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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21 570회 0건
상욱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소영을 내려다보았다. 처녀가 아니어서 실망했지만 남자를 받아드리는 소영의 보지 감촉이 대단하기에 만족스러웠다. 그의 시야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엎드려 허우적거리는 애리의 둔부 사이가 들여다보였다. 엷은 웃음을 흘린 그는 소영의 보지 속에 박힌 페니스를 빼냈다.

상욱은 엎드려있는 애리의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사정없이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흥건하게 젖은 보지 속으로 페니스가 미끄덩하고 빨려 들어갔다. 잠시 진정하고 있던 애리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결코 충격적인 희열을 느끼는 그녀가 묘한 눈빛으로 돌아보며 종알거렸다.

“어 맛! 정말, 날 죽이려고.........”
“으 흡! 넌 이런 거 좋아 하잖아.”

두 사람이 다시 정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소영은 시선을 외면하지만 왠지 안타까웠다. 그녀는 다시 상욱의 페니스를 받아 드리고 싶었다. 성욕에 달아오른 그녀는 보지 속을 헤집을 페니스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두려움이라든가 부끄러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의 꿈만큼이나 그녀는 현재의 쾌감에 만족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애리를 물리치고 상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 으! 핫. 하 잉. 허 으........”
“헉~! 하 아..........”

상욱과 애리의 거친 숨소리는 소영의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따금 애리와 상욱이 그녀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상욱은 소영의 갈구하는 눈빛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젖꼭지를 입속으로 빨아 당기며 애리의 들어 올려진 둔부사의 보지를 헤집었다. 그리고 애리의 보지 속에서 페니스를 꺼내 소영의 허벅지 사이에 틀어박았다. 시선을 외면하고 있던 소영이 짙은 눈썹을 바르르 떨며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 으! 난 몰라.........”
“그, 그래....... 지금 눈빛으로 연기를 해야.........돼.”

상욱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소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소영은 보지 속을 뚫고 들어오는 페니스를 느끼고 상욱의 등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허벅지를 감았다. 그의 페니스가 돌진할 때마다 그의 허벅지를 감고 있는 그녀의 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애리는 자신의 보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소영과 상욱의 입술에 번갈아 키스를 했다. 그들의 몸은 땀방울과 타액, 그리고 정액으로 적셔졌다. 그들은 마치 세상의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들처럼 번갈아 가며 서로의 가슴을 불태웠다. 상욱의 페니스는 그녀들의 보지 속을 번갈아 가며 드나들었다. 그녀들의 보지 속에는 서로 상대방의 자궁 속에서 흘린 정액이 범벅이 되어 끈적거렸다.

누구나 꿈에 부풀은 봄에는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와 철쭉꽃이 시간에 따라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을지로 입구의 건우백화점 도로에는 많은 인파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문화가 발전할수록 여자들의 옷차림은 몸매를 들어내는 스타일로 변신을 거듭하다. 아무리 남녀에 대한 성적인 치별로 남자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성적인 수치를 주는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여자가 성적인 매력이 없으면 나무둥치와 같은 것은 기정사실이다.

상욱은 건우 백화점의 점장 실에서 이 하경과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 하경과 재혼을 할 생각이었다. 상욱이 이혼한 사실을 알고 있는 하경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첫사랑의 아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자들이 선호하는 미모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나 단정한 차림의 하경은 조금은 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학교 여선생 같은 면모가 엿보였다. 그렇다고 그녀에게서 여성스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살집이 있는 그녀는 글래머 스타일이었다.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스커트 밑으로 들어난 허벅지가 날씬하지는 않지만 육감적이었다. 백화점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상욱에게 물었다.

“기획사는 잘 되고 있어요?”
“경험이 없어서 첫 영화는 포기하고, 다시 준비 중이지.”

“아! 시나리오 공모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언론에서 대형 프로젝트라고 관심이 크던데, 저도 껴주면 안 돼요? 호호.......”
“하하하.......! 하경 씨가 지원하면 내겐 큰 도움이지.”

“정말요.......!?”
“이미 내게 하경 씨는 미래의 활력소인데, 내가 고맙지.”

활짝 미소를 들어내는 하경이 탁자위의 찻잔을 들려고 상체를 숙였다. 투피스 상의가 벌어지고 뽀얀 피부의 앞가슴과 젖가슴을 가린 보랏빛 브래지어가 들어나 보였다. 앞가슴을 바라보는 상욱의 시선을 의식하는 하정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평범한 미모에 들어나는 미소는 나이에 걸 맞는 여인의 성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가 주춤거리더니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이 결혼을 서두르라고 하시던데........”
“아! 회장님 병환이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 가보지도 못하고.”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그래서 더욱 독촉을 하는 모양예요. 호호~!”
“저희 아버님도 말씀하시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영화 제작이 끝나야 할 거 같은데.”

상욱은 하경이 아버님 핑계를 하고 있지만 결혼 시기를 놓친 노처녀여서인지 마음이 조급하다는 것을 느꼈다. 소희와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마음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그가 기업에 대한 욕망으로 소희를 버리기로 결심했던 일이지만 그녀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는 하경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경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주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윽한 시선으로 하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소파 팔걸이에 놓인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조금만 기다려줘. 하경 씨를 행복하게 할 준비를 할 테니.”
“상욱 씨를 믿겠어요.”

상욱에게 손이 잡힌 하경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그때 점장 실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경이 정색을 하고 상옥에게 잡힌 손을 슬며시 빼냈다.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여비서가 들어왔다. 하경은 기업의 오너답게 여비서를 향해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왜......!? 미스 송.”
“미국 바이어가 도착했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아! 그래. 내가 만나봐야지. 작성한 서류 좀 챙겨줘.”
“네.”

여비서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기고 하경은 상욱을 향해 자잘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상욱에게 깊은 관심의 눈빛을 표시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한 동안 하지 않았던 그녀는 상욱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가족이 아닌 외부인에게는 예의 바른 남자의 모습을 보였다. 여자처럼 깨끗한 피부와 섬세한 외모, 그리고 깔끔한 상욱의 모습은 그녀의 갇혔던 감정의 문을 열게 한 것이었다. 그녀의 눈빛에 답례를 하듯 상욱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리고 일어서서 풀어진 상의 단추를 잠갔다.

“하경 씨도 바쁠 텐데, 조용한 시간에 식사 같이 하지.”
“네. 연락 주세요.”

하경의 점장 실을 나온 상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갔다. 그가 하경을 만나는 것도 기업을 활성하기 위한 업무 중에 하나였다. 지하 주차장에서는 그의 운전기사 김 은철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기사에게 기획사로 가자고 지시한 그는 좌석에 몸을 묻고 하루의 일정을 검토했다.

상욱이 새로운 각오로 영화를 제작하려고 공모했던 각본이 선정되었다. ‘적도의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당선된 각본을 받아보고 그는 몹시 흥분했다. 남북 간의 국제첩보전에서 발생하는 인간애와 절실한 사랑을 소재로 하는 각본이었다. 국내와 외국을 무대로 로케를 해야 하기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는 분명히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만한 대형 프로젝트라는 예감이 들었다.

상욱은 한 용우 감독이 본격적인 영화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별로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GS 기획을 국내굴지의 정상에 올리고 아버지의 신임을 받아 대영의 후계자가 되는 집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한 감독을 좌절시키는 영화를 먼저 제작하는 야망으로 가득했다. 한 감독의 영화가 실패하여 소희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은 상욱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오디션을 통해서 선발한 주연급 배우들이 상욱의 마음에 들지 않아 고심하였다. 그만큼 새로운 제작영화에 대한 그의 기대는 큰 것이었다.

상욱은 기존 배우들을 캐스팅하려고 검토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배우는 다른 기획사의 영화를 제작중이거나 그를 흡족 시킬만한 배우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서둘러서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지 않아 고민하던 그는 연예계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이미지의 배우가 없어 고심하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그는 너무 먼 곳에서 인물을 찾고자 했던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상욱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육체관계를 맺고 있는 장 애리와 민 소영을 떠올린 것이었다. 시나리오 각본에는 남자 주인공이 남과 북의 이념이 다른 여자 국제스파이 두 명을 상대로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혼자서 고민하던 그는 애리와 소영을 각기 남과 북의 여간첩으로 캐스팅해서 제작하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하고 가슴이 벅찼다. 그녀들에게는 아직 연예계에 알려지지 않은 신비감이 있었다. 특히 소희가 자신의 동생 소영을 주연으로 발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을 생각을 하고 그는 희소를 흘렸다.

상욱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어차피 삶의 수단이고 육체관계는 욕망에 불과했다. 그와 육체관계를 맺고 있는 애리와 소영은 그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이루려는 여자들이었고, 기업의 오너를 하고 있는 이 하경은 그가 그룹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여자였다. 서로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는 상욱의 생활신조였다. 그렇기에 그는 애리와 소영과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배우자로 맞이할 건우그룹의 이 하경과 연락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었다.

상욱이 새로 제작할 영화에 캐스팅하겠다는 말을 들은 애리와 소영은 자신들의 꿈이 드디어 실현한다는 포부에 들떴다. 특히 소영은 상욱의 도움으로 윤택한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오빠 종구대신 상욱에게 외로움을 벗어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행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를 대신하는 욕망의 수단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육체적인 욕구로 오는 희열도 행복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종구는 나이도 어린 여동생 소영이 변해가는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그는 그녀가 세상모르고 변해가는 것은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죄책감에 빠졌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소영이 만나는 남자가 매형이었던 상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더욱 혼란스러워 자신을 질책하였다. 여동생의 육체를 여자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종구 자신이었다. 성적인 희열을 알게 된 그녀가 겁 없이 남자를 만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괴로움에 빠졌다.

그렇지만 종구는 여동생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고민하던 종구는 소영에게 누나 소희와 똑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미 분홍빛 꿈속에 젖어 상욱과 깊은 관계가 되어있는 소영은 오빠의 충고가 질투나 잔소리로만 들려 시큰둥하였다. 소영의 변해가는 모습에 고민하던 종구는 현실을 탈피하고 싶어서 군에 자원입대를 했다.

종구의 군 입대는 소영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빠 종구가 군 입대를 하던 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이지만 그녀에게는 순결을 준 첫 남자였고 오랫동안 외로움을 나누며 정신적 지주였고 육체의 희열을 알게 해준 남자였다. 그러나 오누이간의 끈끈한 애정은 미래의 환상에 젖은 그녀의 꿈을 깨트리지 못했다. 그녀는 곧 바로 오빠의 군 입대 소식을 상욱에게 알렸다.

종구의 군 입대 소식을 들은 상욱은 소영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결 자유로워진 그녀는 그의 가슴에서 여자가 되는 시간을 행복하게 여겼다. 그러나 소희에 대한 분노로 그녀를 가까이 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는 성숙해가는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꿈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긴 그는 영화제작전에 그녀의 경험을 쌓게 하고 싶었다.

상욱은 생각 끝에 소영을 드라마 단막극에 출현시켜 주었다. 그녀가 단막극에 얼굴을 들어내고 제일 놀란 사람은 소희였다. 바쁜 일정을 보내던 소희는 동생들을 너무 소홀히 한 것 같아서 동생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간 날이 있었다. 그런데 흔적도 없이 이사를 했고, 동생들은 전화번호까지 바꾼 상태였다.

절망감에 젖은 소희는 단지 성공하면 동생들과 만나 형제애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날까지 동생들이 잘 버텨주기만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소영이 출연한 단막극의 배급사가 이혼한 남편 상욱의 GS기획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촬영으로 바빠진 일정은 소희가 동생들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활짝 피었던 철쭉꽃이 푸른 잎으로 변하더니 어느새 초여름을 맞이한 산과들은 진한 초록으로 뒤덮였다. 영화 제작을 시작한 한 용우는 해외로케를 위해 공항에 나와 있었다. 주연급 배우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스텝 진들은 장비를 옮기느라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출국장 로비 한쪽의 커피숍에서는 한 용우 감독과 찬규가 마주 앉아 있었다. 커피 잔을 들고 밖을 내다보던 찬규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국내 촬영을 하느라고 고생했는데, 잘 다녀와.”
“고맙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언제나 너의 친구야.”

찬규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한 용우는 자신과 소희의 관계를 찬규가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한 감독은 친구사이인 찬규에게 어차피 밝힐 일이라 인정하는 의사 표시였다. 한 동안 언론에 한 감독과 소희의 스캔들이 화제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감독은 스캔들을 기사화한 언론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언론도 그들 사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흥미를 잃었는지 더 이상 기사화하지 않았다. 찬규는 소희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허탈하기 만했다.

“사랑스러운 여자야. 가슴 아프게 하지 마라.”
“고맙다. 그런데........”

한 감독은 말을 중단하고 찬규의 표정을 살폈다. 담담하지만 찬규의 안면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찬규는 소희의 꿈을 이루주기 위해 한 감독을 만나게 했던 것이었다. 그는 소희와 한 감독이 은밀한 사이가 되도록 만든 것은 자신이라고 질책하고 싶었다. 아직도 그의 가슴에 살아있는 소희의 숨결은 고통이었다. 그 고통은 그의 자업자득이었고, 다만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랄뿐이었다. 머뭇거리던 한 감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소희 씨를 사랑했어?”
“후후~! 소중한 나의 제수 씨였지.”

쓴웃음을 짓는 찬규의 말은 긍정이 아닌 긍정의 표현이었다. 한 감독은 찬규가 동생의 아내인 소희를 특별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연기자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 추천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한 감독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감독은 소희와 찬규가 정신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깊은 관계였던 것은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는 찬규가 혈연관계를 떠나서 소희를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었다. 사랑하게 된 소희와 육체관계를 가지게 된 후에 그는 그녀에 대한 찬규의 감정을 알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 술을 마신 한 감독이 소희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었다.

“찬규는 좋은 친구야. 소희 씨를 사랑하게 된 기회를 만들어준 친구지.”
“.........!”

한 감독의 말에 소희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감독은 소희의 눈동자에 스쳐지나가는 그림자를 알 수 있었다. 한 감독은 소희의 표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남녀 간의 애정이 스며 있다고 느껴 더욱 궁금했었다.

“소희 씨는 찬규를 어떻게 생각해?”
“.............”

“그 친구도 역시 남자니까, 한 건물에 살면서 소희 씨에 대한 감정이 특별할 거 같은데, 그래서 소희 씨를 돌봐주었던 거 아닌가?”
“그런 말로 그분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분은 절망에 빠진 나를 구해준 남자에요. 정말 좋은 사람예요.”

한 감독은 대답이 없다가 당돌하게 말하며 쳐다보던 소희의 눈빛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감독에게 현실은 소희를 사랑한다는 것과 찬규가 영원히 변치 않을 친구라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한 감독은 찬규보다는 너무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말한 것 같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내가 너무 심각한 말을 했나!”
“아니, 행복하기 바래! 촬영 잘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와. 그녀도 잘 돌봐주고.......하여튼 음악은 내가 책임질 테니........”

웃음을 띤 찬규는 번민을 떨쳐 버리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서로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비록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이지만 그들은 더욱 우정을 표시하는 눈빛을 교환하였다. 찬규는 스텝 진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다가 멈추어 섰다. 출국 로비 한쪽에 모여 있는 배우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과 떨어져 앉아있던 소희의 시선이 찬규와 마주쳤다.

소희는 한 감독과 대화를 하고 있던 찬규를 주시하고 있었다. 찬규와 한 건물에 살던 그녀는 잠실로 이사를 했기에 한동안 그를 볼 기회가 없었다. 한동안 언론에서 한 감독과 소희에 대한 스캔들 그녀는 이미 그가 한 감독과의 사이를 알고 있기에 그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한쪽에는 아직도 그의 눈빛이 살아 있었다.

망설이던 찬규가 소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마주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찬규의 눈빛에는 아직도 열정이 남아 있었다. 찬규가 그녀의 어깨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쳤다. 스텝 진들을 의식한 그녀가 흠칫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 하나를 떼어내며 물었다.

“하고 있는 일이 행복 해?”
“.........”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찬규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뻐근했다. 언제나 그녀에게 열정을 느끼게 하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대답대신 보조개를 드리우는 미소를 잠시 띠었다. 찬규는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는 한 용우를 의식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니 다행이네.”
“민지는 잘 있어요?”

“응. 장난꾸러기가 됐지.”

소희는 찬규의 말에 엉뚱한 질문을 했다. 어쩌면 그녀는 민지의 엄마가 되어달라던 찬규의 말을 되새기는 것으로 그에 대한 마음을 대신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찬규는 그녀가 진정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되도록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색하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행복했으면 좋겠어!”
“............”

넋두리처럼 흘리는 찬규의 말에 소희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물론 그녀가 스스로 그의 곁을 떠난 것이지만,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켜주지 않은 탓이라고 원망하고 싶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습기가 맺혔다.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여는 그녀의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왜........! 붙잡아 주지 않았어요?”
“붙잡는다고 달라지지는 않잖아. 소희의 미래를 붙잡을 수는 없으니........”

찬규의 말에 소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이따금 서로를 힐끗거리고 쳐다보며 침묵을 지켰다. 먼 말치에서 한 용우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감독의 시선을 의식한 찬규는 스스로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듯이 길게 심호흡을 하고 돌아섰다. 소희는 아직도 찬규에게 무슨 말인가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너풀거리며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찬규는 소희의 아련한 잔상을 떠올리며 공항을 빠져 나왔다. 그는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어떤 기억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는 무작정 승용차를 몰고 거리를 달렸다. 한강변을 달리던 그는 새삼스럽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와 데이트를 즐기던 선착장에 승용차를 세운 그는 유람선을 탔다.

선상에서 하얀 거품을 일어나는 강물을 바라보며 찬규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그의 심정이었다. 강물 위로 불어오는 바람! 인생은 어쩌면 바람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인간의 마음속에 거친 파도를 만들기도 하고, 차갑게 다가와 마음을 웅크리게 하기도 하지만 뜨거운 태양의 햇살의 열기를 몰고 와서 사람의 감정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뜨거웠던 열정은 한순간의 추억으로 차갑게 사라진다.

영원히 지을 수 없는 기억의 아픔은 한순간의 행복인지도 모른다. 찬규는 가슴에 솟아오르는 열정을 강물에 던지고 유람선에서 내렸다. 그러나 막상 승용차에 올라타고 보니 갑자기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안식처라고는 민지가 기다리고 있는 집이었다. 승용차의 시동을 걸려는 순간 그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이따금 친구처럼 만나고 있는 장 혜영이었다.

“찬규 씨! 어디야?”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는 중.”

“무슨 대답이 그래?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아.”
“..........”

찬규는 혜영의 투정하는 목소리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요즘 와서 그녀가 더욱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가 그녀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찬규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그녀가 아니기에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또 한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망설이는 그에게 혜영이 대답을 재촉했다.

“찬규 씨! 안 들려? 나 맛있는 거 사줄 수 없어?”
“글쎄........!?”

“너무하네. 어디야? 내가 갈게.”
“아니 지난번에 만났던 일식집으로 갈게.”

통화를 끝낸 찬규는 멍하니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회색빛 하늘과 쌀쌀한 날씨가 기분을 더욱 우울하게 했다. 퇴근시간인지라 시내의 교통이 복잡했다. 그는 조금은 짜증스럽게 운전을 해서 혜영이 기다리고 있을 일식집에 도착했다.
일식집 홀 안에는 평상시보다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안면이 있는 종업원이 그를 이층으로 안내했다. 창가에 앉아 있던 혜영이 하얗게 눈을 흘겼다.

“뭐야! 오빤, 전화를 그렇게 받아. 기분 나쁘게.”
“미안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날 보니까, 기분이 안 좋다고........!? 그럼 갈까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날씨 탓이지.”

찬규는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을 하며 혜영과 마주 앉았다. 그녀가 미리 주문한 했던 음식들이 바로 식탁위에 놓여졌다. 시장했던 탓에 그들은 초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개 집어먹은 찬규는 입안이 깔깔해서 맛을 알 수가 없었다. 탐탁지 않은 그의 표정을 보고 혜영이 회를 집어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왜 그래? 맛있게 먹어. 내가 있으면 기분 전환 안 돼?”
“괜찮아! 편하니까. 술이나 한잔해야겠다.”

“내가 따라 줄게. 나도 한 잔 줘.”
“마셔도 괜찮겠어?”
“오빠는!? 내가 어린애야.”

빙그레 웃음을 흘린 찬규는 혜영이 따라주는 술잔을 내려놓고 그녀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그녀가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하며 찬규의 잔에 잔을 부딪쳤다. 상큼한 미소를 띠며 술을 거침없이 마시는 그녀를 보고 찬규는 음미하듯이 천천히 잔을 기울였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알코올 기운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혜영은 찬규의 기분을 풀어주느라고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집에 들렀더니 민지는 학원에 가고 없던데.”
“집에 갔었다고.......!?”

“응! 오빠가 집에 있는 줄 알고.”
“학원에 간 게 아니고 할머니가 데려갔어.”
“어머님이.......!?”

입맛이 없는 찬규는 술잔을 자주 비웠다. 공항에서 만났던 한 용우와 소희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 그는 술이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찬규의 심정을 모르는 혜영은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술을 따라 주다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빠, 정말 오늘 무슨 일 있는 거야?”
“무슨 일은!? 그냥 취하고 싶어.”

“민 소희는 공공연하게 한 감독과 다니던데. 오빠도 혹시 숨겨 논 여자가 있는 거 아냐?”
“후 후! 그렇게 보여?”
“하도 우울해 보여서 해 본 말이야.”

찬규는 혜영의 물음에 흠칫하였다. 그녀가 혹시 눈치라도 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혜영은 이런 기회에 부모님들끼리 추진하는 그와의 혼인 문제를 꺼내고 싶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스럽게 독신자로 살고 싶었다. 다만 어린아이들을 보면 예쁜 아기를 키우고 싶다는 유혹에 휘말렸다.

“오빠! 내가 민지를 데려다 키우면 안 될까?”
“하하~! 과연 민지 할머니가 그렇게 할까! 그건 민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야.”

“아마, 내가 키운다면 어머니도 승낙할 걸. 오빠가 승낙하면 되잖아?”
“이제는 엉뚱한 말로 괴롭히네.”

“왜 그래? 그럼 나를 아내로 맞이하던지. 어머니는 날 며느리로 생각하시던데.”
“우리 나이가 한두 살인가! 어른들 생각대로 인생을 살 수는 없잖아.”

찬규는 답답한 심정대신에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혜영은 집요하게 찬규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녀는 그의 옆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으며 종알거렸다. 술기운이 오르는 찬규는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쉬지 않고 말을 하는 그녀는 이따금 술잔을 들어 마셨기에 얼굴이 발그스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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