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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33 672회 0건
41. White

조혈모세포 찾기 위한 방송출연 이야기가 나온 날 저녁에 이모에게 누나를 부탁해 놓고 나와서 일단 아버지 회사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꺼내 놓았고 그는 내 의견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위로의 몇 마디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낸 난 다음 장소로 가야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동원해서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 같아서 싫다고 해서 빼 놓을 수 없었다. 거기다 상대방은 그것을 원하고 있을 것 같았다.

거의 1개월 만에 들어온 주차장. 그리고 1개월 만에 보는 경비아저씨.
“오 가현군. 몸은 어때.”
“괜찮습니다.”
2년 전부터 기획사 엘리베이터를 지키고 있는 이 아저씨의 별명은. KFC 할배로 별명처럼 머리가 하얗고 미소가 정말 후덕해 보이며 언제나 사복은 하얀색 양복을 입고 다닌다. 미국에 계신 할아버지처럼 손자, 손녀 사진을 항상 가지고 다니고 통화도 자주하시는 분인데 우리 기획사 연예인들이 전부 손자, 손녀 같아서 다들 귀엽다며 말을 자주 걸어주셔서 나도 자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래 다행이네. 잠깐 만.”
그는 갑자기 조금한 경비실로 들어가서 슈퍼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하나를 나에게 내 밀었다.
“먹어.”
나는 의외의 선물에 망설이다 어색하게 감사 인사를 하며 받았다.
“고맙습니다.”
KFC 할배는 예의 그 후덕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어. 나도 가현군 나이 때 한번 죽으려 했었는데 그 때 죽었으면 이런 맛있는 것도 먹어보지 못하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내가 죽었으면 손자, 손녀들도 태어나지 못 했을 것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자네는 혼자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자손들의 미래까지 날려버리는 일이지.”
KFC 할배는 아무리 봐도 전직 학교선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재미있어서 그랬을까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할배가 그것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해왔다.
“그래. 그래. 웃어. 그리고 살아.”
“말씀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 다음 아이스크림 한입 하고 다시 말했다.
“맛있네요. 잘 먹겠습니다.”
“응 그래. 올라가봐. 방금 할머니도 오셨어.”
그 할머니란 말에 순간 기분이 상해버렸지만 나는 억지로 미소로 답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후. 난 사장실 앞에 섰다. 나는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노크를 했다.
“예~”
인정하기 싫지만 내 고모인 사장 한태란의 목소리가 들렸고 일회 더 심호흡을 한 후. 경직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내 예상을 벋어나지 않은 인원이 앉아 있었다. 한주미디어 그룹의 대주주인이자 내 할머니인 김옥분, J&K의 기획실장과 사장이 있었는데. 나의 등장과 함께 할머니는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고 사장은 저번처럼 내가 할머니를 밀칠 것 같아서 그런지 서둘러서 할머니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다.
“왔구나. 잘 왔다. 잘 왔어. 우리 손자.”
손자란 말이 몹시 싫었지만 일단 이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죽을 것 같이 노력해서 감정을 억제했고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서 나온 말투는 꼭 아버지 같았다.
“손자라고 부르지 마세요.”
할머니는 전처럼 흥분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하게 말해왔다.
“그래 알았다. 그러지 않으마.”
“죄송합니다.”
“앉아라.”
“예.”
내가 소파에 앉을 자리는 잡자 할머니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 사장이 앉고 그리고 난 실장은 차를 준비하려는지 일어나서 뒷방으로 향하는 걸 바라보며 앉았다.
“몸은 어떠냐.”
“괜찮습니다.”
“다행이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에반젤린 할머니와 다른 게 없었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굳어 있었던 표정과 마음이 약간 풀려버렸다. 그래서 다음에 나온 내 목소리엔 온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도와주세요.”
원래는 ‘도와주세요.’ 가 아니라 ‘보상 해줘요.’여서 난 말을 꺼내 놓고 후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 목소리 속에서 나의 간절함을 들었는지 또 에반젤린 할머니 같은 표정으로 말해왔다.
“뭘 도와주면 되지.”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에 난 대답을 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런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참 동안 보고 있다 대신 말해왔다.
“미안하구나. 혼란을 줘서. 내 큰 아들이 네가 미국에서 죽었다고 해서. 그 때 까지 몰랐단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듣고는 너무 흥분해 버렸었지 그래서 그런 추태를 보였구나 미안하다. 정 싫다면 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 그러니까 넌 다시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거라. 그리고 내가 원 한다면 봉상을 해주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내 친부가 너무 싫고 증오스러워서 그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런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운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저 자식을 잃어버린 외로운 늙어 약해진 노파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럴 까. 내 목소리는 완전히 풀려 있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이야기 하듯 또는 에반젤린 할머니에게 이야기 하듯 그렇게 입을 열었다.
“누나가 백혈병이에요.”
할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렇더구나.”
난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 했고 이 때를 맞추어서 따지고 보면 내 고모부인 실장이 내 앞에 향기로운 쟈스민차를 내려놓았다. 거기다 무엇 때문인지 들뜬 태혁형이 노크도 안하는 비매너를 보여주며 나타났다.
“사장님 우리 대박 났어요. 친찬해주세요. 하하하 하. 하. 아~~”
태혁형의 웃음소리는 외의의 인물을 발견하고는 점점 낮아졌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주눅 드는 일이 없는 그는 미소를 다시 짓고는 예의 바른 자세로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김여사님.”
할머니는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받아준 후 딸에게 가보라는 손짓을 했고 태혁형과 사장은 사장실을 조용히 나갔다. 그리고 실장이 할머니의 녹차를 놓아주고 자기가 마실 커피를 가져와 소파에 앉았을 때 그녀가 대화를 재개했다.
“어떻게 해 줄까.”
“한주미디어는 다수의 케이블 채널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할머니는 기억이 안 나는지 사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차서방 우리회사 케이블 채널 몇 개지.”
실장은 장모의 물음에 바로 답을 해줬다.
“12개입니다. 장모님.”
나는 대답을 듣고 바로 내 생각을 꺼내 놓았다.
“그 채널에 조혈모세포 검사를 받아보라는 광고를 내어 주세요. 그리고.”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며느님이 운영하시는 프로그램 제작 스튜디오 있죠.”
“응 그래. 다큐멘터리나 그런 걸 만들지. 지상파에서 방송하는 것도 있다.”
침대에 있을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곳에서 하는 인간다큐를 누나와 저 그리고 누나의 병을 중심으로 찍어 주셨으면 해요.”
나는 다시 조금 딱딱하게 이야기 했지만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해주마. 그런데 괜찮겠냐. 방송에 나가는 것 안 힘들겠어.”
“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 했지만. 지금도 손이 떨려왔다. 그리고 내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불안함이 표출이 되었는지 할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은 힘들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할머니는 사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차서방. 홍사장에게 연락 해주겠나. 지금 간다고.”
실장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장모님.”
실장은 대답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홍사장님
“예. 잘 있죠.”
“오늘 저희 어머님이 뵙자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1시간 후쯤에 사장실에서. 예 그럼.”
“장모님 1시간 후쯤에 사장실에서 뵙잡니다.”
“그래 알았네.”
처음엔 몰랐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는 울림이 좋고 아주 매끄러우며 발음이 부드러웠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역시 판소리계의 회장다웠다.
“진이는 차 몰고 다니는 거냐?”
“예. 몰고 왔습니다.”
“그럼 그걸 타고 우리 회사 본사에 갈까.”
내 앞에 있는 노인에 대해서 많이 감정이 희석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꺼려진다. 하지만 도와주겠다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어 난 다른 핑계를 되었다.
“제 차는 스포츠카라서 운전석 이외의 좌석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아무래도 타고 오신 걸 타고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사실이다. 박소현 선생이 준 차는 운전석을 제외하면 불편한데 특히 뒷좌석은 끔찍할 정도다.
“내가 불편한가 보구나. 그렇겠지. 그래 알겠다.” 뭐든 최고의 삶을 살아온 할머니라 그런 걸까.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 버린다.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그런 남자가 태어났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주미디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건. 누나 생각이었다. 누나는 우리의 대화를 듣다가 두서없이 케이블TV에 광고를 내 보내라고 말을 해주었다. 아마 누나는 나의 분노를 털어버리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요청 후 1주일 현제 그녀의 의도대로 난 한주미디어 일가와 자주 만나고 있었다. 뭐 그래봤자 이 일가가 자손이 귀한 데다 할아버지, 큰아버지, 그 사람은 사망했기 때문에 남은 인원이라고 해봐야. 할머니, 사장, 실장, 지애 그리고 숙모와 숙모의 아들 뿐인데. 오늘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우리나라에서 다큐멘터리로 상을 가장 많이 받은 최수경 감독 즉 숙모와 아버지 집 앞마당에서 인간다큐에 담을 내용을 조율해 보고 있었다.
“아버님은 회사일부 하고 집안 그리고 병원만. 가현군은 주인공이니까. 이틀 동안 하루 종일 밀착합니다. 누님은 잠깐 씩만 촬영가고요.”
최감독은 43살로 활동적인 그녀의 성격을 말해주듯이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일 처리가 분명하고 어떤 하찮은 작품이라도 열과 성을 다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아버님 쪽은 이야기가 끝난 거죠.”
인간다큐 녹화를 꺼려하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대답했다.
“예. 일단.”
“뭐 압니다. 가벼운 인터뷰도 응해 주시는 않는 분이라고 유명하죠.”
역시나. 과묵함에 승부를 보시는 분인 아버지다운 태도다. 하지만 이번엔 평소 모습보단 딸을 사랑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며 말했다.
“잘 해주실 겁니다.”
최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 후. 대략 오늘 일정을 맞췄다. 그리고 잠시 후. VJ가 카메라를 들었고 녹화가 시작 되었다. 처음 찍는 부분은 나를 따라가며 우리집안을 찍는 거다. 정원을 돌아다니며 내가 어릴 적에는 어떻게 놀았고 어떤 아이였는지 그리고 이 정원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대해서 간락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차차가 또 그 검은 고양이를 ?아 다니느라. 스텝들의 혼을 다 빼놓기는 했지만 무사히 밖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서제에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보여주고 형편없었던 내 성적표를 살짝 공개해 보고.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보고서를 주문했다는 것은 비밀로 해 놓고 그저 막연하게 알아버린 것처럼 해서 내 불행의 시작을 조율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하지만 편집된 이야기도 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난 몇 번이나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을 최감독의 독려와 밀어붙이기 식 연출에 의해서 한번에 다 말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잠시 쉬는 시간이 왔다.

“괜찮아요.”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고 있던 나에게 최감독이 말을 걸어왔다.
“이런 이야기를 방송에 내 보낸다는 게 솔직히 겁이 나요. 아까 말하다가 12번은 더 중단하고 싶었어요.”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이왕 다 알려져 버린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더 낳을 수 있어요. 일단 본인이 이야기를 직접 했으니까. 덧대어 지는 것이 적겠죠.”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나의 일이 아니었다면 용기 없는 난 절대 할 수없었을 것 같았다.
띵~~~동 띵~~~동.
초인종이 울렸고 VJ두명과 나 그리고 최감독이 창쪽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그 쪽에선 방문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일어나서 인터폰을 들고 카메라로 방문자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창세와 다리만 보이는 한명이었다. 난 녹화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이 사실을 최감독에게 일단 알렸다.
“친군데요.”
“그래요.”
최감독은 그렇게 말하고 손짓으로 나가 보라고 지시했고 난 신발을 신고 문을 열었다. 그 때 최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면 친구에게 녹화해도 되겠냐고 물어봐요.”
“예.”

대문에서 만나 창세는 저번과 변함이 없는 모습으로 나와 인사를 했지만 녀석 뒤에 있는 의외의 인물은 군대 때문에 그랬는지 짧게 자른 머리를 계속 어색해 하며 말도 어색하게 했다.
“성진 반갑다.”
“응. 지석아 반갑다.”
지석이는 짧게 자른 머리를 오른손으로 연신 문지르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지금 처지를 비관했다.
“나 내일 군대 간다. 질질 끌려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왔다.”
죽으러 가는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난 면제인 이유 때문에 왼지 미안해서 차라도 줄까 생각해서 반사적으로 말했다.
“들어올래.”
하지만 녹화중이란 생각이 들어서.
“아. 잠시만.”
라고 말하고 의문을 표시하는 둘에게 최감독의 제의를 말해 주었다.
“지금 안에서 인간다큐 찍거든. 너희들 한번 출연해 볼래.” 이런 이야기에 녀석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창세가 먼저 말해왔다.
“지석아 해보자. 우리 대스타가 되어 보는 거야. 멋지지 않냐.”
창세는 장난이었겠지만 귀가 얇은 난 반사적으로 설명하는 자세가 되어 버린다.
“그냥 인간다큐야 쇼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그래도 일단 방송에 나오잖아. 지석아 해보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지석이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창세는 지석이를 잘도 꼬드겨 나쁜 길로 인도하는 역이었고 지금도 그런지 어느새 둘은 대문을 넘었고 그와 함께 녹화가 재개 되었다.


다 만들어 진. 인간다큐. 정확하게 55분짜리 이 프로그램의 시간 때는 사실 좋지 못했다. 같은 시간 때에 타 방송국에서 하는 일일시트콤 때문이었는데. 의도 하지 않게도 같은 방송국에서 하는 요즘 최고의 시청율을 구가하는 일일연속극이 그것을 해결해 주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이 인간다큐가 이 일일드라마 바로 앞에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려고 미리 채널을 돌려놓은 덕분에 맨 마지막에 내가 나와서 누나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봤고. 이에 호기심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무료 다시 보기와 고화질 유료 재방송을 보기 시작하면서 단 2일 만에 조회 건수가 100만 건을 넘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정식 재방송을 한 후에 다음 주 일요일 까지 1000만 건으로 넘어서 버렸다.
일단 방송은 성공한 것 같았다. 나와 누나에 대한 동정론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최근 보고서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가면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던 아버지 회사의 주가가 화해하는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올라갔고. 이 방송을 만들어 준 것이 한주미디어란 사실 때문에 한주그룹들의 주가도 올라가는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나에게 출연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 당시엔 나갈 생각도 없었지만. 매니저의 말로는 1달 동안 인터뷰 요청은 있어도 출연제의는 없었다고 했었다. 갑자기 한번의 방송으로 세상이 변화되어 버린 거다. 일반인이던 내가 UCC를 올린 이후 세상의 중심에 다가간 것처럼. 스스로를 허물어 버리고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단 하나 방송으로 세상의 중심으로 다시 복귀를 해 버렸다.
하지만 다시 방송에 나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인간다큐를 통해서 방송에 다시 나가기는 했지만 그건 겨우 스텝 3명으로 하는 작업이다. 부담감 따위 미미한 수준이다.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반면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을 생대 해야 하는 생방송이나 천명 단위로 관중이 있는 곳에서 하는 공연은 심적 부담의 격이 틀리다.
하지만 난 해야 했다. 현제 공여자 수는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목표치인 1000만명에는 절대 못 미치는 25만 명이다. 물론 운이 좋다면 1000만명이 안되어도 찾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다면 더 찾아야 한다.


“힘들지.”
저녁 11시. 누나의 병실. 아침부터 나가서 검사 받아보라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돌아다니느라 지쳐버린 난. 9시쯤에 들어와서 물 한잔 마시고. 누나랑 이야기 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는데 캐리가 2집 앨범 나왔다고 들고 와서는 보여준다고 나를 깨워놓은 상태였다.
“아니 괜찮아.”
나의 말에 누나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아서 살며시 문질러 주었다.
“고마워.”
“언니 나도 나도. 아침에 같이 나갔다고.”
뭐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캐리도 4시쯤 번화가에서 했던 게임 홍보 및 골수 검사 홍보에 게런티 없이 참석 했었다.
“캐리도. 고마워.”
누나는 미소 지었지만. 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장 확률이 높은 친인척들은 죄다. 불일치 판정을 받은 상태라 믿을 만한 것은 공여자를 찾는 건데. 한달 사이 많이 증가해서 하루 950명 정도가 검사를 받아서 한달이면 3만명 정도지만 아직 까지 일치하는 사람은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만일 계속 찾는 것이 실패 한다면 남은 시간으로는 위험했다. 그렇다고 뾰족한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어둡게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어! 진이 어두운 표정 짓는다.”
캐리 목소리였다. 그녀는 너무 오래 되어서 못쓸 것 같은 CD플레이어를 들고 와서 누나에게 들려주려 했던 것 같은데 한참 동안 주무르고 있었지만 전혀 작동을 안 하고 있었다. 나는 누나가 불안해 할까봐 일단 표정 관리를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음원 판매는?”
캐리는 포기 했는지 CD플레이어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려는 시늉을 하다가 선반위에 살짝 올려놓으며 말했다.
“내일 1시부터.”
마음 안정시키기 위한 구실이 하나 생각하나 입을 열었다.
“내 차에 노트북 있는데 들고 올게.”
나는 또 나빠져 가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하며 일어섰고 캐리가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걸어왔다.
“같이 가. 군것질거리 좀 사게.”
우리는 병실을 나왔고 그 동안 누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찾을 수 있겠지. 응.”
하지만 내가 바라본 캐리의 얼굴도 어두웠다. 그녀 역시 상황이 좋지 않은 걸.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우리는 별 말 없이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 까지 가서 노트북을 꺼내오고 1층 편의점에 들러서 스트레스 때문에 충동적으로 군것질거리를 주워 담았다. 계산하고 나온 후 후회할 정도로.


다음 날. 아침 자기 전에 과자를 많이 먹은 덕에 부은 얼굴로 보조침대에서 일어난 난. 독일어로 전화 너머 상대와 우울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누나를 목격할 수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누나의 표정과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난 충동적으로 누나를 위로 하고 싶은 마음에 손을 들었지만 누나는 내가 깨어난 것을 아직 알지 못했고 나도 그런 행동이 나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뒤 늦게 알고 그만둬 버렸다. 하지만 잠시뿐 곧 누나의 고운 눈동자를 시작으로 턱 까지 눈물이 흘러 내렸고 그 가엽 모습에 참지 못하고 난 입을 열어 버렸다.
“왜 그래. 누나.”
누나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아주 잠깐 나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본 후. 몇 마디 더 하고 전화기를 베개 위로 올려버렸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누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안정감 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 하다가 포기 하고 그냥 말을 돌려 버렸다.
“오늘 일정 없는데 뭐 하고 싶어. 오늘은 같이 놀아 줄게.”
누나는 나에게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애써 눈물을 참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자연스럽게 일그러지고 열기를 뛰어가는 얼굴 떨리는 손 난 이것을 들키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고 숨을 죽였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1시간 쯤 지났을 까. 감정이 시간에 많이 희석 되어버렸을 때. 아버지가 들어왔다.
“나 왔다.”
누나는 말이 없었다. 무거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기 싫었던 나였지만 누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돌아서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셨어요.”
누나는 이불을 덮고 있었고 아버지는 우리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는 고심하는 표정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은 상태로 걸어와 소파에 눌러 앉았다. 그리고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힘들지.”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직은 괜찮아요.”
“그래.”
또 다시 흐르는 침묵. 점점 무거워져 가는 분위기. 우리 가족 사이엔 그것 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겨우 겨우 아버지와 평범하게 이야기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우리를 엄습해 온 누나의 병이란 장막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누나는 이런 모습을 만드는 것이 싫어서 도망치려 했었나 보다.

“아버지.”
그런 상태로 1시간이 더 지났을까. 누나가 침묵을 깨고 들어왔고 아버지는 자세를 전혀 바꾸지 않은 상태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오늘 오후에 시간 비울 수 있으세요.”
아버지는 왜? 라고 묻지도 않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진아, 아버지 그럼 우리 오늘 놀이 공원에 가지 않을래요.”
의외의 제의에 나도 아버지도 놀라서 다리를 모아서 잡고 있는 누나 쪽으로 바라보았고 그 대상은 여위었지만 여전히 예쁜 미소를 짓고는 창을 가리키며 다시 말해왔다.
“날씨 좋은데 어때요. 평일에 월요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좋을 것 같은데요.”
왼지 마지막을 위한 무언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도무지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누나가 이상하게 들떠 보였기에.
“응 가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승낙을 대신하고 전화를 들어서 누나가 병원을 나설 수 있도록 병원에 알리고 누나가 입을 만한 옷과 자기가 입을 옷을 준비시키고 집에서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가져오게 했다.

아버지가 골프웨어 가라 입는 시간은 단 5분. 내가 간단하게 씻고 눈에 뛰지 않게 챙겨 입는 건 30분. 누나가 씻고 나서 머리를 드라이 기와 전기 롤러로 손질하고 푸른 하늘에 하얀색 구름이 흘러가는 것 같은 색의 원피스와 헐렁한 가디건과 기타 잡다한 옷을 걸치고 낮은 굽 샌들을 신고 화장을 한 시간은 2시간 이었다.
모든 것이 준비된 누나의 모습은 진짜 투병중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패션잡지에서 나온 듯한 모습이라고 할까. 여신의 행차라고 할까. 아무튼 그녀가 다니는 길이면 길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누나 진짜 예쁘죠.”
주차장 아버지 차를 타러 가는 길에서. 난 오랜만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누나에 대한 평가를 했고. 아버지는 보기 드물게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

아버지의 차는 IT 소프트 쪽 회사 중에선 국내 최고의 기업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중고차였지만 일단 독일산 대형차였기 때문에 귀하고 귀한 누님을 모시는 것에 그렇게 큰 하자는 없는 것 같았다.
“누님 드시죠.”
평소라면 절대 안할 것 같은 장난을 하며 누나가 앉을 자리 쪽 물을 열어주었고 누나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한발과 머리부터 집어넣어서 올라탔다. 그리고 난 빙그르 돌며 누나 바로 옆 자리로 가려다 조수석 창을 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제가 운전 할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내 운전 실력을 누나에게 들었는지 사양 하신다.
“나중에.”
“예.”
난 대답하고 나서. 누나 옆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나를 살며시 훔쳐보았다. 살이 많이 빠져서 볼륨감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풍만한 가슴이 볼록하고 하얗고 긴 두 다리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내가 너무 많이 봤을 까. 누나가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해왔다.
“뭘 그렇게 봐.”
난 괜히 부끄러워서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 미안. 누나가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내 말에 누나가 작은 소리로 웃어 주었다.
“고마워.”

우리가 갈 곳은 누나의 건강을 고려해서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는 장소로 정했다. 도로는 오전 11시 쯤 지났을 때라 한산해서 아버지의 대형차는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었는데 가는 도중에 누나의 백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딱 백만 사기로 하고 가는 길에 보인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명품점. 사실 이모 생일 때 가방을 사려고 캐리를 따라서 와본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4차원적인 가격이란 생각이 든다. 뭐하려고 이런 것을 사고 싶어 하는지 여자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지만. 오늘만은 그런 것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저 누나가 좋아해 준다면 눈곱만큼도 아깝지 않고 그저 기쁠 것 같았다.
“오늘은 내가 사줄게. 얼마든 상관없으니까. 아무거나 골라봐.”
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를 봤다. 그리고 누나의 옷을 한번 보았다. 잘 보니 아버지가 배달시켜 온 이 옷. 요즘 뜬다는 한국인 디자이너의 옷이다. 아마 아버지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 같았다.

아버지와 난 소파에 앉아 있고 누나가 매장을 빙빙 돈다. 이것을 들었다가 저것을 들었다가. 밝은 표정의 선임종업원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이상하게 둘이서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선임이 다른 종업원에게 뭐라고 지시를 하고 그 종업원이 누나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백을 포장 상태로 선임 종업원에게 내 밀었고 포장지를 개방한 후에 누나에게로 가방이 넘어갔고 누나는 끈을 조정한 후에 원래 가지고 있던 백에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새 백에 담아 넣었다. 그리고 난 계산을 하려고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빼며 일어섰다.
“계산 할게요.”
카운터에 있는 종업원은 쓸 때 없이 긴 말을 한다.
“탁월한 선택 이십니다. 빌랭 악어가죽 bg-178. 340만원 되겠습니다. 고객님.”
나는 속으로 역시 비싸네 하는 소리를 했지만 가방을 들고 전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누나의 모습을 보자 그런 생각 따위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어차피 돈 쓸 일도 없는데.’
“앞에 있는 단말기에 싸인 부탁합니다.”
나는 작은 터치액정에 내 사인을 휘갈겼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를 알아본 듯 했고 아버지 그리고 누나의 뒤를 따라서 매장을 나가려고 하는 나에게 인사대신 행운을 빌어 주었다.
“아름다운 누님에게 맞은 골수 꼭 찾으실 거예요. 행운을 빕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뒤 돌아서서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해줬다.
“검사 안 받으셨으면 꼭 좀 부탁합니다.”
“받았어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완벽하게 차려 입은 누나랑 다시 길을 나서고 10분 후 공원에 도착했고 우리는 먼저 동물원 쪽으로 향했다. 오늘 날씨는 누나 말처럼 좋지는 않았다. 구름이 끼어 있고 습도가 상당히 높은데다. 온도도 이상기온으로 높은 편 이었다.
난 이런 날씨에 걸어가는 것이 누나에게 부담이나 되지 않을까 연신 누나의 낯빛을 확인하고 있었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누나의 표정은 밝았고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라 온 후 처음으로 우리 눈에 들어온 동물이 나타나자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가볍게 뛰기도 했다.
“하하하 진아 저거 봐.”
아버지는 무반응이고 난 반응해서 뛰어가며 누나가 보라는 동물을 안경 너머로 확인했다. 작은 펭귄 무리였다.
“오~ 펭귄 귀엽네.”
펭귄들은 더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육사가 커다란 얼음을 가져다가 물에 던져주자 느릿느릿한 몸놀림으로 달아다는 나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가만히 있었다. 누나는 그것도 재미있는지 웃으며 말해왔다.
“한 마리 되려가고 싶네.”
근데 생각해 보면 누나나 나나 아버지 때문에 한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유학 가기 전 까지. 누나가 지나가는 개나 고양이를 보며 좋다는 표정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하하. 근데 누나. 예전엔 동물 별로 아니었어?”
누나는 내 물음에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펭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응. 한국에 있을 때는 동물이 싫었는데. 나 독일에 있는 양 하고 소 키우는 농장에 자주 갔거든. 그냥 좋아 지더라 동물들이.”
누나는 내가 나쁜 생각할 것 같아서 한 마디를 빼 먹고 있었다. 누나는 아마 외로웠을 것이다. 나 때문에 임신을 하고 그 아이를 땐 후 아는 사람도 없는 독일에서 생활한다는 게 마냥 행복 할리 없었다.
“그랬어.”
“넌 모르지. 그 농장 할머니 언니 분이 운영하셔.”
내가 알기로는 할머니 일가는 전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고 알고 있다.
“안가고 남은 분이 있으셨어?”
“응. 미국으로 이민 가기로 결정 했을 때. 이미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뱃속에 가지셔서 같이 못 가셨대.”
“응 그래.”
그런 말을 하는 누나를 보고 있자니.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하지만 모처럼 만의 외출에 들뜬 누나에게 나쁜 표정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거 보러가자.”
“그래.”
우리는 이동했고 동물혐오증 중증인 듯한 아버지는 우리를 그저 따라 다니기만 했다.

“타조다.”
“어디. 어디.”
난 원숭이를 한참 보고 있다가 누나 목소리를 듣고 도개를 돌렸고 처음으로 깊은 구덩이 속에 있는 닭고기를 먹고 있는 사자들이 그리고 곰이 보인 다음 커다란 다리를 가진 타조 다섯 마리가 사료 통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재미있고 또 귀여워서 난 웃으며 기뻐했다. 하지만 나나 누나랑 다르게 아버지는 그 모습이 영 거북스러운 것 같았다. 표정도 눈에 많이 뛰지 않을 정도로 일그러지고 손도 약간 떨어 되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의문에 찬 음성을 내었고 내 반응에 누나가 해답을 해 주었다.
“이모가 그러는데 아버지. 어릴 적에 목 없는 닭이 날라 다니는 걸 봤데.”
“앵?”
“할머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어머니가 집에서 닭을 잡으려고 일단 목을 잘랐는데 그게 막 돌아 다녔데. 기절까지 하셨다나! 그래서 아버지 동물 다 싫어하는데 특히 조류는 끔찍하게 여기신데.”
아버지의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일면을 알게 되었다. 근데 그 느낌이 왼지 포근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건 어찌 보면 상대방의 약한 부분 나쁜 부분을 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하. 귀여우시네.”
내 말에 누나가 예쁘게 웃었다.
“헤헤. 그러네.”

볼 동물은 많이 남았지만 아버지가 거북스러워 하니 누나나 나나 미안해져서 우리는 다보지 못하고 결국 식물원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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