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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선을 넘은 것은 누나 쪽이었다 - 2부2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07 699회 0건
내 짝꿍이 등교한 것은 1교시 수업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였다. 하지만 담임도 오지 않아서 지각체크를 당하지 않았다. 담임이 지각체크를 안할 때는 귀찮거나, 또는 귀찮아서 안 하는 것인데, 오늘은 아예 학교를 오지 않았나보다. 오늘의 1교시는 수학으로, 담당교사는 우리 담임이다. 하지만, 담임은 오지 않고 다른 반의 선생님만 한 번 오더니 자습을 시키고는 사라졌다.

애들 입장에서는 살판이 났다. 이때가 기회다 하고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PMP로 드라마를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자거나, 떠들거나. 나는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에 대해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되느니, 시끄럽느니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조금은 어수선한 편이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떠들어서야 선생님에게 혼날 게 당연하잖아. 어느 정도 조절은 해줬으면 좋겠다.

자습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요 며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보니 공부를 별로 하지 못 했다. 내 나름대로 공부의 진도를 계획해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이다. 공부라는 게 하루하루 쌓이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막상 하루가 밀리면 무시 못 할 분량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하루가 밀리면 다음 날은 평소의 두 배만큼의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지금 세 배만큼을 해야 하고.

오늘은 암기과목을 해야겠다. 집중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집중이 안 되는 대에는 암기공부가 편하다. 다른 생각이 많으면 논리적인 사고가 약해지기 때문에 단순한 반복작업으로 공부할 수 있는 암기과목이 좋다. 물론, 반복작업 없는 공부라 없지만.

노트를 꺼내 교과서를 베끼기 시작했다. 공부할 거리를 노트에 베껴 적는 것은 수수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그만큼 효과도 매우 높다. 또한 머리가 좋고 나쁜 것보다는 꾸준함이 더 많이 필요한 방법이다. 물론 그냥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내가 읽기 편하게 정리하면서 베끼기 때문에 나중에 시험공부를 할 때도 좋다. 성진이 녀석은 늘 이 노트를 탐낸다.

“운하야.”
“어?”

교과서 베끼기를 하는 도중에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혹시 문학 어디까지 진도 나갔는지 알아?”
“어제 102쪽까지 나갔을 걸.”
“아, 그렇구나.”

은미는 문학책을 넘기며 주욱 보더니,

“숙제 있었어?”
“그 100쪽부터 102쪽에 있는 문제들만 풀어두면 돼.”
“고마워.”

오늘 문학이 3교시에 있으니 미리 풀어두려는 것 같다. 나는 어제 미리 풀어 놓았다.

은미는 내가 대하기 편한 타입의 여자애다. 원래 사람에게 말을 잘 붙이지 못 하는 나의 내서적인 기질은 여자애에게 특히 더 심하다. 그 이유인즉슨,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말이 많아서 상대하기 피곤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이 없어선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다. 하지만 은미는 조용하고 필요한 만큼의 말만 하기 때문에 대하기가 편하다. 내가 가장 상대하기 쉬운 사람은 나보다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 뒤로 오간 대화는 없었다. 각자 자신의 공부를 했다. 어느새 1교시가 끝이나고 2교시가 시작되고, 끝나고, 3교시가 시작되고, 끝나고, 4교시가 시작되고, 끝나고, 5교시가 시작되고, 끝났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지은이에게 말했던 시간.

지은이에 대한생각은 어제 정리해두었다. 이제는 행동만 남았다. 반 녀석들이 점심을 먹으러 떠들썩하게 교실은 나간다. 성진이 녀석이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일단은 자리에 앉아서 애들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렸다. 흘끗 지은이가 있는 곳을 쳐다보니 친구들을 보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은이도 일어났다. 천천히 교실을 나갔다. 지은이도 따라 나온다. 복도를 걸었다. 지은이도 따라 걸었다. 계단을 올랐다. 지은이도 따라 올라온다. 한 층을 오르고, 더 올라갔다. 이제 곧 몇 계단만 올라가면 옥상 문 앞이다. 옥상 문 앞에 도달했다. 안 쓰는 책상이나 의자 따위가 쌓여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기 때문에 퀴퀴한 냄새가 났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담배를 피웠는지 버려진 담배꽁초들도 보인다. 장소 선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왜 불렀어?”

지은이가 물었다. 하지만 곧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못 했다. 조금 망설여졌다. 말을 하기 힘들다.

“내가 어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응.”
“어제 일은 일단 내가 이성을 자제하지 못 해서 미안해.”
“…….”
“그리고, 어제는 실수라고 할까. 아니, 실수가 아니라. 내가 말을 잘못했어.”

역시 난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해도 될 말 안 될 말이 분별없이 쏟아져 나온다. 잠시 머릿속에서 할 말을 다시 점검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일단 지은이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목적으로 말을 준비했는데, 역시 쓸데없는 미사여구 따위나 설명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괜히 어제 오랜 시간 고민했다. 결국 할 말은 하나뿐인데.

그저, 단순하게, 목적에만 다가갈 수 있는 한마디.

“지은아 나랑 사귈래?”

대답은 없었다. 지은이에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할지. 지은이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이번 주는 태어난 뒤로 여자의 눈물을 가장 많이 본 주인 듯싶다. 그리고 가장 많이 당황한 주. 역시나 지금도 난 당황한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역시 장소 선정이 별로였나?

“지은아, 괜찮아?”
“흑, 흑, 으응.”

눈물 그득한 눈으로 괜찮다고 해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나도 마음이 전혀 괜찮지 않다. 지은이가 교복 치마 주머니에서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데자뷰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잠시 후, 지은이 조금 진정한 것 같아서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지은아, 대답은?”
“다음부터는 손수건을 준비하고 다니란 말이야.”
“응?”
“바보.”

지은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거, 정해져 있잖아.”

지은이가 웃었다.

“대답은 당연히…….”

지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된 건가?”

지은이에게 물으면서 스스로에게도 물었다.

“뭐가?”

지은이 물었다.

“커플.”
“응.”

커플이 되었구나. 되긴 했는데,

“이제 뭐해야 되지?”
“글쎄.”
“이번 주말에 데이트할까?”
“응, 그러자.”
“언제 어디서 만날까?”
“천천히 생각하자.”
“그래.”

커플이 되어도, 역시 로맨스 영화 같은 화려한 배경음악이 깔리지도 않고, 화사한 배경이 펼쳐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여름의 날씨 같은 피부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그런 따뜻함.

나와 지은이는 커플이 되었다.

커플이 됐다고 해도 뭐가 달라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커플이 된 사실을 굳이 알리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물어보면 굳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아마 주위에서 알겠지. 게다가 같이 급식실로 점심을 먹으러 갔기 때문에 아마 누군가 우리를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우리 앞에 목격자가 나타났다.

“너희 둘 결국 사귀는 거야?”

성진인 녀석이었다. 용케 나를 봤나보다. 어쩐지 성진이 녀석에게는 사실을 말하기 싫었지만 그냥 말하기로 했다.

“그래. 오늘부로.”
“이야, 축하해.”
“말하고 다니지 마.”
“안 그래. 그리고 지은아, 드디어 꿈을 이뤘구나.”

성진이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꿈?”

지은이의 무심코 지은이를 쳐다보았다. 지은이의 얼굴이 조금 빨개져 있었다. 지은이가 내 눈길을 피했다.

“꿈이라니?”
“아마, 성진이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아.”

성진이 녀석은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한다. 때문에 그 녀석을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 녀석이 남이 싫어할 짓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게다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오지랖을 가졌으니, 어쩌면 지은이의 마음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걘 원래 그런 애야. 아마 누가 누구 좋아하는지 다 알 걸.”

나와 지은이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곧 수업 시작할 때가 되어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새 오늘 하루 수업도 모두 끝났다. 오늘 지각체크를 하지 않은 탓에 어제 지각했던 녀석들이 투덜투덜거리며 청소를 시작했다. 우리 반은 정규수업이 끝나고 보충수업이 시작되기까지 10분 만에 청소를 완료한다. 가끔 대청소가 필요할 때는 보충이 끝나고 야자 시작 전 저녁 시간에 한다. 그리고 보충수업과 야자를 듣는 녀석들은 청소를 하는 동안 잠시 자리를 떴다. 나는 청소도 하지 않고 야자도 하지 않으므로, 집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서 지은이 있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지은이도 가방을 챙기고 있다. 지은이도 오늘부터 보충수업과 야자를 하지 않는다. 아까 6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을 찾아갔다 나오더니, 오늘부터는 같이 하교하자고 말했다. 나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 어떤 식으로 담임을 설득했는지 모르겠다. 물어봤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자.”
“응.”

지은이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은이는 이제 보충수업을 들어야할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 후 내 옆으로 붙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건물을 나와 교정을 걸어 교문을 통과했다.

“애들이 다 안 것 같아.”

지은이 말했다.

“뭐를?”
“우리 사귀는 거.”
“그렇겠지.”

굳이 말을 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열심히 붙어 다녔으니 물어보지 않아도 다들 알았을 것이다.

“운하야, 너는 지금 기분이 어때?”

기분이라. 확실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그런지 조금 간지러운 것 같은 느낌이다. 애뜻하다고 할지, 그런 느낌도 든다.

“난 계속 심장이 두근거려.”

지은이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내 여자친구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지은이는 정말 이쁘다. 평소엔 조금 무표정해 보여서 무서워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웃고 우는 표정의 변화가 무척 다양하다. 게다가 그 다양한 표정이 무표정으로 있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나로서는 과분하다.

“나도 두근거려.”

내 말에 지은이 싱긋 웃는다. 과연 매력 있는 미소다.

오늘 지은이네 집을 처음 가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우리 집에서 15분쯤 걸으면 될 것 같다).

“아파트에 사는구나.”
“응.”
“왠지 의외야.”
“뭐가?”
“체육관을 한다고 들어서. 체육관이랑 같은 건물 위층에 산다던가. 그렇게 생각했거든.”
“옛날엔 그랬는데 지금은 체육관이 2층까지 확장 됐어.”
“사람이 많이 오나보네.”
“그런가봐. 사실 나도 체육관 확장해서 여기로 이사 오고는 별로 가본 적이 없어.”

단지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바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섰다. 음, 이 아까 들어설 때 본 기억으로는 103동이었던 것 같다.

“그렇구나. 체육관에 자주 다닐 줄 알았는데.”
“옛날에는 계단만 내려가면 체육관이라서 자주 했었는데 거리가 멀어지니까 가고 싶지 않더라. 그리고 하다보면 여기저기 굳은살 생겨서 이제 하고 싶지 않아.”

하긴 여자애니까. 근육이 울퉁불퉁해진다던가, 굳은살이나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스위치를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현재 위치는 15층. 몇 층이나 되는 아파트일까. 일단 15층만 해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높이다.

“그럼 이제 운동은 안 하는 거야?”
“체육관은 안 가지만, 아침마다 조깅 정도는 하고 있어. 옛날부터 달리는 건 좋아했거든.”
“체육관은 어디에 있어?”
“여기서 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있어. 혹시 파이터 체육관이라고 알아?”
“잘 모르겠어.”

이 동네에서 꽤 살았지만, 하도 밖을 돌아다닌 적이 없다보니 지리를 알지 못한다. 사실 지은이가 살고 있는 곳도 처음 와보는 곳이다. 내가 외출하는 경우는 장을 볼 때 이외엔 없는데, 이 근처에는 할인마트가 없어서 올 기회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자주 오게 될 곳이다.

엘리베이터가 벌서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은이가 12층의 스위치를 누른다. 103동에 12층에 사는구나. 이제 몇 호인지만 알면 되겠구나.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했다. 지은이가 오른쪽에 바로 보이는 1204호 문 앞으로 섰다. 전자식 도어락을 열고 암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문이 열렸다.

“자, 들어와.”
“어, 응.”

사실은 집까지만 바래다주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집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혹시나 지은이의 어머니가 계신 걸까,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야 할까, 조금은 긴장한 채로 집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지은이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안 계시는 거야?”
“응.”

조금은 안도했다고 할까.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도 혹시나 지은이네 부모님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졸였다. 혹시나 고교생의 연애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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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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