 안긴 채로 몸을 반 바퀴 돌려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칫 잘못하면 입술이 맞닿아 버릴 것 같은 거리다. 약간 상기된 얼굴의 소영이는 날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커서 할 게 없으면, 오빠한테 시집이나 갈까?”
“얼씨구. 감히 나한테 빌붙어 먹으려고? 아서라. 사양할게.”
“왜 그래. 나 같이 귀여운 여자애가 시집 가 준다는데. 아, 혹시 내가 언니처럼 배신할까봐 걱정돼서 그러는… 켁, 커헉!”

소영이의 귀여운 얼굴이 일그러진다. 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던 게 아니었나? 계속 해 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데?

“오, 오빠. 수, 숨 막혀…”

그제야 나는 내 양 손이 소영이의 가느다란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 손에서 힘을 뺐지만, 소영이는 나에게서 달아나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안기고 내 등에 양 팔을 둘러주었다.

“콜록, 콜록… 미안해… 오빠… 미안해…”
“…”

왜 네가 사과를 하는 건데. 잘못 한 건 다 난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검고 진득거리는 것이 내 기도를 통째로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두근, 두근, 하는 맥박소리가 머리 전체에 울린다. 머리가 핑핑 돌고, 시야가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

소영이가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겹쳐왔다. 키스를 하는 것처럼. 소영이의 뜨거운 입김이 내 목을 타고 들어오자, 그제야 난 크게 기침을 했고 숨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는 소영이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미안… 오빠, 방금 과호흡 상태인 것 같아서. 주변에 봉지 같은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니야, 아니야. 고마워. 미안해.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오빠…”

머리를 쓰다듬는 소영이의 작은 손. 그 손이 너무나도 듬직하게 느껴져서 난 그만 울고만 싶었다.











“오빠, 들어와. 물 다 받아졌어.”
“그러니까, 먼저 씻으라니까. 왜 자꾸 같이 목욕 하자는 건데.”
“매번 생각하는 거긴 한데, 우리 집 욕조 너무 커! 이런데서 혼자 목욕하면 외롭단 말야. 목욕탕에 가고 싶긴 한데 엄마는 오늘 안 들어오신다니까 혼자 가야 되잖아. 아 몰라! 빨리 들어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피로연에서 너무 마셔댄 탓에 끌고 갔던 차를 도저히 못 몰고 올 상황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식장 위의 호텔방을 즉석으로 빌려 그곳에서 1박을 하고 오신다는 전화가 조금 전에 왔었다. 내일이 휴일이라 술이란 술은 닥치는 대로 마셔대셨나 보다.

“어휴…”

20살의 청년과 15살의 어엿한 숙녀가, 그것도 남매가 같이 목욕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상식적으로 서로 배려를 해야 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 동생은 누구도 못 말린다는 것은 오빠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옷을 전부 벗어 욕실 앞에 개켜 두었다. 그리고 욕실 문을 천천히 열자, 뿌연 증기 너머로 소영이가 보였다. 양 팔로 가슴과 다리 사이를 가린 채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진짜… 들어왔네…”
“그렇게 들어오라고 난리를 피울 때는 언제고. 왜 네가 그렇게 당황하는데. 자, 같이 목욕 하자. 얼른 들어가자.”
“꺄, 꺄앗.”

나는 반 강제로 소영이의 팔을 붙잡고 욕조 앞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적당히 따뜻하게 덥혀진 물에 몸을 푹 담구고, 아직도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소영이를 매섭게 노려보아 주었다.

“아, 알겠어. 들어갈게. 들어가면 되잖아.”
“나 참, 왜 내가 억지로 너를 끌어들인 것처럼 구냐고.”

소영이는 발끝으로 물을 툭툭 건드려 보더니 먼저 양 다리를 담그고, 내 위로 포개지듯이 욕조 속에 드러누웠다. 커다란 욕조지만 두 사람이 들어가니 조금 비좁은 듯한 느낌도 든다. 긴장한 듯 딱딱히 굳어있는 소영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가느다란 목에 흐릿하게 내 손자국이 엿보인다.

“미안해. 소영아. 정말 미안해.”
“아니… 괜찮아. 가족이잖아?”

난 활짝 웃는 소영의 얼굴을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적당히 따뜻한 물이 오늘의 피로를 싹 씻어내려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