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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24 803회 0건
-1-


"김우석씨! 김우석씨!..........김우석씨 안나왔어요?"

주변을 몇번 훑어보다가 옆에있는 작업반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반장님 김우석씨 안나왔어요?"

"그러게요. 처음엔 열심히 나오더니....요몇일 계속 안나오네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반장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김우석. 34세. 그는 안면과 손 등 신체의 30%에 화상을 입은 화상환자이다.

우리 관내에 사는 사람으로, 기초수급자로 등록되어 생활보조를 받다가 얼마전부터는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자활근로사업에 나오고 있다.


"선희씨 기초수급자 쌀 갖다줘야하는날 오늘이지?"

"예. 여기 명단이요"


선희씨가 건네주는 명단을 받아 쭉 훑어보았다. 음...5명이라....빡센 하루가 되겠군.

명단을 쭉 훑어보다가 김우석의 이름을 발견했다.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자활근로를 3일이나 빠진터라 무슨일이 있는가

한번 확인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트렁크에 다 싣었는데 갈까요?"

공익근무요원이 손을 툭툭 털면서 다가왔다. 보고있던 서류를 가방에 넣고 공익요원을 따라 주차장으로 나갔다.


"나혼자 가도 되니까 그냥 여기있어라"


쌀포대 얼마 무겁지도 않고 차로 돌면 금방인데 구지 공익녀석 데리고 다녀봐야 뭐하나 싶어 공익녀석을 돌려보냈다.

녀석은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꾸벅 하더니 동사무소로 쌩하고 들어가버렸다.

허리디스크로 공익판정 받았다는 놈한테 무슨 쌀포대 드는 일을 시키랴.....나는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2-


"여기가 88번지인데..."


산동네는 이래서 안좋다. 뭘 봐도 그집이 그집같고 그 번지가 그 번지같고..

벌써 같은데를 몇번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차도 못들어가는 골목이라 쌀포대를 이고 걸어 올라왔다.

가을이고 날씨도 선선한데 땀으로 온몸이 축축해졌다.

도저히 내가 찾는건 무리같아서 근처 가게를 찾았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니 가게 주인장은 한가로이 TV를 보고 있다.


"아저씨 말씀좀 여쭙겠습니다. 김우석씨 라고 혹시 어디사는지 아시나요?"


내 물음에 힐끗 쳐다보더니 가게아저씨는 이내 TV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김우석이가 누구여?"

" 얼굴에 좀 상처가 있으시고.....잘 모르시나요?"


화상 얘기를 꺼내자 알았다는듯 다시 쳐다보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저기, 저기 하며 고만고만한 집 중에서 제일 허름한 집을 가르켰다.

여러 집이 떡처럼 붙어있던 구석 골목에서도 가장 안쪽, 햇볕이라고는 전혀 들것같지 않은 집이라 그 주변을 여러번 돌았으면서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가게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쌀포대를 어깨에 이고 가게 아저씨가 가르쳐준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째 쌀포대가 처음 들었을때보다 더 무거워 진것 같다.


"으...공무원은 책상에 앉아서 등본이나 떼주면 되는줄 알았는데. 시발"


투덜거리면서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갔다.


-3-


"계세요."


좀 멀찍히 구석의 집을 봤을때는 잘 몰랐는데, 집 앞에 다가서자 생각보다도 집은 훨씬 허름했다.

달동네 집이 뭐 안허름하겠냐마는, 현관문도 나무가 다 뒤틀려있었고 윗쪽의 유리는 깨져서 수건으로 대충 막아논 상태였다.

몇번을 불렀는데 인기척이 없어서 문이 잠겨있지 않으면 쌀포대나 내려놓고 갈 요량으로 살며시 현관문을 밀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끼이익 하면서 덜컹거리며 열린 문으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어두컴컴한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부엌이라고 부르는게 맞을지 모르겠다. 낡은 싱크대가 하나 놓여있고 그 싱크대가 하나 더 들어갈만한 공간만 남아있는곳을.

그 좁은곳에 쌀포대를 내려놓는데 안쪽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어라 누가 있나?"


여기까지 왔는데 쌀만놓고 갈수는 없고 (누가주고갔는지는 설명해야할것 아닌가? 그게 행정이지.) 신발을 살짝 벗어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을 지나니, 바로 왼쪽으로 화장실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방이 하나 있었다. 기침소리는 바로 그 방에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동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인사를 건네면서 방문을 열었는데 방 구석에 아줌마 한명이 앉아 있었다.

무릎을 감싸안고 앉아있었는데 목 부분이 심하게 늘어난 흰색 반팔티에 남색 추리닝 반바지 차림이었다.

티셔츠에 물을 쏟았는지 옷이 젖어서 검은색 브래지어가 언듯언듯 비쳤다.

아줌마는 내가 집안에 들어왔는지 전혀 몰랐는지 나를 보더니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방안에는 이불이 깔려있었는데

한동안 안빨았던지 누런 때가 여기저기 묻어있었고 사방에는 어디서 피를 닦은건지 피묻은 휴지가 여기저기 버려져있었다.


"누구야?"


앉아있던 여자가 날카롭게 외치면서 일어섰다. 순간 나도 깜짝 놀라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동사무소에서 나왔는데요. 사회복지과 공무원입니다"


웃는 낯으로 다시한번 말했는데 갑자기 여자가 날 밀치며 뒤로 물러났다.

밀려서 두어걸음 물러나 이여자가 왜이러나?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여자의 왼쪽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게 보였다.


"어 피나요 아줌마!"


나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아줌마에게 건넸다. 내미는 손수건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아줌마에게

나는 얼른 목에 걸고있던 공무원증을 보여주었다. 아줌마는 내가 내미는 공무원증을 힐끔 보고는 그제서야 내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고

그자리에 다시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아줌마 귀 어쩌다 그러셨어요? 병원 안갔다오셨죠?"


아줌마는 내말에 대꾸가 없었다. 나는 어떡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방에 널린 피묻은 휴지도 그렇고 해서 아줌마를 병원에 데려갈 요량으로

아줌마 옆에 다가가 앉았다.

옆에 앉아서 보니까, 아까는 미처 못봤는데 아줌마 허벅지가 온통 멍자국이었다.

자잘자잘한게 아니고 마치 주먹으로 때린 듯한 멍자국이 크게 여러군데 있었다.


"아줌마 이거 어쩌다가 이러셨어요?"


아줌마는 허벅지를 쳐다보며 하는 내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냥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우리는 아무일도 없으니 그냥 가보세요"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아줌마 멍든거 물어봤더니 우리는 또 뭐고...

아줌마 말이 이상하다 생각하는 찰나에 내 시야로 아줌마의 귀가 들어왔다.

아.. 이 아줌마 귀를 다쳤지. 내가 무슨말 하는지 못알아듣는구나...

뭔말을 하는지 못알아들을 정도면 이건 상태가 꽤 심각하다. 아줌마는 별로 병원갈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그냥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줌마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위해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4-


그때였다 누가 불쑥 방으로 들어왔다. 김우석 이었다.


"어 김우석씨"


그를 보며 내가 반갑게 말했다. 어디를 나갔다 왔는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작은 쇼핑백 하나를 들고있던 그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긴장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사무소 직원분이 여긴 어떻게?"


굳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허름한 집 꼴을 남한테 보여서 창피한가 보다 생각했다.


"이분이 어머니 되시나요?"


아줌마를 가르키며 말하자 김우석의 표정은 더욱더 굳어졌다. 그는 다시 한번 차갑게 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겠으니 같이 가자고 말했다.


"약을 먹고있으니 괜찮습니다. 신경안쓰셔도 되니까...쌀은 고맙습니다"


김우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옆에 서있던 자기 엄마 손을 붙잡았다. 뭔가 말을 해야겠는데 딱히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 좀 멍해진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화장실 앞에서 그럼 가보겠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역시나 대꾸는 없다.

나는 조용히 그 집을 나왔다.

쌀포대도 잘 전달 했고, 김우석도 만났다. 근데 이 찝찝한 느낌은 뭔지..?

화장실에서 일보고 뒤를 안닦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찝찝한 기분을 안고 달동네를 내려왔다.


차에 타서 동사무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오늘 김우석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귀에서 피를 흘리던 아줌마.

젖은 티셔츠 안으로 언듯언듯 비치는 검은색 브래지어.


나는 급히 차를 돌렸다. 그리고는 동사무소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동사무소 반대 방향, 김우석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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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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