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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33 652회 0건
[띳띳띳 띳 띳띳 띠릿, 띠리링~]

[철커덕]

“다녀왔습니다아~”

텅 빈 집안은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 쳐서 돌아올 것처럼 공허함만 감돌았다. 아무렇게나 현관에 신발을 팽개쳐둔 채 방문을 열어 방바닥에 가방을 툭 던져 놓고는 거실에 가서 TV를 켠 채 그저 멍하니 케이블에서 나오는 게임중계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습관적으로 탁자 옆에 놓인 전화기의 음성메시지 보관함을 확인했다.

[뚜-웃. 첫 번째 메시지. 치치칙… 석진아, 진아야, 아빠다… 여기는 아직 미국이고 회의가 길어져서 오늘 출발은 힘들 거 같다. 이왕 연기했으니 몇 일만 더 있다 올게. 석진이 너가 진아 잘 돌봐줘라. 사랑한다.. 투뚝.. 치칫.. 두 번째 메시지. 축하합니다.. 당첨..]

“아놔.. 이 새끼들은 당첨을 전국민 모두에게 할일 있나.. 근데 내일 안 오신다.. 진아한테 알려야겠네..”

석진은 호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문자를 보냈다.

“근데 뭔 놈의 비즈니스는 매달마다 한번씩 있대? 상관이야 없지만..”

그러더니 다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야, 뭐하냐? 할일 없음 PC방 콜?”

석진은 전화를 하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주섬주섬 교복을 벗어 던지며 옷을 갈아입으려 하였다.

“그래, 그럼 사이버로 와라?”

전화를 끊자마자 지갑과 키를 챙기며 나갈 준비를 했다. PC방 가는데 굳이 샤방하게 보일 필요는 없었는지 늘어진 티셔츠와 색이 바랜 삼색 추리닝, 그리고 딸딸이 슬리퍼 질질 끌며 집 밖으로 나섰다. 석진이 문 닫는 소리와 함께 다시 집안에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던 햇빛의 색이 점점 붉어지며 집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다시 누군가 능숙하게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여자애였다. 교복을 입었으나 아직 애 티가 많이 나는 걸로 보아 중학생 같았다. 외모는 아이돌스타로 나서도 될 만큼 귀엽게 생겼다. 그런 외모에서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귀여워 보이는 건 여전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단축키 하나를 꾹 눌렀다.

[뭐냐?]

“오빠, 어댜?”

[나, 피씨방.]

“밥은?”

[아직 안 먹었냐?]

“혼자 벌써 쳐먹었냐?”

[돈 있어? 없음 상가로 와, 사줄게.]

“됐거든? 걍 집에 있는 라면이나 끓여먹을래.”

[그거 알아? 아빠가 라면 수 다 체크한단 말야. 전번에도 먹어 치웠던 개수대로 채워 놨는데.. 아빠는 아예 라면들의 바코드 넘버를 디카로 찍어갔더라고.. 너 라면만 먹였다고 혼났어.]

“에휴… 알았다.. 가면 전화줄께. 끊어.”

전화를 끊은 진아는 옷장을 열면서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쉰다.

“아, 씨발. 상가를 나가도 친구 만날지 모르는데 잘 입고 나가야 한다는 거 지는 모르나?”

여기서 지는 석진을 가리킨 것 같았다. 추리닝 적당히 끌고 외모에 별 신경 안 쓰는 석진 같은 남자와 달리 여자인 진아는 일일이 다 신경 써야 했다. 샤워 하랴, 옷갈아 입으랴, 거의 한 시간은 걸려 나온 진아는 집 밖으로 나선다.

다시 집안에 찾아온 침묵. 어느덧 창 밖으로 들어오는 빛은 더 이상 집안을 밝히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어두 캄캄해진 상태였다. 문 밖 너머로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진아와 석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띳띳띳 띳 띳띳 띠릿, 띠리링~]

[철커덕]

“그니까 잘 입고 다니면 뭐하냐? 몸매가 딸리는데. 가슴이 안되니까 옷빨로 여자처럼 보이려 하는 거 아냐?”

“그러는 지는? 얼굴은 무슨 매주덩어리처럼 여드름만 팍팍 붙어서.. 맨날 밤마다 닭고기 처먹고 아령 들어 올리면 여자들이 붙을 줄 알지? 결국은 외모야.”

“그래, 그래서 멀리서 보면 너는 꽃미남으로 보이잖아. 브라는 왜 차고 다니냐?”

그들의 대화의 시작은 상가에서 저녁 먹으려 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듯 했다. 아마 시작은 왜 늦었냐? 옷 입는 것 때문에 늦었다. 뭐 그리 오래 걸리냐? 등등에서 이어져 어느덧 그와는 상관이 없는 주제로 이어져 온 듯하다. 물론 이런 식으로라도 옥신각신 하지 않으면 달리 할 것도 없으니 서로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 장난 삼아 오간 말이 가슴에는 깊게 꽂힌 모양인지 서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있다. 한 놈은 거울을 보며,

“그래도 이만하면 그리 못생긴 편은 아닌데.. 평범 이상은 되지 않나?”

하며 밤에 거울을 보면 자신이 잘 생겨 보인다는 아주 기본적인 착각병에 빠져 있었고 옆 방 화장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던 한 년은 다가오는 여름에 입으려고 사둔 것으로 보이는 수영복을 꺼내 입어보며 양 손으로 있는 대로 살을 등쪽부터 시작해서 쫘악 모아 가슴부분에 담아두며 말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중학교 평균은 되겠지.. 안 그래?”

진아는 거울 속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뭐, 연예인까진 아니지만 너도 빠지는 외모는 아니잖아?”

라고 말하며 거울 속 자신에게 손짓까지 하며 대단히 깜찍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옆 방의 석진은 능숙하게 푸시업을 하던 석진이 거울을 보면서 가슴에 있는 힘 다해 주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몸짱까지는 아니더라도 빠지는 몸매는 아니잖아?”

그렇게 둘은 서로 모르게 붕어빵남매의 모습을 과시하고 있었다. 조금 지났을까, 석진은 땀에 흠뻑 젖어 웃통을 벗어둔 채 거실로 나와 부엌에 들어갔다. 진작에 맞춰놓았는지 닭 가슴살이 미니오븐에 노릿하게 구워진 상태였다. 미리 우유와 소금후추 간을 한 마리네이드에 담가두었다 구워서 짭조름한 간이 베인 상태라 그대로 키친타월로 감싸 집어 들어 입으로 찢어먹기 시작했다. 그 때, 진아도 부엌에 들어왔다.

“푸우.. 땀내.. 좀 씻어라.”

진아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며 석진에게 말을 건넸다.

“쩝쩝.. 씨슬거야.”

석진은 남은 닭 가슴살 조각을 입에 털어놓고 말을 이었다.

“야, 근데 나 좀 그래도 있어 보이지 않냐?”

석진은 있는 대로 힘을 주며 근육을 최대한 키워 보였다. 이에 진아는 그를 빠~안히 바라보았다. 석진은 진아가 아무 말을 않하자 숨까지 참아가며 근육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점점 석진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푸아악!! 왜 말이 없어!?”

“쳇, 저러다 질식사하길 바랬는데..”

진아는 대단히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석진은 언짢다는 표정으로 진아를 보다 갑자기 아래위로 훑어봤다. 진아는 통이 넓은 힙합 티셔츠 아래 예쁜 두 다리를 내놓고 있었다.

“너 그 셔츠 안에 암것도 안 입었냐?”

“그건 왜 물어봐? 변태오빠? 수영복 입었거덩?”

석진은 얼씨구나 하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이, 변태동생, 수영복 위에 상의는 왜 입었냐? 수영복 입어보고 그냥은 자신 없으니까? 아주 힙합이네. 수영장가서 그리 입고 브레이크댄스 춤추려고?”

석진의 비꼬는 말투와 표정에 진아의 표정은 구겨졌다.

“아냐! 안 그래!”

진아는 홧김에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던져 버렸다. 석진은 조금 당황했다. 가슴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대단히 예쁜 몸매였다. 곱게 뻗은 두 다리와 잘록한 허리, 적당히 마른 상하체와 굴곡이 살아있는 엉덩이선과 매력적인 쇄골, 그리고 은은하게 가슴라인이 보였다. 석진은 내심 더 보고 싶기도 했지만 진아의 오빠인 만큼 바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했다.

“알았으니까 웃통 도로 입어라.”

“왜? 나 몸매 진짜 별로야?”

진아는 석진이 예상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자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야. 예뻐.”

석진은 얼떨결에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진아는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근데?”

석진은 가볍게 눈짓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향했다. 이에 진아도 따라서 눈을 석진의 아랫도리로 돌리자 무언가 추리닝 바지 사이로 튀어 나온 것을 봤다. 진아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서둘러 돌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티셔츠로 몸을 가렸다.

“오빠.. 변태……”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진아. 석진은 이에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러게 누가 벗으래?”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꽤나 어색한 시간이었다. 그러자 어느 정도 꼴렸던 것이 수그러든 석진의 물건을 확인한 진아는 입을 열었다.

“변태오빠, 몸매 괜찮네. 여름까지 계속 하면 꽤 봐줄 만 하겠어. 하지만 수영장 가기 전에 좀 많이 쳐둬. 가서도 커지면 나 오빠 남 취급 할거니까.”

최후의 체면은 살려주면서 한방 먹인 진아는 오늘의 승자였다. 말을 끝내고는 총총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짜식이 남녀공학 다녀서 그런지 별걸 다 아네. 많이 좀 쳐둬? 젠장.”

말 많은 패자인 석진은 투덜대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석진은 의자에 털썩 앉고는 능숙한 솜씨로 컴퓨터버튼을 누르고 내 문서에 들어간 후, 폴더옵션으로 가서 숨겨진 파일이 보이도록 하였다. 그러자 “야구경기”라고 쓰인 폴더가 떴다. 안에 들어가자 음악파일들뿐이었다. 그는 파일명을 .mp3에서 .avi로 바꾸고는 즐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컴퓨터에 프린터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노트북이 있는 동생도, 그리고 아빠도 그의 컴퓨터를 종종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석진은 약간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아주 철저하게 숨겨놓는 것이었다. 이런 힘든 노고가 뒤따르는 석진의 컴퓨터와 달리 진아의 작고 귀여운 하얀색 맥킨토시 노트북은 진아를 제외하고 맥킨토시 쓸 줄 아는 사람이 없기에 쓰는 사람도 진아 밖에 없었다.

“그래도 설마 그 녀석이 야동이 있을 리 없겠지. 어릴 때가 좋았는데.. 요즘 애들은 철이 워낙 빨리 들어서..”

어느새 신세한탄모드로 전환된 석진이었다. 어릴 때야 자신한테 반항 안하고 잘 따랐으니 좋았겠지만 여자들은 사춘기가 빨리 와서 그런지 요즘은 말끝마다 지지 않고 대든다는 것이다. 뭐 이래나 저래나 귀엽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느새 손목 왕복운동에 들어간 석진이었다. 열심히 박혀주는 여배우의 모습이 보인다. 마른 체형, 잘록한 허리와 아름다운 굴곡… 그런데 자꾸만 동생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계속 여배우의 모습에 집중하려 해도 마음은 진아가 웃통을 벗어 넘기는 부분에 고정되어 있다.

“젠장. 오늘 치기는 글렀네.”

라고 중얼거리고는 씻지도 않은 채, 그냥 침대에 누워 자버렸다.


다음날 아침,

“으휴.. 이딴 것을 오빠라 불러야 하나? 야! 최석진? 빨랑 인나라~!”

진아는 석진을 깨우면서 석진이 덮고 있던 이불을 확 걷어냈다. 특유의 남자냄새가 뿜어져 나오면서 진아의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우웅.. 5분만 더…”

어제 본 낯이 익은 추리닝에 웃통 그대로 벗고 잔 석진은 추워진 듯 베개를 안은 채 침대에서 계속 뒹굴었다. 보다 못한 진아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침대용 쿠션을 들고 왔다.

“두루루 룻 뚜루~ 4번 타자, 최진아 선수 나가십니다.”

진아는 쿠션을 야구방망이처럼 들어올린 후, 어디를 쳐야 잘 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곳을 탐색하고 있었다. 마침 석진이 큰 대자 형태로 몸을 눕히자 정 중앙이 진아의 눈에 들어왔다.

-퍽!-

“끄아아아악!!!!”

쿠션은 정확히 석진의 낭심을 아주 그냥 제대로 가격해 버렸다. 석진은 단박에 눈이 떠지더니 곧바로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잘 익은 새우처럼 몸을 움츠렸다.

“안타입니다~ 최진아 선수, 홈을 향해 달려가는군요.”

라고 말한 진아는 홈을 향해 달리듯 석진에게서부터 도망쳐나갔다. 부엌에 다다른 진아는 미리 구워놓은 핫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얹으며 말했다.

“오빠! 빨리 안 오면 핫케?다 눅눅해진다.”

평소같으면 쫓아가서 헤드락이라도 걸었을 석진이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아파서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고통을 추스리고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교복을 대충 걸쳐 입으면서 부엌에 들어왔다.

“무슨 놈의 여자가 그리 무식하게 남자의 중요한 곳을 그렇게 줘 패냐? 그래가지고 시집가겠냐?”

“정정하자면 무슨 년이고, 누가 그렇게 때리기 좋은 자세로 자래? 담탱이한테 걸리기 싫음 빨랑 먹고 나가지?”

식사를 시작하자 둘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그저 묵묵히 눅눅해져 가는 핫케이크를 입에 집어넣기에 바쁘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주방의 벽면에 설치된 인터폰 화면에 한 아줌마의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일하는 아줌마 오셨다. 나가봐.”

“당번 일을 시작했음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니가 나가.”

“먹은 핫케?도로 뱉을래? 아님 뱉게 만들어줄까?”

“오빠가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나가준다.”

“지랄은..”

석진이 현관문을 열자 일하는 아줌마가 반갑게 웃으며 들어왔다.

“잘들 지냈니? 해준 반찬들은 다 먹었고?”

“아, 그건 진아한테 물어보세요. 그리고 빨래가 가득 찼는데 돌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닭가슴살 먹기 좋게 재워주세요.”

할 말만 하고 석진은 바로 방에 들어가 어제 방바닥에 내팽겨쳐놓고 한번이라도 열어봤는지 의심스러운 책가방을 그대로 들고 밖으로 나가 아줌마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었다.

“야, 나 먼저 간다! 다녀올게요.”

석진은 부엌을 향해 외치고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전에 잽싸게 엘리베이터 안에 탔다. 꼭 평소에 부르지 않던 노래도 엘리베이터나 샤워실에서 부르는 놈들이 있다. 석진도 그런 케이스여서 목청높여 알아듣기 힘든 고성의 薦슭퓽?불렀다.

“인 디 엔드, 잇 더즌 이븐 매러~~!!!!!”

짧은 순간이지만 석진은 노래에 심취했는지 1층에 다다르고 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어떤 남자애 하나가 상당히 오묘한 표정으로 그를 유심히 쳐다본다. 왠지 쪽팔림의 쇼크웨이브가 온 몸을 ?고 지나가자 석진은 그래도 키가 진아와 별 차이 안 나보이는 그 남자애의 눈을 피해 잽싸게 학교로 향했다.

[딩동]

“누구세요?”

아줌마가 부엌에 위치한 현관영상을 보려고 가려 하자,

“아줌마, 제가 나갈게요.”

진아가 부리나케 현관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현관에는 아까 석진과 마주치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던 남자애가 있었다. 오묘한 표정을 짓느라 일그러진 얼굴을 했다면 진아앞에 선 그의 얼굴은 발렌타인데이날 책상 가득하게 초코렛으로 채울 것 같은 외모를 띄고 있었다.

“잘 잤어?”

남자애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며 진아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어, 잘 잤어.”

“그래? 난 니 생각 하느라 한 숨도 못 잤는데?”

“난 니가 꿈에 나타나서 완전 잘 잤거든.”

아마 이 광경을 보지 않고 먼저 간 석진은 운이 좋은 편일 것 이다. 아마 진아보다 늦게 나갔으면 온 몸에 털 뽑힌 통닭처럼 되서 학교에 갔을 것이다. 물론 이 닭살스러 커플 역시 버터 한 조각을 크게 베어 문 듯한 표정을 하면서 서로에게 약간씩의 느끼한 데미지를 입히며 대화를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남자애는 진아를 에스코트하며 옆에 찰싹 붙은 채, 학교로 향했다.

다시 집 문이 닫히자 오로지 아줌마의 시간이 찾아왔다. 청소기 돌리는 소리, 세척기 돌아가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등 집안은 요란한 소리로 한 동안 메워졌다. 아줌마가 일을 마치고 나가자 다시 현관문은 자동적으로 잠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능숙한 현관문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석진이었다. 축구부의 연습이 있었는지 얼굴 전체가 땀으로 흥건해 보였다. 가방과 교복마이를 벗어 던지자 셔츠의 겨드랑이와 목, 그리고 등은 속이 다 비칠 정도로 땀에 젖어있다. 석진은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이 세차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더불어 다시 찢어질 듯한 괴성이 화장실문과 벽을 뚫고 나왔다. 석진에게야 노래겠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다른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게 만드는 소음이었다. 샤워를 마친 석진은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 아줌마가 미리 만들어 놓은 삶은 계란이 여럿 냄비 안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능숙한 솜씨로 계란껍질을 벗기고는 흰자만 골라 먹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방문을 닫고 땀으로 젖은 팬티를 벗어 던지며 속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그대로 뻗어버렸다.


다시 시간이 지나 햇빛이 들어오던 거실도 어둡게 변해 가구들의 형태만 희미하게 나타낼 쯤이 되자,

[띳띳띳 띳 띳띳 띠릿, 띠리링~]

[철커덕]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석진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무재질로 된 바닥에 발소리가 들려온다. 다만 그 소리가 최소 한 명 이상이 낼 수 있는 발자국 소리였다. 이윽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석진은 이에 의아하기는 했지만 아마 친구가 놀러온 거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아의 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점점 커지며 석진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잠결에 들리는 목소리는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듯한 남자애 목소리가 진아목소리와 섞여서 들려왔다.

석진은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진아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 앞에 선 석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왠지 자기가 괜한 오해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방문고리까지 잡았던 석진은 다시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꺄아아악!! 싫어! 하지마!!]

진아의 방문 넘어로 진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덜컥-

석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진아의 방에 들어서자, 바닥에는 어지럽게 널부러진 보드게임과 진아의 치마와 스타킹이 보였고, 달랑 속옷팬티만 입은 채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 보이는 놀랄 대로 놀란 듯한 표정을 한 진아가 보였다. 그녀의 교복셔츠는 절반 정도 풀어져 브라가 틈새로 살며시 보였다. 그리고 교복셔츠의 나머지 단추들을 풀으려 손이 가 있는 남자애와 석진의 눈이 마주쳤다. 오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놈이었다.

남자아이는 말그대로 제대로 움츠러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석진의 체격이 고등학생 평균 키 정도에 호리호리한 체형이지만 축구부에서 활약하며 여름을 대비해 몸을 만드는 중이었던 지라 그의 몸에 붙은 근육은 확실히 평균 이상이었다. 비쥬얼적으로 볼 때, 또래 친구들도 저 녀석을 적으로 둬선 안돼 라고 여길만한 입장인데 자신 앞에 있는 중학생 정도의 소위 꼬마가 보는 석진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갓 소환된 화신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그 남자애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 씨발, 저 새끼 눈 뒤집혔다..

이내 석진은 진아 옆에 들러붙은 남자애를 향해 발길질을 가했다.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확실하게 진아 곁에서 떨어져 버렸다. 아마 축구공이었다면 바로 골대의 넷트에 힘차게 걸렸을 것이다. 진아 곁에서 떨어진 그를 향해 석진은 무자비하게 강한 힘을 실은 주먹을 내질렀다.

-퍽! 퍽! 퍽! 퍽퍽!!-

마치 새우처럼 몸을 움츠린 남자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연신,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제가 잘못했어요.”

를 반복해댔다. 석진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더 나간다면 앞에 있는 남자애가 더 크게 다칠 것 같아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마음 먹었다.

“최진아! 당장 셔츠 잠그고 바지든 뭐든 입어.”

“오빠, 그게 아니라...”

울먹이며 대답하는 진아의 모습을 본 석진은 더 이상 대꾸해주지 않았다. 다만 진아에게 무서운 눈빛을 쏘아 답을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석진이 오해를 했든 안했든 자신보다 자기 남친을 옹호하는 것 같은 진아의 태도에 조금 서운함을 느꼈다. 석진의 마음을 어느정도 읽은 진아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바닥에 널부러진 치마를 주섬주섬 집어들어 입었다. 그 때 석진이 손에 집히는 진아의 추리닝 바지 하나를 들어 진아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것도 그 아래 입어.”

진아는 석진의 말에 조용히 따르며 추리닝 바지를 입었다. 석진은 구석에 처박혀 눈물을 훌쩍이는 남자애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은 후, 내려다 보며 한마디 한마디 힘을 실어 강조하며 말했다.

“너, 우리동네에서 한번이라도 눈에 띄이면...”

석진은 비록 남자애가 조금 무거운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보다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그를 두 손에 힘을 가득 실어 들어올려 자신과 같은 눈높이로 맞추었다. 그리고 어금니 꼭 다문 채 말을 이었다.

“진짜 죽는다.”

비록 무거워서 이를 악문 채 말한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임팩트도 강렬했다. 그리고나서 그를 현관까지 끌고간 후 살짝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비록 무리하게 들어올려 팔이 땡기긴 했지만 석진은 끝까지 아픈 내색 안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남자아이가 집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것까지 지켜보고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몸에 잔뜩 들려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지는 듯 했다. 현관문까지 완전히 닫고나서 석진은 진아의 방으로 돌아갔다.

“야, 최진아..”

석진은 계속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의 표정은 혼내려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진아는 석진에게 다가가 품에 안기며 말했다.

“오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석진은 아무말 없이 진아를 토닥여주었다. 저녁시간이 될 무렵, 많이 놀랐을 동생을 대신해서 석진은 오랫만에 요리솜씨를 발휘했다. 음식냄새가 슬슬 풍길 무렵, 주방으로 진아가 다가왔다.

“오빠, 라면 끓이면 아빠한테 혼나잖아.”

“너도 참 회복이 빠르다. 벌써부터 태클이냐?”

“그리 많이 놀란 건 아냐.. 단지... 남친이 이렇게 무턱대고 시도해올 줄은 몰랐어.”

진아의 스토리는 이랬다. 남친이 보드게임을 하면서 페널티로 옷 벗기 게임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남친이 너무 게임을 잘하는 것이랬다. 그래서 결국 자기만 다 벗게 되었고 셔츠와 브라, 그리고 팬티만 남은 상황이 되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남친이 훤하게 텐트친 바지 속 자지로 자신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다시 페널티로 벗어야 하는 셔츠를 강제로 벗기려 했다는 것이다. 아마 석진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옷 벗기 게임에서 다른 “게임”으로 넘어 갔을 게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넌 그걸 아무 의심도 없이 따랐다는거냐?”

털어놓고 보니 자신도 한심한 지 석진의 물음에 진아는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다.

“얘는 참, 가만보면 지 혼자 똑똑한 척 다하면서 이런 일에는 애가 맹해져.. 에휴.. 됐다.. 다 지난 일인데.. 라면 불겠다.. 먹자.”

-후루룩.. 쩝쩝쩝-

“근데 오빠, 아까 걔 멱살 잡고 번쩍 들었잖아.”

“어, 말도 마라. 그 녀석이 너만해서 다행이지 좀만 더 무거웠어도 들었다 바로 놔버리는 쪽을 팔았을거야..히힛.”

“그 때, 오빠. 제법 멋졌어.”

“짜식이.. 훗.”

석진은 진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튕기는 말투를 내뱉았지만 석진의 얼굴은 뿌듯함이 가득 찬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아마 석진에게 있어서 왠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여운을 남기게 해줄 말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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