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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28 832회 0건


유리 누나의 속내. 그건 들여다 볼 기회도, 들여다 볼 생각도 없이, 함께 살아 왔었다. 누나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또 누구에게 피해를 보지도 않으려는 보호주의, 내가 기댈 수 없지만, 누나도 기대려 하지 않는 어긋난 상호주의, 그런 분위기로 팽배했던 우리들의 성장기는 서로를 외면한 채, 그저 형식적인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무미건조한 공동체 구성원일 뿐이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누나는 소외되어 있었다. 본인의 사고방식이 그렇게 되도록, 그 골이 깊어지도록 원인제공 한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유리 누나를 끌어안으려는 가족으로써의 노력을 포기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누나에게 동요가 일어난 건 뺨을 때린 직후였다.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후회가 엄습했다며, 내가 뒤따라와 뭐든 할 것만 같아 미안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고...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누나는 다른 가족들이 외출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내 방에 찾아 왔고, 자기 몸을 더럽혀놓고, 거드름 피우는 작태로 보여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내가 주방에 내려가기 위해 기척을 내는 동안 가슴을 졸였고, 유진이 방문을 닫는 소리가 났을 땐 자기 방문 잠근 것을 다행스러워 했다고.

그렇게 유리 누나가 숨죽이는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있었던 거고.... 시간이 지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상황을 너무 비약해버린 경솔함에 대한 후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방을 찾아 온 것이다. 곡절이 있긴 했지만, 오해가 풀리면서 긴장도 함께 풀려, 사실 눈물이 나려고 했으나.... 내 꼬라지가 웃음보를 건드린 것이다.

나를 방에 머물러 있게 하려던 건 책임모면보다 집안이 시끄러워 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고.... 커피를 사양하고 내가 그냥 올라가 버리자 누나는 초조해졌고, 뭐라도 해주며 부탁하려고 물색해 낸 것이 찜질이었다. 이미 그럴 의도로 밥을 먹고, 엉성하게 연기하다가 들켜버렸지만.... 화도, 어떤 요구도 없이 선뜻 손해를 감수하는 내가 이해가 안 가더라 면서.... 빚을 지는 기분이 들더란다.

그 때문일까? 그래서 지난 시간 부득이했던 자신을 이해받고 싶어졌을까? 묻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궁금해 하고 있던 것에 대해 자진해서 털어 놓았다. 어렴풋했던 내 짐작보다 누나의 마음고생은 더한 것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토요일이 오기 며칠 전, 학교를 졸업한 선배가 조연출을 맡게 된 드라마의 오디션을 본다고, 꽤 비중 있는 조연자리를 메우기 위해 재학생 중에 신선한 이미지를 찾으러 학교를 방문했다고 한다. 교수님을 뵈러 갔던 길에 교수님과 면담을 나누고 나오던 그 선배와 마주쳤고, 연극영화과 학생이냐고 대뜸 말을 걸어오더니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스팅제의를 해 왔다고 한다. 자기가 찾던 이미지라며 배역을 맡기고 싶으니 절차상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고... 그래서 토요일에 약속을 잡았고, 연출자와 작가 스케줄에 문제가 생겨 저녁 시간 시내로 장소가 옮겨졌다.

세상물정에 문외하지 않다고 자부해왔다는 유리 누나. 그 선배라는 사람의 인상은 도무지 그럴 얼굴로 보이지 않았고, 스스로도 오디션을 통해 연기입문을 하고자 했던지라, 처음 봤던 날 교수님 방을 나섰던 게 보태져 결정적인 신뢰를 가졌던 자신을 나무라듯 한탄했다. 연출자와 작가의 사정을 들먹여 저녁식사부터 하자고 했을 때서야 불안이 싹텄고, 같은 핑계로 자리를 옮겨 술을 한잔 하러 가자고 권해왔을 때 확신하게 된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그 곳을 벗어나 한참동안 거리를 배회하다 기댄 곳이 술이었다. 동경하던 직업에 대한 모욕과 타인의 이기심에 치여 회의를 느껴야 하는 무기력한 자신을 잊기 위해 술에 기댄 것이다.

유리 누나는 연기자지망생이었다. 그것은 누나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변사람들이 알고 있는 공개된 플랜이었다. 실력의 문제를 떠나 그 꿈을 수긍하게 만드는 남다른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외모가 두드러진 사람들이 대게 그렇듯 주위의 부러움과 질투, 넘치고 불편한 관심과 시선을 함께 받기 십상이다. 자신의 경우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그 관심이 힘들었다고 한다. 스스로의 노력은 외모 때문에 평가절하 당하기 일쑤였고, 어느새 관성처럼 유리 누나 인격을 제멋대로 구성하고 해석해 자신들의 취향에 맞추어 소비하려 들었다고 한다. 그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았을 때 어김없이 외모에 집중되는 원인들. 마치 창녀가 된 수치심이 들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군중속의 고독’을 너무 일찍 경험해 버린 걸까? 자아라는 테두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다짐 한 것 같았다. 경우는 다르지만 한때 내가 그랬듯 유리 누나 역시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겠지.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그 사람이 이끄는 데로 휘둘리며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연기, 그 가상의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느낀다며, 대본과 설정으로 진행되는 그 구조는 어떤 것이든 과거처럼 상처 입히는 부메랑을 만들어 되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 꿈을 쫓으며 살았고, 스스로 결백하기 위해 자력으로 일어서고 싶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했다.

자신과 쉽게 타협해서 가져다주는 편애를 누리며 호의를 입맛에 맞게 가위질 하고, 그 값으로 스스로를 도구로 전락시켜 궁핍하게 사는 적당히 얼룩진 인생. 그러려니 하며 눈감고 어울려서 자기를 그렇게 기만하고 살기에 김유리의 천성은 가난하지 못했던 것이다.




얘기를 듣던 중에 그 선배라는 작자를 찾아가 반쯤 죽여 놓을까, 하는 격한 심정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 자식 때문에 나까지 같은 부류로 엮여서 오해를 받은 것 같아 더 그랬다. 근데 누나는 벌써 다 잊은 듯 초연한 모습이니 내 속이 더 쓰릴 수밖에 없었다.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 김우진.”

얼굴을 돌리고 얘기하는 누나는 체증이 내려 간 듯 후련해 보였다. 얘기를 하며 중간 중간 누나가 깊은 한 숨을 토할 때 마다 내가 함께 쓸려 내려가는 것 같았었다. 마치 날카로운 기억을 더듬느라 숨이 차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얼마나 오래 묵혀서 담아둔 얘기들일까.... 어떤 동기가 작용해서 유리 누나의 마음을 열도록 만든 것인지 뚜렷하게 가늠하긴 어려웠지만, 지금 누나한테서 풍기는 사람냄새가 가식일 수는 없었다.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누나.”

나는 아까부터 일어나 누나처럼 기대 앉아 있었고, 토씨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 가슴이 저미러와 그때마다 어금니를 깨물기도 했었다. 완치되지 않을 것 같았고, 아득하게만 보였던 간격이 닿을 듯, 닿은 듯 했다. 사건과 오해, 그리고 화해라는 비료를 먹고 자라난, 유대라는 새싹이 잠겼던 봉인을 풀어준 걸까? 더 감출 게 없어진 사람처럼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있는 유리 누나. 뭐라도 말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고해성사하듯 진심을 보인 누나를 이대로 두면 너무 겸연쩍지 않겠나. 해서.... 또 읊었다.

“형이 아우를 아끼고 아우가 형을 공경하여 비록 지극한 곳에 이르렀다 해도,
이 모두 당연할 따름, 조금도 감격해 할 것은 아니다.
채근담에 나오는 얘긴데, 난 너무 감격스럽네?”

누나가 엷게 웃으며 뭔가 얘기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내 차례였다.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의복과 같다. 의복이 헤어지면 새것으로 갈아입으나,
손발이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다. 크~~ 장자께서 하신 말씀이지.”

재밌었는지 더 있냐는 눈치를 준다. 또 해보라는 듯 하얀 턱을 장난스럽게 까딱거리네? 하라면 못할 줄 알고?

“어험~~ 형제자매우애이이~”
“푸?~”

“형제자매는 서로 사랑할 따름이니 ~”
“훗... 그건 어느 분 말씀이니?”

“나도 몰~라”

말을 하며 눈이 마주치자, 우린 서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소리로 대화를 치환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 한데 섞인 웃음에 경계는 허물어지고 없었다. 그러다 어젯밤 발가벗겨진 누나를 보며 품었던 충동적인 호기심들이 그저 생각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이 사람에게 과연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을지 상상하니 몸에 소름이 끼쳤고, 그마저 죄스럽게 느껴졌다. 누나 얼굴에 발간 홍조를 내가 본적이 있던가? 저 하얀 치아를 봤던 기억이 있던가? 이렇게 가까이서 어깨를 맞댄 적이 있던가? 아니, 모두 없었다.


“너 원래 이렇게 재밌었니?”
“누난 원래 이렇게 예쁘게 웃었어?”

‘어떻게? 이렇게?’ 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그림 같은 그 웃음은 백설이 녹아 흐르는 맑은 물결 같았고, 보고 있자니 아지랑이처럼 내 몸 어딘가에서 타고 오르는 시큼한 느낌.... 왜 이런 모습을 이제야 보게 된 걸까? 악몽인 줄 알았던 단막이 시리즈가 되더니, 해피엔딩이 되어 막을 내리고 있었고, 가상이 아닌 이 현실무대 위에서도 누나는 행복을 누릴 여유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처럼만 마음을 연다면, 그 만큼만 자격지심을 버린다면, 자신을 몰아세웠던 과거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강한 사람이란, 가장 훌륭하게 고독을 견뎌 낸 사람이다.”
“......”

“혼자 견디는 게 꼭 훌륭한 건 아닐지도 몰라.”
“......”

“같이 견디면 다 같이 훌륭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그건 누가 한 얘기야? 또 몰라?”

“내 도움이 필요해지면 그때 알려줄게. 아마 누나도 아는 사람일 걸?”
“배우?”

막 2층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외출했던 유진이가 돌아온 모양이다. 그럼 부모님도 함께 돌아오셨을 테지.... 누나가 난처한 기색으로 나를 본다. 나는 웃으며 누나 등을 떠밀었고, 방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뒤돌아서는 누나에게 찜질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화사한 미소를 기대했는데.... 풉! 하고 웃고 나가신다. 허허.






일요일에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유리 누나에게 큰 변화는 없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랬다. 여전히 말이 없고, 표정이 적었지만, 그런 누나를 지켜보며 어딘가 다르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날 뜻밖에 나누었던 교감의 여운 때문에 자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나는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하시던 엄마를 볼 때나, 유진이가 아버지를 붙들고 용돈을 구걸하고 있을 때, 어딘가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예전과 같다면 자리를 털고 방으로 돌아가거나, 유진이 생떼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았을 텐데, 돌아서다 멈춰서 다시 보고, 유진이 뒤에선 잠깐이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저 평범한 광경을 대하며,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의 갈등을 읽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가족들에게까지 방어적으로 행동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다만, 자꾸 주변을 경계하고 몸을 사리는 패턴이 생활에 물들면서 점차로 번져 왔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립되고, 손 쓸 수 없는 괴리가 형성되었겠지. 내 짐작이 맞는다면 지금 유리 누나는 그 괴리를 실감하는 단계인 셈이다. 달리 보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품에 제대로 안기기 위해.... 나와 마주치며 남몰래 웃어주는 진짜 김유리를 머잖아 가족 모두가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김칫국물이 아니길 바라고 있다.


오늘은 오전 강의가 없어서 느긋하게 집을 나서던 참이었다. 근처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가구를 잔뜩 실은 트럭들이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인부들이 한창 짐을 옮기는 중이었는데, 신혼부부가 이사를 온 건지 어째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구들이 죄다 새 거에 언뜻 살펴보니 가전제품도 온통 박스째 실려 있다. 신혼부부만 살기에는 제법 큰 집임에도 인부들 말고는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신혼을 이렇게 화려한 곳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복지는 배고픈 직업인데.... 후후’

유산이라도 받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싱거운 계산을 하다가, 지금 사는 집에 마누라만 대리고 들어와서 사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방법론까지 떠올리며 학교로 향했다. 점심을 학교식당에서 해결한 뒤, 오후부터 있는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건물을 나와 따듯한 햇볕에 발을 담그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누군가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고등학교 동창 동철이었다.

“동철아~!”
“씨 발 놈!!!”

“여긴 웬일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이 매정한 새끼.”

“마! 반가워서 그러지. 진짜 웬일이냐 네가?”
“한 판 뜨러 왔다. 십새야!”

학생주임 다음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었던 박동철군. 그리고 소위 말하는 문제아. 친구로서 완곡하게 표현해주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깔끔하게 입시에 낙방했었다. 시험을 보긴 한 건지.... 통화는 가끔 했지만 얼굴을 본 건 졸업 이후 처음이었다. 역시 꼬라지를 보아하니 재수 준비하는 인간의 행색은 아닌 듯 했다. 은색 양복에 금목걸이라니, 맙소사!! 이게 무슨 3류 조폭영화 패션도 아니고.... 불치병인지 아직도 골반이 불편한 놈처럼 껄렁하게 짝다리를 짚고는 더 못 길러서 안달이던 머리를 바짝 자른 채 나타났다. 나가던 걸음을 돌려 다시 건물로 들어와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았다. 로비 중앙에 놓인 나무의자로 가는데 녀석이 물어온다.

“재밌냐, 학교?”
“맛있네. 커피.”

“애인은 있냐?”
“식기 전에 마셔라.”

“없네. 새끼! 공자랑 노니까 여자가 돌로 보이냐?”
“어! 학주다!!!”

“어???”

동철이 모가지가 빛의 속도를 내며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게 바로 조건반사라고 하던가? 내 입장에선 조련인가? 녀석의 학생주임 트라우마는 여전했고, 본론이 아니면 물과 기름처럼 대화가 따로 노는 것도 여전하다. 기질상 우린 상극에 가까운데 어쩌다 이렇게 친해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친구 보러 왔다가 많이 놀랐을 어린 양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안심하라는 투로 달랬다.

“잘못 봤다. 야.”
“이런 씨~팔!! 이게 다 그 무능한 공자새끼 때문이야.”

놀래서 구겨진 체면에 심사가 꼬였는지 엄한 공자를 물어뜯는다. 어디서 그렇게 물어다 오는지 여자랑 뒹굴 건수만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와 나를 그 환락의 세계로 전도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동철이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성현들의 말씀을 빌려 교화하는 척 거절했었고, 특히 많이 인용한 사람이 공자였다. 얘가 혹시, 공자 트라우마도 있나?

“수업 다 끝났냐?”
“아직 하나 남았어. 그거 물어보러 왔냐?”

“재끼면 안 되냐?”
“전공이라 안 되지. 뭔 일 있어?”

“저녁에는 시간 괜찮지?”
“그렇긴 한데.... 무슨 일이냐고, 임마!”

“오늘 이 형님 탄신일이다! 씨밸~ 놈아!”

한 옥타브 높여서 뽑아낸 걸쭉한 욕지기가 종소리처럼 로비를 울리고,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 동철인 안중에도 없다는 모습이고, 나 역시 익숙하지만 누가 보면 싸움난 줄 알겠구나.... 이건 나도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던 동철이식 대화였다. 녀석은 친근감을 욕으로 표현하는 대단히 쓸모없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그 반대 경우는 두 말할 것도 없지만.... 허나, 이곳은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한 대학교다. 나는 지성인으로써 친구의 몰상식한 언행을 따끔하게 훈계했다.

“너 때문에 다 쳐다보잖아. 이 새끼야!”

내가 유일하게 욕을 하는 사람이 동철이었는데, 내가 욕을 하고 있다면 동철이에게 하는 거라 단정해도 되는 정도라고 할까? 같이 학교 다닐 땐 덕분에 오해 꽤나 받았었다. 유유상종인 셈이지만.... 그 정도는 욕도 아니라는 듯 희죽거리며 말을 한다.

“됐고, 이따 한잔 하자.”
“어떡하냐? 나 오늘 돈 없는데?”

가소롭다는 듯 웃더니 거드름을 피우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열어 보인다. 이만하면 되냐는 듯....꺼낼 때부터 두툼하던 그 지갑엔 수표로 보이는 하얀 종이와 만 원짜리 지폐들로 가득했다. 훗! 은행을 턴 걸까? 사채를 끌어 온 걸까? 연락도 없이 나타나 돈 자랑하는 놈이 귀여워서 웃으며 물었다.

“생일잔치하려고 적금 부었냐?”
“그래, 씨발! 적금 부었다. 그니까 수업 끝나고 무조건 전화해라.”

그러면서 동철이 녀석이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뽑아 건네 왔다. 주제에 명함이라니. 하며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봤더니, 금테로 각인된 ‘비너스’라는 이름 아래로 ‘실장 박동철’ 이라는 직함과 일반전화와 휴대전화 번호만 달랑 적혀 있었다.

“비너스? 너 요즘 여탕에서 때 미냐?”
“하여간 새끼, 상상력하고는.... 차차 알게 되니까, 이따 보자. 친구야!”

말을 하며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리곤 일어서더니 무엄하게도 내 신성한 아랫도리를 가리키며 한심하다는 듯 욕보인다.

“참! 너 아직도 딱지 못 뗐냐?”
“무식한 새끼! 동정이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항변했더니 콧방귀를 끼며 동철이가 나가버렸고, 나는 놈의 뒤통수에 대고 2시간이면 된다고 소리쳤다.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이 자식이 어디 조직 같은 데라도 들어갔나, 싶어 슬그머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사고를 치면 반드시 주먹이 개입돼 있던 녀석의 성미가 그런 걱정을 더 부풀리는 것 같았다. 거칠고 자기감정에 솔직했지만 개인사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 한 적이 없었고, 나 역시 그런 걸 일일이 묻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건 동철이도 비슷했고.... 막연하게 집이 좀 사는가보다 싶은 정도였는데, 현금에 복장에다 명함까지.... 불안을 확산시키는 단서들이 마음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들고 다니는 게 휴대폰이지만 그때는 직장이나 다녀야 구입과 유지가 되는, 대학생에겐 일종의 사치와 과시를 위한 액세서리였다. 우리 과에 단 한사람도 휴대폰을 가진 거물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이 시대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이제 겨우 호적에 잉크가 말라가는 시기에 무슨 능력으로 실장이라는 직함에 버젓이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는 걸까?

전공수업을 끝낸 후, 동철이와 정문에서 만나기로 통화를 하고 내려갔다. 정문 앞에 도착해서 은색 양복에 다리 불편한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미친놈이 정신없이 자동차 경적을 울려댄다. 쳐다봤더니 동철이었다. 검은색 승용차 운전석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연신 손을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녀석이 정말 본격적인 뒷골목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동철이 차에 실려서 간 한식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또 다시 동철이 차에 실려서 시내 유흥가로 나갔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전이었다. 주차를 해 놓고, 최종적으로 걸어서 도착한 그 곳에는 금테 각인보다 더 없이 요란한 ‘비너스’라는 입간판이 서있고, 입간판보다 한층 고급스러운 대형 간판이 번쩍거리고 있는 ‘룸살롱’이었다.

계단을 통해 지하로 들어갔더니 카운터에 앉아 있던, 마담으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자가 반기며 인사를 해온다. 동철이와 넌지시 몇 마디 나누더니 미리 준비되어 있는 룸으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입구에서부터 살핀 눈대중만으로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들릴 수 있을 만한 시설이 아니라는 분위기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는데.... 도대체 몇 명이나 들어와 앉을 수 있을지 가늠도 안 되는 방에 당도하자 입이 벌어진다. 번쩍거리는 쿠션이 상석을 기준으로 ‘ㄷ’자 모양을 하고 빈틈없이 붙어있다. 벽에도 못지않은 재질의 쿠션이 빼곡한 게 아마도 방음을 위한 것일 테고, 운동화 고무에 밀려 삑삑거리는 대리석바닥이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든다. 어느 나라 술인지 원산지도 모르는 초면의 양주들과 방패만한 접시 두 개에 담긴 갖가지 안주들을 보자니 내 주머니 사정으론 관상용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동철이 생일은 오늘이 아니라 지난달이란 얘기를 이미 들은 후였다. 그냥 같이 술이 한잔 하고 싶어서 찾아 왔다고 했고, 근사하게 쏠 테니까 기대하라는 거만을 떨어댔는데, 내 심정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가보면 안다며 기대심리를 자극하려는 말이 오히려 자꾸 불안을 키워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소주나 맥주 말고는 마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양주 병뚜껑을 가차 없이 꺾는 동철이의 익숙해 보이는 행동과, 내 기준에서 볼 때 으리으리한 이 고급 룸에 들어와 앉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녀석의 신상이 걱정스러워 입을 열었다.

“너 여기서 일해?”
“아까 명함 봤잖아. 임마!”

“언제부터야?
“정식으로 일한 건 얼마 안 돼.”

“누가 너한테 왜 이런 자리를 줘?”
“내가 또 이쪽으로 소질이 있잖니? 일단 이 술이나 한 잔 받아라.”

내 얘기는 귓등으로 듣는지 건성으로 대답해 넘기고는 양주병을 들고 술을 권하는 동철이의 태도.... 불안해하며 걱정하던 내 심기에 불을 지피는 것 같았다. 은근히 가슴속에서 화끈한 기운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면서 동철이가 내밀어준 술잔을 거꾸로 엎었다. 높아지려는 언성을 꾹꾹 눌러가며 물었다.

“자세히 말해봐. 내가 뭐 묻는 건지 알잖아?”

그때서야 녀석은 웃음기가 사라진 내 면전에 더 장난칠 마음이 가셨는가 보다. 멋쩍게 웃으면서 양주병을 내려놓더니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좀 과하게 뜸을 들이는 모습에 스을 부아가 치밀어 목 언저리까지 달구려는데.... 때마침 입을 연다.

“아~ 자식. 알았다. 임마! 표정 좀 풀어라.”

된통 뜸을 들인 동철이 얘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곳은 동철이 어머니가 운영하는 룸살롱 중 한 곳이다. 여기보다 시설과 규모가 더 큰 곳이 두 군데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오픈한지 얼마 안 돼 동철이 어머니가 그 곳에 주력하는 동안 자신이 대신 ‘비너스’를 관리하게 되었단다. 물론 실세는 아까 봤던 카운터의 마담이지만.... 실장직함을 단 것도 이제 고작 한 달이라는 것과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경험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며 무용담처럼 내 뱉은 말들이 그 골자였다. 공고에서 위장취업 한다는 소린 들었어도, 인문계 다니던 놈이 룸살롱이라니.... 얘기를 다 듣고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녀석을 룸에 앉혀 두고 나와서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자에게 재차, 삼차 확인을 하고 돌아 왔다.

후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한 새파란 놈을, 그것도 자기 아들을, 거기다 자기가 운영하는 술집에 어떻게 취직시킬 생각을 한 건지.... 그 어머니라는 사람의 머릿속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동철이야 당연히 얼씨구나 했겠지만 말이다. 남의 가정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도 없고, 한다고 뭐가 달라지지도 않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고, 다른 세상에 다른 윤리의식으로 살아가는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하면 이 자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알아는 들을까?

“됐냐. 이제?”

동철이가 다시 양주병을 들어 보이며, 부어도 되냐는 시늉을 한다. 그래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기분 같아선 그냥 나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고, 차라리 녀석을 데리고 포장마차에 가서 마시는 편이 훨씬 더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이대로 일어서 버리면 분위기는 어떤 모양으로 흘러갈까? 마지못해 잔을 들고 술을 받아야 했다.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능글맞게도 웃는다.

“씨발놈! 은근히 한 성깔 하는 건 여전하구만.”
“내가 너랑 있으면 수명이 1년씩 단축된다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동철아.”

“잔이나 채워주고 씹어. 새끼야!”
“휴우....”

동철이 잔에 술을 따라주고, 그렇게 내키지 않던 술자리의 첫 술이 돌았다. 마치 내가 자신에게 술을 배운 양 으스대며 떠들어 댄다. 내가 술을 배운 건 중 3때였고, 우리가 서로 면을 튼 건 고 2때 동철이 자신이 전학을 오면서인데 말이다. 뭘 알겠냐만.... 고2 가을 무렵부터 우린 지금처럼 어울려 가끔씩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동철이는 굳이 학교 안에 있는 야외 벤치를 고집했고, 나는 두 번 다시 너 때문에 정학을 맞을 순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번번이 끌려가 녀석이 즐기는 ‘금단의 사슬 끊기 놀이’의 공범이 돼 버렸다. 웃긴 건, 그러다 보니 그 나름에 스릴을 나도 즐기는 상황에 이르더라는 것이다. 야자를 땡땡이 치고 나와,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마시는 소주라니.... 나의 적응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고, 돈 안 되는 모험심이 무모하기 이를 데 없던 철부지였다. 어떻든, 이어서 몇 순배의 술이 계속 돌아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속이 따듯해졌고, 그 기운에 불안도 취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 맛이 안 난다. 우진아. 그지?”
“그땐 소주고, 지금은 양주잖아. 멍청한 중생아!”

“아~ 씨발. 그래서 그런가?”

술도 다르고, 장소도 달랐다. 하지만 그 때를 추억하니 동철이라서 가능했던 참신한 발상이 돌이켜 웃음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바람에 나뭇가지만 부스럭거려도 모가지가 꺾어질 듯 삼엄하게 반응하며 소주병을 입에 물던 그 시절. 언제라도 담을 넘어 달아날 태세로 불안을 안주삼아 마시던 소주 맛.... 농담인줄 알면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아무튼 동철이 모습은 예전과 다름없는 듯 보여 뭔가 짠한 느낌을 준다. 그래봐야 불과 몇 달 전인데 말이다. 그런데 저 멍청한 중생이 참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지, 벽에 걸려있던 수화기를 들고는 소주 한 병 가져오라고 주문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첫 룸살롱 신고식을 요란하게 치룰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벤치도 시켜야지. 모자란 중생아!”
“하하하, 새끼! 나중엔 지가 더 즐기더만.... 크크크”

“염~병, 어디까지나 이 몸은 보호자의 심정이었지. 암~”
“지랄한다! 있어봐. 벤치보다 좋은 거 온다. 크하하하”

무슨 말인지 퍼뜩 짐작이 되려는 순간, 문이 열리더니 소주 두 병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는 헐벗은 여자가 한명, 뒤따라 빈손으로 또 헐벗은 여자가 한명.... 뭐라고 말릴 틈도 없었다. 인사를 하며 능숙하게 비좁은 틈을 헤쳐 들어와서는 동철이와 나를 포위하듯 바깥자리에 둥지를 틀고 앉는다. 마치 자기들이 남자를 간택하는 듯 물 흐르는 모션이라니.... 둘이서 경쟁이 붙었는지 젖가슴이 U자로 파인 내 옆에 아가씨와 아랫도리를 끌어 올린 듯 절반가까이 젖가슴을 드러낸 절개된 원피스의 또 다른 아가씨. 팬티만 안보였지 둘 다 윗옷이었다. 게다가 뭘 뿌리고 들어 오셨는지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도 모자라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만드는 강력한 체취. 이 냄새를 과연 잊을 수 있을까 싶은....

“혜미씨, 인사해! 이쪽은 내 친구! 김우진.”

동철이가 내 옆에 앉은 여자에게 나를 소개하자, 냅다 팔짱부터 끼며 내 팔뚝에 가슴을 비벼댄다. 그리곤 다시 인사를 하는 혜미씨. 점퍼를 벗어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혜미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우진씨!”

젖가슴이 뭉개지며 젖살이 위로 솟구치는 진풍경.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상당한 미인이었다. 가게의 수준(?)을 짐작케 하는.... 화장을 지우면 꽤나 귀엽게도 보일 것 같은 얼굴의 혜미씨. 실리콘이면 터질 듯 하고 내 가슴도 터질 듯 뛴다.

“아.... 예.... 안녕하세요.”

내가 생각해도 참, 샌님처럼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을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룸살롱에 앉아, 이렇게 쭉쭉 빵빵(?) 아가씨의 젖가슴 뭉개지는 접대를 받겠는가? 경험이 없고 어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의를 갖춘다고 고개를 살짝 틀어 목례를 하다, 눈이 닿은 곳에 팬티가 보일락 말락....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가릴 생각도 없이 바쁘게 가슴을 비벼대는 혜미씨가 그런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젖가슴이 가려우신 걸까? 표정관리가 어려워진다. 미간은 구겨지고 입만 웃는데,

“혜미씨가 우리 가게 에이스다. 우진아. 잘해봐. 크하하하”
“......”

“내가 뭐랬냐? 벤치보다 좋은 거 온다고 했잖아. 임마! 으하하하”
“......”

“말을 해! 이 새끼야? 푸하하하”

입을 열 때마다 혜미씨 쪽으로 내 몸을 밀치며 거북해하는 나를 만끽하는 동철이. 병법에 보면 미인을 겁낼게 아니라 배후의 음모를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저 주모자로 보이는 놈의 간악한 웃음. 저 새끼.... 덩달아 신이 났는지 혜미씨도 깔깔 거리며 웃었고, 그 와중에도 밀착된 가슴을 떼지 않았다. 근성 있으시구나 싶은 순간, 오히려 내 사타구니 쪽으로 얼굴을 파묻으면서 웃는 바람에 얼른 왼손으로 사타구니를 보호해야 했다. 심장이 아랫배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라니....

“어머~ 동철씨, 친구분 너무 귀엽다~ 호호호”

“혜미씨, 이 새끼 숫총각이야. 오늘 그냥 미끄러져 버려!”

“어뜩해~ 어뜩해~ 어머, 언니 나 오늘 심 봤어! 깔깔~”

동철이 옆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자랑하는 혜미씨. 심을 보셨다니, 나 원.... 이 무슨 경매장에 끌려 나온 소가 된 기분이었다. 고귀한 내 동정으로 웃음꽃을 피우다니.... 풍류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담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인 혜미씨의 육탄공세 때문에 당체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난감한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내 아랫도리도 불쾌해서 씩씩거리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사타구니 보호 중이던 내 왼손을 자기 허벅지 위에 떠억! 하니 올려놓는 혜미씨. 심장이 툭!! 튀어나가는 줄 알았다. 천막아래 음침한 곳에 손가락이 닿을락 말락....

“호호, 혜미 오늘 셔터 내려야겠네?”

그 언니라는 아가씨가 부럽다는 듯 맞장구를 치고, 혜미씨는 내 손이 도망 갈까봐 두 손으로 팔목까지 움켜잡고 있었다. 이게 무슨 담력 체험도 아니고, 이번엔 거기가 가려우신건지 자꾸 팬티 쪽으로 당겨서 뭘 어쩌자는 건지.... 물컹거리는 허벅지 위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손목을 틀어 그녀의 거기에 닿지 않도록 방어해야 했다. 손을 뿌리치는 거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 행동의 결과로 끼얹어진 찬물을 원상 복구시킬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왜장을 끌어안은 논개처럼 내 손을 붙들고 당기는 그녀에게 나는 왜장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소심하게 내 손의 동정을 지켜주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더라. 손바닥 열기만큼 얼굴을 화끈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천사가 구원의 나팔을 불어 준다.

“혜미야! 우진씨 한잔 드려야지? 너무 속도 낸다. 너~ 호호”

“어머!! 내 정신 좀 봐. 나 완전 반했나봐. 호호호. 우진씨 제 술 한잔 받으세요~”

마침내 혜미씨가 구속된 손을 석방하시더니 내 잔에 남아 있던 술을 재떨이에 부어버린다. 화끈하셔라.... 양주병을 들어 새 술을 권해왔고, 자유를 주셨음에 그저 감사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양주잔을 들어 마중을 나갔다. 헌데 술을 따르던 혜미씨가 흥분을 하셨는지, 술잔이 넘치도록 술을 따라 버렸다. 테이블에 떨어져 부딪힌 양주가 내 허벅지 위로 흘렀고, 내가 놀랄 틈도 없이 지켜보던 동철이가 내 몫까지 놀라 소리를 질러 준다.

“에이, 혜미씨!!! 얘한텐 안 그래도 돼!”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게~ 습관이 돼서~ 어뜩해~ 미안해요. 우진씨~”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웃고 있는 혜미씨. 뭐가 습관이라는 건지.... 넉살 하나는 분명 에이스인 것 같았다. 물수건을 들어서 내 허벅지를 닦아주신다. 괜찮다고, 내가 하겠다고 말려도 소용은 없고.... 물수건질을 하다 보니 내 쪽으로 필요이상 틀어서 숙이고 있는 상체, 그리고 하체.... 젖가슴 사이에 어두운 틈이 보이고, 곱게 벌린 허벅지 정상에 있는 검은색 팬티는 검은색 원피스와 세트인가? 망사는 아니구나. 술은 허벅지에 흘렀는데 손등으로 자꾸 내 분신에 시비를 거신다. 이걸 또 가리자니 모양새가 너무 누추하고.... 충분히 닦은 것 같은데 멈추지 않는 그녀의 반복적인 손놀림과 본능적인 곁눈질에 자극을 받고 일어서는 내 중심! 더 딱딱해지기 전에 누가 이 여자를 좀 말려야 할 것 같았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했으니,

“동철아, 화장실 어디냐?”
“어?! 나가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돼. 그냥 혜미씨가 데리고 갔다 와.”

“아냐, 아냐, 큰 거야! 큰 거!!”

보나마나 따라나설 혜미씨보다 빨리 대답을 한다는 게 그만.... 다른 변명꺼리를 찾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동철이 파트너는 고개를 돌리며 키득거리고, 동철이는 술 맛 떨어진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혜미씨는 집중력이 좋으신 건지 광을 내시려는 건지.... 순간적으로 면이 팔려 벌떡 일어나 테이블과 소파 사이의 비좁은 틈을 헤쳐 나가려는데.... 온 몸으로 내 앞길을 터주시느라 소파 위로 하체를 들어 올리는 혜미씨는 왜?? 뒤로 벌러덩 누워서 다리를 벌리고 계신건지.... 이동을 위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에 둘 수밖에 없었던 나는 유리 누나 옷을 갈아입힐 땐 보지 못했던 그 베일을 벗기고 말았다. 참으로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시는구나, 싶었다.



“휴....”

이대로 달아나 버리고 싶었다. 허벅지에는 얼룩이 묻어 있고, 셔츠 어깨에도 누릿한 화장이 묻어 있었다. 이건 또 언제 묻은 걸까? 또 손빨래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엄마는 세탁 전에 반드시 주머니들을 확인하고, 세탁기 힘으로 지우지 못하는 얼룩을 찾아 미리 씻어내신다. 뭍은 화장을 발견한 엄마의 반응은 얼룩의 주인공을 애인으로 단정하고 집으로 초대하라고 보채실 게 선하다. 혜미씨를 엄마에게 인사시킬 순 없다. 토요일보다 양호하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구나.

장소 때문이었을까? 고급 호텔처럼 꾸며진 화장실의 위화감 때문이었을까? 거울 속에 내가 낯선 느낌이었다. 여자는 머리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던 에티켓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곳의 초점이 남자들의 욕구에만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서 만져지는 학교 식권과 지폐 몇 장이, 이 동화 같은 나라에 초대된 나를, 더욱 불청객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시간을 보니 ‘비너스’에 들어 온지 겨우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내 평생 시간이 이리도 더디 갔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우진씨~ 아직 멀었어요?”

가늘고 간드러지는 음성.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부르는 혜미씨 목소리가 들렸다. 5분 남짓 있었던 것 같은데, 큰 거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성격 급한 것도 에이스인가 보다. 대답을 안 하거나, 나가지 않으면 들어오고도 남을 것 같은 두려움. 하지만 나는 여기 좀 더 있고 싶었다. 이제는 내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 나가요~”

손을 씻고 나오면서 보니, 혜미라는 에이스 아가씨. 노릇한 살결에 허벅지는 탄력 있게 치마 단에 감겨 있고, 진한 마스카라가 큰 눈을 껌뻑일 때마다 자동차 와이퍼처럼 내려왔다 올라간다. 뭘 넣은 건지, 다 자기 건지 가슴은 또 왜 저리 풍성할까? 욕정을 당길 만큼 잘 빠지긴 했구나. 높은 굽의 힐을 신고 있어서 더 그래 보였지만,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몸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도 에이스구나.’ 어찌 저리 매끈하게 빠지셨는지, 술살이 무서운 법이거늘.... 따위의 감탄도 잠시였다.

“으유~ 깍쟁이 같애~”

얄밉다는 듯이 말하더니 룸에서 못 비볐던 반대쪽 젖가슴을 짓뭉개며 팔짱을 거는 혜미씨. 그렇게 나는 혜미씨에게 연행되어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 지칠 줄 모르고 몸을 비비며 밀착해 오는 혜미씨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는 동철이, 그리고 혜미씨에 비해 얌전한 동철이 파트너와 또 몇 순배의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오고가는 음담패설 속에 그저 타이밍마다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춘향이가 혜미씨 반만 닮았어도 그 고초를 겪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나 혼자 피식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느닷없이 혜미씨 손이 내 사타구니를 움켜쥐어 왔고, 나는 방어본능 때문에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꺾어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아야!!!”
“아이구!!!!!!”

“히잉.... 너무한다앙....”
“괘..괜찮으세요? 이.. 저도 모르게 그만.... ”

울상을 지으며 손목을 매만지고 있는 혜미씨와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 있는 나를 보며 동철이가 재밌단 듯이 킬킬거렸다. 아주 잠깐, 지금 그녀가 신고하면 누가 처벌을 받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라지고, 여자에게 손찌검 한 건 동생 유진이에게 먹인 꿀밤이 전부였던 나로썬 당황스러워 눈치만 살피는 중에 동철이가 여전히 웃으며 말을 했다.

“혜미씨, 조심해. 이 새끼 얌전해 보여도 주먹 좀 쓰니까. 아하하하~”

“어머? 그래요? 우진씨, 보기보다 터프한가 봐요? 어디 주먹 좀 보여줘요~”

친구의 곤란을 틈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동철이는 그렇다 쳐도, 얌전해서 맘에 좀 들던 동철이 파트너까지 오버하며 내 손을 잡으려고 들자, 한쪽으로 징징거리는 혜미씨를 달래고, 다른 한쪽으로는 허우적거리며 더듬는 손을 피하는.... 내 꼬라지가 참 처량하게 느껴졌다. 여복이 많으면 처복이 없다던데, 이런 여복이라면 두 번은 사양하고 싶었다. 사과도 하고 분위기를 전환할 겸 양주병을 잡았다.

“제가 사과드리는 의미에서 한 잔 올리겠습니다. 기분 푸세요. 혜미씨.”

야속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흘겨온다. 목을 낮추고 비굴하게 웃었더니, 금세 표정을 풀고 웃는 낯으로 술을 받아 주시는 혜미씨가 어쩜 그리 너그러워보이던지.... 근데 받은 잔을 내려놓더니 아직 술이 남은 내 잔을 이번엔 버리지 않고 마저 채우고서, 잔 두 개를 들고 하나를 내 얼굴로 내밀어 왔다. 미안한 것도 있고 하니 받아서 혜미씨 잔에 건배를 하려고 하는데,

“아잉~ 화해의 의미로 러브 샷!”

교태를 부리며 찡긋 윙크까지 날린다. 이걸 거절하면 과연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갈까? 혜미씨가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계속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를 묻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뭐, 러브 샷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고, 혜미씨 팔과 교차할 있도록 잔을 든 팔을 접어서 내밀었다. 그랬더니,

“푸하하하하” “호호호호홍”

동철이와, 더 이상 얌전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옆의 파트너가 동시에 방이 떠나가라 웃는다. 혜미씨도 침을 튀기며 ‘풉’ 하고 웃더니 나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가 웃긴 거야? 고개를 끄덕인 게 웃긴 거야, 내 팔이 웃긴 거야? 그만 좀 웃고 살려달라는 눈으로 애절하게 동철이를 봤더니, 숨이 넘어 갈 듯 웃던 녀석이 힘들게 설명을 해준다.

“아우~ 크큭... 촌스러운 새끼 크큭, 입으로 하는 거잖아, 크크크큭”

뭘 입으로 한다는 걸까? 고개를 돌려 혜미씨가 설명해보라는 눈치를 주자, 그녀가 자기 잔을 원 샷 하더니 내 뒷목에 깍지를 끼곤 입술을 삐쭉 내밀어 온다. 그러니까.... 저 벌건 입술 속에 있는 술을 내가 받아먹고, 나도 똑같이 혜미씨 입에 내 술잔의 술을 넣어주는.... 홈 앤드 어웨이 식의 ‘마우스 투 마우스’ 란 뜻인가?

저 술을 받아먹기 위해 입을 열면 혀가 들어 올 게 분명하고, 침범한 혀 때문에 입을 닫지 못할 것이다. 내 뒷목에 깍지는 술만 주고가지 않을 거라는 또 다른 무언의 메시지인 셈인데, 입술을 떼보겠다고 몸부림치면 분위기는 개판으로 갈 테고.... 등골이 오싹하더니 심장이 빠른 비트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내 등을 툭툭 치며 동철이가 얼른 받아먹으라고 바람을 잡지만, 정말이지 이건 아니었다. 짧은 시간 신경을 최대한 집중해서 구실을 모색했고, 병법의 36계를 응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름하야 혼전계!! 그리곤 놀고 있던 손바닥으로 혜미씨 입술 앞을 가로막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게 먹혀야 한다는 심정으로....

“온고지신 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깨닫는다!
옛것도 익히지 못한 사람이 새것을 익히는 것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이 새끼 또 시작이네. 카하하하~”
“무슨 말이야? 동철씨? 우진씨~ 방금 뭐라고 그런 거예요?”

“일단 들어봐. 들어보면 알아. 하하하”

내 주특기를 알고 웃는 동철이 옆에서 그 파트너가 궁금하다며 물었다. 동철이가 껄껄대며 파트너가 듣기엔 모호할 대답을 했고, 사태파악이 안 되는 혜미씨가 깍지를 풀고 있었다. 가로막은 손을 내리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혜미씨를 보며, 나는 필요한 구절을 곱씹었다. 동철이 따위는 무시하고, 뜬금없이 질문을 받고 어리둥절해 하는 혜미씨를 향해 동철이 파트너가 궁금해 하고 있는, 일단 들어보면 알게 될 얘기를 진지하게 마저 이어간다. 혼란을 야기해 위기를 벗는다는 그 혼전계를....

“혜미씨, 전 아직 옛것도 익히지 못했고, 그게 제 한계인데 어쩌겠습니까?”

입에 담은 술 때문에 말은 못하고 ‘음, 음’ 거리며 전음을 구사하려는 혜미씨.

“부재기위 하여는 불모기정 이니라. 자기 한계를 넘어서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깊은 혼란, 그 심연으로 빠뜨려야 한다. 우선, 저 입 안에 든 술을 삼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하고, 더 잘 되면 재차 있을지 모르는 홈 앤드 어웨이 ‘러브 샷’의 수렁에서 벗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결코 내 첫 키스를 이런 식으로 강요에 의해 가볍게 하고 싶지 않았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것은 너무 적게 가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갈망하는 것이다.
옛날 러브 샷만 해도, 이 저는 부자가 될 겁니다.”

그때였다. 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목울대가 출렁이며 ‘꿀꺽’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혜미씨가 입을 열었다.

“아~이~ 우진씨~이~”

“지족상족이면 종신불욕하고 지지상지면 종신무치니라.
넉넉함을 알아 늘 넉넉하면 평생토록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아 늘 그치면 평생토록 부끄러움이 없다.
캬~~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옛날 러브 샷이면
넉넉하고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데.... 혜미씨, 허락해 주실래요?”

“뭐~야~ 나랑 러브 샷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우진씨?”
“오늘은 익히지 못한 러브 샷을 익히고, 다음에 새로운 러브 샷을 익히자는 말입니다.”

뾰로통한 얼굴로 잔뜩 실망하고 있는 혜미씨에게, 나는 진심어린 존중을 담아 차근차근 말했다. ‘다음’이라는 사탕을 제시하며, 특별히 악센트까지 주고, 팔을 거는 시늉을 한 뒤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거부당한 그녀가 덜 민망하면서 사태를 무마할 수 있는 수단은 이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탕을 물었다. 어쩌면, 내 애교가 귀여워서 봐준 것일 지도 모르지만....

“정말이지? 다음엔 꼭 진짜 러브 샷 하기?”
“남아 일언 중천금이라 했습니다.”

“진짜? 진짜?”
“제 좌우명이 계포일낙!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입니다.”

그런 좌우명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혜미씨를 회유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없던 좌우명도 급조해야 했다. 혹, 다음에 또 같은 상황이 생긴다 해도, 나는 그 전에 제대로 된 첫 키스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무엇보다 내 발로 다시 이곳에 기어들어와 내 입술을 도둑맞을 일도 없으니, 그럴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쩝, 알았어요. 러브 샷은 옛날 걸로 하지 뭐. 호호호~”
“감사합니다. 역시, 이 아름다운 분들은 마음이 넓습니다. 자! 빈잔 채우시죠.”

맑게 눈웃음을 치는 저런 표정은 직업 특성상 꾸민 것인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참 궁금했다. 여하간 다행스럽게 위기를 잘 넘긴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긴 했는데, 러브 샷 말고도 신식으로 할 뭐가 또 있나? 러브 샷은 옛날 걸로 해준다니? 내가 모르는 음주문화 때문에 이거 어째 좀 불안하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었다.

동철이는, 내 미사여구에 현혹된 혜미씨가 딱해서 그러는지,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 내가 한심해서 그러는지 ‘쯔쯔’ 거리며 혀끝을 차대고 있었고, 그런 녀석을 돌아보니 그 옆의 파트너아가씨는 신기한 놈을 보셨는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참, 내가 아는 러브 샷 한번 하기 어렵구나 싶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보니, 결과적으로 매달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이 찝찝한 기분은 뭐람?

“옛것은 좋은 것이여~”

하며, 내가 선창을 하자, 혜미씨도 웃으며 따라서 복창했고, 마침내 우린 ‘옛날 러브 샷’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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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지적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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