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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5:40 808회 0건
2. 검은 여울.

난 두 명에게 치욕당하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보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부도덕한 욕망에 사로잡힌 난 그 시선을 무시했다.

무섭게 생긴 남자가 음부를 자극하며 다른 손으론 엉덩이와 배를 주물렀다. 그리고 다른 한명은 가슴을 입으로 물고 빨고 깨물고 양손으론 반대 쪽 가슴과 몸 여기저기를 더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였지만 그들의 방식은 너무나도 거칠고 서툴렀다. 물론 강간하는데 기교 부리는 인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끔찍하게 누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잠시 후 누나의 몸은 눈물과, 그들의 침 그리고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무서운 눈의 남자 갑자기 일어서며 자신을 자지를 잡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빨리 해라. 나도 이쁜이랑 하고 싶어 죽겠다.”
“응”

순간 남자의 행동에 눈을 크게 뜬 누나는 미친듯이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 해서든 그 것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 구원 따위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반항 때문에 남자는 10번이나 삽입 시도를 실폐하고 있었다. 거기다 11번째 에는 어느새 풀려 버렸는지 누나의 발이 그의 중요부위를 때려 버렸다.

“으악! 미친년. 야! 잡아.”
고통에 화난 그는 손을 들어 철썩 소리가 나게 누나의 빰을 갈겼다. 누나는 그 고통에 저항을 순간 멈췄고 이 때다 하고 남자는 풀어진 다리를 단단히 잡아 위로 올리고 누나의 엉덩이를 자신의 무릅 위에 올렸다. 그리고 벌어진 보지 사이로 자신의 것을 거칠게 집어넣었다.

누난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긴장 시켰다. 반면 남자는 만족스런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 표정이 나의 죽어가던 분노를 다시 살렸다. 난 어떻게든 저 곳으로 가서 저 남자의 뒤통수에 칼을 꽂아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미친듯이 티셔츠 사이로 손을 빼려고 힘을 주고 있었다.
힘을 주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내 힘 주는 소리가 커졌고 누나의 치부에 자지를 넣고 있는 남자가 내 쪽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는 보란듯이 씩 웃었고 난 마음속으로 분노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음질. 누난 포기 했지만 조금만 이라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왜면 하려는지 고개를 침대에 묻고 고통의 심음성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흥분에 겨워 조잘 거리고 있었다.
“앗. 앗. 아. 좋아. 죽이네. 많이 안한 것 같은데. 앗. 앗.”
“빨랑 해라. 나도 좀 하자.”
“앗. 앗. 오래. 앗. 못 가겠다.”
“그래 좋아. 빨리 싸고 또 하면 돼지 뭐가 걱정이냐.”


하지만 그들은 걱정해야 했다. 내가 묶인 걸 풀고 뛰어 내렸으니까.

난 소리를 지르며 4미터 쯤 되는 곳에서 침대 위. 남자을 향해 떨어졌다. 분노에 이성을 상실하고 대는 되로 행동한 결과. 남자는 누나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별 부상이 없었고 난 코가 부러지고 왼쪽 어깨가 탈골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태 였는데도 불구하고 난 두 남자를 향해 우연히 손에 잡힌 금속파이프(앞에 흉기같은 여러개의 돌기가 있는)을 들었다. 그들은 가소롭다는 식으로 날 보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눈물 뿐 아니라 콧물 까지 흐르는 얼굴을 돌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난 그들을 향해 파이프를 휘두르며 앞으로 다가 갔다. 파이프 앞에 붙은 돌기들이 위협적이 였던지 그들은 뒤로 물러났다. 난 누나를 풀어줄 생각으로 파이프를 내밀고 그들을 뒤로 더 물러나게 만들었다.
한 수간 난. 누나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집에 가기만 하면 돼는 거다 하고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남자들이 던진 것 같은 의자들에 맞고 난 파이프를 바닥에 떠러뜨려 버렸다.

난 다시 파이프 주우려고 했지만 그들이 더 빨랐다. 둘 중 무서운 눈의 남자가 파이프를 발로 차서 구석에 처박은 다음. 내 가슴을 걷어찼다. 난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져 않았지만 그의 공격은 끝나지 않나지 않았다.
얼굴을 주먹으로 맞고 정강이를 차이고 난 고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그의 구타가 끝났을 때. 난 의식이 흐릿해 지는 것을 느꼈다. 눈이 점점 감기는 찰나의 순간 누나의 슬픈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가 무언가를 말하는 듯 했지만 난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체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순백의 화사한 미소. 천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나. 5살 난 그 미소에 넉이 나가 있었다. 이렇게 천사 같은 사람이 있다니. 여기가 이모와 케리가 이야기 하던 천국인가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멍하게 자신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내가 바보 같았는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관찰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은 듯 기뻐하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이 구나”
“응”
나의 얼빠진 답변. 그녀는 그 얼빠진 행동에도 기쁘다며 다시 환하게 웃었고 내가 끌고 가고 있던 링거스탠드를 잡았다.
“누나가 도와줄까?”
“루. 다.”
그녀는 나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살이 귀엽게 찡그리며 말했다.
“아냐 누. 나.”
“응. 누나”
“다시”
“누나”
“다시”
“누나”
“누나”란 말이 듣기 좋았는지 그녀는 “다시”란 말을 12번 쯤 더 말했다. 그리고 내가 답해줄 때 마다 “누나”란 단어가 쌓여가는 것처럼 그녀의 미소고 커져갔다. 때문에 마지막엔 “다시”가 아니었다.
“히히히히히히히”
작고 예쁜 여자아이에게 나올 것 같지 않는 웃음소리지만. 난 그 웃음소리가 너무나 기분좋고 즐겁게 들렸다. 때문에 나도 똑 같은 소리로 웃었다.
“히히히히히히히”
내 웃음 소리는 누나와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지만. 누나는 아무래도 좋은지 미소 지으며자신보다 작은 키인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강아지에게나 쓸것 같은 말 했다.
“착하지. 착하지. 가자”
뭐가 착하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난 그녀를 따라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소변을 누었다. 소변을 누고 있는 동안 그녀는 내 뒤에서 링거스탠드를 잡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근데 순간 그 미소가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었다. 슬픈 미소. 허탈한 미소. 분노를 감춘 미소로 말이다.

난 눈을 떴다. 늘 병원에 자주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난. 집에서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왔고 줄곳 꿈을 꾸고 있었나 하고 생각을 했다. 병실은 2인용으로 나머지 한 개의 침대는 빈자리인지 비어 있었다. 순간 꿈에서 처럼 방관에 압력이 차고 있었다. 난 화장실을 가려고 엄청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대로 멈춰버렸다.
온 몸이 아팠다. 특히 코와 왼쪽 어깨는 미친듯한 통증이 전달되고 있었다. 참기 힘든 고통에 난 신음을 흘렸고 어떻게 알았는지 주사제를 가지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난 간호사의 지시되로 다시 침대에 바르게 누웠고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고통은 금방 없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고 울듯이 신음성을 한참 흘리다 보니 어느 순간 고통이 거의 없어진걸 알았다. 그와 동시에 난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입 박으로 크게 내었다.
“누나!”
내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난 신발을 신지도 않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금 찾아왔던 관호사를 불렀다. 그녀는 내가 지른 비명 같은 부름에 놀라서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진정해 학생”
“누나는요.”
난 너무 불안했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답이 나올까. 겁이 나서 숨을 멈추기 까지 했다.
“퇴원 했어”
“집에 갔나요.
“응”
“괜찮나요.”
그녀는 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자기 앞에 있는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수 없었기에 한참 머뭇거리고 있었다.
난 그녀에게서 대답을 기대할 수 없어 몹시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백색의 가운을 입은 낮이 익은 30대의 여성을 찾았다.
“이모!”
그녀는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내가 부르자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게로 다가와서 병실 쪽으로 나를 밀며 걸었다.
“병실로 가자. 가서 이야기 해.”

병실에 도착한 난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고 이모는 창쪽으로 가서 브라인드를 약간 열어서 밖을 한번 보고. 심호흡을 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나의 눈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도 컸으니. 그런 문제가 얼마나 큰 충격으로 마음에 와 닫는지 알거다. 그 때려죽일 놈들은 이틀 동안 네 누나를 욕보이다. 동료중 하나가 몰래 신고해서 잡혔어.”
“이틀 동안이나. 윽”
난 눈물을 흘리며 분노에 이를 악 물었다. 호흡도 불안하게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모도 분노해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또 그 놈들은 상처 입고 의식이 없는 널. 잡동사니와 같이 쌓아 두었더라. 어린 아이를 쓰레기처럼. 미친 것들.”
난 도무지 누나의 지금 상태에 대해선 물어보지 못했다. 겁이 났다. 이모의 성격은 이런 것에 단호해서 마냥 숨기질 않았다.
“누난 말도 안하고 밤이면 악몽을 꾸고 먹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남자를 몹시 두려워하더라.”
“근데 어떻게. 집에.”
“이모가 내 아버지와 좀 싸웠거든. 그리고 집에 간 것이 아니고 아버지 친구 병원에 갔어.”
“이모 나도 그 병원에 가면 안 될까요.”
이모는 나의 질문에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숨을 한번 쉬고는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가 거부 할 거야. 널 ?아 가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화가 나 있거든.”

순간 난.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가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식이 희미해지고 숨이 막혔다. 하지만 지금 의식을 잃을 수 없었다. 난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가서 만나고 올게요.”
“근처도 못 가게 할 거야.”
“좀 도와주세요.”
이모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한번 말해 볼게.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예”
이모는 천천히 걸어서 문을 열었다. 난 이모의 모습을 처다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의 귀엔 문 닫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좀 울어라. 사내자식이 질질 짜기나 하고. 조금 있음 캐리 오니까. 밥이나 같이 먹고 있어라.”


몇 시간 후. 통증이 다시 몰려왔다. 침대에 누워서 호출 벨을 누르고 고통부위를 주무르고 있는데 전에 들어왔던 그 간호사가 들어와서 주사를 놔주었다. 그녀는 눈물이 흘러 빨갛게 되어버린 버린 내 눈 주위를 보더니 안쓰러운 표정이 되었다.
치욕적인 일을 당해버린 누나의 일을 어떤 식으로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그냥 따듯하게 미소 지어 주었다.
난 그 미소에 다시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지금 누난 어떻게 하고 있을까. 절대 웃을 수 없는 상태로 있을 것이다. 남자인 나로선 정확하게 알지 못하겠지만 그 마음은 한없이 어둠고 한없이 차가울 것이다.

“고맙습니다.”
난 어두운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가는 그녀의 등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지렁이가 지나가는 뜻한 문양이 잔득 그려진 벽지를 보았다.

벽지 속의 2차원 세상 그 속에 그려진 불규칙한 지렁이 모양을 계속 보고 있으니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처음엔 그냥 지렁이처럼 몸을 수축했다. 팽창했다 하며 다 같이 앞으로 전진 하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들은 지렁이가 아니라 그림자극의 새까만 인형 이었다.
인형들은 소리 없이 수군수군 대며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한번 씩 나를 몰래 보았다. 계속 반복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다. 이번엔 무기를 들었다. 철퇴. 무기 끝에 뾰쪽한 가시들이 무수히 박혀있는 것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마구 잡이로 휘둘렀고 지렁이들이 그것에 맞고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런데 그 피는 중력의 작용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거꾸로 가장 높은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피는 강을 역행해서 흐르고 바위틈을 지나서 흐르고 나무사이를 쏜살같이 흘렀다. 그래서 당도한 곳엔 철퇴를 든 초등학생 정도의 작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씩 웃고는 허리를 숙여 피를 혀로 빨았다. 그는 나였다. 광기에 눈동자가 뒤 집혀 흰자위만 보이고 소리 없이 웃는 나였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는 한참 동안 웃었다.
그의 그 웃음소리는 널브러진 시체들의 저장소가 되어 있는 바로 그 창고에서 메아리 치고 있었다.
시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나와 똑 같은 코 모양을 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눈과 입,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그 남자들이 갑자기 입을 벌렸다. 그리고 기괴한 음성으로 단 하나의 단어만 반복하고 있었다.
“죽이고 다시 만들지. 죽이고 다시 만들지. 죽이고 다시 만들지”
그 음성은 반복되어 갈수록 쇄 갈리는 소리처럼 귀에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 고통에 난 눈을 떴다.

“약 기운 때문에 잘거라고 하더만. 아주 헛소리 까지 하네.”
케리 이었다. 그녀는 말과는 다르게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긴 갈색 머리칼을 시원한 이마가 들어나게 한 웨이브 헤어스타일에 교복이지만 섹시함이 들어나게 단추 2개를 풀어 놓은 파란색의 가는 가로 줄이 있는 셔츠, 잘록한 허리선부터 감고 돌아 무릎 위를 간신히 덮는 감색의 짧은 치마. 누나와 같은 학교라 같은 교복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다른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이종사촌으로 이모의 딸인 케리 이었다. 이모가 16세 인가 17세에 미국인 남자친구랑 만들어 버린 아이라는데. 때문에 눈이 깊고 입이 크고 코가 높은 서구형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먹을 수 있겠어.”
“응”
“그래 햄버거 사왔는데.”
“고마워”
“네 것 없어.”
난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쪽은 우리 집처럼 냉담파가 아니라 마이페이스 파라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에~ 농담 할 분위기가 안 만들어 지내.”
그녀는 햄버거 포장지를 뜯어서 감자 먼저 먹으면서 계속 조잘 되었다.
“개자식들 그게 그렇게 하고 싶을 까. 하고 싶으면 돈 주고 하면 되잖아. 원숭이나 개 같은 놈들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놈들은 그냥 탕! 탕! 죽여 버려야해. 제판 필요 없거든. 거기다 널 아주 짐짝 취급 했다며.”
순간 그녀는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큰 소리로 악을 썼다.
“악~~”
그녀는 깜짝 놀란 나를 향해 씽긋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화가나. 어떤 말을 해도 분이 안 풀려. 언니 맘이 빨리 낳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곧 고운 볼을 타고 흘렀다. 감정이 전이 되어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울분을 삭히기 위해선 먹는 게 ‘최고’라는 식으로 감자를 한가득 입에 집어넣고 씹었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입에선 음식물을 흘리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웃고 싶지 않았다. 누나는 고통 받고 있는데 웃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이 들어서 괴롭고 힘들었다.


그녀는 거의 혼자서 이야기 했다. 거의 불성실한 남자친구의 험담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직설적인 성격인 그녀에겐 안 맞는 남자 같았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는 내가 거의 보지 않는 TV프로그램 이야기,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모의 새 남자친구 이야기 였다.
이모의 남자 친구는 같은 병원 의사로 키가 190cm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로 뇌 외과 전문의라고 하는데. 엄청 가정적인 성격이고 12살짜리 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캐리가 보기엔 지금 그 커플의 감정 수준은 거의 친구와 애인의 경계선이란 이라 하는데. 사랑에 목을 매기보단 실리를 중시하는 성격들이라 아무래도 결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이모의 남자친구란 분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듯 했다. 아버지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일을 이젠 한번 쯤 받아 보고 싶다고 말도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계속이어 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난 몹시 피곤함을 느꼈다. 악 때문인지 몸이 좋지 않아서 인지 모르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깨었을 땐.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해가 져 있었다.

캐리도 이야기 하는 게 피곤했는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었다. 난 갈색의 긴 머리를 보다가 충동적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져 보았다. 부드러운 머릿결 감촉이 느껴졌다.
난 상대를 만져 주는 것도 기분이 좋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과 연계되어서 그 남자들이 누나를 더듬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머릿속을 꽉채워 나갔다. 난 고함 치고, 주변 집기들을 내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스스로 팔을 모아 양쪽 어깨를 잡았다.
또 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내 평생 이렇게 화가 나고 죄책감이 들며 울었던 기억은 없었다.

몹시 누나의 안부가 걱정 되었다. 하지만 그 때 불을 커고 들어온 이모는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네 아버지가 올 필요 없대. 넌 병원에서 치료나 열심히 받으라고 하더라.”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
“역시 전 미움 받고 있군요.”
이모는 평소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그러네.”
“근데 이모.”

난 그날 집에서 도망쳐 왔던 때. 이모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질문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워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모는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 바로 알고 있었다.
“그래 넌 네 아버지. 아니 성필성의 아들은 아니야. 하지만 넌 분명히 이모의 조카이고 네 어머니의 아들이며 네 누나의 동생이야. 단지 네 아버지는 그것 까지도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유전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지.”
“네 친부는 누구죠.”

난 분명히 보았다. 순간 명확하게 보인 이모의 당황해 하는 표정. 오늘 아침 보여 주었던 표정과 비교해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동요함. 그 선명한 표정변화는 순식간에 이모의 감정 컨트롤로 사라졌다.
하지만 난 그 표정에 무척 당황해 버려서 다음에 나올 대답이 두려워 졌다.
“그냥 네 엄마가 알던 사람이다.”
이모는 말을 더듬지는 않았지만. 동요해서 발음이 부정확했다.

“일단 진아. 넌 치료나 받고 있어. 아버지의 화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난 대답할 기분이 아니어서 고개만 끄덕인 후. 자리에 누웠다. 이모는 그런 나를 보다가 한숨을 한번 쉬곤 병실을 나갔다.

난 한참 동안 병실의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 그림은 단순한 풍경화로 바위와 나무, 풀, 물이 한 폭에 그려져 있었다. 그림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것이 없는 나였지만 구도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의 위치가 너무 들쑥날쑥 해서 산만해서 마음이 어지럽다고 해야 할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싫었다.
그림을 벽에서 뜯어서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순간 머릿속이 하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땐. 그 그림은 반으로 분리되어 한쪽은 바닥에 한쪽은 네 손에 있었다.
“너 너무한다. 기물파손 까지. 네 마음이 몹시 상처 받아서 아픈 건 이해 하지만. 계속 자기를 절제하지 못 하다가는 다음엔 사람을 다치게 할지 몰라.”
난 이 말이 들리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캐리가 잠에서 깨어 심술궂은 표정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너 너무 걱정이 많은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걸. 이모부도 네가 언니를 구한다고 두들겨 맞은 걸. 알고 있거든. 적어도 넌 최선을 다 한 거야. 그리고 진이가 언니를 만난다고 해서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걸.”
난 캐리의 말이 사실임을 상기 시켰다. 곧 난 우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아”

처진 어깨. 그림이 있던 자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 그런 나의 모습을 그녀는 침묵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상하게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감정도 분노가 아닌 허망함으로 변환되어 난 의욕을 상실해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그리고 두 다리가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캐리가 입을 열었다.
“진아 언제 까지 거기 있을 거야. 좀 앉아 너 일어나서 별로 먹은 것도 없잖아. 병원 저녁 식사 시간은 지났고 하니 네가 죽이라도 사올게. 그러니 이제 침대로 돌아와.”

그녀는 나의 다음 행동을 보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난 침대 쪽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술 먹은 것도 아닌데. 침대에서 일어나서 그림을 부셔버린 것 까지 기억이 안나’
이런 경험은 처음 이었다.
‘신경에 과부화가 걸려서 그런 것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가? 뭐 예전부터 난 뇌의 활동이 이상한 부분이 좀 있긴 했지’
감정이 기복이 커질 때면 의식을 잃어버리는 일이 수도 없이 있었다. 1년 3회 정도 나의 귀와 촉감이 과 부화를 일으킬 정도로 나의 뇌에 과장 표현된 형태로 들어온다. 부수적으로 설정 하자면 1의 거친 느낌이 6,7의 거친 느낌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순간적인 기억이 없다.
위 첫 번째와 두 번째 증상을 난 의사에게 알아보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누나가 알아 본거지만. 나의 뇌 사진으론 특정할 수 있는 증상이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생명의 위협이 가해질 정도는 아니었다.
첫 번째는 장소와 관계된 것인지 내가 쉴 수 있는 상황 그러니까. 네 옆에 날 지켜줄 사람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횟수가 적고 초창기 몇 번을 제외 하면 증상이 하강된 느낌이다. 요즘은 3배 정도. 일거다. 이런 상태니 앞의 두 개는 큰 해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세 번째는 캐리의 말처럼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일이었다. 만일 이런 증상이 흔히 있는 것이 아니고 나만의 병이며 지속적인 것이라면 커다란 문제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를 좀 해봐야지.’

‘내일 이모에게 말해봐야지’
난 그렇게 결정하고 침대에 다시 눕기 위해 일어났다. 아직 아픈 몸. 부러지고 멍이 들고 짖어져 바느질 하고 붕대로 감고 엉망인 몸. 아침에 일어나서 난 내 몸 상태를 전혀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7일 동안 의식불명으로 잠을 잤는데 또 오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허비했다. 과연 지금 현 내 모습이 얼마나 엉망일까. 난 거울을 볼 생각으로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난 거울을 보기를 도중 중단해야 했다.
“진아 죽 사왔다. 진이가 좋아하는 팥죽이니까. 다 먹어.”

“팥죽 보단 전복죽 같은 걸로 사오지. ”
이모가 캐리를 뒤 따라 들어와서 입을 열었다.
“나 힘들었어. 엄마가 전화 안 받아서 나 완전 헤매고 다녔어. 그것뿐인가 메뉴 선택의 길로에 서서 진땀 흐르는 고민의 순간들. 아니 의사가 전화 안 받으면 어떻게 이건 직무유기야. 아야!”
그녀의 과장된 말은 이모의 이마 때리기에 중단 되었다.
“그만”
“아야! 폭력 반대. 폭력 엄마 같으니라구. 아야”
“그만!”
다시 이모의 손이 들어 올려졌다. 하지만 이모의 손은 캐리의 이마 부근에서 잡혔다.
“안 할게.”
“그래야지 착한 딸이라고 소문나지.”
이모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곤 의자에 앉았다. 좀 붉어진 이마를 쓰다듬은 다운 모친의 옆에 앉아 포장지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서 먹기 좋게 숟가락을 죽 속에 찔러 넣어주고 같이 사온 이온음료의 뚜껑을 뜯은 다음 침대에 붙어 있는 간이 식탁을 꺼내 올려 그 위에 올려 주었다.
“먹어!”
“고마워.”

이모는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보여주었는데 내가 죽의 반을 먹는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진아 아버지 화가 풀릴 때 까지. 한 달 정도만.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
“네?”
“왜?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불편하시지 않을 까 해서요.”

“왜 불편해. 설마 너 같은 꼬맹이가 남자라고 불편할까봐 설마다.”
캐리의 말 끼어듦.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고 이모는 20살도 체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딸을 희미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목욕탕에서 목욕타올 몸에 두르고 나왔다가 그 모습을 보인다던지. 네가 방문도 잠그지 않고 자위 하다가 나나 엄마에게 보여 버린다던지. 아야.”
이모의 작열 이마 때리기.
“그만. 무슨 여자애가 그런 이야기 까지 하냐. 불량스럽게. 거기다 여긴 네 엄마도 있다.”
“미안해. 그만 때려라. 더 맞았다가는 머리모양 바꿔야 해.”
그녀는 예쁜 모양의 이마지만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린 이마를 쓰다듬으며 혀를 삐쭉 내밀었다. 사랑스러운 귀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있지. 우리 집에서 살면 좀 힘들 거야. 도우미 아줌마도 없고 형부네 보단 한참 좁으니까. 그래서 네 독방은 있으니까 걱정은 말고. 컴퓨터 방으로 쓰던 건데. 접이식 간이침대도 있으니까. 공부하고 자는 데는 문제없을 거다. 단 우리 집 사람들은 바빠서 음식은 인스턴트가 주류를 이루니. 그 점 양해해.”
“아뇨.”
“그리고 넌 절대 우리완 남이 아니니 너무 의식하지 말 것.”
캐리가 기습적으로 다시 말 사이에 끼어든다.
“또 엄마 남자 친구가 와도 의식하지 말 것. 방안에서 뭔 짓을 하던지.”
“야!”
이번엔 이모가 화난 얼굴로 작게 고함을 쳤다. 캐리는 이마를 가리며 저항을 한 후. 공격이 없자 살며시 방어를 철회하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번 건 진짜. 실언. 미안해 엄마.”
“진짜. 너 요즘 말장난이 심해. 용돈 삭감한다.”
캐리는 ‘용돈삭감’ 이란 단어에 놀라서 아양을 떨며 이모의 팔을 잡았다.
“앙. 이제 안 그럴게. 엄마.”
이모는 딸의 그런 모습이 귀여웠지만 일부로 화난 투로 이야기 했다.
“귀여운 척은.”
“엄마 딸은 귀여운 척 안해도 귀여워.”
“요게. 아 맞다 진아 맞다 너 내일 비뇨기과 가. 호르몬 치료 받아야지.”
“예”


이 모녀는 정말 자매 같았다. 이모는 30대 초반에 동안이고 캐리는 나 보다 한 살 많을 뿐이지만 혼혈이라 또래들 보다 성숙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일단 외모만 해도 이모가 나이가 5살 쯤 더 많은 자매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엄마의 딸의 대화라고 하기엔 격이 너무 없었다.
그런 모녀 사이에서 1달 정도 지내야 한다니. 왼지 좀 걱정스럽기도 했다.

3일 후. 퇴원 하는 날. 옷을 갈아입고 이모가 집에서 들고 왔다는 내 노트와 참고서가 그리고 병원에서 입던 속옷이 든 가방을 들었다. 나머지 속옷과 이 시기에 입는 옷들은 이모 집에 가져다 놓았다고 하니 몸과 이 가방만 가지고 가면 되는 거다.
하지만 사실 난 집에 가고 싶었다. 아버지. 남남이란 생각이 들자 그는 나에게 있어 더 이상 요구해선 안 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를 향한 나의 의식은 그저 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이 급격한 건 아마도 누나와는 다르게 평소 나를 완전히 의무감 이상도 이하도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누나의 관점도 조금 의심이 가지만 적어도 누난 나와 혈연관계. 이 유대감은 나만의 것이 아닐 거라고 난 스스로 위안한다.

짐을 챙긴 후. 난 방을 나왔다. 박에 나와서 접수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어제 정형외과 의사가 적어준 쪽지 호주머니에서 꺼내서 살펴보았다.

코에 금이 갔으니 절대 충격주의. 운동은 절대 금함.
왼팔로 중량물 드는 건 삼가.
음주 금지. 잠을 많이 잘 것.
만일 충격이 가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바로 병원 방문.

의사는 상대를 보지 않고 항상 달고 다니는 말까지 적어 놓았다. ‘음주금지’ 난 이때 까지도 한 번도 술을 먹어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누나”
혼자 말. 요즘 심하다 싶을 정도로 누나. 생각이 머릿속을 매우고 있다. 지켜 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녀의 현 상황이 어떻게 될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너무 걱정스러웠다.
그 걱정이 과격해 지면 한 번씩 난. 답답한 심장을 움켜쥐고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최악의 상황. 그러니까. 누나가 자살시도를 하는 것이 생각나 버리는 거다.
캐리의 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나 따위 누나에게 있어 그저 동생일 뿐이니 말이다.
싫은 생각 하나 더. 누나도 나를 원망하는 것. 이 생각은 나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상상이다.
근데 캐리는 내 고민을 듣다가. “누나가 나를 싫어하면 어찌지. 그럼 난 죽고 싶을 거야” 이렇게 말 하자. “너 시스터 콤플렉스 구나” 이런 말을 했다. 다른 남매 사이는 이런 경우 “나도 누나가 싫어”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었다. 그건 이모도 마찬 가지로 대답은 좀 틀렸다. “누나에게 아직 어리광 피우고 싶은 거니” 심각한 나로선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위로다.

상념에 잠겨 있는 내 어깨에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얹어졌다. 난 그 손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고. 난 그곳에서 키 크고 건장한 남자를 발견 했다. 그는 뿔테 안경을 낀 멋있는 캐주얼 차림의 남자이었는데 다정스런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모에게 말 들었다. 내가 진이 구나. 난 이모의 병원 동료인 우변혁이라고 해. 혁이 아저씨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난 당황스러워. 일어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이모의 남자친구 같았다.
“안녕하세요. 성진입니다.”
“오 그래.
그의 표정은 다정다감해 보였다. 남자어른 중에 이런 인상의 남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처음 알았다.
“근데 이모는 요.”
“수술 지원을 갔어. 좀 늦을 거라고 해서 내가 대신 왔거든. 이모가 수속은 다 했다고 하니까 그냥 나가면 될 꺼다.”
“예.”
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빈손인 그가 내 유일한 짐을 다시 자기 손으로 옮겨놓았다.
“환자는 몸만 가자.”
그는 앞장을 섰다. 그의 넓은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난 서둘러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내 친 아버지가 저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렸다. 잠깐 이라도 아버지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마음은 완전하게 그를 내 아버지 자리에서 밀어낸 것이다.

혁이 아저씨의 차는 덩치완 다르게 경차로 아무리 봐도 폐차 직전으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난 ‘티코’라고 불리는 이 변혁의 물결이었던 차를 잠이 바라보다 조수석에 앉았고 차는 출발했다.
그는 운전을 여자처럼 했다. 뭐 내가 여자들의 운전 습관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차선변경 절대 사절. 적혀진 속도 완전 준수뿐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지나치게 세심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난 ‘의사라서 그런가. 했고 그 생각이 이어져 질문의 대화의 물고를 열었다.
“어떤 과세요.”
그는 운전 중엔 말을 많이 안하는 스타일 같았다. 나의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뇌 외과. 신경정신과도 겸해.”
“공부 많이 하졌겠어요.”
“미안 나 초보운전이라서. 대화는 집에 가서 하자.”
“예”
난 짧게 답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 유리에 병아리 그림과 함께 초보운전 이라고 멋진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난 그 붓글씨가 너무 근사해서 그의 부탁을 무시해 버렸다.
“뒤 유리에 적혀 있는 붓글씨 아저씨가 적었어요.”
“응. 취미 거든. 거듭 미안하지만 대화는 집에 가서 하자.”
“죄송해요.”
“아니다.”
침묵의 드라이브는 다행히 금방 끝났다. 사실 병원에서 이모 집까지 차가 필요한 거리는 사실 아니었기에 말이다.
그는 이모 집에 도착해서 주차 한다고 나를 먼저 내리게 했다. 그의 운전솜씨는 불안한 점은 없었지만. 너무 느렸고 때문에 난 한 참 오후 햇살을 맞으며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주차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바로 집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까는 미안. 운전이 아직 서툴러서 말 시키면 신경이 쓰이거든.”
“아뇨”
“진이는 집에 있을래. 나 이 앞에 슈퍼에서 장 보고 올게. 심심하면 같이 가도 되고.”
“같이 가요.”

그는 정말 가정적인 사람 같았다. 열량과 몸에 좋고 안 좋고 등을 따져서 정확하게 식단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생 6학년인 딸이 5살 때. 사별로 혼자되었다고 하는데. 공부도 해야 하고 어린 딸도 키워야 하며 병원일도 해야 하는 상황속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까. 하고 난 생각했지만. 그는 세상만사 어렵게만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게 진취적이고 밟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현 내 상황을 이모에게 들었는지 그는 나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슈퍼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권해주기도 하고 내 생각의 방향을 틀려는지 특히 말을 많이 했다.
자기 12살인 딸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 아이 인지부터 해서 이모의 나쁜 버릇이라던가. 캐리의 천진난만함이 요즘 너무 극해 달 했다는 것. 그리고 현제 이모와 결혼 시기는 조율중 이라는 것 까지. 그는 딸애에게 이야기 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 했고 난 그의 생각에 이끌려 누나와 관련된 생각을 잠시 접어 두었다.

그리고 슈퍼에서 나왔을 때. 아저씨의 양손엔 짐이 한 가득이 들려 있었다. 된장국을 위한 두부, 파, 조갯살. 샐러드를 위한 양배추, 키위, 당근. 간고등어 그리고 만들어 놓은 밑반찬들 또 오렌지주스와 우유, 요구르트, 간식용 과자 내가 좋아하는 어묵소세지 등. 빈손으로 가는 내가 미안할 정도의 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환자는 몸조심.”

그의 발걸음 몹시 가벼웠다. 그는 물건을 양손에 들고 가면서도 아는 사람이 보이면 인사를 건넸다. 그 중엔 그와 이모가 벌써 결혼한 사이인줄 아는 이도 있어서. ‘캐리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일일이 다 웃는 얼굴로 답을 해 주고 짧지만 안부를 물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초보운전만 제외하면 완벽한 ‘훈남’이었다.

이모 집에 도착해 보니. 거실에서 여자들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캐리, 하나는 낮선 여자아이 목소리 이었다. 난 인사 없이. 현관으로 들어가서 거실을 둘러보았다. 대형벽걸이 LCD TV 와 작은 진열장 그리고 소파를 배경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캐리가 배를 마루에 깔고 잡지책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자 캐리와 여자아이는 잡지책을 옆으로 치워놓고 일어나서 아저씨의 짐을 들어 주며 인사말을 건넸다.
“장봐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빠 왔어.”
아저씨의 딸은 인형같이 예쁜 눈동자를 가진 아이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나를 잠시 보다가 어색하게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소라 예요.”
나도 처음 보는 아이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 했다.
“응. 안녕. 진이야.”

그날 환자인 난. 그들의 음식 준비를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환자는 구경이라나. 뭐 도와 달라고 해도 평소 해 본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으니. 도와주는 건 힘들 것 같았기에 난 미안하지만 그냥 소파에 앉아만 있었다.
그들은 음식 준비를 하는 내 도록 캐리의 조잘거림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고 다정해 보이는지 평소 집의 모습은 삭막한 사막같이 생각 되었다.
언제나 말이 없는 집안 분위기는 너무도 무거워서 나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고 그건 도우미 아줌마도 마찬가지 이었다.

‘누나는 퇴원을 했을 까. 아님 아직 병원에 있을 까? 아직도 아플까? 상처는 나아도 그 날 당했던 일은 잊히지 않겠지 걱정이야.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
내가 가슴 안에서 징 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때 내 머리에 무언가 올려졌다. 난 올려다보았고 내 귀로 소리가 들렸다.
“힘들겠지만. 눈물은 그만.”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캐리와 소라가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아저씨의 말과 다르게 그런 상황이 되니 펑펑 울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 본 여자아이가 있는 곳에서 운다는 것이 너무 창피했다. 나는 눈물 꾹 참으려고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아저씨는 그냥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아저씨가 나를 부드럽게 않아 주었다면 울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온 이모가 나의 노력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는 상황을 보고 병원에서 보여 주었던 조금은 거리감 있는 위로가 아니고 내 옆으로 와서 다정스럽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이마에 키스를 해 주었다.
난 엉엉 소리를 내면서 꼴사납게 울어 버렸다. 이모는 내가 울음을 그칠 때 까지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내 눈물과 콧물에 젖은 자신의 옷은 벌로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다 울었으면. 세수해. 밥 먹자. 동생도 있는데 창피한 모습으로 있지 말고.”
순간 난 창피함으로 얼굴이 물드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소라는 별 감상이 없는 듯 했다.

그날 난 그들 틈에서 어색하게 식사를 했다. 조촐한 한식 식단이지만. 화목한 분위기 때문인지 전혀 맛없단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고 변혁이 아저씨 혼자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소파에 둘러앉은 여자 셋과 난 TV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소라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국이 좀 짰죠.”
“그랬나. 난 딱 이던데.”
“엄마가 간 했지.”
“누가 했더라.”
“그럼 샐러드에 누가 식초 넣었냐.”
“캐리 언니가 넣었어요.”
“샐러드소수가 있는데 왜 식초를 넣어.”
“신게 맛있잖아.”
“언니 너무 넣었어. 히히”

여자들의 수다는 한참 이어졌다. 난 TV를 보면서 이 분위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난 조금 있다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모 저 들어가 볼게요.”
“응 그래. 피곤하겠네. 들어가 자.”
“오빠 잘 자.”
“내 꿈꿔”
소라는 어느새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예쁘고 착한 아이라서 거부감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 어색해서 입을 열지 않고 미소 뛴 얼굴로 고개만 끄덕 거려서 대답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엔 책꽂이와 컴퓨터 책상이 있고 창가 쪽에 접이식 침대가 있었다. 나는 접이식 침대를 잡아 펴고 이모가 가져 놓은 내 옷가지가 든 가방을 열어 파자마를 꺼내 갈아입었다. 씻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저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기가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난 불을 끄고 침대에 눕고 이불을 머리 위 까지 덮었다. 한참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한 나로서는 잠이 오지 않았다. 곧 이불을 걷고 창에서 네온사인 빛으로 그림자가 지속적으로 바뀌는 천장을 바라 보았다.

이곳 천장은 꽃무늬 일색 이었는데. 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나로선 어떤 꽃을 그려 놓은 건지 알지 못했다. 요즘은 거의 안경을 끼지 않고 있었는데.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정지된 평면이 약간 움직이는 착각이 들곤 했었다.
오늘은 그것이 좀 더 심한 듯 했다. 네온사인의 불빛 때문인지 천정이 물결의 일렁임처럼 보였고 꽃이 깊이가 다른 곳과 확연히 차이가 나 검게 보이는 물속 풍경처럼 보였다.
이 물결의 일렁임은 어느 순간 폭포로 떨어지기 직전 수심은 깊어지고 폭은 좁아진 V홈의 계곡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곳에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저 앞 폭포로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는 폭포. 그런 아슬아슬한 공간 중앙에 검은바위가 있었다.
위험 때문이라도 아무도 찾지 않아 고립된 곳. 검은색의 바위. 하지만 그 바위 위에는 하나의 외로운 생물이 살고 있었다. 작고 가냘픈 몸의 남자아이 사람들은 그 아이를 구할 수도 없었고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외로웠지만 그 아이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손짓도 하지 않았다.
난 그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검은 여울”
그런데 돌아본 그 아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엔 그 아이의 얼굴 중 입만 보였다.
“외롭지 않아.”
그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배 안고파.”
이번에도 그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기 배를 어루만졌다. 또한 그 아이는 자기의 음식을 보여주었다. 하얀 살결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 그 아이는 그 여자의 젖가슴을 물어뜯어 먹고 있었다.
난 공포에 질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눈은 계속 아이 쪽을 향해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가 자신의 먹을거리를 들어 올려서 여자의 얼굴이 들어나는 것이 보였다. 또한 아이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나. 그리고 여자의 얼굴은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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