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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6:45 1,038회 0건
(10) 터널 밖의 터널

밖으로 나오자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다소 위안이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쯤일까?
하 선생의 차가 선 방향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차가 끼익 하고 서기도 했지만 내가 술 취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자 잠자코들 갔다.
얼마 안 지나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났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때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아들 걱정이 되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았다. 두 시가 넘어 있었다.
잘까? 잠들었을까? 날 기다리는 건 아닐까......?
걸음이 빨라졌다.
아파트에 다다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에 우뚝 서서 기다리는 아들을 보았다.
이제야 안도했다는 눈망울로...
조금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하는 젖은 눈시울로... 그는 서있었다.

우선 그를 품어 안도시켜야 했다.
써늘한 내 가슴으로 그의 체온이 전해져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어리광을 부리며 안 떨어지려는 그를 억지로 떼어내며 "빨리 자야지?" 했을 때 아들이 코를 컹컹거리며 "남자 만났지?"하고 캐물었다.

"엄마 오늘 친구 만난다고 했잖아!"
"그런데... 남자지?"
"엄만 남자 만나면 안 된다는 거야?"
"아빠 냄새는 분명히 아닌데...?"
"이제 와서 네 아빠를 왜 만나!"

다소 짜증 섞인 어투로 내뱉었다.
아들도 제 아빠에게선 좋은 인상이 거의 없다. 엄마와 곧잘 싸우는... 걸핏하면 엄마를 폭행하는... 그리고 외박을 일삼던 그 장면들만이 차있을 거다.
그런 네 아빠를 왜 만나느냐 하는 말에 그도 동조한 건지 더 이상 캐묻진 않았다.
그리고 살살해진 내 말투에 기가 죽었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뒷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우선 욕실로 들어가 하 선생의 흔적부터 지웠다.
내겐 누가 뭐래도 아들이 우선이다. 아들만이 내 인생의 영 순위다.
입술에 묻혔던 그의 흔적...
젖가슴과 끈적한 혀로 훑고 내려간 그 아래 구석구석을 온수와 비눗물로 씻어 내렸다.
채우지 못한 욕망까지도 수챗구멍 속으로 내려보냈다.

어찌되었든 집으로 돌아오니 푸근하다.
그를 향한 설렘도, 기대도... 그로 인한 절망도, 갈등도...
그 모두가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만 부추기는 허상일 것만 같다.
그 모두가 허상이라면 진상은 무얼까?
뻔한 답을 내가 묻고 있다. 저 방으로 들어간 아들, 그가 바로 내 삶의 진상인 거다.
욕실에서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로션을 발라 얼굴에 바르려는데 갑자기 불이 나갔다.
놀라 밖을 내다보니 아파트 전체가 캄캄하다.
여기도 정전인가?
거실에선 아들의 발소리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 발소리가 내 방 앞으로 다가왔다.

똑똑...

"정전인가 보다!"
"들어가도 돼?"
"왜?"

이미 아들이 들어왔다.
베개를 가슴에 품은 모습이 이 방에서 자고 싶다는 뜻이리...

"좁을 텐데...?"
"밑에서 잘 거야!"

언젠가 그랬던 적을 기억한다.
내가 너무 취하여 아들의 등에 업혀 들어온 그날...
나는 밑에다 이불을 깔았다.
그 위에 또 하나의 이불을 깔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자라 했다.
아들은 야외라도 나온 양 들뜬 표정으로 누웠다.

"그러고 보니 너 내일 학교 안 가는 날이구나!"
"이제 알았어?"
"난 엄마만 생각했지! 내일도 열어야 하거든..."
"그런데 개천절이 무슨 날이야?"
"개천절? 말 그대로 표현하면 하늘이 열린 날이란 뜻인데... 학교에서 안 배웠니?"
"단군이 이 나라를 세운 날이라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그렇게 정하여 기리는 거지! 세상의 날짜란 것도 따지고 보면 특별한 의미가 없잖아. 그렇게 정하여 개념화한 거지! 네 이름도 마찬가지고... 이 엄마도 마찬가지고..."

아들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저 나와 대화하고 싶었던 걸 거다.
내 마음과 그의 마음을 소통시키고 싶었던 걸 거다.
이럴 때의 소통... 그걸 흔히 그립다는 말로 쓴다.
아들은 내가 그리웠던 거다.
아들이 날 그리워하는 만큼 나도 그립다.
문득 문득 걱정이 되고 그립다. 그런 공평함이 우릴 엮고 있다.
지금의 물밑 이 팽팽한 긴장감은 그 공평함을 저울질하려는 마음에 기인한다.
아들이 나를... 혹은 내가 아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은 때문이다.
아들은 바닥이 춥다며 추 하나를 저울 위에 더 올려놓는다.
감기 들면 큰일이라고 그 추를 뺏어 반대편으로 밀 태세의 나지만... 그 실랑이의 대부분은 내가 진다. 그러면 아들은 추를 슬며시 내려놓고 천칭 위에서 재주를 부려 나를 즐겁게 한다.

내가 오늘 밤 그 재주가 그리웠던 걸까? 몸을 비껴 자리를 만들어주자 잽싸게 올라온 아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잠시 출렁대던 천칭이 평형을 유지하고 잠잠해졌을 때 옷깃 저 너머로 전해오는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저 귀여운 것이... 저 엉큼한 것이 본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구나.
본색이 무언지도 모르는 어린 내 아들놈이...
그래도 잠자리 속에선 엄마의 몸 아무 데나 함부로 대일 수 없다는 걸 아는 아들은 틈을 주고 누워 있다.
그 틈이 문제다. 이 시간 아들에겐 스스로 그어놓은 그 틈... 그 틈을 어떻게 무효화시키느냐가 문제일 거다.
내가 아들의 마음을 너무 깊이 읽은 걸까?
속으로만 전전긍긍하고 있을 그 모습에 연민이 일기 시작했다.
내 가슴이 슬금슬금 저며오기 시작한 거다.
머리가 혼탁해져 오고, 속이 울렁울렁해 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오는 거였다.

슬며시 손을 내밀자 재빠르게 잡아오는 손...
아들의 바램이 곧 나의 바램이 될 수 있을까? 두 손의 화합으로 그걸 증명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나도 아들도 적당히 피곤해 있다는 거다.
살며시 손을 보듬자 손만이 아닌 몸 전체가 촉촉이 젖어드는 느낌이다.
살며시 손을 당기자 손만이 아닌 그의 몸 전체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느낌이다.
나는 그 느낌에 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손을 만지작대던 손이... 그 손을 되 만져온 손에 이끌려 어딘가 끌려가고 있을 때에야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쩍 벌어진 균열 사이로 써늘한 바람이 들어와 내 이성을 환기시키려 애썼지만 이미 늪 속에 빠져버린 몸을 건져내기엔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황급히 봉합이 되었다.
왜냐, 갈등하고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늪의 생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손이 옷 위만 쓰다듬고 있자 아들의 손이 다가와 옷 속으로 내 손을 넣어준다.
벌써 뻣뻣해진 감촉이 손아귀 안에서 꿈틀꿈틀 춤을 춘다.
난 이미 감겨있는 눈을 또 한번 감는다.

그렇게 잠이 들었으면 했다.
나만의 이기였을까? 아들은 자꾸 내 잠을 보챈다.
아들은 나의 손을 보채고, 어느 새 걸쳐온 다리로 내 다리를 보챈다.

"왜 그래? 엄마 내일 가게 나가야 한단 말야...!!"

그 말에 잠시 잠잠해졌는가 하여 잠이 들려는데 또 보챈다.
팽 돌아누워 침대를 굴렁굴렁 굴린다.
아이가 보채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배가 고프든지, 배설을 했거나 마렵든지... 그 두 가지다.
지금은 후자의 후자일 거다.
잘 알건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그가 팽 돌아눕느라 빠져 나온 손을 슬며시 거두어 머리 밑에 괴고는 나도 반대쪽을 향해 돌아누워 버렸다.
낙망한 아들의 트집이 침대의 쿠션을 통해 전해져 온다.
내겐 오히려 그런 흔들림들이 자장가로 듣는다.
비몽사몽 혼란한 잡음 속의 역사(驛舍)를 지나 꿈 열차의 트랩을 밟고 올라서려는 순간 옆구리를 건드리는 손길에 깜짝 놀라 황급히 발을 내려 디뎠다.
어느 틈에 다가온 아들이 뒤에 바짝 붙어 두 팔로 옆구리를 감아온 거다.
침대 속이 아니었던들 그런 포옹 정도야 늘 해오던 우리라 크게 당황한 건 아니지만 그의 가슴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 뻔한 마당에 뭐라 따끔하게 야단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감아온 손을 빼내려는데 두 손으로 깍지까지 낀 모습에 마음을 접고 말았다.
그의 고집과 나의 한계가 만나 타협을 한 거다.

"이게 그렇게 좋으면 그렇게 자! 엄마 많이 피곤하니까 건드리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을 목덜미로 느낀다.
타협의 수면 아래엔 저번 혼을 내주려다 도리어 혼쭐이 나고 오늘의 사건으로까지 번지게 한 전철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한동안 그는 잠자코 내 등뒤에 붙어 있기만 했다.
나도 안심하고 다시 잠行 열차를 기다렸다.
그러다 몇 열차나 그냥 지나쳐보내고 다시 들어온 열차의 트랩을 겨우 밟고 올라서는 데에 성공했다.
그때 같이 탄 승객인지 엉덩이를 쿡 찌르는 손길을 애써 무시하고 내실로 들어가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아니, 너무 피곤해 벌써 누워버린 듯 하다.
잠은 묘한 마력이 있다.
심신을 혓바닥처럼 온통 나긋나긋하게 만들어버리는...
온통 비누 거품처럼 부풀어 놓는...
풍선처럼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어디까지 띄워 올려놓는...
깃털처럼 가벼워져 꿈자락을 드나드는 내 육신을 아직도 누군가 자꾸 쥐어박는다.

쿡! 쿡!

간지럽기도 하고 제법 대차기도 하다.
뒤돌아보자 그였다.
하 진봉!

"아, 선생님이셨군요!"
"네 저 아래서부터 따라 왔습니다. 여자가 걸음이 얼마나 빠르던지..."

손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에 젖은 땀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대뜸 허리를 안아 온다.
목덜미에 그의 혀가 느껴진다.
나는 부끄러워 몸을 돌린다.
그에겐 몸을 비꼬는 걸로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도 즐거운 건 어쩔 수 없다.
등에 그의 따스한 가슴이 느껴지고 허리를 감았던 손이 올라와 젖가슴을 움켜쥔다.
아-- 나는 너무 행복하다.
그가 젖가슴을 움켜쥘 때마다 엉덩이에는 발끈 달아오른 그의 남근이 느껴진다.
그의 힘찬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이제 다 나은 거지요?"
"그럼요! 다 손 여사 덕이지요. 평생 받들고 살겠습니다!"
"뭐, 그렇게 까지나... 호호호..."

자꾸 웃음이 나온다.
호호호... 자꾸 터져 나온다.
그 웃음을 핥아먹기라도 하듯 그의 혀가 목덜미를 핥는다.
귓볼도 핥는다.
조금만 더 돌리면 웃음을 통째로 핥아먹을 수 있다는 듯이 입술로 향하고, 나는 안 잡히려 자꾸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 장난은 끝났다. 웃음도 끝났다.
내 웃음은 결국 그의 입술 속으로 잡아먹혔다.
느닷없이 터진 웃음이 잡아먹히는 이 달콤함...
그 달콤함에 젖어있는 동안 뒤쪽 엉덩이에선 그의 박동이 한층 격해졌다.
박동이 아니라 율동이라 해야할 거다.
그의 뜨거움에 내 뒤가 다 녹아버릴 것만 같다.
점점 더 뜨거워진다. 그런데...

"거기가 아니에요! 그곳이 아니잖아요?"

나는 황급히 옷을 내려 주었다.
그리고 손을 내려 그를 안내했다.
이윽고 제 자리를 찾은 그의 남근은 잠시 얼떨떨한 내부 풍경에 빠져있는 듯 하더니 다시 율동을 시작했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율동...
제대로 궁합이 합치된 율동이었다.
아! 나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
나는 기꺼이 그의 율동을 도왔다.

폭발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그 폭발을 함께 즐기기 위하여 모든 감각을 그쪽으로 집중시켰다.
그와 나는 오늘에야 함께 느끼는 거다.
함께 맞이하는 거다. 신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 이상은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아도 얼마간 여진이 이어진다는 걸 수없는 경험으로 안다.
얼마 후 그가 풀무를 뽑아 물러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나른한 잠의 긴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시간... 내 가랑이 속에선
그가 뿜어낸 욕정의 씨앗들이 달리기를 하거나, 치고 박고 싸우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느라 난리법석을 벌였을 것이다.



>> 재미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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