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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6:10 520회 0건
[24부]


태현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리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주었다. 태현의 손가락이 다가가 유리의 얼굴에 번져있는 눈물자욱을 닦아주었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뜨며 아빠의 손가락에 눈물을 닦인 유리.

"아빠......"

아빠를 올려다보며 애타는 음성으로 말했다.

"...절대로 나 떠나면 안 돼. 알았지...? 나...아빠가 떠나버리면 정말루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려......"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절대로 유리 곁을 떠나지 않을게."

아빠의 목을 끌어안으며 유리는 살며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츄우우......

태현도 유리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가만히 유리의 등을 쓸어주며 말랑 말랑한 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빨아들이는 태현. 유리가 천천히 입술을 열어 아빠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넣었고 태현은 입속으로 밀려들어온 보드라운 그 촉촉한 감촉을 자신의 혀로 살며시 핥았다.

"하아..아아......"

잠시 동안 이어진 두 부녀의 키스는 유리의 입술에서 뜨거운 한숨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멈췄다. 유리는 아빠의 목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사랑해...아빠......"

태현의 눈동자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유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태현이 말했다.

"지켜줄게...아빠가...무슨 짓을 해서라도..반드시...유리 지켜줄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태현은 지금 유리에게 했던 말이 현재 자신의 심정을 정확히 나타낸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로 유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 아까 카나코를 그렇게 선장실에 혼자 버려두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유리가 없었다면 그곳에 남아 그녀와 함께 싸웠겠지만 그때는 달랐다. 유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이 세상의 다른 것은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었다. 아니, 희생하겠다.

"......나...아빠가 떠나버리면 정말루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려......"

유리의 방금 전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유리가 없으면 외톨이가 되는 것은 자신이다. 유리의 존재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지지대였으니까. 태현은 가만히 어여쁜 유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유리야. 여긴 위험하니까 다른 곳으로 피하자. 알았지?"

유리는 고개를 주억이며 아빠의 품에서 벗어났다.
태현이 앞장서고 유리는 아빠의 옷깃을 꼭 부여잡은 채 뒤따라 간다.





{미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폭탄 설치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아호는.}
{2개조로 나누어 각각 지하와 야외 수영장에서 중간층으로 수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진은 부하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빙긋 웃으며 맞은편에 앉아 두려움에 가득찬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에게 말했다.

"왜 안 마시고 그러고 있나. 좋은 칵테일이야."

그러나 진의 친절한 음성에도 그녀는 여전히 두려운 얼굴로 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피식 웃으며 딜러에게 눈짓하는 진. 그때 가만히 여자를 보고 있던 현이 말했다.

{잠깐. 너 아까 미인대회에서 사신의 딸과 결승에 올라갔던 여자 아니냐?}

현의 물음에 중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불안한 얼굴로 현과 진의 얼굴을 번갈아보는 그녀. 진이 통역을 해주었다.

"대회 참석자인가."

그녀는 주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은 시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이 혜민,이라고 했었지. 아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따라와.}

혜민은 영문을 몰라 현과 진을 번갈아보았고 그런 그녀에게 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 남자가 당신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살려주겠다는군. 따라가 봐."

혜민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일단 저 수려한 외모의 남자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받은 발자국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기척을 숨기며 보초를 서고 있는 복면인의 바로 뒤로 걸어간 현준은 그의 등 바로 뒤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털썩......

방금 전 쓰러진 복면인 이외에 4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배의 구조를 완전히 익히고 있던 현준이 생각해본 바로는 6층 선장실에서 뛰어내리면 4층에 있는 특등실의 403호 베란다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발걸음을 죽이며 일반실들을 지나고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4.5층, 일명 퍼스트 클래스 플로어로 들어선 현준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403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준이 채 몇 발자국을 움직이기도 전에 가까이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하에 있는 창고로 가있자. 거긴 안전할 거야. 조금 있으면 특전대도 도착할 테니까."

현준은 재빨리 계단을 도로 내려가 복도가 꺽어지는 부분에 숨었다.

"아빠. 그런데...선장실에 한 번만 다시 가보면 안 돼...?"

틀림없다. 정태현과 그의 딸이다. 현준의 눈빛에 서서히 살기가 물들기 시작했다.

"유리야......"

정태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현준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음으로서 살기를 최대한 감췄다. 그들과 자신의 떨어진 거리는 30보 가량. 15보가 되는 순간 그들은 계단에서 내려서게 된다.

"혹시..혹시라도 그 사람들이 언니한테 나쁜 짓 안 하고 다른 데로 데려갔을 수도 있잖아."

현준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들여진 채 서서히 떠졌다.

"......?"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현준. 그의 귀에 정태현의 안타까운 음성이 들려왔다.





"유리야...지금 선장실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해......"
"......"

자신을 지키려고, 그리고 자신이 상처받게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얼굴에서 다 들여다 보이는 아빠를 본 유리는 힘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어디에선가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태현은 그 음성이 들려오자마자 유리를 벽으로 밀며 그녀의 앞에 서서 총구를 앞으로 겨눴다. 천천히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윤현준이었다. 태현은 언제나의 그 웃는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냉랭한 표정을 얼굴 가득 띄우고 있는 현준을 보며 여전히 총구를 그에게 겨눈 채 말했다.

"당신도 날 죽이러 온 것인가."

태현은 자신의 옷깃을 유리가 더욱 꼬옥 쥐는 것을 느끼며 현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현준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당신이 그녀를 죽인 건가."
"......"

태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선장실 밖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보았던 그녀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죽인 것과...다름 없..."
"아빠는 아무 잘못 없어요!"

그때 유리가 태현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태현은 깜짝 놀라며 유리를 뒤로 끌어당겼지만 유리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아빠의 손길에 이끌려 가주지 않았다. 유리는 시선을 자신에게로 고정시키는 현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는..언니를 살려주려고 그랬어요. 그런데...어떤 사람들이 몰려와서..."

차마 지현만 내버려두고 선장실에서 도망쳤다는 말은 못하겠는지 말꼬리를 흐렸던 유리는 하지만 아빠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게 싫어 애타는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하지만 아빠는 정말 아무 잘못도 없어요...!"

현준의 입가에 자조어린 웃음이 스며들었다.

"속았나......"

혼잣말로 중얼거린 현준은 유리를 다시 뒤로 끌어당겨 자신의 뒤로 세우는 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제가 당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겁니다. 그녀가 살려준 목숨을 내가 없애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그럼......"

그녀가 살려줬으니 지금 자신과 유리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현준의 말.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멀어져 가는 현준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참."

그때 현준이 뭔가가 생각이 난듯이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이마에 2cm가량의 흉터가 있는 수려한 외모의 남자. 아무리 당신이라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날린 카드를 무방비 상태에서 잡아내었다. 현준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태현은 저 남자가 불과 몇 발자국 앞에 숨어있었던 것을 자신이 깨닫지 못했음을 떠올리며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빠......"

자신의 옷을 끌어당기는 유리를 돌아보며 태현은 천천히 손길을 옮겨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6층 객실의 복도.

"하악, 하아..아앙..하악, 아아아......"

미니 스커트가 위로 끌어올려진 채 혜민은 벽을 짚고 서서 엉덩이를 자신을 데리고 온 수려한 미남자에게 바치고 있었다.
철턱, 철턱 거리는 살끼리 부딪히는 음탕한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바닥에 깔려있는 붉은 카펫 위로는 혜민의 보지에서 떨어진 애액이 점점 영역을 넓혀가며 얼룩지고 있었다.

"하악, 하아..아앙...좋아...하악, 아아......"

처음엔 살기 위해서, 몸을 대주면 살려줄 거 같아서 그의 손길에 반항을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 혜민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쾌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렇게 강렬한 쾌감을 느껴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체내를 쑤시고 들어오는 우람한 자지의 운동 때문에 다리를 곧추 세우고 있기도 버겁다.

"하악, 아아...하악..죽겠어..아앙...세게...좀 더 세게...하악, 아아앙......"

뒷치기를 하고 있던 현이 이제 자세를 바꾸어 혜민을 돌려세워 그녀의 늘씬하게 빠진 다리를 받쳐 들어 안았다.

"하악, 아앙...빨리...빨리이......"

쾌감의 공급이 중단되자 혜민이 달뜬 목소리로 현을 재촉했다. 현은 시익 웃으며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올라있던 자신의 자지를 다시 혜민의 흥건히 젖어있는 보지에 힘차게 쑤셔넣었다.

"하악!!"

무르익어있는 속살이 콱콱 깨무는 느낌을 즐기며 다시 현이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고 혜민은 새로운 체위가 가져다주는 쾌감에 현의 목을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하아악..아아...더 세게...자기...아악, 하...더 세게..하악, 더 세게, 아흐응...하악, 아앙......"

이미 혜민의 머리속에 자신을 쑤시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화려한 각선미의 다리를 쭈욱 내뻗으며 혜민이 몸을 몇 차례 격렬하게 떨었다.

"하악, 느껴..! 아악..! 아아...! 와...아학, 와아......!"

현의 좆질은 혜민이 절정을 느끼는 순간에도 그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혜민의 혼절할 것만 같은 쾌락 역시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다.

"하악, 죽겠어...! 아아악...! 하아..하앙, 하아앙...! 그만..그마안...하악, 제발..죽겠어...!"

푹, 푹, 푹, 푹......

혜민을 올려치는 현의 좆질이 한층 빨라졌다.

{크윽, 싼다...! 으으윽...!}

세차게 혜민의 보지에 자지를 박아넣던 현은 분출의 순간 직전에 그녀를 바닥에 떨어뜨려 놓으며 혜민의 얼굴에 힘차게 사정을 했다.

{크윽...으으으......}

누렇고 짙은 냄새가 나는 현의 좆물이 혜민의 아름다운 얼굴을 더럽혔다. 현은 자신의 굵고 길다란 좆대를 잡고 흔들며 계속 이어서 몇 번이나 혜민의 얼굴에 울컥 거리며 사정을 했고 조금 지나자 혜민의 얼굴은 현이 싸놓은 정액으로 온통 얼룩지게 되었다.

"하아...아아아......"

바닥에 널부러져 벽에 등을 기대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던 혜민은 가는 한숨을 흘리며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에 묻어있던 현의 사정액을 끌어 자신의 입속으로 넣었다.

"맛있어......"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고 넋이 나간 혜민의 모습을 쳐다보며 바지를 끌어올린 현은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어 혜민에게 겨누었다.

{역시 보지 조임은 한국년들이 제일 좋단 말이야.}

타앙-!!

혜민이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털썩 쓰러졌다. 현은 입맛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너무 까진 게 흠이긴 하지만...}





현준의 시선이 서서히 윗층을 향했다. 카나코의 방에서 들고 나온 저격총을 등에 맨 채 비상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던 현준은 불현듯 들려온 총소리에 뭔가를 직감한듯 발걸음을 더욱 빨리해서 6층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6층 파티장에서 그 중년 남자와 자신이 날린 카드를 잡은 남자를 저격시킬려고 했지만 어쩌면 조금 더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적당한 장소를 잡고 퇴로까지 구상해두어야 하는 저격보다야 1대1이 더 간단하고 깔끔하니까. 현준은 유품과도 같은 카나코의 권총을 고쳐들었다.
비상계단은 6층 파티장과 6층 객실 복도 두곳으로 다 이어진다. 현준은 눈앞에 나란히 서있는 두개의 문을 보곤 지체없이 복도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

위잉...

세차게 확 열어젖혔지만 일어나는 소리는 문이 열리며 일으키는 바람 소리밖에 없었다. 복도는 문의 정면과 측면, 양쪽의 두 갈래로 나있었다. 하지만 현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면의 저 앞쪽에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어떤 여자의 시체뿐이었다. 현준은 발소리를 죽여서 벽에 몸을 붙인 채 한걸음 한걸음 여자의 시체로 다가갔다.

"......"

현준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 모델이었다. 강간을 당하고 죽임 당했는지 죽어있는 모습이 정말로 비참스런 모습이다. 어차피 진심 따윈 없는, 마치 놀이와도 같은 작업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여자가 이런 모습으로 죽어있으니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모델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려 하는 순간, 엄청난 위화감을 느낀 현준은 재빨리 몸을 숙여 뭔가를 피했다.

파라락!

그리고 그가 서있던 위치로 현의 킥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법인데.}

익숙한 음성의 중국말. 현준은 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상대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충분한 거리를 충분한 스피드로 움직였다고 생각한 그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발이 현준의 손을 차서 총을 날려버리고 상대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자가 날린 펀치에 그의 얼굴이 뒤로 꺽였던 것이다.

"크윽!"

쓰러지지 않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충격을 흡수해내는 현준을 보며 현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제법이군.}

이제껏 단 한 사람도 잡아내지 못한 자신의 카드를 잡아낸 바로 그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준은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려는 그 짧은 순간 다시 현이 날린 킥이 현준의 머리에 적중되었기 때문이다.

"커헉!!"

고개가 수직으로 아래로 꺽이며 현준의 입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릎이 나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현준은 무릎 꿇지 않았다. 대신 죽을 힘을 다해 뒷걸음질 쳐서 그로부터 떨어졌다. 이번엔 현도 현준을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현은 비웃음어린 시선으로 이빨이 몇 개나 나간데다 혀 끝이 잘렸는지 끊임없이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깐 잘도 쥐새끼처럼 도망쳤었지. 하지만 이젠 그렇게 못할 거다.}

현준은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은 이 남자의 상대가 안 된다. 물리력을 겨루는 싸움에서라면. 하지만 그렇다고 진다는 건 아니다. 현준은 자세를 잡으며 시익 웃는 현을 보며 천천히 한걸음씩 뒤로 물러서다가 재빨리 등에 메고 있던 저격총을 앞으로 돌려 장전을 했다. 불과 1,2초 상 간.

철컥!

하지만 현준에게 방아쇠를 당길 시간까지 주어지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현이 현준의 저격총을 옆으로 차버리고 동시에 현준의 무릎 뒷편을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균형을 잃으며 뒤로 나자빠지려는 현준. 그러나 중력의 법칙에 의한 당연한 그 행동마저도 현준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현은 바닥으로 쓰러지는 현준을 올려차서 똑바로 세우곤 이어서 그의 얼굴을 뒤로 밀어찼다. 현준의 얼굴이 뭉개지며 그의 몸이 2m쯤 뒤로 날아가 바닥에 꼬라 박혔다. 현은 시익 웃으며 다가가 고통에 신음하며 간신히 의식만 유지하고 있는 현준에게서 저격총을 벗겨내곤 그의 한쪽 다리에 쏘았다.

푸슝-!! 파악!

"크아..악......"

총에 맞은 부분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좀 더 발악해라 Korean. 큭큭큭......}

녀석의 목소리가 마치 하늘위에서 들려오는 기분이다. 현준은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I"m not Korean but Japanese......"

퍼억!!

간신히 윗몸만 일으킨 현준의 얼굴을 현이 저격총의 개머리판으로 찍어버렸다. 현은 다시 바닥에 철푸덕 쓰러진 현준에게 말했다.

"Shut the fuck up jap! Is that your proud? Huh?"

저격총을 바닥에 내던진 현이 자신의 총을 꺼내어 현준의 남은 한쪽 다리에도 쏘았다.

타앙-!!

"크악..크아아윽......"

고통에 몸부림치는 현준을 보는 현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서렸다.

{좀 더 괴로워해도 괜찮아 일본인.}

이를 악물며 힘겹게 엎드린 자세로 선장실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하는 현준을 보며 현이 더욱 재미있다는 얼굴로 현준의 왼쪽 팔에 다시 총을 발사했다.

타앙-!!

"크하아..윽...으흐..으윽......"

얼굴을 바닥에 박은 채 고통의 신음소리를 흘리던 현준. 서서히 고통의 신음소리는 원통한 흐느낌으로 바뀌어갔다. 두 다리와 한쪽 팔에 총알이 박혀있음에도 선장실쪽을 향해 기어가는 현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피가 범벅이 된 얼굴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닥에 길게 핏자국을 그리며 힘겹게 비상문을 지나쳐 왼쪽으로 꺽어지는 복도로 쉼없이 기어가는 현준을 따라가며 현이 짜증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일본인. 좀 더 발악해달란 말이야. 엉?}

현이 현준의 발을 걷어찼다. 그러나 현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선장실만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기어갔다. 그런 현준을 쳐다보는 현의 얼굴에 인내의 한계가 떠올랐다.

{칫. 좀 더 반항해주길 기대했는데 벌써 포기한 건가.}

현의 총구가 현준의 등을 향했다.

{그럼. 죽어라.}

타앙-!!

현준의 움직임이 멈췄다. 서서히 현준이 쓰러져있는 곳 주위의 카펫이 붉게 물들어갔다. 현은 입맛을 쩝, 다시곤 파티장 5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현준이 다시 선장실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후..우..욱...후..우...우욱......"

입에서 왈칵 피가 흘러나온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판단 실수였다. 다행히 복도로 들어오는 그들을 먼저 발견해서 객실 안으로 숨긴 했지만 각 객실을 확실히 수색하는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총소리들을 들으니 초조해졌던 것이다. 1층 객실에는 창문이 없어서 도망칠 길도 없었다. 어디에 숨는다고 해도 총소리로 보아 아예 확인 이전에 총질부터 하는 모양이라 어떡할 도리가 없었다.

타다다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다당-!!

이제 총소리는 바로 옆의 방에서 들려왔다. 태현은 아무 말 없이 옆에 찰딱 달라붙어서 자신을 끌어안고만 있는 유리를 보곤 결심을 굳혔다.

"유리야. 일단 욕실에 숨어있어."
"......혼자는 싫어."

태현의 눈에 비친 유리의 귀여운 얼굴에는 두려움 같은 건 조금도 떠올라있지 않았다. 태현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말했다.

"아빠도 금세 유리 옆으로 갈 테니까, 잠시만 숨어있어. 알겠지?"
"혼자는 싫어."

하지만 유리는 조금도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주려 하지 않았다. 가만히 얼굴을 들어 아빠를 바라보는 유리.

"혼자 살기 싫어. 죽어야 된다면 아빠랑 같이 죽을래."
"유리야. 누가 죽는다고 그래. 그게 아니라 아빠는.."
"어차피 아빠가 없으면 나도 아빠 따라 죽을 거야. 근데 그러면 억울해. 아빠랑 같은 시간에 죽고 싶어. 아빠 옆에서 죽고 싶어."

유리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고통 따위는 떠올라있지 않았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걸까. 오히려 나중에 일이 꼬여 아빠와 떨어진다거나 자신만 살아남는 그런 상황을 겪을 바에야 지금 아빠 옆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유리의 말에 태현은 딸을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유리야...아빠...절대로 유리 혼자 놔두고 어디 가거나 하지 않아. 꼭 유리 옆으로 돌아올 테니까. 잠시만 여기 숨어 있어. 응...?"

그때 태현이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유리의 가냘픈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흐으..윽......"

소리죽인 유리의 흐느낌이 태현의 가슴에 울려 퍼졌다.

"싫어...흐윽...거짓말하지마...나..다 알아..흐흑, 아빠가...나만 살리고...죽을려구 그러는 거...흐으..윽......"

태현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옆방에서 들리던 총소리도 이제 멈췄다. 태현의 귓가에 이쪽 방으로 걸어오는 복면인들의 발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다급해진 태현은 일단 유리를 안은 채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쉬......"

눈물 범벅이 되어 있는 유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태현이 속삭였다. 유리는 일단 아빠와 같이 들어온 것이 안심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를 다시 꼬옥 끌어안았다. 한편 유리를 끌어안은 채 벽에 옆으로 기대어 서서 욕실의 문을 등진 태현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다다다다다당-!! 덜컥!

{옷장엔 없군.}

중국말이다. 태현은 등 뒤로 가있는 유리의 팔을 끌어내려 자신의 앞으로 모으게 하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당연히 이대로 다 포기하고 죽을 생각은 없다. 발자국 소리를 세는 태현.

"전부 여섯명."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세 명의 발자국 소리가 욕실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태현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권총을 보았다. 44구경 매그넘탄이라면 욕실의 문을 뚫고 나가 충분히 복면인의 몸을 관통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 리볼버 안에 들어있는 탄환이 다섯개라는 사실이었다.

"각오해야겠군."

몸으로 때우면 한명정도야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은 태현은 그들이 얼마의 간격을 두고 서있을지를 계산하며 천천히 셋을 세었다.

"하나...둘..."

치직...

{예. 아홉니다.}

그런데 태현이 셋을 세려는 순간, 밖에서 무전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목이 타는지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지금 1층 객실을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 지하에는 없었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스(예)", "스"라고 하는걸 봐서 무슨 지시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태현은 유리를 등 뒤에 세운 채 천천히 돌아서서 문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야. 현 대형이 부르신다. 모두 파티장으로 가!}
{예!}

어쩐 일인지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현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세었다.

"모두 여섯......"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모두 방에서 나가고 나자, 그제서야 태현은 긴장이 풀리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에 꼭 붙어있던 유리를 끌어안았다.





서서히 말라가던 카나코의 검붉은 핏자국에 아직 온기를 가지고 있는 붉은 핏물이 더해졌다. 힘겹게 움직여 카나코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현준의 손길. 눈 앞이 가물거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보다. 그러고 보니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스럽진 않았다. 육체의 고통을 느낄 여유도 없을 만큼 지금 마음이 아파왔으니까.

"미안..해......"

서글픈 음성이 현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복수......해주지 못했어......"

고개를 힘겹게 수그리는 현준.

"흐으..윽...미안..해...해줄 수...있는 게...함께..있어주는..것뿐이라서......미안해......"

서서히 카나코의 위로 현준의 지친 몸이 쓰러졌다. 뛰지 않는 그녀의 심장 고동소리를 느끼는 현준. 그의 눈도 서서히 감겼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입술에서 애타는 음성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카나코...키미가...스키......혼또니...고코로까라...아이캇따......(......카나코...널...좋아해......정말...진심으로...사랑했다......)"

서서히 현준의 숨소리가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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